또 그소리지. 면접관들은 ’AI면 되는데 왜 니를 뽑아야하냐‘를 묻고 있고, 대학교와 교수들은 여전히 ’AI를 쓰면 100점이 가볍게 나올정도의’ 과제로 평가하려든다. 이 괴리가 학생으로 하여금 대학을 그저 졸업장발사대로 여기게 하는 시작점인걸, 그들의 매몰비용이 아까워서인지, 인정하지 않으려해
속임수를 유능함으로 여기는 사회
AI의 교육적 해악은 지적 퇴화 넘어 도덕적 실패
(아래 원문 발췌)
요즘 대학에 있으면 마치 연쇄 범죄의 한가운데 갇힌 듯한 기분이 든다. 학생들이 모든 과제를 편법으로 해결하려고 끊임없이 AI를 활용하는 걸 본다.
학부생들의 무분별한 AI 사용이 지적 발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기사는 허다하지만 그보다 나는 도덕적 결과에 훨씬 더 큰 관심이 있다. 전자의 경우엔 이미 얼마간 확신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대학에서 논문 쓰는 법을 실제로 배운 대학원생들에게, 그들보다 대략 10년 뒤처진 무능한 세대가 나타날 거라고 말해왔다.) 무엇보다 리더십과 비즈니스 윤리 수업을 맡고 있으면서 너무나 많은 청년들이 부정행위를 삶의 방식으로 습관화하는 듯한 모습에 경악하기 때문이다.
많은 학생들이 분명 이 주장을 반박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은 명백히 교육 과정을 속임수로 헤쳐 나가는 것이다. 직접 쓰지 않은 모든 논문, 직접 준비하지 않은 모든 문제집 풀이, 메모로 요약해 버린 모든 심도 있는 독서 자료-이 모든 것은 요령껏 그럭저럭 넘어가서 졸업 시점엔 자신이 제대로 이룬 것이 아닌 학위를 획득하는 과정이다.
누군가가 무엇을 ‘획득했다’고 말할 때는 그가 얻은 것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획득하지 않은 것을 가질 수도 있고, 받을 자격이 없는 것까지 가질 수도 있다. 전자는 신탁 기금을 물려받은 자녀의 행운이고, 후자는 도둑의 몫이다.
요즘 학생들은 도둑이 되는 법을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쏟는다. 일단 의심스런 졸업장을 받으면 범죄 조직과 다를 바 없는 자질-지름길을 찾는 재주, 공동체 규칙에 대한 경멸, 그리고 정직의 정신과 그에 수반되는 희생은 바보와 겁쟁이들만의 전유물이라는 가정-을 온전히 갖춘 채 ‘현실 세계’로 나아갈 것이다. 그 결과는 사기꾼들로 가득 찬 사회다.
2023년 겨울 하버드와 시카고 대학교에서 가르치던 수업의 글쓰기 과제 중 일부가 전에 본 적 없는 특징을 띠기 시작했을 때 이런 변화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문법은 흠잡을 데 없이 깔끔하고, 글머리 기호가 지나치게 많으며, 독창적인 사고에서 비롯되는 유쾌한 비틀거림 대신 사실들을 마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식이었다.
바로 AI가 생성한 논문의 끔찍한 문체다. 처음에 이런 논문들은 서툰 문체 때문에 쉽게 무시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예외적인 사례에 속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하버드 크림슨의 봄철 설문조사에 따르면, 졸업반 학생의 3분의 1이 “교수 허락 없이 과제 작성에 AI를 사용했다”고 시인했다. 이는 “AI를 이용해 부정행위를 했다”는 말의 상당한 완곡어법이다.
이 설문조사는 AI 도구가 대거 보급되기 전인 2022년 가을 입학생들을 대상으로 했다. 올해 신입생들을 생각할 때면, 시카고 대학에서 신입생 작문 수업을 담당하는 동료가 자꾸 떠오른다. 올봄 그는 지난 1년간 맡았던 모든 수업을 통틀어 AI 도움 없이 과제를 제출한 학생은 단 세 명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단 세 명이다. 글쓰기 교육을 목표로 한 수업에서 말이다.
이처럼 AI가 폭넓게 사용되는 이유 중 적어도 일부는 그래도 들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들키더라도 결과는 미미할 거라는 확신 때문인 듯 보인다. 앞서 말한 하버드 설문조사에서 “교수 허락 없이 과제에 AI를 사용했다”고 인정한 2026년 졸업생 93%는 자신의 부정행위가 발각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나머지 학생 절반 이상은 적발된 후에도 아무런 징계 조치도 받지 않았다고 답했다. 단 2.6%만 위반 행위의 대가를 치렀다고 답했다. 부정행위 유혹을 느끼는 누구에게나 전반적으로 꽤 유리한 확률이다.
규칙을 어기려는 사람들에게 ‘확률 계산’은 드문 전략이 아니다. 무임승차자, 과속 운전자, 탈세자들의 비뚤어진 비용-편익 분석과 같다. 이들은 공동체 규칙을 공동의 의무가 아니라 위험 평가의 기회로 취급한다. 불법적 이익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관건은 옳고 그름이 아니라 처벌받을 가능성이다.
이런 사고방식은 특히 ‘피해자가 없는’ 범죄와 관련해서는 더욱 유혹적이다. 종종 우리는 이 ‘피해자 없는’ 범죄라는 용어, 즉 위험한 모순어를 사용해, 가해자의 이익이 타인의 잠재적 피해보다 더 큰 것처럼 보이게 묘사한다.
잠재적 가해자들로선, 특히 해당 피해가 멀리 있거나 불확실할 때, 그런 범죄 행위의 유혹은 상당히 강력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누릴 이득을 알고 있기에 남들에게 심각한 해가 미치지 않을 텐데도 그 보상을 포기해야 한다는 건 불공평하고 심지어 불필요한 일로 보인다.
내 직감으로는 많은 학생들이 AI의 무단 사용을 이런 식으로 보는 것 같다. AI로 논문을 쓰거나 문제집을 푼다고 다른 사람에게 실질적인 피해가 가는 건 아니라고 여긴다. 특히 모두가-심지어 일부 교수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 세상에서, 왜 나만 시간과 수고, 그리고 진학이나 취업에 불리한 입장을 자처해야 하는가?
이런 논리는 이미 한 가지 해악, 즉 학문적 경험의 저하를 묵인하고 있다. 브라운 대학교에서 최근 발생한 사례가 이를 암울하게 보여준다. 지난 봄, 경제학 교수인 로베르토 세라노는 담당 수업의 시험 방식을 대면에서 재택으로 바꿨다. 작년 12월 캠퍼스에서 발생한 대규모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많은 학생들이 느낀 불안감을 배려한 양보였다. 학생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변경 소식을 듣자마자 수강 신청자가 급증했다. 30명을 넘긴 적이 없던 수업에 거의 90명이 등록했고, 중간고사 평균 점수는 96점이었다. 40명이 만점을 ‘기록’했다.
시험지를 ChatGPT에 입력해 봤더니, 유난히 흠잡을 데 없는 제자들의 답안과 유사한 결과를 보여 줬다. 기말고사에선 다시 대면 시험으로 돌아갔다. 18명이 즉시 수업을 취소했다. 남은 9명은 시험을 아예 치르지 않았다. 시험을 치른 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48.6점으로, 수업 역사상 기말고사 평균 점수 중 최하 기록이었으며, 그것도 이전 최저 기록보다 20점 가까이 낮았다.
격분한 세라노는 대학교육 저널 Inside Higher Ed에 기고했다. “최고의 젊은 인재들 상당수가 부정행위를 괜찮은 일로 여기는 사회를 용납할 수는 없다. 그것은 사회의 쇠퇴로, 실패한 사회로 이어진다.” 그가 염두에 둔 구체적인 실패는 지적 차원의 것이다. “우리는 바보가 되기로 선택할 수는 없다”는 정도다. 하지만 이 사건은 공동체 구성원들이 규칙을 의무로 여기지 않을 때 스며들기 마련인 일종의 도덕적 부패를 잘 보여준다.
위반자들은 잠시 제쳐두자. 수업에서 정말 과목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자신들이 과제를 수행할 때 끊임없이 부정행위를 하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는 사실을 안다. 새로운 사고방식을 전달하는 데 열정이 있는 교수들은 최소한의 이해 노력조차 기울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벽에 직면해야 한다. 대학원생 조교들은 매 학기 가짜 과제를 채점하는 데 몇 시간을 소비해야 하고 결국엔 자격 없는 학생들에게 A 학점을 대량으로 부여해야 할 가능성에 직면하게 된다.
이게 바로 전국 및 전 세계 캠퍼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행위의 결과다. 이는 상수도관에 독을 타거나 건물에 불을 지르는 것과 같은 유형의 피해-즉각적이고, 압도적이며, 부인할 수 없는 피해-를 일으키진 않지만, 장기적인 파괴력은 결코 뒤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수업 과정이 터무니없다는 걸 알고 있을 때 교실에서의 학습은 불가능해진다. 때문에 이런 상태는 학문 공동체의 무결성을 완전히 훼손한다.
비록 속도는 빙하처럼 느려도 대학들은 대응하기 시작하고 있다. 올봄 보도된 것처럼 프린스턴대 교수진은 모든 대면 시험에 감독관 배치를 의무화하기로 표결했다. 이 결정은 1893년 프린스턴의 유명한 ‘명예 규약Honor Code’에 대한 가장 중대한 변화다. 130년 넘게 학생들은 “시험 중 명예 규정을 위반하지 않았음을 명예로 맹세합니다”라고 선서해야 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요구받겠지만 형식적인 절차에 불과할 것이다. 교수진은 학생들을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가 범죄 급증에 대응하는 일반적인 방식이다. 법 집행 체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감시 범위가 확대되고, 처벌이 강화되며, 법규는 과거 명예, 예의, 상호 호혜라는 관습적 규범에 의해 자제되던 행동까지 규제하는 방향으로 확장된다. 학문 공동체의 수장으로서 교수진은 자신의 업무 중 징계 관련 요소를 우선시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그들은 정말 하고 싶은 일, 즉 연구와 교육이라는 본연의 업무가 아니라, 판사, 배심원, 집행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학술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은 AI로 인한 고등교육 위기에서 우리가 우려해야 할 최소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설령 교수진이 이 부정행위 물결을 억제할 수 있다 하더라도-나는 그 가능성을 의심하지만- 이는 전례 없이 많은 학생들이 동료들에게 미칠 영향이나 공동체에 대한 부식적인 효과는 아랑곳 없이 자신의 성공과 진급에 불리한 규칙은 따를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결과다.
이것이 바로 전국의 젊은이들이 졸업할 때 품고 있는 사고방식이며, 이는 노골적인 출세주의라기보다는 은근한 범죄성에 가깝다. 선배 세대에 비해 그들은 아는 것이 거의 없겠지만, 자기 일의 정직성, 동료에 대한 신뢰,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없이도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잘 돌아갈 거라는 잘못된 믿음을 굳게 품게 될 것이다.
자기 일의 정직성, 동료에 대한 신뢰, 공동체에 대한 자부심, 이 모든 것은 성취이며,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나 함께 얻어내는 것이다. 이것들은 훔칠 수는 없지만 빼앗길 수는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깨닫기도 전에 우리 모두에게서 빠르게 빼앗기고 있다.
https://t.co/MzvGd1s5bk
이게 Weaponized incompetence(무기화된 무능력) 이라고 하는데 책임을 회피하거나 싫은 일을 안 하기 위해 일부러 서툴거나 못하는 척해서 타인이 대신 일을 하도록 조종하는 심리임
틱톡이나 인스타에 검색해보면
진짜~~ 많은 남자들이 여자친구나 아내 상대로
ㅂㅅ짓 하고 있음 꼭 검색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