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왜 옷 봉우리인가
행성 간 이주에서 짐의 무게는 곧 비용이다. 그런 이유로 하여금 사람들은 가장 먼저 옷을 버렸다. 어차피 지구의 옷은 다른 행성의 환경에 맞지 않았다. 그렇게 버려진 옷들이 모인 곳은 헌 옷 수거장이라고 명명해도 좋을 만큼 처음엔 체계와 순서가 있던 곳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떠난 자들의 수가 누적되면서 그 수거장은 지금의 옷 봉우리가 되었다.
5. 빌런의 형태
빌런의 형태를 글로 표현 해보자면... 얼굴은 아기다. 갓 태어났거나 길어야 두세 살쯤의 얼굴. 볼은 통통하고, 눈은 동그랗고, 입은 작다. 그 표정에는 아직 세상을 알기 전의 무방비함이 있다. 그러나 그 얼굴이 얹힌 몸은 거대하다. 어른을 한참 넘어선,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른 몸. 팔다리는 굵고, 어깨는 넓고, 손은 사람을 짓이길 수 있을 만큼 크다. 진분수의 비율이 마치 영화 <맨인 블랙>의 외계인을 떠올린다.
빌런이 이런 형태를 띄는 이유는 어느 시절에 멈춰버린 인간의 내밀한 부분이 바깥으로 삐져나온 걸 표현하기 위함이다. 누구에게나 그런 시절이 있지 않은가.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거나, 일찍 무언가를 잃었거나, 모종의 사건으로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순간. 사람들은 그렇게 박제된 감정을 자기 안에 두고 키운다. 마음 속에 방 한 칸을 내어주고, 매일 먹이를 준다. 자기 연민으로, 회환으로, 변명으로, 보상받지 못한 억울함으로. 먹이를 받아먹은 그것은 점점 몸집을 불린다.
빌런이 봉우리를 지키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 봉우리 안에 답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답이 자신의 존재를 끝낼 수 있다는 것을, 빌런 자신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옷 봉우리 꼭대기의 오아시스를 파내는 순간 이 빌런은 더 이상 먹이를 받아 먹을 수 없게 될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