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는, 마지막을 혼자 맞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죽을 자리를 숨긴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아픈 사람들이 있다.
마치 고양이가,
그 누구의 배웅도 받지 않은 채 떠나기를
스스로 선택한 것처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물행동학은
그런 해석에 조용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고양이가 택하는 건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약해진 몸이 자극이 적은 곳을 찾을 뿐,
그저 그뿐이다.
그것은 의지가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내며
몸에 깊숙이 새겨진 반사다.
야생에서 쇠약함은
곧 포식의 신호가 된다.
그래서 고양이의 몸은 마지막까지 본능적으로
‘조용하고, 안전해 보이는 곳’을
향해 가게 된다.
집에서 살아온 고양이는
그 본능 위에
또 하나의 기억을 포갠다.
당신의 냄새.
당신의 목소리.
당신 곁에서 잠들었던 시간들.
그래서 생의 끝자락에 선 고양이는 흔들린다.
어느 날은
아무 말 없이 몸을 맡겨오다가도,
다음 날은
옷장 깊숙한 곳에서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그 변화를 마주하고
'혹시 미움받은 건 아닐까' 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아이 안에서는
당신 곁에 있고 싶은 마음과,
통증과 숨 가쁨에서 벗어나고 싶은 몸이
끝까지 맞서고 있을 뿐이다.
사랑이 흔들리는 게 아니다.
몸이 하나의 답만으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됐을 뿐이다.
그렇다면 고양이는 마지막 순간을,
혼자 맞고 싶어 하는 걸까.
동물행동학적인 대답은
한없이 ‘아니오’에 가깝다.
고양이에게는
‘지켜봐 주길 바란다’거나 ‘혼자 떠나고 싶다’는
그런 개념 자체가 없다.
있는 것은 단 하나,
그 순간, 가장 견딜 수 있는 곳으로
몸이 흘러가 버린다는 사실뿐이다.
그곳에 당신이 없었다고 해도,
그것은 거절이 아니다.
당신을 피한 것도,
사랑이 옅어진 것도 아니다.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올 힘이 남아 있지 않았을 뿐이다.
혹시 지금도
'아이를 혼자 떠나보냈다'라며
가슴 아파하고 있다면,
부디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고양이는 마지막을 혼자 맞고 싶어 하는 존재가 아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그 아이의 세계를
끝까지 ‘안전한 장소’로 만들어 주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이
같은 공간이 아니었더라도,
그 아이는 혼자가 아니었다.
당신이 건네준 안심의 기억이
마지막까지
그 작은 등을 떠받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 사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는 당신의 마음이야말로,
그 아이가 분명히
이 세상에 살았다는 증거다.
고양이가 깊이 잠든 것처럼 보여도, 같은 방에 있는 내가 움직이면 꼭 졸졸 따라오길래,
'심리적으로 불안한 걸까? 혼자 남겨질 가능성을 감지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는데,
AI한테 물어보니,
“고양이는 ‘혼자 남겨질까 봐 불안해서’ 사람을 따라오는 게 아닙니다. 당신(원하는 걸 뭐든 주는 편리한 존재)을 자기 옆으로 재배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는 답이 돌아와서 무릎을 탁 쳤다. 재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