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수사 시스템이 붕괴하여 국민의 생명을 방치했다면 정상적인 정치 세력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안심하도록 한 후에, 제도의 결함을 성찰해야 옳다. 그러나 민주당 김민석의 입에서 나온 변명은 그 순서도 방법도 엉망이다. 기괴하다 못해 비겁하다. 그는 이 참사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작동하는 상태에서 벌어졌다며 사태의 책임을 전가했다.
그리스 신화에는 머리가 세 개 달린 지옥의 문지기 케르베로스가 등장한다. 좌파 진영이 지난 몇 년간 국가 형사사법 체계를 난도질하며 들이댄 칼날도 정확히 세 개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첫째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 폐지, 둘째는 검찰의 직접수사권 박탈, 그리고 마지막이 보완수사권 폐지다.
그들은 이미 앞의 두 머리를 무참히 잘라냈다. 수사를 지휘할 권한도, 거악을 직접 파헤칠 권한도 거세된 검찰은 사실상 숨만 붙어 있는 식물 상태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간신히 살아남은 세 번째 머리인 보완수사권을 손가락질하며 작금의 경찰 부실 수사가 자신들 탓이 아니라 우기는 것은, 사법 체계를 붕괴시킨 주범들의 치졸한 궤변이다.
수사권 조정이라는 이름의 파괴 공작 이후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긴 시간 동안 철저한 통제와 견제를 잃어버린 경찰 조직은 서서히 학습된 나태함에 빠져들었을 게다. 사건을 대충 덮거나 뭉개도 과거처럼 검찰의 매서운 보완수사 요구나 법리적 감시가 날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일선 수사관들이 몸소 체득했을 것이고, 복잡하고 피곤한 사건을 임의로 종결해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다는 관료적 타락. 그 5년간 누적된 폐해가 수사 관행을 갉아먹었고, 결국 실종된 시민의 생명마저 전산 조작으로 무단 종결해버리는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터져 나왔다고 봐야 맞을 것이다.
김민석을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권력자들이 이 구조적 인과율을 모를 리 없다.
제도의 맹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설계자들이 뻔뻔하게 보완수사권 핑계를 대는 이유는 명백하다. 국가 시스템이 오작동해 평범한 국민이 억울하게 죽어 나가는 이 끔찍한 참사에도 자신들의 책임회피 부터 생각하는 얄팍함. 대한민국은 전례없는 모사꾼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나는 글을 다루고 사유를 기록하는 사람으로서 타인의 주장에 함부로 '궤변(詭辯)'이라는 단어를 올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러나 최근 진보 언론의 상징이라 불리는 한겨레 성한용 선임기자의 칼럼을 마주하고서는, 그 원칙을 처참하게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긴 한 줄의 문장은 단순한 궤변을 넘어, 민주 공화국을 떠받치는 근대 법치주의에 대한 완벽한 사상적 파산 선고였기 때문이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의 사전 조율 없이 서면으로 대법관 후보를 제청한 것을 두고 이렇게 일갈했다.
"대통령을 끝까지 설득하든 자신이 양보하든 관행을 지켰어야 했다. 국정에서 관행은 법률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가 많다."
두 눈을 굳게 감고 다시 활자를 곱씹어 본다. 평생을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법의 지배를 부르짖어왔던 원로 언론인의 입에서, "국정에서는 관행이 법률보다 우위"라는 마피아 조직에서나 통용될 법한 망발이 튀어나왔다. 헌법 104조가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고유한 임명제청권을 '법대로' 행사한 것을 죄악으로 규정하고, 권력자와 밀실에서 티키타카를 하던 '짬짜미 관행'을 법보다 우위에 두고 숭배하라니. 평생을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을 내려온 대법원장에게, 법전 대신 뒷골목의 룰을 따르라고 훈계를 두는 저 기괴한 뇌 구조를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사건의 본질은 자명하다. 사법 리스크의 올가미에 목이 졸린 이재명 체제가 대법원을 자신들의 사적 방탄 로펌으로 사유화하기 위해 입맛에 맞는 인사를 강요했고, 조희대 대법원장은 그 위헌적 압박을 견디다 못해 "내 헌법적 권한은 여기까지이니, 불만이 있다면 대통령이 직접 거부권을 행사해 역사적 책임을 지라"며 서면을 툭 던진 것이다. 이것은 관행 파기가 아니라, 헌정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권력의 외압에 맞선 사법부 수장의 가장 외롭고도 차가운 헌법적 저항이다.
그런데 성한용 기자는 이 헌법적 저항을 짓밟기 위해 또 하나의 끔찍한 궤변을 동원한다. 그는 과거 대법원이 대선 직전 이재명의 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했던 것을 두고 "만약 파기자판으로 피선거권을 박탈했다면 시민혁명이 일어나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며 협박에 가까운 겁박을 늘어놓는다. 심지어 대법원장을 향해 헌법의 가장 기본인 국민주권 원리를 모르는 무자격자라는 딱지까지 붙였다.
사법부의 합의된 판결이 권력자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대법원이 사라졌을 것이라 조롱하고, 161석의 입법 완력을 쥐고 사법부를 협박하는 것을 국민주권이라 포장하는 이 지독한 인지부조화. 이쯤 되면 그는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성한용이 아니다. 이재명이라는 1인 수령을 옹위하기 위해 자신의 이성과 펜을 쓰레기통에 내다 버린 '안성한용', 완벽하게 부패해 버린 '상(傷)한용'일 뿐이다.
법치의 심장인 사법부 독립을 지켜내야 할 언론인이, 오히려 권력자와의 밀실 관행에 순응하라고 대법원장에게 훈장질을 하는 사회. 헌법이 명시한 권한 행사보다 1인 교주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더 숭고한 국정 철학으로 찬양받는 나라. 이재명이라는 허상을 지키기 위해 언론마저 스스로 이성의 목을 매달고 궤변의 꼭두각시로 전락한 작금의 풍경이야말로, 자유주의의 붕괴를 알리는 가장 서늘하고도 비극적인 전조(前兆)다.
역사를 살펴보면 소름 끼치는 정치적 배신은, 적의 칼날이 아니라 항상 '후계자'를 자처하는 자들의 손에서 완성된다.
미국의 36대 대통령 린든 존슨을 보자. 그는 월남전 확전을 반대했던 존 F. 케네디가 암살당하자, 권력을 승계한 뒤 케네디의 유지를 받들겠다는 핑계를 대며 오히려 미군을 베트남의 끔찍한 핏빛 수렁 속으로 밀어 넣었다. 죽은 주군의 가면을 쓴 채, 주군이 지키고자 했던 가치를 가장 철저하게 도륙 낸 기괴한 모순.
2026년 대한민국 여의도에서도 이 잔혹한 역사적 데칼코마니가 완벽하게 재현되고 있다. 바로 입만 열면 노무현의 이름을 성역처럼 받드는 '체'하면서, 정작 그의 진짜 유지와 철학은 하나하나 씹어 먹고 있는 민주당이다.
최근 불거진 두 가지 촌극을 차갑게 해체해 보자.
어제 저녁,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법관 2명을 제청하며 관례였던 '대면 보고' 대신 청와대에 '서면 통보'를 했다는 뉴스가 떴다. 그러자 좌파 진영은 "어떻게 감히 관례를 깰 수 있느냐"며 거품을 물고 분노했다.
실소가 터진다. 도대체 누가 누구에게 '관례' 타령을 하는가?
대한민국 의회 역사상 가장 숭고했던 관례, 즉 여야의 극단적 충돌을 막고 협치를 이루기 위해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여야가 나누어 맡던 그 훌륭한 룰을 잔인하게 찢어발기고 의회를 독식한 자들이 누구인가. 그 협치의 관례야말로 노무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남긴 유산이었다. 그 의회주의를 앞장서서 능지처참한 자들이, 이제 와서 자신들의 심기를 거스르는 대법원장의 서면 통보 앞에서는 예의와 관례를 부르짖고 있다.
이들의 기괴한 인지 부조화는 '용산공원' 문제에서 완벽한 바닥을 드러낸다.
과거 틈만 나면 포크레인 앞에 드러누워 난개발을 반대하고 녹지와 환경의 중요성을 설파하던 좌파 진영이, 이제는 앞장서서 용산공원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겠다며 법까지 뜯어고치려 혈안이다. 오히려 우파 성향의 오세훈 서울시장이 "난개발은 안 된다"며 이를 결사반대하는 기막힌 코미디가 벌어지고 있다.
가슴에 손을 얹고 팩트를 직시해 보라. 용산공원이 어떤 곳인가.
그곳은 2007년 노무현 정부가 제정한 '용산공원조성특별법'에 따라 만들어진 국가공원이다. 100년 넘게 이방인의 군대가 주둔했던 뼈아픈 부지를 온전히 국민 모두가 숨 쉴 수 있는 녹지로 돌려주겠다는, 노무현이 대한민국 사회에 바친 거룩한 약속이었다. 당시에도 부동산 폭등을 핑계로 아파트를 짓자는 천박한 자본의 유혹이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는 법 제4조 2항에 "국가는 본체 부지를 공원 외의 목적으로 용도변경하거나 매각 등의 처분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대못을 박아 그 가치를 지켜냈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은 표(票)를 구걸하기 위해 법조항을 부수고 콘크리트를 붓겠다고 발악 중이다. 노무현이 국민에게 남긴 '100년의 허파'를 팔아먹으려는 자들이, 기일마다 노무현의 제사를 지내며 눈물을 훔치는 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역사의 소름 끼치는 평행이론은 한 발 더 나아가 거대한 의혹의 심연에 닿는다.
린든 존슨이 케네디의 죽음을 딛고 권력을 탐하며 유지를 짓밟은 탓에, 미국 역사상 가장 끈질기고 서늘한 음모론 하나가 탄생했다. 바로 '존슨이 권력을 찬탈하기 위해 케네디 암살을 배후에서 기획하고 방조했다'는 끔찍한 의혹이다. 시체 팔이로 가장 큰 이득을 본 자가, 정작 고인의 철학을 무참히 도륙 내는 모순을 보며 대중은 합리적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금 민주당을 보자. 주역들은 하나같이 살아생전 노무현을 향해 가장 잔인하게 등 돌리고 돌팔매질을 하던 자들이다. 그가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지자마자 가장 화려한 상복을 입고 권력의 제단을 쌓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의 철학과 유산마저 흔적도 없이 씹어 먹고 있다.
이 기괴하고 완벽한 배신극을 지켜보노라면, 항간에 떠도는 그 서늘한 음모론마저 케네디와 데칼코마니다. 그의 죽음이 단순한 자살이 아닐거라는 그럴싸한 얘기는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게다.
결국 좌파에게 노무현은 계승해야 할 철학이 아니다. 그저 좌파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되는 '정치적 방패'이자, 선거철마다 무덤에서 꺼내 쓰는 '주술적 도구'에 불과하다.
문득 어떤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은 느낌이다.
지난 1년, 좌파 권력에 의해 정말 나라가 꼼꼼하게 망가져온 과정을 뻔히 지켜보면서도, 왜 당장 광장에 횃불이 타올라도 모자랄 판국에 대중은 왜 분노하여 일어서지 않는가.
오늘에야 답을 찾은 듯 싶다. 썩은 권력을 끌어내린 자리에 세울 '대안'이 참담하게 무너져 있기 때문이다. 대안에 대한 확신이 부재할 때, 시민은 투쟁 대신 깊은 체념을 택한다. 최근 보수 야당의 회의장 풍경이 그 체념의 근원을 아주 건조하고 정확하게 증명했다.
그 자리에는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생존 피해자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서범수 의원이 동료 의원을 향해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돌려차기 한 판 하시죠."
일면식도 없는 괴한에게 무자비하게 폭행당해 사경을 헤맸던 피해자 면전에서, 가해자의 범행 수법을 가벼운 개그 소재로 소비한 것이다.
이재명 체제의 폭정과 위선을 제 아무리 고발하면 뭐하나 저들을 몰아내 봐야, 빈자리를 채울 이들 역시 별반 나아보이지 않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짙은 무력감. "결국 다 똑같다"는 이 완벽한 체념이야말로, 작금의 야당이 이재명에게 바치는 가장 훌륭하고 거대한 정치적 헌사다.
부패한 권력을 지탱하는 가장 견고한 방패는 무력이 아니라 '대안 세력의 부재와 타락'이다. 야당이 스스로 샌드백을 자처하며 대중을 짙은 허무주의의 늪으로 밀어 넣을 때, 오만한 권력은 가장 안전해진다. 폭정을 멈춰 세울 의지도, 약자를 보듬을 공감 능력도 없이 스스로 조력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또 하나의 기득권.
폭군보다 두려운 것은, 절망의 공범들이 지배하는 이 닫힌 진공상태다. 국가의 내일을 묻는 민초들의 탄식은 의지할 닻을 잃은 채, 오늘 밤도 무의미하게 흩어지고 있다.
정치적 궤변이 궁지에 몰렸을 때 튀어나오는 패턴을 보면 그 진영의 지적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최근 검찰의 보완수사권 폐지를 방어하기 위해 노무현을 앞세워 시체 팔이를 하던 좌파 진영이, '640만 달러 수수'라는 실체적 팩트 앞에 말문이 막히자 약속이나 한 듯 새로운 지령을 꺼내 들었다. 바로 '김학의 사건'이다.
"김학의 같은 스폰서 검사를 봐라. 저런 썩어빠진 검찰 조직의 수사권을 뺏는 게 당연하지 않으냐."
여기에 2019년 한겨레가 조작해 냈다가 백기를 들고 대국민 사과문까지 게재했던 "윤석열 별장 접대 가짜뉴스"의 잔재까지 여전히 끌고 와 악마화의 땔감으로 삼는다.
고위직 검사가 별장에서 추잡한 접대를 받았던 과거는 대한민국 검찰 역사상 가장 수치스럽고 구역질 나는 흑역사가 맞다. 초기 수사에서 제 식구를 감싸려 했던 행태 역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사법적 타락이었다. 그러나 선동의 장막을 걷어내고 팩트의 뼈대를 건조하게 뜯어보자. 검찰은 끝끝내 그를 수사하지 않고 기소조차 하지 않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대대적인 재수사를 통해 결국 그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하여 법정에 세웠고, 2심 재판부는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해 법정 구속까지 시켰다.
그를 최종적으로 풀어준 것은 대법원이었다. 수사 과정에서 검찰이 핵심 증인을 사전 면담했다는 '절차적 하자'와 공소시효 만료라는 엄격한 법리적 잣대를 들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이다. 김학의는 검찰이 기소조차 못 한 성역이 아니라, 현행법의 빈틈과 증거주의의 맹점을 교묘하게 파고들어 빠져나간 역대급 '법꾸라지'였을 뿐이다. 그물에 구멍이 있어 미꾸라지 한 마리가 교묘하게 빠져나갔다고 해서, 그물을 수선하는 대신 아예 그물 자체를 불태워버리자는 것이 제정신 박힌 국가의 입법인가.
이 지점에서 저들의 논리는 가장 역겨운 모순과 마주하게 된다. 절차적 하자를 파고들어 법망을 빠져나간 김학의라는 법꾸라지를 그토록 견디지 못하는 자들이, 도대체 왜 송영길 앞에서는 그토록 뻔뻔하고 너그러운가.
전당대회에 돈봉투를 무더기로 살포해 당내 민주주의를 파괴한 녹취록까지 있는 자가, 검찰의 '증거 수집 방식(위법수집증거 배제 법칙)'을 문제 삼으며 절차적 하자를 물고 늘어져 감옥 문을 나섰다. 그래놓고 부끄러움도 없이 당 대표 경선 후보로 얼굴을 들이밀고 정치판을 활보하는 이 참담한 꼴에는 왜 누구 하나 분노하지 않는가. 내 편인 법꾸라지가 증거 수집의 맹점을 찔러 살아나는 것에는 환호성을 지르면서, 남의 편 법꾸라지 한 마리를 핑계로 국가의 보완수사권 전체를 불태워버리겠다는 것은 지독한 인지부조화다.
기관의 흑역사를 이유로 권한을 박탈해야 한다는 논리라면, 그 잣대를 고스란히 돌려 경찰의 역사를 비춰보라. 박종철 고문 은폐 사건, 마약과 성범죄의 온상 버닝썬, 그리고 현재진행형인 광주와 전주에서 제 자식의 살인과 불법 촬영 증거를 제 손으로 인멸하고 덮어버린 경찰 간부들의 노골적인 일탈까지. 검찰의 흑역사에는 조직 해체라는 사형 선고를 내리면서, 저토록 찬란한 흑역사를 자랑하는 경찰에게는 왜 국가의 수사 종결권을 100% 독점하여 갖다 바치려 안달인가.
과거의 흑역사가 그토록 용서가 안 된다며 피를 토하는 자들에게 묻는다. 그렇게 노무현이라면 죽고 못사는 진영이 추미애와 김민석, 당을 깨고 나갔던 정동영과 그 지지회장이던 이재명은 대체 무슨 기적으로 용서받고 '원팀'으로 모시고 있는가. 그들의 분노와 잣대는 오직 자신들의 밥그릇과 방탄에 유리할 때만 발동하는 가장 비열한 뷔페식 감정일 뿐이다.
상식적인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아주 건조하게 사유해 보자. 내 사건이든 고위직의 사건이든, 경찰이 대충 덮고 넘어간 서류를 검사가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보완수사를 지시해서 도대체 선량한 일반인에게 무슨 피해가 생겨왔단 말인가?
검사가 철저히 수사한다고 두려운 것은 결코 평범한 시민이 아니다.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세간을 떠돌던 유명한 유행어가 하나 있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한때 정치적 조소와 풍자로 쓰이던 이 문장이, 머지않은 미래에 여의도 한복판에서 가장 기괴하고 참담한 묵시록의 주문으로 다시 부활할지도 모르겠다.
거대 집권 여당인 민주당은 국가의 사법 시스템을 해체할 때마다 어김없이 무덤 속의 노무현을 소환한다. 한겨레등 좌파 스스로 노무현의 등을 떠밀었었다는 사실은 외면한 체, 검찰의 무리한 수사 탓에 아무 죄도 없는 억울한 성자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완벽한 순교자 프레임이다.
그러나 감정을 걷어내고 건조한 팩트의 뼈대만 직시해 보자. 그들은 노무현을 티끌 하나 없는 희생양으로 묘사하지만, 당시 그의 가족이 거액의 금품을 수수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실체적 진실이었다. 노무현 본인 역시 대국민 사과를 통해 "부끄럽고 구차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덕적 흠결이 있었음을 스스로 인정한, 상처 입은 정치인이었을 뿐이다.
더욱 기막히고 비열한 것은, 이 조작된 순교자의 서사 밑에 슬그머니 이재명을 끼워 넣어 '제2의 노무현'으로 둔갑시키는 맹독성 기만전술이다.
이재명이 지금 겪고 있는 사법 리스크가 과연 저들의 주장대로 탄핵된 윤석열 전 정권의 정치 검찰이 무리하게 조작해 낸 억울한 탄압인가. 감정을 빼고 기록을 들춰보라. 이재명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대검찰청에 최초로 직접 고발한 주체는 보수 야당이 아니라, 친문 성향의 시민단체였다. 대장동과 백현동 특혜 의혹을 "단군 이래 최대 부패"라 규정하며 맹폭을 퍼붓고, 검찰과 경찰의 신속한 강제 수사를 강력히 촉구하며 판을 키운 것 역시 지난 대선 민주당 내부 경선에서 맞붙었던 같은 당 동지들이었다. 핵심 범죄 의혹의 대다수가 이미 문재인 정권 시절, 그들 내부의 권력 투쟁 과정에서 고발되고 수사가 시작된 것들이다.
최근에는 어떻게든 검찰의 억지 기소라는 핑계를 짜 맞추기 위해 '검찰청 연어 술파티'라는 해괴한 삼류 소설까지 지어내며 대국민 쌩쇼를 벌였지만, 결과는 어떠했는가. 그 조악한 거짓말은 엄정한 법리의 심판은 물론, 평범한 일반 국민인 배심원들의 상식 앞에서도 처참하게 박살이 났다. 집권당이 그토록 핏대를 세우며 부르짖는 '억지 수사'와 '억지 기소'는 실체적으로 단 한 번도 증명된 적이 없다. 자신들의 진영 내부에서 터져 나온 지독한 권력형 범죄 수사를, 이제 와서 "노무현처럼 탄압받고 있다"며 죽은 자의 수의를 훔쳐 입는 이 뻔뻔함 앞에서는 역겨움에 멀미가 일 지경이다.
이 말도 안 되는 시체 팔이를 핑계 삼아 그들이 지금 저지르려는 짓이, 바로 서민 치안의 척추를 분지르는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다. 그 참담한 결과는 입법 전부터 이미 우리의 일상에 도달해 있다.
요즘 쏟아지는 사회면 뉴스들을 보라. 쪼개기 뇌물 후원금은 대가성이 없다며 경찰이 알아서 캐비닛을 덮어주고, 경찰 간부가 제 자식의 불법 촬영 증거물을 제 손으로 박살 내도 윗선에서 조용히 눈감아준다. 보완수사권이 완전히 박살 났을 때, 앞으로 얼마나 수많은 서민들의 억울한 사건들이 저렇게 소리 소문 없이 묻혀버릴지 경찰 스스로 끔찍한 '미리 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는 애초에 우리는 알 방법이 사라질테니 오히려 좋아지는걸까? 법률 전문가인 검사의 감시가 사라진 진공상태에서, 돈 없고 빽 없는 평범한 서민들만이 억울한 피해자가 되어 닫힌 경찰서 문 앞에서 피눈물을 흘리게 생겼다.
권력자들의 꿀단지와 방탄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노무현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또 자신들을 막고 서 있는 사법 시스템의 브레이크를 완전히 부수려 하고 있다. 이 거대한 치안 붕괴의 잿더미 위에서 진정으로 소름 돋는 비극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경찰서 캐비닛 앞에서 억울하게 내쳐지고, 기약 없는 소송 지옥 속에서 절규하게 될 숱한 민초들은 훗날 결국 누구를 원망하게 될 것인가. 자신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마지막 법적 거름망이 사라진 이유가, 바로 권력자들이 죽은 전직 대통령을 사법 파괴의 명분으로 삼았기 때문임을 깨닫는 순간, 서민들의 입에서는 다시 한번 뼈아픈 탄식이 터져 나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기사를 보고 잠시 멍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존치여부는 여전히 쟁론의 대상. 온 국민이 경찰의 조직적 사건 은폐에 분노하는데, 유족들의 아픔에 왕소금을 부비고 있다. 이 호로새끼에게 주둥이가 하나 밖에 없는게 그나마 다행이랄까? 사람이라고 다 똑같은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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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장윤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증거 인멸, 보완수사권 유지 필요성 확인됐다
지난 5월 5일 광주에서 17세 여고생 이채원 양을 살해한 장윤기 사건에 대한 경찰의 증거 인멸 등 부실수사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특히 우발적 범행이었는지 아니면 성폭행 목적의 살해였는지를 판가름하는 결정적 증거들을 인멸한 것으로, 그 문제가 매우 심각하다.
경찰이 해당 사건의 증거를 인멸하고 부실 수사를 벌인 것은 장윤기의 부친인 장 모 경감이 현직 경찰 신분이며, 사건 수사를 담당한 경찰서에 작년 3월까지 근무한 이력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장윤기 사건 수사팀원이 장 경감에게 연락해 ‘선배님’이라고 부르며 “(장윤기가) 경찰 가족인 것을 함구하라고 했다”라고 말한 녹음파일이 확보됐다. 또 장윤기가 핸드폰을 버린 위치를 묻는 장 경감의 질문에 순순히 대답한 녹취도 확인됐다. 경찰은 장윤기 자취방에 놓인 ‘리얼돌’과 차량에 있었던 케이블타이를 압수하지 않고 방치했다.
이후 장 경감은 자취방에 들어가 리얼돌을 폐기했다. 또 사건 이튿날 장윤기의 차량을 인계받았는데, 그 뒤로 케이블타이는 사라졌다가 오늘 장 경감의 주거지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경찰은 핸드폰이 버려진 위치를 수색했지만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증거 인멸 의혹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이런 의혹들이 검찰의 보완수사를 통해 밝혀졌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 초기 ‘묻지마 살인’, ‘분노 범죄’로 잘못 프레임된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로 정확히 바로잡힌 것은 보완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증거들과 영상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경찰 수사권 독점이 시민들에게 또 다른 심각한 형사사법 피해를 줄 수 있음이 명확히 드러났다. 수사권 남용과 경찰 유착, 암장수사, 늑장수사, 부실수사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전건 송치와 필요불가결한 범위에서의 보완수사권 유지가 반드시 필요하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검찰개혁의 본질은 시민과 피해자의 형사적 권리를 보호하는 데 있다. 보완수사권과 전건 송치가 완전히 폐지되었을 때의 폐해가 정확히 드러난 지금, 민주당은 검찰개혁이라는 명분만을 앞세워선 안 된다. 견제받지 않는 경찰의 수사권 독점으로 인한 시민들의 형사사법적 피해가 확인되고 있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강행하지 말라. 무수히 지적되고 있는 문제점을 충분히 보완하도록 해야 한다.
다시 한번 고 이채원 양의 명복을 빈다. 딸을 잃은 것도 모자라 또다시 억울한 일을 겪고 있는 유족들께 깊은 위로와 연대의 인사를 전한다.
2026년 7월 8일
정의당
작년에 참 따뜻하게 보았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는 유독 귓가를 맴도는 내레이션이 하나 있었다. 거친 세상살이에 이리저리 치이고 잔뜩 구겨졌던 마음이, 부모님 품에만 다녀오면 마치 '빳빳하게 풀 먹인 와이셔츠처럼 쫙 다림질되어 펴지는 기분'이라는 대목이었다. 그 애틋하고 다정한 문장이 너무나 고와서 언젠가 글을 쓸 때 꼭 한 번 빌려 써먹어야지 다짐했었는데, 하필이면 시민의 입을 틀어막는 법안이 시행되는 오늘 같이 서늘한 날에 그 문장을 꺼내 들게 될 줄은 몰랐다.
오늘부로 이른바 '7.7 진리 수호령', 즉 온라인상의 허위 조작 정보를 단죄하겠다는 명분으로 포장된 입틀막법이 닻을 올렸다. 자신이 남긴 글 한 줄이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면 언제든 징벌적 배상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다는 공포는, 평범한 시민들의 일상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검열을 피해 미국 커뮤니티로 디지털 망명을 떠나겠다는 씁쓸한 탄식들이 쏟아지는 광장을 보며, 불안감에 잔뜩 구겨지고 위축된 중도 우파 시민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하지만 너무 깊이 절망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이 얄팍한 사상 통제의 장막 앞에서, 나는 글을 쓰는 작가의 자부심을 걸고 우리 언어가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을 다시금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우리의 모국어는 무균실의 온실 속에서 곱게 자란 언어가 아니다. 왕조 시대의 절대 권력과 일제시대의 야만적인 검열이라는 캄캄한 터널을 뚫고 살아남은, 그야말로 '돌려까기'와 은유에 특화된 생존의 언어다.
조선 시대, 서슬 퍼런 양반들의 권위 앞에서도 우리 민초들은 입을 닫지 않았다. 그들은 광장에 모여 탈을 쓴 채, 춤사위와 기막힌 언어유희로 지배층의 위선과 무능을 배꼽 잡게 조롱했다. 목숨이 오가는 검열의 시대였음에도, 권력자들은 자신들을 향한 통렬한 풍자를 알면서도 그 해학의 늪에 빠져 차마 칼을 빼 들지 못했다. 어디 그뿐인가. 총칼로 사상을 옥죄던 일제 식민지 시절, 우리의 문인들은 '님'이라는 서정적이고 다정한 은유 속에 심장을 베는 듯한 저항의 의지를 숨겨 기어코 민중의 마음을 울렸다. 직설을 틀어막으면 뼈 있는 농담으로 응수하고, 사실을 검열하면 고도의 비유로 진실의 행간을 넓혀온 것이 우리 말글이 가진 불굴의 DNA다.
권력은 늘 제도를 앞세워 대중의 입을 꿰맬 수 있다고 맹신한다. 그러나 단어 몇 개를 금지어 목록에 올리고 벌금표를 흔들어댄다고 해서, 시대를 꿰뚫어 보는 시민들의 비판적 이성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저들이 법의 조항을 들이밀며 윽박지를 때, 우리는 가장 우아하고 재기발랄한 해학과 은유로 그들의 알량한 권위주의를 희롱할 것이다. 검열관이 붉은 펜을 들이대기조차 민망할 만큼 유쾌하고 날카로운 돌려까기의 미학을 통해, 진실은 통제된 광장을 넘어 더 멀리 퍼져나갈 것이다.
그러니 오늘, 권력의 서늘한 겁박 앞에서 행여나 마음이 위축되고 구겨진 분들이 있다면 이 글로 작은 위로를 전한다. 뭐 한 명의 힘없는 광대이자 작가에 불과하지만 당신의 움츠러든 어깨와 검열의 공포로 주름이 간 그 마음을, 빳빳하게 풀 먹인 와이셔츠처럼 반듯하게 다림질해 펴드릴 수 있게 노력하겠다.
우리는 도망치지 않고 가장 우리다운 방식으로 틈새를 내어 기어코 웃어넘길 것이다. 억압은 짧고, 풍자의 여운은 길다. 펜은 언제나 몽둥이보다 끈질기며, 유쾌한 은유는 굳게 닫힌 검열의 문을 여는 가장 강력한 마스터키다.
광주시민사회단체의 성명서 부분.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이 모든 책임이 떠넘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이 사태에 진정으로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어른이고 우리 사회를 혐오와 경쟁으로 내몬 잘못된 정치이다. 우리는 배재고 야구부 학생들에게 과도한 처벌이 내려지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숨 막히는 엄숙주의. 이런 식으로 따지자면 이 세상에 순수하게 좋아할 일이 하나도 없음. 시원한 날씨에 살 것 같아 좋다는데 근엄하게 지금 가뭄으로 농민들 애가 타는데 좋아할 때냐고 호통당하면 뭐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비극 전부 검색해 보고 글 올릴지 말지 판단해야 한다는 건가?
단종된 과자 하나가 소아중환자실을 바꿔놨다
소아 집중 치료실에 있던 3살 아이가
며칠간의 금식 끝에 처음 뭔가를 먹을 수 있게 됐다.
간호사가 물었다.
"가장 먹고 싶은 게 뭐야?"
아이가 답했다.
"딸기 고래밥이요."
간호사는 마트를 뒤졌다.
온라인도 전부 뒤졌지만, 없었다.
딸기 고래밥은 오리온이 봄 시즌 한정으로 냈다가
이미 단종시킨 제품이었다.
보통은 여기서 포기한다.
"그거 없는데 다른 거 먹을래?"
근데 이 간호사는
오리온 공식 홈페이지 고객센터에
아이 사연을 직접 올렸고,
오리온 연구소가 그 글을 봤다.
공장 라인은 이미 없었기에
연구원들이 재료를 직접 사서 손으로 만들었다.
아픈 아이가 먹는 거니까
미생물 검사까지 전부 마친 후.
2023년 12월 15일,
딸기 고래밥이 병원에 과자 3박스와 함께 도착했다.
간호사는 그날 산타가 됐고, 소아중환자실에
오랜만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울렸다.
최다정 간호사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저는 어떤 간호사가 되고 싶나 묻는다면,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싶은 간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바쁜 병동에서 포기하지 않고 글 하나 남긴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최다정 간호사,
단종됐다고 끝내지 않은 오리온 기업.
크리스마스가 따로 없었다.
지금 재직 여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 여전히 누군가의 산타이실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