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급이 없는 나라라기보다, 고급이 오랫동안 고급으로 남기 어려운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고급으로 통하는 것 상당수가 안에서 시간을 들여 자라난 원본이 아니라, 바깥에서 들여온 판본인 경우가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판본은 원본보다 베끼기 쉽습니다. 이미 맥락에서 한 번 떨어져 나온 상태라, 따라 만드는 데 풀어야 할 전제가 적어요.
그 복제본이 다시 판본의 판본이 되면 고급이 고급일 수 있던 맥락은 단계마다 더 벗겨지고, 벗겨질수록 다음 복제는 더 빨라집니다. 복제될 때 옮겨지는 건 완성도뿐이라고 봅니다. 맥락은 따라오지 않죠.
다른 곳에서는 모방품이 한참 아래에서 시작해 천천히 원본을 따라잡습니다. 그 시차 동안 원본은 고급으로 남아요.
한국에는 그 시차가 거의 없다고 봅니다. 비싸고 낯설고 멀리 있던 취향도 오래 숨어 있지 못하고, 발견되는 순간 따라 할 수 있는 형태로 잘게 분해됩니다. 그렇게 몇 시즌이면 모두의 기본값으로 내려와요.
그러니까 한국의 강점은 압도적인 천장이 아니라, 어디를 가도 일정 수준 아래로 잘 떨어지지 않는 촘촘한 하한선이라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영역에서 하한선이 세계 제일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편차가 작고, 일정 수준 이상의 품질이 넓게 깔려 있다는 쪽에 가깝습니다.
(계속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