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 계약서를 쓰면 진짜 계약일까?>>
오늘도 조금 이상하고 재밌는 SM 이야기를 하나 해보려고 한다.
SM에는 가끔
‘계약서’라는 것이 등장한다.
진짜 계약서처럼 생겼다.
누가 어떤 역할을 맡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은 하지 않는지,
권한과 의무, 기간, 금지사항까지 적는다.
서명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도장까지 찍는다.
누가 봐도 계약이다.
그래서 더 궁금해진다.
그럼 진짜 계약일까?
오늘 이야기는 '일반인 선배님들'이 봐도 무방하다. 편견을 가질만한 게 적다. 단지 기본적인 Dom / sub 개념은 있어야 보기 편할거다. 같이 보고 생각해보자.
예를 들어 D/s 관계를 맺은 두 사람이 있다고 하자.
계약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sub는 합의된 범위 내에서 Dom의 명령에 복종한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금 욕심을 내서 이렇게 적어보자.
“sub는 Dom의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
갑자기 계약서가 굉장히 강해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에 동의함.”
이라고 적고 둘이 서명까지 했다.
자.
그러면 다음 날 Dom이 명령했을 때
sub가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될까.
“싫어요.”
Dom은 서랍으로 달려가
계약서를 꺼내오면 되는 걸까.
“잠깐만요.”
팔락팔락.
“여기 7조 3항을 보시면
본인이 모든 명령에 복종한다고 서명하셨는데요.”
안 된다.
적어도 계약서 한 장이
오늘의 사람에게서 내일의 거절권까지 미리 받아놓는 마법 주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SM 계약서는 조금 이상해진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계약서를 쓰는 이유는
사람의 마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음이 바뀌더라도
이미 약속한 것은 지키세요.”
집을 사도 그렇고,
물건을 납품해도 그렇고,
돈을 빌려도 그렇다.
그래서 계약은 보통
변심의 영향을 줄이기 위해 존재한다.
그런데 D/s 계약은 묘하게 반대다.
어제 괜찮았던 것이
오늘 싫어질 수 있고,
지난달 가능했던 것이
이번 달에는 불가능할 수도 있고,
계약할 때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
실제로 관계 안에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면 다시 말해야 한다.
“이건 싫어요.”
“여기까지 할게요.”
“이 부분은 바꾸고 싶어요.”
즉 좋은 D/s 계약은
상대방의 마음이 바뀌지 못하게 만드는 문서가 아니라,
마음이 바뀌었을 때 그 사실을 말할 수 있어야 유지되는 문서다.
생각해보면 상당히 이상한 계약이다.
보통 계약은
“약속했잖아요.”
가 강한 문장인데,
여기서는 때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가 더 강한 문장이 된다.
그렇다고 해서
D/s 계약서가 아무 의미도 없는 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법적인 강제력과는 별개로
관계 안에서는 꽤 쓸모가 있다.
사람은 생각보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정확히 모른다.
“어디까지 가능하세요?”
“웬만한 건 괜찮아요.”
이렇게 말할 때까지는 쉽다.
그런데 계약서를 펼쳐놓고 하나씩 적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어떤 명령까지 가능한지,
일상생활에 어느 정도 개입할 수 있는지,
연락에 관한 규칙은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호칭을 사용할 것인지,
어떤 행동은 사전에 물어봐야 하는지,
무엇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인지,
관계를 중단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말할 것인지.
갑자기 질문이 많아진다.
“이것도 괜찮아요?”
“음…….”
“그럼 이건요?”
“잠깐만요.”
계약서 쓰다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처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재미있게도
D/s 계약서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계약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강제로 발생시키는 것인지도 모른다.
말로는
“전 다 괜찮아요.”
라고 쉽게 말할 수 있지만,
종이에
‘전부 가능’
이라고 적으려는 순간
사람은 갑자기 조금 신중해진다.
“……진짜 전부인가?”
그때부터 조율이 시작된다.
해외에서도 이 부분은 오래 이야기되어 왔다.
BDSM 계약을 다룬 미국의 법학 문헌에서도 이런 문서들은 일반적인 상거래 계약처럼 법원에서 이행을 강제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당사자들이 규칙과 경계를 협상하고 관계의 구조를 명확하게 만드는 문서라는 점에 주목한다. 실제로 BDSM 계약을 통상의 계약분쟁처럼 법원에 가져가 이행을 강제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둘이 동의했으니 무엇이든 법적으로 괜찮다.”
도 아니다.
한국 형법 제24조에는 피해자의 승낙에 관한 규정이 있다.
자신이 처분할 수 있는 법익에 대한 승낙이라면 일정한 범위에서 형사책임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규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문장 안에도 중요한 조건이 들어 있다.
‘처분할 수 있는’ 법익.
즉 사람 둘이 종이에 서명했다고 해서
법이 보호하는 모든 것까지 마음대로 계약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민법도 마찬가지다.
민법 제103조는 선량한 풍속이나 사회질서에 위반하는 내용을 가진 법률행위를 무효로 한다. 그러니까 종이에 적고 서명했다고 해서 그 내용이 자동으로 법적 강제력을 얻는 것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하게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주마다 법은 다르지만, 매사추세츠의 Commonwealth v. Appleby 같은 판례에서는 사적인 BDSM 관계에서의 동의가 있었다는 주장만으로 위험한 도구를 사용한 폭행의 형사책임이 자동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봤다.
그러니까 D/s 계약서를 아주 거창하게 만들어서
“당사자는 본 계약에 따라 모든 행위에 동의한다.”
라고 적어놓아도,
국가는 그 옆에 앉아서 계약서를 한 장 넘겨본 다음
“저희는 거기 서명 안 했는데요.”
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개인적으로 꽤 재미있다.
D/s 계약서는 겉으로 보면
굉장히 권위적인 문서다.
Dom이 있고,
sub가 있고,
명령이 있고,
복종이 있고,
권한과 의무까지 존재한다.
얼핏 보면
누군가에게 권력을 넘겨주는 문서처럼 보인다.
그런데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작 가장 중요한 권리는 넘겨주면 안 된다.
그만두겠다고 말할 권리.
그리고 여기서 D/s라는 관계의 재미있는 모순이 하나 생긴다.
“내게 복종하세요.”
라는 권한 자체가
상대방이
“그 권한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라고 동의했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러니까 가장 강한 명령권조차
그 명령을 받는 사람의 동의 위에 서 있다.
굉장히 권위적으로 생긴 구조인데,
기초공사를 뜯어보면
의외로 합의로 만들어져 있다.
생각보다 민주적인 독재정권이다.
그래서 어쩌면 D/s 계약서는
상대를 묶어두기 위해 만드는 문서라고 생각하면 이상해진다.
오히려 반대다.
서로 어디까지 묶여 있을 것인지를
함께 결정하기 위해 만드는 문서에 가깝다.
무엇을 맡길 것인지,
무엇은 끝까지 맡기지 않을 것인지,
어떤 권한을 넘길 것인지,
그 권한을 언제 다시 가져올 수 있는지.
그걸 미리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래서 D/s 계약서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복종한다.”
도 아니고,
“명령할 수 있다.”
도 아닐지 모른다.
오히려 아주 재미없어 보이는 문장 하나가
가장 중요할 수 있다.
“본 합의는 언제든 다시 조율할 수 있다.”
계약서까지 써놓고
계속 다시 이야기해야 한다.
계약을 했는데
계약으로 대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약한 순간부터
더 많은 대화를 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이건
우리가 처음 봤던 것과 조금 다른 종류의 계약이다.
상대의 미래를 붙잡기 위해 쓰는 계약이 아니라,
서로의 현재를 확인하기 위해 계속 고쳐 쓰는 계약.
왜냐하면 아무리 정교한 계약서를 만들어도
오늘의 내가
내일의 나에게서
‘싫다’고 말할 권리까지
미리 받아낼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