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세계의 아이러니한 점은, 세계 전체가 다자이의 간절한 목적을 위해 움직였는데도 정작 츄야는 그 목적에서 끝까지 배제되어 있었다는 거겠죠.
가장 가까운 전력이자 수령을 지키는 간부였음에도, 다자이가 왜 그 자리에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그 모든 일을 벌였고 왜 마지막에 죽음을 선택했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남겨졌을 가능성이 클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츄야는 다자이를 지켜야 하는 위치에 있으면서도, 정작 그 인간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죽음을 준비했는지는 알지 못했던 셈이죠.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일을 계획한 당사자인 다자이마저 죽었으니, 적어도 당장은 답을 얻을 길조차 없는 의문만 후유증처럼 남았을 것 같네요.
하지만 베를렌이 정말 츄야가 가진 의미만을 사랑했느냐고 묻는다면, 한때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함.
처음의 베를렌에게 츄야는 '자신을 이해해줄 동생'으로 의미가 컸음. 그래서 츄야가 실제로 무엇을 원하는지보다 자신이 부여한 역할을 우선했고, 그걸 사랑이라고 믿었던 것 같음.
하지만 모든 일이 끝난 뒤 베를렌은 더 이상 츄야를 데려가려 하지 않고 포트 마피아 지하에 남음. 물론 유럽 세력의 추적이나 랭보의 죽음 이후 삶의 의욕을 잃은것도 사실이라 이것만으로 심리 변화를 단정할 수는 없음. 그래도 적어도 예전처럼 츄야의 삶을 자기 뜻대로 바꾸려 들지는 않음.
어쩌면 베를렌의 성장은 츄야를 더 잘 사랑하는 법을 배운 게 아니라, 츄야를 자기 곁에 두지 않는 법을 배운 것일 수도 있음. 자신과 다른 삶을 선택한 츄야를 그대로 인정하고, 더 이상 그 선택을 교정하려 하지 않는 것.
그래서 나는 >베를렌은 츄야라는 존재가 가진 의미만을 사랑했다<로 끝내고 싶지는 않음. 처음에는 자기 결핍을 채워줄 이해자로서 츄야를 사랑했다면, 이후에는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아닌 츄야까지 그대로 둘 수 있게 된 것처럼 보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