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에서는 작가가 “이 새끼 나쁜 놈이에요! 얘는 맞아도 싸요!” 하고 악행의 내러티브를 정확하게 제시하지만
현실에서 맞아야 정신차린다며 쟤는 글러먹은 인생이라며 간편하게 종결짓기를 꺼리지 않는 소위 ‘문제아들’ 각각의 수많은 성장 환경과 건강 상태 같은 복잡한 맥락을 우리는 모름...
물론 어떤 사람은 이런 해석을 진지충으로 받아들일 테고... 현실의 법 제도가 가해자를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너무 깊다 보니 이런 창작물을 보고 느끼는 통쾌함의 이면에는... 이 사회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는 깊은 냉소가 깔려 있음
교권이 무너진 학교 현장에 초법적이고 압도적인 어른이 ‘너는 맞을 짓을 했으니 좀 처맞아야 해’ 하고 두들겨 패서 애가 갱생이 되고 사람들이 통쾌해하는 그런 세상은... 오히려 가장 희망이 없는 섬뜩한 사회가 아닌가
교육도 실패하고 가정도 실패했고 남은 건 폭력뿐인 어떤 디스토피아적 세계
살이 쪄서 불편한게 내 몸의 무거움 뿐이면 좋을텐데 타인의 불쾌한 시선과 언행이 늘 더 불편하기에 나 스스로를 지키고 잘 봐주려고 늘 힘을 들여 나를 보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타인의 잣대에 눌려서 나를 망치고 싶지는 않고. 어 그러를 그러세요 이렇게 훌렁 훌렁 넘기려고 해. 내 존재를 네 시선으로 가늠하려 들지마.
체벌이 그렇게 훌륭한 제도였다면 왜 그 체벌 세대조차 자기들을 때린 교사 이야기를 하면 아직도 분노할까? 선생님이, 아버지가 매 들던 시대를 무슨 낭만처럼 향수에 젖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파고파고 하다 보면 억울한 기억 하나씩은 있다는 게 체벌이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증명한다니까...
최근에 '나는 너무나 순수하고 선하고 정의롭고 다정하고 내가 내린 결정은 다 옳고 이 세상은 나를 자꾸 억까하고 사람들이 내 선의를 몰라준다'라고 굳게 믿는 사람을 겪고 나니 역으로 사람이 자신 안의 모순이나 악의, 짐승같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나이 들면서 뾰족함과 에너지가 깎여가는 과정...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경험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결국 본인이 혐오하던 종류의 인간에 가까워진 나를 발견하게 되더라.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세상에는 무전취식하는 인간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그냥 본인만 풍화되고 끝나버리더라고. 덧없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