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동생은 나보다 15살이 어리다.
그리고 틱 장애와 ADHD가 심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에는 통제가 안됐다.
교실에서 수업중 의자가 아닌 바닥에 주저앉을 때가 여러번이었고,
하나를 가르치면 두개를 까먹었으며,
주변 아이들에게는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동생을 고쳐보고자 정신과를 꾸준히 다녔다.
놀이치료와 뭐 두 가지 치료를 병행했는데 다달이 나오는 병원비가 감당이 안될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돈을 마련해서 병원을 다니게 했다.
나중엔 병원비가 밀려 할부로 갚아나갔다.
하나, 들어간 돈에 비해 진척도는 미비했다.
그래서 경기도에 살던 난 동생의 환경 자체를 바꿔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틀에 박힌 학교가 아니라 한 반에 소수의 아이들만 데리고서 열린 교육을 하는 곳.
그런 곳이 춘천에 있었다.
하여 당장 거주지를 춘천으로 옮겼고, 바뀐 환경에서 동생은 병원을 다닐때 보다 빠르게 나아졌다.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때 그 나이대의 평균적인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여전히 좀 또래 애들보다 여러모로 부족한 모습과 행동들은 동생을 여전히 은따, 혹은 이용해먹기 좋은 친구 관계에 머물게 했다.
그렇게 춘천에서 지낸지도 몇 년이 흘러 동생은 중학생이 되었다.
5월의 어느날.
난 아무런 계획도 없이 차를 끌고 동생의 학교에 찾아갔다.
그리고 담임 선생님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동생 데리고 한달만 여행하다 올게요."
동생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많은 것을 체험시켜 주고 싶었다.
그리고 고생도 함께 나누고자 했다.
그 안에서 분명 얻게 되는 것이 있을 것이며 그러면 성장을 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감사하게도 담임 선생님은 현장체험학습 제도를 말씀해주시며, '체험학습 결과보고서'만 잘 작성해준다면 외부에서 활동한 기간들을 출석으로 인정해주시겠다고 했다.
나는 즉시 동생과 함께 학교를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춘천에서 동해안으로 이동해 해안선을 따라 대중교통을 이용해 움직였다.
계획도 없었고 자금도 넉넉지 않았다.
일단 동생과 가고 싶은 곳을 정하면 거기에 무슨 볼거리가 있고 어떤 맛집이 있는지 조사했다.
지역에 도착해서는 숙소부터 구했다.
최대한 싼 곳으로 알아봐 전화를 하면 대부분 빈 방이 있었다.
옷가지가 많지 않아서 여행 내내 양말도 빨아신고, 옷도 빨아 입었다.
돈을 아끼려고 라면을 끓여 면만 건져먹고 국물을 남겼다가 햇반을 넣어 죽처럼 끓여먹는 날도 왕왕 있었다.
명소는 최대한 무료인 곳만 찾아 다녔다.
중요한 건 평소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던 동생이 나와 함께 하는 여행길에서는 빨래도 직접하고 라면도 손수 끓여봤다는 사실이다.
하루는 동생에게 정말 고생스러운 경험을 해주게 하고싶어서 악산으로 유명한 산을 등산했다.
우리는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하산을 하자마자 캔음료를 단숨에 두개씩 비워냈다.
동생에게 고생이 뭔지 알려주려다 내가 죽을 것 같았던 날이었다.
여행의 중반부 쯤, 남해 쪽 어떤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사방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숙소에 들어가 바로 잠을 청했고, 다음날 일어났더니.
우리가 밟아왔던 곳에 바다가 쫙 펼쳐져 있었다.
동생은 분명 낮과 밤이 다른 광경을 보며 많은 걸 느낀 얼굴이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 주로 버스를 이용했다.
24일이라는 시간 동안 전국을 돌아보았고, 여행의 마침표는 서울에서 찍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내 동생은 24일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동생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게 되었다.
지금은 다 커서 우체국에 근무하며 열심히 잘 살고 있다.
바쁜 부모님 대신 내가 키웠다.
내 동생은 나보다 15살이 어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