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이름이 적힌 세 장의 카드를 휴지통에 버립니다. 당신이 제게 선물한 수많은 꽃다발에 묶여있던 리본들도 버립니다. 제가 이 리본을 모으고 있다는 말을 당신에게 했던가요? 저는 당신을 다 알기도 전에, 여전히 저를 모릅니다.
관계는 으레 복잡하고, 인내를 요구하고, 많은 대화와 시간을 필요로 하며, 오해로 얽혔다가 이해로 풀어지고, 속도를 이기지 못해 원심력으로 서로에게서 밀려 나갔다가, 다시 중력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며 쉼 없이 변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도 다사다난하던 관계를 닫을 때는, 휴대폰 액정화면을 몇 번만 두드리면 됩니다. 우리의 끝이 이리도 간결하고 기민하다는 사실이 저를 무척이나 슬프게 합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과의 이별은 어른이 되니 더 아픕니다. 영원히 불화할 수밖에 없는 사이도 있다는 것을 어릴 때는 몰랐으니까요.
인사 없이 헤어지고 멀어져 간 사람들의 이름이 점점 쌓여갑니다. 어떤 이름은, 영영 보내지 못하고 가슴에 묻은 채 살아야 합니다.
더 이상 당신의 안부를 물을 수 없게 된 오늘과 내일에 대해 생각합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를 남기고 싶습니다. 저의 안부 인사와 염려 없이도, 당신이 안녕하길 바라면서요.
많이 좋아하고,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친구만큼 조건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관계가 또 있을까요. 우정 앞에서는 연인과의 사랑도 한낱 치기 어린 로맨스에 불과합니다.
뒤돌아보는 법이 없던 당신의 등을 떠올립니다. 혹여라도 제가 진 자리를 밟을까 걱정하며 저의 발끝에 두던 당신의 시선을 거두고, 이제는 정말 앞만 보며 걸어가세요. 단단한 자리만 내딛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아프지 마세요.
내가 가지고 있는 강점이라 생각했던, 사람을 향한 애정이나 다정함을 잃어가면서, 점점 매섭고 냉담한 인간이 되고 있다고 느꼈다. 이전보다 적게 느끼고 덜 동요하는 내 모습이 낯설었다. 상처가 사람을 닳게 만드는지, 모든 일에 무덤덤해져 가는 나 자신이 슬펐다.
그는 말했다. 지금이 이상한 게 아니라 예전의 내가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섬세하게 느껴왔다고. 어떤 상처는 흉터로 남는 것이 아니라, 아물면서 매끈한 새 살이 되기도 한다고.
나날이 마음의 문이 닫혀 가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가고 있어 무섭다며 우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이제야 네가 신발을 신고 걷고 있구나. 네가 내딛는 땅이 전보다 단단해졌구나.’ 라고. 그녀는 더 이상 내 걱정을 많이 하지 않는다고 했다. 내가 바람에 흔들리는 한 송이 꽃에서 나무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을 뿐이라는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나무가 되면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고 큰 그늘을 만들 수 있어. 그럼 그 그늘 아래 더 많은 사람이 머물겠지.’
동이 터서야 끝이 난 긴 대화를 뒤로하고 늦은 잠을 자는 내내 뼈마디가 아팠다. 사람은 끝없이 성장통을 앓는 존재인가 보다. 보다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심을 버려야겠다. 내가 모든 것을 사랑할 수 없는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과 때로는 혹은 자주 타인을 미워하기도 하는 하찮은 인간이라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해야겠다.
쇠는 뜨겁게 달궈진 채로는 결코 단단해지지 않는다. 차갑게 식는 과정이 있어야 단단해진다. 식어가는 마음을 무뎌진다고 여겨 겁먹었지만, 어쩌면 이건 담금질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여전히 내 안에, 사람으로 고통받아도 사람으로 치유받으며 끝내 사람에게 닿기를 포기하지 않는 내가 변치 않고 남아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