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란 불가능하다."
'나는 몸에 대해 잘 모른다.'
이게 내가 가진 기본적인 생각이다.
너무나 복잡한 사람의 몸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불가능하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생각도 해본다.
에픽테토스의 말을 통해 내가 계속해서 공부하게 만들어주는 원천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바로 '결핍'이다.
지식에 대한 결핍은 나를 끊임없이 배우게 만든다.
스스로 이미 다 안다고 생각한다면 절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배울 수 없다.
확신을 경계하자.
타인으로부터 듣는 피드백을 받아들이려 노력하자.
쓴소리를 듣고 싶은 사람은 없다.
날카롭고 냉정한 피드백은 더더욱 듣기 싫다.
나는 더 그런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려 애써야 한다.
그래야 성장할 수 있다.
건강의 일부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늘 의심해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추론들이 맞는 건지.
이 운동이 적합한지.
이 중재법이 알맞은지.
이런 의심 없이 절대 발전은 없다.
하루가 끝날 때쯤 늘 돌아보려 애쓴다.
오늘 나를 찾아주었던 회원분들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없는지.
그리고 계속 공부해 본다.
오늘 내가 몰랐던 부분은 무엇인지.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정말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해서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다.
그런 깨달음이 많아질수록 나는 더 성장한다.
2주에 한 번씩 스터디를 하고 있다.
규완쌤, 승열쌤과 함께 책을 정해서 같이 공부를 해본다.
내가 봤던 책으로 공부를 하는데, 봤던 내용이지만 새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전에 보지 못했던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면 나를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예전에 내가 했던 말이 얼마나 터무니없던 말인지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지기도 하고.
내가 얼마나 교만했었나 아찔하기도 하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다'로 살아가고 싶다.
사실 나의 성장이 아니라
우리의 성장이었으면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지만,
그래도 상상해 본다.
소망이 어쩌면 현실이 될 수 있지는 않을까.
<물병같은 몸>
푸른 눈의 현자라 불렸던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에서 정말 기가 막힌 구절이 있다.
"우리의 상반신은 일종의 물병과 같습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몸 안에 물이 차오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숨을 내쉴 때는 수위가 내려가서 병이 비워집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물이 바닥에서부터 다시 차오릅니다. 호흡이 엉덩이에서 또는 더 바닥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런 다음 물이 배를 지나 가슴과 목까지 차오르는 기운을 느껴 보는 겁니다."
이건 횡격막 호흡 그 자체를 나타내는 말이다.
예전 통합호흡훈련연구소 김유성 대표님 강의를 들을 때 'Breathing wave'라는 개념을 배웠다.
이때 복부 아래에서부터 숨이 차오르듯 호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당시에는 사실 이해하기 어려웠다.
호흡을 의식적으로 조절해 본 적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호흡을 하는 내 몸을 예민하게 느껴본 적도 없었다.
잘 모르니 어떡하는가.
알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계속해서 유성이 형님 교육을 들었고, 찾아뵙고, 또 연습했다.
전문가 과정까지 듣고 연습을 이어가던 중에 어느 순간 느껴졌다.
호흡이 내 배꼽 아래에서부터 차올라 가슴을 지나 목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을.
그때 느꼈던 편안함과 호흡의 충만함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로 목 통증이 말끔히 사라졌다.
목을 뒤로 젖힐 때마다 느껴졌던 목 통증이 사라지고 목 앞쪽의 텐션이 느껴질 정도로 머리를 뒤로 넘길 수 있게 됐다.
숨 쉰다고 목 통증이 어떻게 사라질 수 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그럴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호흡을 통해 왼쪽 어깨관절의 문제도 상당 부분 해결되었다.
내 왼쪽 어깨 문제는 정말 만성적인 문제였다.
쉽게 말해 어깨 외회전이 잘되지 않았다.
20살 때부터 알게 된 어깨가 20대 후반까지 이어졌다.
여러 전문가를 찾아서 해결하려 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호흡이 내 어깨를 정상으로 돌려놨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문제가 해결됐다.
이후로 나는 몸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구조로만 바라보던 몸을 좀 더 기능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신경계 공부를 하면서 뇌과학 공부에 더 시간을 쏟기 시작했다.
아직도 한참 부족하고 전혀 모른다고 할 수 있지만 그래도 전보다 더 몸에 대한 이해도가 올라갔다.
호흡은 신체적인 면에서 정말 중요하다.
호흡은 정신적인 면에서도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호흡은, 영적인 면에서도 정말 중요하다.
건강을 위하는 사람이든,
영적 성장을 위하는 사람이든,
호흡에 대한 공부는 해보면 좋을 거라는 주제넘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이 글을 빌려
내가 호흡에 대해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더 깊은 이해를 하게 도와주신
유성이 형님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감사합니다.
<일상의 포트폴리오화>
요즘은 어떤 식으로 취업 준비를 하는지 잘 모르겠다.
현재 내 관심은 취업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미 내 일을 하고 있고, 취업에 대한 관심보다는 어떤 식으로 나의 일을 더 잘 해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떤 직장에 들어가려고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모아둔 자료를 포트폴리오라 말한다.
대부분 취준생들은 새로운 자격증을 따거나, 교육을 듣거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해내려 애쓴다.
그런데 요즘 이런 몇몇 개의 특수한 교육이나 프로젝트로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다들 대단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놓고 있어서 그런지 내가 가진 포트폴리오는 남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느낌마저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시대가 되었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식을 학습하거나, 특별한 정보로 나의 포트폴리오를 특별하게 만드는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이제 정보는 모두에게 공개되었다.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되었다.
특수한 하나의 포트폴리오보다 다른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제 '축적'의 시대가 왔다.
내 일상의 기록이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되는 시대.
나의 하루가 축적되면서 쌓인 '신뢰'가 포트폴리오가 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서는 각자의 포트폴리오가 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각자의 일상은 각자의 색깔을 지닐 테니까 말이다.
나의 일상을 기록하자고 마음먹고 실제로 기록하기 시작하면 어떻게 될까.
경험상 일상이 좀 더 다채로워진다.
일상을 그냥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기록하기 위해 일상을 살아가기도 한다.
기록을 위해 더 색다른 시도를 해보기도 하고, 다른 시선으로 원래 보던 것들을 바라보게 된다.
또 하나의 장점은 나를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부분의 일상은 어제와 같은 오늘을 살고, 내일도 오늘처럼 사는 경우가 많다.
카메라로 찍은 나의 일상을 보거나,
나의 하루를 객관적으로 생각하며 글을 쓰면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메타인지 능력이 올라간다.
'아, 내가 이런 표정을 짓고 살고 있구나'
'아, 내 말버릇이 이렇구나'
'아, 내가 이런 생각을 많이 하네?'
결국 스스로를 더 객관적을 바라본다는 것은 나에 대한 객관적이 평가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평가가 가능해지면 문제점을 파악하기 쉬워진다.
대부분 10년 전처럼, 5년 전처럼 살았던 오늘을 살고 있을 확률이 높다.
10년 전, 5년 전의 문제를 그대로 살아가고 있을 확률 역시 높다.
나의 문제를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를 모르는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결국 나의 일상 기록은 나를 더 성장시키는 초석이 된다.
그러면서 나의 성장은 기록으로 남는다.
10년 전의 나와 5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성장했다는 증거는 훌륭한 포트폴리오이지 않을까.
그래서 난 오늘도 기록한다.
글이든, 영상이든.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나온 서머셋 몸(Somerset Maugham)의 말이다.
"어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있다."
남자들이라면 알겠지만 면도라는 것이 참 성가시고 귀찮은 일 중 하나이다.(여자분들도 알지 모른다)
할 수 있다면 하지 않으려고 요즘은 레이저 제모도 많이들 한다.
하지 않을 수 있다면 굳이 하고 싶지 않은 일 중 하나라는 말이다.
하지만 무라카미 하루키나 서머셋 몸이나 이 하찮은 일에서도 나름의 생각이 있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매일매일 계속한다면,
거기에 규칙이 생기고
이 규칙은 습관이 되고
이 습관은 철학이 될지도 모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매일 계속되는 일에 뭔가 관조와 같은 것이 우러난다는 말을 생각했다.
여기서 관조란 '주관을 배제하고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거나 비추어 보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본다는 의미보다는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뜻한다.
같은 일을 수십 년간 반복하면서 일정 경지에 이른 사람을 우리는 '장인'이라 표현한다.
어느 분야에서든 같은 일을 수십 년간 반복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각자 자기 나름의 시간을 자신의 분야에 투자한다.
재활, 운동 전문가들이라 칭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매일 회원과 환자를 마주한다.
그 매일의 과정 속에서 각자의 규칙과 습관, 철학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도 매일매일이 수십 년간 쌓이게 되면 건강, 치료, 재활이 아닌 우리 몸이라는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생기지 않을까.
나는 그러고 싶다.
면도의 방법에도 철학이 생기듯,
내가 몸을 바라보는 관점에도 철학이 생기길 바란다.
더 깊은 통찰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노력한다.
더 깊은 통찰을 위해 매일 공부하려 애쓴다.
더 깊은 통찰을 위해 매일 경험하려 한다.
더 깊은 통찰을 위해 매일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면도를 하다가 베이고 상처 나고 아무는 것처럼,
우리 모두 마찬가지다.
시도해 보고, 실수해 보고, 경험해 보고, 적용해 보고 다시 성장하면서 철학이 생긴다.
나는 오늘도 시도했고, 경험했고, 적용했고, 실수했다.
면도날에 베일까 봐 두려워 면도를 하지 않는 사람이 되지 않기로 했다.
하찮은 면도처럼, 누군가에게 나의 길이 하찮아 보일지라도 나는 오늘도 나만의 철학을 만들어 나간다.
<당'신', 진짜 있습니까...>
얼마전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영아 학대사건이 방영되었다.
아기는 생후 133일.
사망 원인은 '다발성 외상에 의한 출혈성 쇼크 및 다발성 장기부전'.
피의자는 다름 아닌 '친부모'.
말그대로 때려 죽였다는 말이다.
영상 일부를 보는데 정말 너무 충격적이었다.
남도 아닌 내 자식을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영상을 잠깐 보는 내내 그냥 욕이 단전에서 올라왔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악마가 있다면 이 정도일까.
영상을 보고 갑자기 언젠가 봤던 가수 타블로의 노래 가사가 생각났다.
"God I know you're up there
But I needed You down here"
"신이시여, 당신이 저 위에 있는 걸 압니다.
하지만 난 이 아래에서 당신이 필요했어."
이럴 때마다 신은 없다는 신념이 더 강해지는 내 자신이 싫다.
신의 뜻이 이것보다 더 숭고하니, 대단하니 하지만 왜 태어난지 188일밖에 되지 않은 아기가 그렇게나 고통스럽게 죽어가야만 했던걸까.
이 아이는 생명의 불씨가 꺼져가는 그 순간까지 응급 구조사의 손가락을 꼭 쥐며 마지막까지 살고 싶다는 의지를 보였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가해자인 친부모는 변호사를 8명이나 대동하여 1심 재판중이라 한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내 아이가 태어나고 난 부모가 되었다.
왜 어른들이 어릴 때 했던 아이의 재롱으로 평생의 효도를 다한다고 하는지 알겠다.
행복의 끝이 있다면 여기일까 라는 생각도 든다.
가끔 이 행복도 유한하다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하다.
이런 소중한 존재를 어떻게 그렇게 처참하게 학대할 수 있을까.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들의 마음을.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아이의 고통을.
당'신',
진짜 있습니까...?
와 진짜 너무너무너무너무 와….
이건 와…
부모가 된 입장에서 말이 안되는….
사람인가….
진짜 악마가 있는건가…
이럴 때마다 신은 없다라는 신념이 더 강해지는게 싫다…
신의 뜻이 이것보다 더 숭고하니, 대단하니 하지만 갑자기 타블로 랩 가사가 생각남…
“신이시여, 당신이 저 위에 있는 걸 압니다.
하지만 난 이 아래에서 당신이 필요했어.”
당‘신’, 진짜 있습니까…?
<Vocation을 Vacation으로>
오늘은 일요일이다.
보통의 직장인이라면 지금 이 순간이 지옥문 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 사람도 있다.
내일이 출근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왜 누군가는 월요일이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부정적으로 느껴지고,
왜 누군가는 그렇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월요일을 맞이하는 걸까.
'직업(Vocation)'을 '휴가(Vacation)'로 만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하러 가는 곳이 휴식을 취하는 곳과 같다면?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일 아닐까.
그저 꿈으로 여기지 말자.
우리는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나는 사실 내 일이 휴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에 내가 좋아하면서 잘할 수 있는 것들로 경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보다 더 좋은 경우가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여기까지 읽으면 나를 그저 운이 좋은 놈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나는 내 일을 선택하기까지 굉장히 힘든 과정을 겪었다.
지금 일을 하기 전에는 작은 회사에서 의료소모품 영업을 했었고, 늦은 나이에 학교에 입학했다.
뒤늦게 진입하게 된 이 일에 처음에는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냥 따박따박 월급을 받으면서 내 한 몸 생활만 유지할 수 있으면 된다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근무하게 됐다.
여기서부터 지옥이 시작됐다.
매일 들이닥치는 환자분들.
준비되지 않은 나.
점점 더 심해지는 압박감과 부담감.
내가 이분들을 좋게 만들 수 있을까라는 끊임없는 자기 의심.
이런 마음들은 나를 점점 더 강박에 시달리게 했다.
한시도 쉬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쉬는 게 두려웠다.
잠깐의 휴식에도 무언가를 보지 않으면 안 됐다.
내 일과 관련된 건 무엇이든 보려고 노력했다.
그럼에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너무나도 컸다.
이런 괴리감은 나를 더 무너뜨렸다.
불면증이 찾아왔고 끝내 공황장애까지 이어졌다.
잠자리에 들면 숨이 막히는 느낌 때문에 응급실로 달려가기 일쑤였다.
검사를 하면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점점 더 밤이 찾아오는 것이 무서워졌다.
7시에 출근 준비를 해야 되는데 밤새 잠 못 이루다 6시나 6시 반에 잠깐 잠들었다가 다시 출근이었다.
이런 나에게 일요일 저녁은 그야말로 두려움 그 자체였다.
결국 나는 잠시 일을 쉬었다.
그리고 나를 돌아봤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생각했다.
지나친 욕심 때문이었다.
욕심은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나를 찾아와주는 분들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더 옥죄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하나씩 집중하기 시작했다.
매일 꾸준히 공부하면서 내 건강도 챙기기 시작했다.
내 건강을 챙기면서 호흡에 대한 관심도 생겼다.
나의 전문성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교육을 듣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점점 더 많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떻게 환자분들, 회원분들에게 접근해야 하는지 가닥이 잡혔다.
나를 통해 건강을 회복하는 분들이 점점 더 많아졌다.
일이 점점 재밌어졌다.
예전에는 나를 찾아와주시는 분들이 무서웠지만 지금은 감사하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진심으로 수업을 하게 된다.
더 좋아지는 분들이 많아진다.
선순환이 만들어진다.
이런 내가 어떻게 내 일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란 사람을 통해서 누군가 좋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가.
이러니 나의 직업(Vocation)은 나에게는 휴가(Vacation)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매일 같은 컨디션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는 없다.
이럴 때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을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좋아한다.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보겠다!'
'아프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볍게 움직여보겠다!'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쉬운 일들을 조금씩 해보겠다!'
이전 글에서 얘기했지만 완벽한 때는 없다.
완벽한 상황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들과 다르게 살고 싶은 욕심이 있다면 남들처럼 살아서는 남다른 삶을 살 수 없다.
내가 당연하게 하고 있는 일에서 추가적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
그런 일들이 2중, 3중, 4중으로 쌓이면 우리의 성장도 쌓여간다.
힘든 와중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해야한다.
이런 일들이 쌓이면 사용가능한 물리적 시간이 점점 더 줄어든다.
어쩌면 잠을 줄여야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한다.
하지만 길게 보는게 중요하다.
인생은 마라톤이라 하지 않는가.
마라톤도 42.195km 내내 전력으로 달리지 않는다.
빨리 달릴 때도 있고, 페이스를 조절하며 속도를 늦출때도 있다.
물을 마시러 갈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라톤은 계속해서 달린다.
어떤 러너들은 너무 힘들어서 잠깐 멈추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다시 달린다.
결승점까지 어떻게해서든 들어온다.
오늘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오늘 너무 힘들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포기하지 말자.
오늘 쉬어도 된다.
내일부터 다시하면 된다.
그렇게 내가 원하는 지점까지 계속해서 달리면 된다.
이 글은 매일 의지를 다지며 아파도, 힘들어도, 어려워도 무조건 하라는 말이 아니다.
조금 쉬어도 괜찮다는 위로고,
조금 힘내보라는 응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로 나를 다잡고 내일 다시 하면 된다는 격려이다.
센터에서 회원분들을 보면 나 스스로 배우고 깨닫는 것이 많다.
이곳저곳이 아파서 찾아오셨던 회원분들이 처음에는 많이 힘들어하고 아파하기도 한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주 2회, 3회씩 찾아오다보면 처음 아팠던 통증이 없어지고, 되지 않던 동작들도 무리없이 해낸다.
들지 못했던 무게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회원분들도 아프고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찾아와 운동하면서 '건강한 삶'에 이른다.
오늘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고,
전공서적을 펴 공부를 하고,
내가 원하는 유튜브 영상 편집을 하고,
나를 찾아와주었던 회원들을 기록하며,
또 하루를 살아간다.
이 말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때는 없다>
ㅇㄴㅇㄹ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거나 무언가를 시작하면 눈앞에 장애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생각하는 장애물이 아니라 실재적인 방해 요소들이 우리를 막아서는 경우가 많다.
나는 거의 매번 그랬던 거 같다.
그냥 느낌이 그런 건지, 실제로 그런 건지 정확하지 않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면 항상 새로운 장애물이 생겼다.
처음에는 이런 장애물과 방해 요소에 머뭇거리고 멈춰버렸다.
포기하기도 했다.
결국 새로운 도전이나 시도들은 무산되거나 방치되었다.
나는 모든 상황과 조건이 완벽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때는 오지 않았다.
뒤늦게 깨달았다.
완벽한 상황이 오길 기다린다면 평생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제서야 장애물을 다른 시선으로 보려 노력했다.
그때부터 나는 장애물을 물속에서 만들어지는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나아가면 당연히 만들어지는 물속 저항.
이 저항은 빠르게 움직이고 격하게 움직일수록 강해진다.
몸에 힘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더 격하게 우리를 막아선다.
사고의 전환 이후 새로운 도전 앞에서 몸에 힘을 빼려는 노력을 많이 하게 됐다.
경험적으로 격한 의지는 내 앞에 더 큰 장애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경험 때문이었다.
유튜브, 인스타, 블로그, 컨퍼런스 등등 새롭게 시도했던 것들을 시도할 때 처음에는 힘을 빼고 시작했다.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아니라 완벽함을 어느 정도 포기하려 노력했다.
처음부터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욕심이다.
완벽할 수 없다.
유튜브를 편집하다 보면 완벽한 영상 퀄리티를 위해 정말 끝이 없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완벽함은 결과를 내고 무언가를 시작하는데 방해가 되는 경우가 많다.
물속에서 처음에 천천히 움직이면서 물에 적응하고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것처럼 새로운 도전도 마찬가지다.
완벽을 추구하지 않고 힘을 빼야 한다.
완벽이라는 것은 결과다.
결과에 집중하면 과정을 즐길 수 없다.
나는 과정에 집중하려 노력한다.
과정에서 느껴지는 작은 재미나 쾌락에 빠지려 애쓴다.
그리고 진짜 즐거워한다.
그래야 오래 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과정에 집중하며 새로운 도전에 적응되기 시작하면 점점 더 속도를 내거나 자세를 완벽하게 해보려 애써본다.
이때도 완벽함에 집중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더 성장한다는 사실에, 더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오롯이 만끽하려 한다.
경험상 그래야 더 오래 할 수 있고, 더 오래 해야 더 완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 앞이라면 잊지 말자.
완벽함을 추구하지 말자.
내가 나아갈 때 느껴지는 저항을 온전히 느껴보자.
그 저항은 나를 조금씩 성장시킨다는 사실을 생각하면서.
저항은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결국 어제보다 오늘 더 완벽한 사람이 되어간다.
<다양성 속에서 찾는 의외성>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수직적 사고에 더 익숙하다.
많이 변화되었지만 수직적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직적 능력주의는 '지능(Talent) + 노력(Effort) = 능력(Merit)'이라는 공식을 전제로 하는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 할 수 있다.
자신만을 특별하게 여기는 것은 어떻게 보면 '자만'이다.
우리 모두는 각자 고유한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의외성은 모두 제각각이다.
주사위를 던지고 바라보면 우리는 주사위의 어떤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가.
정육면체인 주사위를 비스듬히 바라본다면 기껏해야 많아도 세면 밖에 볼 수 없다.
정면에서 본다면 한 면 밖에 보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은 어떨까?
수십, 수백, 수천가지 모습을 가진 사람을 바라본다면 우리는 한번에 얼마나 많은 모습을 관찰할 수 있을까.
우리가 보는 모습 이면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지 상상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의외성을 가치있게 바라보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다른 사람처럼 되고 싶어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과도하게 신경쓴다.
어떤 사람들은 강박에 가까운 집착을 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다양성을 고민해야 한다.
각자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런 다양성 속에서 우리가 가진 의외성을 바라보려 노력해봐야 한다.
의외성은 어찌보면 '남다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더 나음'을 항상 추구한다.
비교가 쉬운 사회가 되면서 내가 보는 사람들이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인지 항상 생각하게 된다.
'남다름'은 언제나 '더 나음'을 이긴다.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더 나음'이 아니라 나는 저들과 어떻게 다른지 '남다름'을 고민하는 일이다.
나도 그런 고민에 빠져있다.
물리치료사, 운동전문가 선생님들이 각자의 '남다름'을 뽐내며 빛을 내고 있을 때 나는 어떤 '남다름'을 보여줄 수 있을지 생각한다.
고유의 의외성은 다른 말로 하면 '특별함'이라 할 수 있다.
특별함을 만들려면 수직적 사고보다는 수평적 사고가 훨신 유리하다.
수직적 사고는 시선을 좁게 만든다.
좁은 시선으로는 다양하게 바라볼 수 없다.
수평적 사고를 통해 다양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센터에 새로운 선생님들이 들어와 서로를 마주하면 각자 특별함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 특별함에서 나오는 의외성을 통해 나는 내가 가야할 나만의 특별함을 더 찾을 수 있다.
그러기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하나씩 실행에 옮겨본다.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한다.
프로세스에 집중하다보면 즐거움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제 SNS를 보거나 유튜브를 보면서 그들이 가진 다양성에 집중해보자.
그리고 그들이 가진 의외성은 어떤게 있는지 생각해보고, 나는 어떤 특별함을 가졌는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자.
이런 고민들이 나를 좀 더 나답게 만들어주지 않을까하는 작은 욕심을 부려본다.
<스스로 피로해지기 vs 강제로 피로해지기>
현대 사회는 '피로사회'라고 얘기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이제는 핵개인으로 가는 시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끊임없는 발전과 성장이라고 강요받기도 한다.
김정운 작가의 책 <에디톨로지, 창조는 편집이다>에서는 이런 성과 사회와 피로 사회를 타인에 의한 착취가 아니라 '자발적 자기착취'라고 하기도 한다.
요즘 우울증과 번아웃(burnout)이 많은 이유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인해 스스로 점점 더 불안정해지는 까닭도 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나도 불면증과 공황 장애를 겪을 때를 돌아보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조급함으로 인해 한시도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이 있었다.
그런 강박이 조금씩 조금씩 나를 갉아먹었던 건 아닐까.
어찌 보면 나도 약간의 우울증과 스스로를 완전히 태워버리는 번아웃(burnout)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실제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다)
이런 자발적 자기 착취가 '자발적 피로'는 아니다.
성과 사회가 각 개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니라 강제적인 일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착취의 상황으로 몰아넣는 '강제적 피로'다.
이 피로감을 다른 것으로 전환해야 우리가 진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
성취감으로 선택한 피로감을 고명환 작가는 책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가져야 할 부에 대하여>에서 '자발적 피로'라고 했다.
남이 시키는 일을 해서 생긴 피로가 아니라 진정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스스로 만든 피로다.
힘은 들지만 기분이 좋아지는 피로감이다.
요즘 내가 느끼는 피로감이 바로 이 '자발적 피로'다.
센터에서 회원분들을 운동시키며 전문가로서 살아가고, 한 아이의 아빠로, 한 가족의 가장으로 살아가면서 발생하는 피로감.
운동, 공부, 인스타, 유튜브, 글쓰기를 하며 만들어지는 피로감이다.
이 피로는 어찌 보면 쾌락에 가깝다.
자발적인 선택으로 치열하게 하나에 몰입하면서 일을 끝냈을 때 오는 성취감에 점점 중독된다.
하다 보면 점점 이런 쾌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싶어 하게 된다.
쾌락이니 가능한 일이다.
같은 '피로'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마음 상태인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병을 얻을 수도 있지만 성취감을 통해 더 큰 성장을 하기도 한다.
나는 요즘 이런 바쁨과 피로가 썩 나쁘지 않다.
오히려 좋다.
내가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거 같아 기쁘기도 하다.
내가 선택한 일이 성취감을 준다는 사실에 쾌락마저 느낀다.
스스로가 요즘 피로하다면 나를 한번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 내가 느끼는 피로가 '자발적 피로'인지 '강제적 피로'인지.
만약 '강제적 피로'라면 스스로를 재정비해 보고 진짜 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성장하려면 방법 찾기 그만하자>
요즘은 정말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이제 구글링, 유튜브뿐만 아니라 AI 검색을 이용하면 전보다 검색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내가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시도하고 도전할 때 특별한 방법을 찾아헤맨다.
가까운 여행을 갈 때도 마찬가지다.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기 위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정보를 무한 서칭한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요즘의 세태가 낳은 현상이 아닐까.
그런데 여행뿐만이 아니다.
진짜 새로운 프로젝트를 해보려 하거나 도전을 시도할 때도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블로그를 하려고 하면 블로그 꾸미는 법, 블로그 이웃 늘리는 법, 블로그 글 쓰는 법 등등 끊임없이 방법을 찾아 나선다.
유튜브도 마찬가지다. 섬네일 만드는 법, 구독자 늘리는 법, 영상 편집하는 법 등등...
왜 이렇게 방법에 집착할까?
단순히 잘못된 선택을 하기 싫은 마음 때문에 만 그럴까?
실패를 하기 싫은 감정도 있겠지만 나의 경험에 비추어보면 방법을 찾는 그 시간 동안 현실을 도피할 수 있다.
실제 해야 할 일에서 벗어나 나 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장밋빛 미래를 그려볼 수 있다.
그 상상 속에서는 절대 실패가 없다.
방법을 알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와 프레임 안에서 경험이라는 중요한 가치를 외면한다.
방법이 우리를 성장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전과 경험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하기만 하면 나는 다 잘한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전혀 무섭지 않다.
그런데 조용히 자기가 생각한 것들을 결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묵묵히 실제로 해나가는 사람은 눈여겨봐야 한다.
경험을 쌓으며 조용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창 시절에 나는 공부를 잘하고 싶었다.
어떻게 공부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그래서 결국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
공부하는 방법을 열심히 공부했지 진짜 시험에 나오는 공부는 전혀 하지 않았다.
공부 경험을 전혀 쌓지 않으니 공부 실력이 전혀 성장할 수 없었다.
대학에 들어왔고, 성인이 되어서도 그랬다.
성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책을 정말 많이 봤다.
그런데 결국 성공학에 대한 공부만 열심히 했다.
실제로 성공을 하기 위해서,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 진짜 해야 할 경험의 빈도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뒤늦게야 깨달았다.
30중반이 되어서야 알게 됐다.
진짜 성장은 오직 경험을 통해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글을 매일 쓰고, 유튜브를 시작했다.
현재 유튜브 편집 중이다.
매주 1편을 업로드하는 것이 목표다.
이런 경험이 나를 더 성장시켜줄 것이다.
카메라에 내 얼굴이 나오는 경험.
내가 말하는 것을 객관적으로 보는 경험.
영상 편집을 하는 경험.
사람들에게 어떤 영감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경험.
많은 경험이 나를 더 성장시킨다고 확신한다.
<왜 나는 출근하기 싫을까?>
제목과 달리 나는 출근하기 싫을 때가 있을까 할 정도로 출근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왜 그럴까 고민해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가 1997년에 작성한 '아마존 주주 서한'을 읽다가 '아!'하는 구간을 발견했다.
바로 '고객 집착(Customer Obsession)'이라는 핵심 철학이다.
나는 병원에 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내 앞에 있는 회원, 즉 고객에게 집중한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건 확실하다.
집중력이 좋지 않지만 내 앞에 문제를 가지고 온 분들의 니즈를 끊임없이 파악하려고 애쓴다.
부족한 실력을 메꾸려는 나만의 노력이 습관이 된 건지도 모른다.
병원에서 근무할 때는 '눈에 빛이 난다', '눈이 또렷하다'는 식의 말을 많이 들었다.
그 당시는 몰랐지만 항상 긴장상태여서 그랬지 않나 싶다.
다양한 환자들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든 없든 최선을 다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래야 했다.
물론 모든 환자분들을 다 치료할 수는 없다.
그건 신의 영역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 환자가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상대하려고 노력했다.
내 눈앞에 있는 분들을 다 내 팬으로 만들려고 무진장 애썼다.
이게 바로 제프 베이조스가 말한 '고객 집착'이 아닐까.
다른 치료사, 다른 트레이닝 코치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집중하고 견제하고 신경 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앞에 있는 고객에게 모든 포커스를 맞추는 일.
꼭 내 회원이 아니더라도 나와 인사 나누는 분들에게 인사하는 그 순간만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진정성 있게 한마디 하는 일.
이게 진짜 '고객 중심 사고'다.
이렇게 고객 중심 사고를 가지면 나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은 사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정도로 시간이 잘 간다.
회원분들에게 맞는 운동을 다양하게 구성하고 운동시키면서 어떤 피드백이 나올지 집중하고 어떤 반응이 보이는지 어떤 자세가 문제인지 통증은 있는지 등등 신경 쓰다 보면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그러면 1시간이 아쉬워 다음에 해야 할 것들이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이런 프로세스가 내 일에서 자리가 잡히기 시작하면 진짜로 일이 재밌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기 싫은 일을 하러 가는 게 아니라 재밌는 일을 하러 가는 느낌이라 출근하기 싫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물론 정말 많은 회원들을 보면서 근무 시간이 길어지면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체력적으로 지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 객관적으로 나를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체력적으로 힘드네, 조금 더 집중해야겠다'
이런 식으로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완벽하게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고객분들도 알아준다.
그런 경험이 정말 너무 많다.
이런 경험이 쌓이면 점점 더 열심히 하게 된다.
선순환이 된다.
고이지 않고 흘러가게 된다.
그럼 항상 맑은 흐름이 유지된다.
지금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 줄지 같은 거에 신경 쓰다 보면 글이 더 안 써진다.
그냥 자연스러운 내 생각들을 조금씩 풀어놓다 보면 자연스레 글이 완성된다.
이럴 때면 세상의 이치는 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 순간
'내일 일하러 가기 싫다'
'아 출근하기 싫다'
이런 생각이 든다면,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자.
내 앞에 있는 일에, 사람에 나는 진짜 집중(focus)하고 있는가.
아니, 몰입(flow)하고 있는가.
일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흐름(flow)에 자연스럽게 올라타고 있는가.
<발목 염좌를 가볍게 생각하면 큰일 난다!>
꼭 운동선수가 아니라 일반인분들도 발목을 삐는 경우가 많다.
병원에서 일할 때도 어깨 통증으로 방문했던 분들이 가끔 급성 발목 염좌로 급하게 내원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발목 염좌를 가볍게 생각한다.
발목 염좌 발생 후 부기와 통증이 잦아들면 특별한 재활이나 치료 없이 그냥 일상생활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
이 선택이 스스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전혀 상상하지 못한다.
나 또한 그랬다.
취미 활동이 축구인 나는 발목이 삐는 일은 다반사였다.
당연히 부기와 통증은 달고 살았다.
하지만 그 어떤 치료도 특별히 받은 적은 없다.
그저 병원에서 간단한 물리치료(우리는 이걸 물리적 인자치료라 한다)와 진통소염제를 처방받아 약을 복용하는 게 전부다.
재활 전문가로서 일하기 전 나조차 발목염좌에 대해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발목 염좌의 장기적인 후유증은 사실 엄청나다.
염좌 발생 후 수개월에서 수년에 걸쳐 통증이 지속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도 방치된 발목이 아직까지 종종 나를 괴롭힌다.
후유증에는 발목 약화 및 불안정성도 있다.
한번 발목 염좌가 생기면 다시 삐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못해 불안정성으로 인해 다시 염좌가 발생하는 경우다.
만성 발목 불안정성(CAI, Chronic Ankle Instability)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들에게는 더 치명적이다.
발목 염좌로 인해 운동 속도 감소도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부상 후 관절 가동 범위 감소로 인해 햄스트링, 사타구니, 또는 허리 부상을 확률이 극도로 높아진다.
(이에 대한 이유는 추후 다른 글로 설명하겠다)
발목 염좌를 경험한 선수들은 부상 후 최대 8년까지 햄스트링 부상 위험이 훨씬 더 높아졌다.
(참고: Epidemiology of Ankle Sprains and Chronic Ankle Instability)
염좌 발생 후 3개월이 지나도 인대 손상 전 저항력의 약 80% 정도만 회복된다.
손상의 영향이 완전히 회복되는 데는 최대 2년이 걸릴지도 모른다.
경험상 그 이상도 가능하다.
발목 염좌 발생 후 발생하는 통증은 심각도와 연관성이 낮을지도 모른다.
통증이 강하다고 너무 걱정해서도 안되고, 통증이 약하다고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며 방치해서도 안 된다.
통증은 운동 진행 방향을 결정하는 데 있어 굉장히 중요한 지표다.
이건 전문가의 영역에 가깝다.
일반인분들이 스스로 판단하기에는 위험 요소가 너무 크다.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정확한 평가 도구가 필요한 이유다.
발목에는 다양한 관절과 연부 조직들이 존재한다.
단 한 번 염좌가 발생하면 이 섬세한 구조물들이 정상에서 벗어난다.
더 전문적인 설명이 있겠지만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기능하던 것들이 한 번의 손상으로 모두 어긋나기 시작한다.
이 어긋난 것들을 정상으로 다시 돌려놔야 한다.
전문가에 의한 정확한 가동 범위 평가와 고유 수용성 감각 재훈련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발목에서 시작된 사소하다고 생각한 부상이 내 몸 이곳저곳을 고장 낼 수도 있다.
선수들은 자신의 몸값까지도 떨어뜨릴 수 있다.
전문성은 디테일에 있다.
일반인도 자신의 분야에서는 전문가다.
운동선수도 각자의 스포츠에서 전문가다.
전문가라면 작은 디테일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건강 측면에서도 말이다.
<나는 '왜?' 유튜브를 하려고 할까?>
어느 순간 유튜브를 해보려 마음을 먹게 됐다.
왜 그런 마음이 들었을까?
블로그를 시작할 때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공개적으로' 글을 공개하며 연습하고 피드백을 받기도 하며 성장하는 모습에 만족감과 충만감을 느끼는 나의 성향.
돌이켜보면 나의 이런 성향이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나는 꾸준함이 참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대표님께서 나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너는 참 꾸준해'
이 말을 듣고 뭔가 한대 맞은 느낌이 들었다.
'내가 꾸준하다고?'
'뭐만 하면 금방 싫증 내고, 포기해버리는 내가 꾸준하다는 말을 들어도 되는 걸까?'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번개같이 떠올랐다.
그럼 대표님은 나에게 '왜?' 꾸준하다고 이야기해 주셨을까.
지금에 와서야 나를 돌아보면 나는 참 꾸준했다.
아니 어느 시점부터 꾸준하게 살아왔다.
꾸준함의 기준은 다를 수 있다.
무언가를 매일 해야 꾸준하다고 할 수도 있고,
매주 무언가를 정기적으로 하는 걸 꾸준하다고 할 수도 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2023년 4월 15일에 처음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계속해서 기록하고 있다.
https://t.co/YktlwEqJYa
특별히 인플루언서도 아니고, 주목받지 않지만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리고 계속 아침 운동을 유지하고 있다.
최근 아이가 태어나며 많이 소홀해졌지만 다시 아침 운동을 시작하고 새롭게 영상을 리뉴얼해서 올릴 예정이다.
SNS라는 공간에서 가장 저평가되는 것이 있다.
바로 '신뢰'다.
그런데 이 신뢰는 바로 '꾸준함'이 만들어낸다.
아무리 조회 수가 많이 나온 콘텐츠가 있어도 6개월 전, 1년 전이 마지막 게시물이면 사람들은 그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
나는 인스타를 통해 나의 신뢰를 높여나갔다.
내가 관리하는 회원분들의 영상도 올리며 전문성도 키워나갔다.
인스타그램이 나의 전문성을 중점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라면,
유튜브는 나를 드러내면서도, 나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동기부여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더 긴 호흡의 영상을 올리고 싶다.
운동하는 모습, 공부하는 모습, 수업하는 모습, 고민하는 모습, 괴로워하는 모습, 행복해하는 모습.
그냥 이런 나를 통해 누군가 위안을 받거나, 힘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
앞으로 더 유익한 글과 영상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그래서 지금보다 더 남을 위해 살아가려고 한다.
그래서 결국 나는 유튜브를 하려나 보다.
<속독할꺼면 책 읽을 필요 없는 이유>
책을 빨리 읽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오죽하면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둘다 2016년 네브래스카 대학 강연에서 초능력을 가질수있다면 책을 빨리 읽는 능력을 가지고 싶다고 했을까.
그런데 그들이 진짜 순수하게 책을 빨리 읽는 능력만을 원했을까?
우리가 진짜 원하는 것은 텍스트를 통해 나를 더 성장시키는 것이 아닌가.
그냥 글자만 눈으로 빨리 읽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되물어봐야한다.
책을 그냥 빨리'만' 읽으면 시간만 버리고 있는거다.
책을 빨리 읽으려고 마음을 먹기 시작하면 책 내용보다는 텍스트를 읽는 속도 자체에 더 집중하게 된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그랬다.
아니, 나'는' 그랬다.
순전히 나의 경험이다.
책을 읽기 시작한 이후 책에 대한 욕심이 커졌다.
단시간에 많은 책을 읽고 싶은 마음이 점점 자라났다.
1000권, 2000권 쭉 읽어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눈알을 열심히 굴려가며 책을 빨리 읽으려 노력했다.
점점 책속에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는 뒤로 밀려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책 자체의 흥미도 잃게 된다.
그러면 점점 책과 멀어지게 된다.
사람은 재미 없는 건 안하게 되는 게 본능이니까.
차라리 안 읽는게 낫다.
책에 호기심은 계속 가지고 있을테니...
그러니 그저 책을 빨리'만' 읽을 생각이라면 읽지 마라.
앞으로 다시는 책을 보지 않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남들은 매년 수천억 원씩 월세를 내며 광고할 때,
비트마인은 2억 달러를 내고 광고판의 '주인'이 됐습니다. 📺
세계 1위 유튜버 미스터 비스트와 손잡은 진짜 이유?
Z세대 4.5억 명 유통망 확보
광고비를 지분(자산)으로 치환
콘텐츠 활동을 '디지털 신용'으로 만드는 금융 실험
이것이 바로 톰 리가 말하는 '천재적인 자본 배분'**입니다.
단순 협업이 아니라, Z세대의 중앙은행이 되겠다는 야심이죠.
#Bitmine #ETH
비트마인(Bitmine) 주식 한도 500억 주 상향.
이걸 단순한 '개미 털기'나 '가치 희석'으로 보시나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이건 '월가 정복을 위한 실탄 장전'입니다. 현금 대신 주식으로 기업을 통째로 집어삼키겠다는 M&A 선전포고죠.
이더리움만 들고 있던 비트마인이 이제 '기업 사냥꾼'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단순 홀더는 겁을 먹고, 설계자는 기회를 봅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
삼성전자 놓친 사람들 주목
삼성전자 최대주주 삼성생명
올해 삼성생명법이 통과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음.
법 이름이 삼성생명법임.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대거 매각해야 함.
삼성생명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율은 8.5%
원화로 대략 83조원.
법이 통과되면 3% 지분만 남기고 매각해야함.
매각 규모만 50조원이 넘음.
삼성생명 시가총액이 35조원임.
삼성전자 지분가치만 83조이고, 매각해야 하는 자금만 50조원임.
35조짜리 기업에 세금 제외하고 40조원 정도의 현금이 생기는 거임.
삼성전자 지분 가치가 부각되는 시기가 도래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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