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구두, 1970년생, 80년대를 나름 거칠게 살았다. 광고사, 출판사를 거쳐 현재 계간 황해문화 편집장으로 밥벌이, 부업으로 경향과 한겨레 등에 글도 쓴다. '바람구두연방의 문화망명지' 운영자, 저서로 ‘하루교양공부’, ‘길 위의 독서', '누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가' 등.
깊이와 체득이 없는 열광, 다시 말해 자기 것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감동은 결국 매끈하게 망각되고 만다. 수많은 신간이 그렇게 사라지듯 인간도 그러하다. 당신 곁에서 당신의 시대에 만날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당신의 사람을 만나 오래도록 사랑하시길… 그런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소망하라.
“죽음은 모두에게 불행이지만, 한쪽의 죽음이 52.5배나 많고, 심지어 그들이 죄다 민간인이라면, 이것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주민 집단학살로 불러야 한다.”
한겨레21 1525호 편집장 칼럼입니다. 지면 제목은 ‘전쟁’이 아닌 ‘집단학살’입니다. https://t.co/WFktx3sUPx
너도나도 유도 룰까기가 유행인듯 하여, 전직 유도인(성균관 유도인 말궁)으로 한 마디 섞자면, 요즘 유도 룰이 조금 재미없긴 하다. 그것과 상관없이 이런 사진을 보면 나도 도복을 다시 입고 싶다(얼마전까지 적극적으로 도장을 알아봤다만), 마느님이 반대하셔서 포기했다. 업어칠 힘도 없으니...
‘작가가 된 기분, 공적 글쓰기를 한다는 자기 효능감’이 주는 웹플랫폼의 글쓰기는 누구나, 마땅히 누려야 하는 즐거움이지만, 공적인 글쓰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괴로움과 무게 역시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이들에게 드리는 유일한 충고가 있다면 먼저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한다는 것...
나를 드러내는 것이 두려워 ‘바람구두’라는 닉네임 뒤에 숨어 있다가 본의 아니게 실명으로 사는 삶을 살지만, 여전히 사람들을 피해 사는 ‘좀머(Sommer)’ 씨, ‘전모(全某)’ 씨로 살고 싶다. 내 유일한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세상이 이대로 멸망할지 여부와 무관하게 ‘조용히 지켜보는 자’의 삶이다.
삶의 길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나 역시 누군가 길을 헤매게 한 적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자타불이(自他不二), 사랑이 교리인 까닭은 그것이 사람의 몸으로는 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온전하게 당신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인간의 비극이다. 길을 잃은 뒤에야 비로소 당신에게 등돌린 적 있음을 알게 된다
어떤 시인의 깨달음은 시적, 문학적 성취에 앞서 그 자체로 소중하고 흔치 않은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것은 구태여 시인이 저런 것에까지 일일이 말 걸고, 정(情)을 주어야 할까 싶다. 그러다 세상 아픈 이들 이리 많아 내가 앓아누울 병(病)마저 대신 앓아주는구나 싶을 때면 고개가 떨구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