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때 부모님 몰래 신도림에 휴대폰 바꾸로 간 적이 있어요
출금계좌를 아빠계좌로 하려면 본인동의가 필요하대서 결국 친구만 바꿔서 서러웠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와서 보면 너무 행복한 날들이었지
지금이 그 때 바꾸려 했던 폰보다 안좋은 기종이지만 정지없이 폰을 쓰는 걸로 감사한 삶이 됐어
주말 두번 다 생생한 악몽을 꿨어요
그리곤 x에선 #오프 태그에 댓글다는 사람의 도와준다는 말과...근데 몸팔라는건 도와주는게 아니라 거래 아닌가요?ㅎ
오픈톡으로는 상황성명을 듣고 도와줄지 생각하겠다는 사람이 있던데 필요없으니 제 치부는 이전계정에 있으니 거기가서 보세요
군인에게 항상 고마운 마음 가지고 있고,
자뻑도 아니고 흡연실 치워달라면서 항상 내 뒤쪽에서 엉덩이 보는듯한 리니지 아저씨 무리도 있었고 대충 생각만 해도 소름끼쳤던 사람들이 10명도 넘어서 최저시급도 안되는 일을 참다 그만뒀어요
이자도 못내는 년이 더 가난한 삶이 된것 뿐
제대하고 복학한다는 애가 인스타, 번호달라는 말을 7번 정도 했나
나는 가족 친구조차 유지할 수 없었고, 죽는게 구원이라 생각해서 항상 주변정리하고 살고 있는데 그런 말들이 관심 생길리가 없지.
말걸고 번호달라는 시도 자체를 소통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얘는 자기가 누굴 괴롭히고 있다는 걸 알까 싶더라. 마지막으로 거절했을 때 '무시할거면 미안하다는 말 정도는 하시죠' 라던데 그 때 x에 쓰지못할 험한 생각을 했지
지점명도 알던 분들도 있지만 오전엔 피시방 알바를 했어요
2월에 리니지클래식 오픈도 있었고, 사장님이 나 일한 뒤로 손님이 2배 넘게 늘었다고 했어
배려받는 것도 많지만 최저시급도 안됐고, 피시방은 보통 게임하러 오는 곳이잖아? 근데 고백공격, 플러팅 이런게 너무 스트레스였음
가족 친구 없는 삶도 고독이 좋은 점도 있더라
싫은 소리도 없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것
x도 푸념없이 섹트만 하던 시절의 조회수는 1년넘게 하소연만 하니 토막토막나서 수십분의 일로 줄었고 반복되는 우울글로 밴이 풀리지도 않으니 조만간 현실이든 온라인이든 바라는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겠네
수술땐 평생 낙인같다는 생각과
장애도 나만큼 불편한 사람도 많다고 생각했지
신용불량 사채도 시간지나면 없어질거고
도망치듯 타지서 사는 것도 잘 곳이 있어 감사했어
매달 나빠지고 있어도 살아는 있으니 최악은 아니다, 이정도는 흔하다고 쌓인 일들이 합쳐지니 더는 감당할 수가 없는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