眞心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生命과 함께 하느냐 아니냐로 가름합니다. 성직자나 스님들은 말하는 자리에 있으니 사랑과 자비를 말로 하지만 生命이 함께 하지 않으니 眞心이 아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가진게 없으니 生命으로 사랑,자비를 따릅니다.다만 世上이 알지 못할 뿐,世上심판은 가난한자가 하게 될겄입니다.
말과 글을 배우게 되면 편리함이 있지만,단점은 眞實한 사랑도 말,글로 대신하려 하는 겁니다.많는 성직자들이 生命아닌 말로 예수님 사랑을 전하려 하지만,예수님을 따르겠다 약속한 아이는 가난한 광부되어 生命을 깊은 갱도에 묻어 하나님께 드린 약속 지켰으니 하나님은 아이에게 世上을 심판하게 할겄 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 약속한 아이는 학교를 가서 큰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학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치료하고 돕는 사람들을 天使라 가르치지만,生命바쳐 예수님을 따른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아이는 고통끝에 가난한 광부로 生命을 갱도에 씨앗처럼 묻어 하나님과 약속 지켰으니 하나님은 아이에게 새生命과 영을 부어 世上을 심판하게 할겄입니다.
성직자는 사랑을 말하고,스님은 자비를 말할 뿐,생명을 다해 사랑,자비를 행하지는 않습니다.生命을 다해 사랑,자비를 行하는 사람은 말할 기회가 없죠.그렇게 生命 바쳐 사랑,자비를 行하고 따르는 사람들은 가난하고,고통받는 사람들입니다.하늘이 열리고 심판의 때엔 가난한 사람들이 世上을 심판할 겄입니다.
성직자는 예수님 사랑 말만해도 세상은 성직자를 天使처럼 여기지만,가난한 사람들은 사랑위해 生命을 바쳐도 오히려 개죽음 취급 받습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 약속한 아이는 이런 世上을 알고도 가난한 광부되어 가난한 사람들 위해 生命을 바쳤으니 하나님은 아이에게 영을 부어 世上을 심판할겄 입니다.
어린아이가 수천년 역사의 성직자들을 심판할 수 있는 이유는 성직자들은 예수님 사랑을 말할 뿐 자신은 生命던져 예수님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지만,예수님을 따르겠다 약속한 아이는 가난한 광부되에 깊은 갱도에 生命을 씨앗처럼 묻어 약속 지켰으니 하나님은 아이에게 새生命과 영을 부어 世上을 심판 하실겄입니다,
사람의 生命은 말(言)이나 생각으로 풀어낼 수 없는 이유는 生命은 생각이나 말로 형성된겄이 아니기 때문에,골방에 쳐박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과 타인의 生命을 알 수는 없기 때문이지만 성직자나 스님들은 수천년동안 말로 사랑,자비를 傳한다고 자신들과 世上을 기만하고 있는겄 입니다.
수천년 동안 성직자는 사랑을 말하고,스님들은 자비를 말해 왔지만,성직자,스님들은 生命 바쳐 사랑,자비를 따르지는 않는 이유는 사람은 듣고,보는 능력만 있을 뿐,生命에 담긴 眞實을 아는 능력은 없기 때문에 수천년 동안 말만하고 天使행세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으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보고,듣는 능력은 있지만,生命이 간직한 眞實을 아는 사람은 없어.성직자 처럼 사랑을 말하고,聖者,聖女는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고 天使 대접 하지만,사랑위해 生命 바친 가난한자는 개죽음 취급받지만,하나님은 사랑위해 生命바친 가난한자에게 새 生命주어 世上을 심판하실겄 입니다.
사람은 말(言)을 사용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수 있지만 眞實의 소통 수단은 아닙니다.성직자나 스님들을 보십시오.사랑,자비를 말할 뿐 따르지는 않아도 天使 대접받고,행세 하지만 가난한 자는 사랑위해 生命 바쳐도 개죽음 취급 받는 모순된 世上 입니다.심판 받아 마땅한 世上 이죠.
世上에는 가진자와 가난한자가 함께 살고 있어,가난한자의 生命 마져 소유에 의해 판단 되지만 하나님은 가난한자에게 숨겨진 보물을 주셨으니,生命던져 기도할 때 하나님 곁에 설수 있는 기회를 주셨으니 가난한 광부가 生命 을 갱도에 씨앗처럼 묻어 기도하니 하나님은 광부에게 새生命 주어 世上을 심판하실겄 입니다.
성직자는 예수님 사랑을 말할 뿐,生命 바쳐 예수님 사랑을
따르지는 않기 때문에 수천년간 매년 똑같은 반복일 뿐이지만,예수님을 따르겠다 약속한 아이는 가난한 광부되어 깊은 갱도에 生命을 씨앗처럼 묻어 약속 지켰으니 하나님은 아이에게 새生命 주고 영을 부어 世上을 심판하실겄 입니다.
성직자,스님이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을 진심으로 구하려 한다면,오랜 세월 기도,참선할 필요 없이,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자리에 서면 生命준 사랑,자비가 되는데도 이렇게 쉽고 빠른 길이 있는데 그들은 왜? 수천년을 기도,참선하고 말하려 할까요?그들은 어린아이 한테 심판받아 마땅합니다.
성직자는 사랑을 말(言)하고,스님은 자비를 말합니다만 그들은 결코 生命 던져 사랑,자비를 따르지는 않는 이유는 사랑,자비를 말하면 世上에 자신들의 생각을 전할 수 있지만,生命 던져 사랑,자비를 따르면 아무도 모르며,개죽음 취급 받기 때문이죠.결국 그들의 사랑,자비는 그들의 욕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