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문은 안으로 열리지 않고 밖으로 열리게 되어 있다(키에르케고르). 행복의 문은 밖에서도 열리지만 안에서도 열리게 되어 있다(김현승). 행복의 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열려 있는 다른 문을 보지 못한다(헬렌 켈러).
시인발정(施仁發政) “어짊을 베풀어 정치를 행하여야 바야흐로 땀 흘려 이루어 주신 은택을 밀어 나아가게 되리라(施仁發政, 方推渙汗之恩). 군주민수(君舟民水). "군주는 배(舟)고 백성은 물(水)과 같아서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성난 물의 파도는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
天若不愛酒 酒星不在天...愛酒不愧天...三盃通大道 一斗合自然 俱得醉中趣 勿謂醒者傳하늘이 만일 술을 즐기지 않으면 어찌 하늘에 주성이 있으며...애주를 어찌 부끄러워하리...석잔에 대도에 통하고 한말에 자연에 합하거니 모두 취하여 얻는 즐거움을 깨인 이에게 이르지 마소라.<月下獨酌>
'길이 끝나면 거기/ 새로운 길이 열린다/ 한쪽 문이 닫히면 거기/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겨울이 깊으면 거기/ 새 봄이 걸어나온다/ 내가 무너지면 거기/ 더 큰 내가 일어선다/ 최선의 끝이 참된 시작이다/ 정직한 절망이 희망의 시작이다'(박노해 <길이 끝나면>) 패배 앞에 꼿꼿이 서자. 쫄지 말고.
"한 개인에게 고통이 값진 경험이 되려면 주변 모든 이들이 그것을 뒷받침하며 기다려주어야 한다. 참으며 고통의 시간을 지낸다고 건강한 시간이 저절로 오는 게 아니다."(김선민 '아픈 의사 다시 가운을 입다') 고통도 환희도 모두 사회적 관계 속에 걸치고 있다. 인간 사회란 어쩔 수 없나 보다.
'길을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박노해 <다시> 시도만으로 가치가 있다. 부질없는 노력일지라도 많이 쌓이면 세상을 바꾼다. 꽃으로 피는 사람이 있고 거름이 되어 꽃을 피우는 데 기여하는 존재도 있는 법이다.
훌륭한 일을 이루려면 목표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功崇惟志, 業廣惟勤) 『서경』 ‘지(志)’와 ‘근(勤)’. 뜻을 품고 노력하라. 안일한 생활을 즐기다가는 이름을 드날릴 수 없다(懷與安實敗名) 『좌전』 춘추시대 진문공이 타향살이에 지쳐 안락한 생활에 젖어들자 현지처가 충고한 말.
"처음엔 누구나 잘하지만 끝까지 잘하는 예는 드물다(
靡不有初,鮮克有終)"<시경> 초심을 유지하는 건 어렵다.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는 건데 그러다 죽으면 어쩌나. "상대방의 장점은 높이 평가해 주고, 단점은 눈감아 줘라(貴基所長, 亡基所短)" <삼국지> 손권이 조조 유비와 견줄 수 있었던 저력.
세븐일레븐 창업자 이토 마사토시는 어머니(이토 유키1892~1982년)에게 상인의 도를 배웠다고 한다. 외가인 어머니 집안이 대대로 장사를 해왔다고. 첫째, 고객은 와주지 않는다. 둘째, 거래처는 팔아주지 않는다. 셋째, 은행은 돈을 빌려주지 않는다. 최악을 가정하고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회광반조(回光返照)는 불교 용어로, 원래는 "빛을 돌이켜 스스로에게 비춘다"는 뜻이다. 끊임없이 자기 반성을 통해 내면에 있는 영성을 깨닫는 것. 죽음 직전에 정신이 맑아지거나 촛불이 꺼지기 직전 밝아지는 현상,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원기를 되찾는 상태를 비유하기도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와 고장, 주변 이해 관계를 넘어 멀리 내다보고 공동체 전체를 관통하는 문제의식을 갖추는 게 진보 정치의 핵심이다. 그러나 그런 추상의 세계에선 일상의 영향력을 획득할 수 없다. 사람들은 당장 눈 앞에 닥친 현실부터 해소하길 원하기 때문이다. 딜레마의 질곡이다.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이해하라(배질 하트)" "당신은 전쟁에 무관심할 수 있으나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트로츠키)" 전쟁은 인간의 본성일까. 절제되지 않은 욕망이 집단 광기를 타고 발현되는 지상의 지옥. 피할 수 없다면 대비해야 한다. 그 가정문에 답이 숨어 있다.
정념(passion)이란 이성에 대립하는 개념이다. 정념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은 운명에 휩쓸려 간다. 눈앞의 선을 보면서도 악을 쫓을 수 밖에 없다. 정념을 지배하고 제어할 수 없는 인간은 무력한 노예나 다름 없다. 정념을 끊을 때 비로소 인간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 되는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어디서나 통계적으로 열명 중 한 명 정도는 또라이가 있는 법이고 주변에 아무도 없다면 내가 그 또라이(정보라)> 다행이다. 내 주위엔 또라이가 넘친다. 난 아니다(아닐 것이다. 아니어야 한다). 다만 자기가 똘아이가 아닐까 성찰하는 사람은 돌아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긴 하다.
파시즘은 지성주의와 이데올로기를 혐오한다. 기회주의적이고 폭력과 공포를 활용한다. 근대적 삶을 이루는 제도를 거부하고 카리스마 있는 독재자들 중심으로 민족을 재창조하고 결합하려 한다. 시대 흐름에 배제됐다고 스스로 느끼는 전통적 엘리트들이 많았다. 이념 체계라기 보단 스타일에 가깝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아름답고 술은 거나하게 취했을 때가 좋다(花看半開 酒飮微醉) <채근담> 거나하게 취하여 기분 좋을 때 그만 마시란 것. 모든 일은 적당한 것이 제일 좋은 법이다. 적당히만 하면 그르칠 일이 없다. 적당주의가 왜 어물어물 두루뭉술하게 해치우려는 태도로 취급되는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