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케 칸 시대까지 고려는 몽골의 주요 공략지가 아니었다
초반 이후의 정벌은 대칸이 아닌 칭기즈칸의 이복동생 테무게 옷치긴의 동방 3왕가 가문이 주도했고
옷치긴 가문은 사익을 위해 고려의 항복이나 정벌보다 전리품 약탈과 창출구로 고려를 털었는데
이걸 금지시킨 게 쿠빌라이였음
오고타이가 보려에 보낸 선전포고문 존나 뭇니움
"우리가 너희에게 왔다. 고려 국왕이여.".
너희가 백성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긴다면 이전에 투항한 자들처럼 모두 일시에 투항하라.
우리는 도망친 자들은 남김없이 모두 타격하는데, 너희들은 듣지 못하였는가? 우리가 너희에게 왔다.
자두가르에 나오는 오고타이의 행복론은 사실 실제 오고타이의 가치관에 대한 재해석
기록에서 오고타이는 전란으로 파괴된 피정복 지역의 회복을 가장 중시했고
"아버지께서 고생하며 세우신 나라를 더는 괴롭히지 말자. 그들의 발을 흙에, 그들의 손을 땅에 놓게 하고 즐기게 하자"
라고 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