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중국 SNS에서 “브라질은 왜 강국이 되지 못했나?”라는 질문을 봤는데, 한국과 비교한 답변이 재밌어서 공유합니다
질문:
브라질은 왜 강국이 되지 못했나? 인구 2억 명 이상, 면적은 남미의 절반, 자원도 풍부한데 왜 강국이 되지 못했는가?
답변:
참고로 재미있는 사실 하나: 1980년 브라질의 제조업 부가가치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무려 29.95%로 세계 2위였다. 당시 브라질의 산업 수준은 한국을 완전히 압살했다. 조선업 규모는 일본에 이어 세계 2위였고, 항공 산업도 그런대로 갖춰져 있었으며 군수산업 체계도 완비되어 있었고, 자동차 생산량은 세계 상위권이었다.
당시 브라질은 개발도상국 중에서도 우등생이었다. 자원 조건은 세계를 압도했고, 산업 기반도 나쁘지 않았다. 거의 모든 경제학자들이 브라질의 부상을 예측했다. 그때 한국은 뭘 하고 있었나? 여전히 자신의 산업 체계를 필사적으로 구축하고 있었다. 1980년 한국 제조업의 GDP 비중은 30%에 못 미쳤지만, 브라질과 큰 차이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같은 출발선에서 30년이 지나자, 한쪽은 하늘로 올라갔고 다른 한쪽은 땅으로 내려갔다. 2020년 한국 제조업의 GDP 비중은 24.9%였지만, 브라질은 9.8%로 떨어졌다. 한국 1인당 GDP는 3만 달러를 넘었고, 브라질은 7000달러에도 미치지 못했다.
전환점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브라질이 외채 위기에 빠지면서 경제가 엉망이 된 것이었다. IMF는 처방전을 내놓았다. 신자유주의 개혁이었다. 공기업 민영화, 금융시장 개방, 수입 관세 대폭 인하, 정부의 산업 지원 철수가 그 내용이었다. 이 개혁의 목적은 시장을 개방해서 외국 상품이 들어와 경쟁하게 하고, 이를 통해 국내 기업이 효율을 높이도록 압박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브라질 산업이 글로벌 대기업들의 충격을 맞이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1990년 브라질은 대규모 무역 자유화를 시작했다. 관세가 낮아지자 외국 상품이 홍수처럼 밀려들어왔다. 브라질 국내 공장들은 어떻게 대응했나? 기술도 뒤처지고, 비용도 높고, 규모도 부족했다. 결과는 도산뿐이었다.
자본은 더 ‘편한’ 분야로 옮겨갔다. 광산 개발, 콩 재배, 축산이었다. 어차피 자원이 많으니 누워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는데, 누가 힘들고 고된 제조업을 하겠는가. 이후 30년 동안 브라질은 스스로 자신의 산업 척추를 부러뜨렸다.
한국과 비교해보면 답이 명확하다. 한국은 브라질과 거의 같은 시기에 출발했고, 출발점은 브라질보다 더 낮았다. 한국은 천연자원이 거의 없어서 거지처럼 가난했다. 하지만 한국은 브라질과 완전히 정반대의 선택을 했다. 제조업만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철광석도 없고 석유도 없으면, 전 세계에서 사들였다. 사들여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가공한 뒤 다시 수출했다. 이 길은 어려웠지만, 한국은 30년을 걸어 결국 성공했다.
브라질은? 브라질의 선택은 산업을 하지 않고 자원을 파는 것이었다. 훨씬 편하지 않은가. 어차피 철광석도 있고, 콩도 있고, 쇠고기도 있고, 석유도 있으니 누워만 있어도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가 생긴다. 농업, 광업, 서비스업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지 않나?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잘 살지는 못한다.
첫째, 영원히 가치 사슬의 맨 아래에 머문다. 브라질은 콩, 철광석, 원유를 팔고, 남이 만든 공업 제품을 산다. 원자재를 팔아 번 돈은 영원히 완제품을 사는 돈을 따라잡지 못한다.
둘째, 기술 축적이 영원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공업은 기술 진보의 엔진이다. 제조업이 없으면 연구개발 투자도 없고, 엔지니어 양성도 없으며, 기술 축적도 없다. 브라질의 첨단 기술 제품 무역은 장기적으로 적자이며, 지금도 자본재의 순수입국이다.
셋째, 바람만 조금만 불어도 무너진다. 자원 가격이 오르면 브라질은 조금 나아지고, 떨어지면 바로 망한다. 한 나라의 경제 명맥이 전 세계 원자재 가격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건 뭘까? 카지노의 도박꾼이다. 이기든 지든 전부 딜러 얼굴 보기 나름이다.
브라질은 851만 제곱킬로미터의 국토와 2억 명 이상의 인구,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천연자원을 가지고 있다. 이 조건들을 한국이 가졌다면, 꿈에서도 웃음이 터졌을 것이다.
🤔 Grok한테 데이터 확인해달라고 해봤는데, 제조업 비중 변화, 1인당 GDP 비교, 1980년 조선업 순위, 외채 위기와 자유화 타임라인, 자원 조건 차이 같은 객관적 부분은 대체로 타당하고 데이터도 세계은행 등 주류 출처에서 나온 게 많았습니다.
다만 “세계 2위”라는 순위는 특정 데이터 버전에서만 나오는 수치고, “한국을 압살했다”, “모든 경제학자가 브라질 부상을 예측했다” 같은 표현은 다소 과장입니다. “자유화가 산업을 직접 무너뜨렸다”, “자원 경로로는 잘 살 수 없다” 같은 부분은 감정을 위해 쓴 논쟁적 주장이지 순수 사실은 아닙니다. 참고만 해주세요~~🙇🏻♂️
Kiichiro Higuchi might be the most underrated Japanese general of WW2, and almost nobody outside Japan knows his name.
March 1938. Jewish refugees fleeing Nazi Germany are stuck at Otpor, a Soviet railway station on the border with Manchuria. The Soviets won't let them back. Manchukuo won't let them in. They're camped out in brutal Siberian cold with almost no food.
Higuchi was the Japanese army's intelligence chief in Harbin. He arranged food, medical care, and visas, and worked with the South Manchuria Railway to get trains sent to the border to carry them out.
Japan had signed a pact with Hitler less than two years earlier. Berlin filed a formal protest. Higuchi was called before the Kwantung Army's chief of staff, Hideki Tojo, the future prime minister. As the story goes, Higuchi asked him whether Japan was supposed to be Germany's servant. Tojo let it drop.
Fast forward to 1943. Higuchi commands Japanese forces in the North Pacific when the Americans retake Attu. His garrison there fights almost to the last man. But on nearby Kiska, more than 5,000 Japanese troops are cut off. Under his command, a navy squadron slips in through the fog and evacuates the entire garrison in under an hour without losing a man.
Weeks later about 34,000 American and Canadian troops storm Kiska. The island is empty. They still take casualties from friendly fire, mines, and booby traps.
Then August 1945. Japan announces its surrender on the 15th. Three days later the Soviets invade Shumshu, the northernmost of the Kuril Islands. Higuchi, now commanding the Fifth Area Army, orders his men to fight. The battle costs the Soviets heavily and slows their timetable. Many historians believe that stand helped keep Stalin from grabbing Hokkaido and splitting Japan the way Germany and Korea were split.
After the war Moscow demanded Higuchi as a war criminal. MacArthur refused to hand him over.
He saved Jewish refugees from the Nazis, pulled off one of the cleanest evacuations of the war, and may have helped keep Japan in one piece. He died in 19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