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무글이다.
인간은 어찌 보면 스스로 자신에게 한계를 두고 살아간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문에, 누군가는 동네에, 국가에, 정치 성향에, 종교에. 결국 자신이 속한다고 믿는 세상에 충실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누군가는 정치에, 누군가는 종교에 모든 것을 걸고, 나 역시 대한민국과 한국인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나 또한 내가 비판하고 있는 구조가 던져준 레이블과 제약 속에서, 스스로 노예처럼 살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한국인이라는 게 없었다면, 지금 나는 이미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다.
재밌는건, 흔히 말하는 “역마살”이라는게 뭔지, 어릴 때부터 혼자서 참 여러 곳에서 살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미국에서도, 영국에서도, 이탈리아에서도, 스페인에서도, 심지어 일본에서도 사람들은 내가 그 나라에서 태어난 로컬인 줄 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절반 가까이는 처음에 나한테 영어를 해야하나 망설인다.
호텔과 비행기는 무조건 영어가 기본이다.
유학을 가기 전, 중학교 1학년 도덕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선생님이 외국의 가정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며 외국에서 온 학생들을 앞으로 불러 질문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나를 지목하셨다.
“선생님, 저는 외국은 어학연수 두 달이랑 일본 디즈니랜드 가본 게 전부인데요? ㅋㅋㅋㅋㅋ”
“너 교포 아니야?”
아마 그래서 대한민국에 더 애착이 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는 아이폰이 “memories”라고 띄워주는 사진들을 거의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건데, 요즘 거꾸로 된 태극기 논란이 있어서인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런던 방문 당시 글로벌 CEO 간담회 사진이었는데, 문재앙이 날려버린 기업의 회장과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개인적으로 요청했는데도 참 흔쾌하고 호탕하게 받아주었는데, 다시 보니 태극기가 제대로 달려 있다.
하지만 결국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은 인류 모두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이제는 너무 많이 들은 클리쉐가 되었지만, 결국 이 방향을 향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결국 다시 신을 찾게 되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것 또한 아직 부족한 내 자신의 연약함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을 볼 때, 관상은 과학이란 말에 매우 공감한다.
잘생기고 예쁘고를 떠나, 한 사람이 살아온 인생은 고스란히 표정으로, 그리고 눈빛으로 나온다고 생각한다.
특히 눈빛은 9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람을 뽑을 때도, 딜을 할 때도, 나에게는 항상 눈빛이 가장 중요한 indicator다.
눈빛은 절대 거짓말을 못한다.
그리고 난 지금 장동혁 대표의 눈빛을 지지한다.
화이팅입니다.
그냥 의식의 흐름대로 써 내려가는 글이다.
흔히들 Deep State, Freemasons, Illuminati들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들을 마치 어느 날 갑자기 제안을 받고 선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하다.
적어도 내가 봤다고 한것들은, 훨씬 이전에 어렸을 때부터 사람을 분류하고 스크리닝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생각이다.
학교에서 afternoon activity로 스포츠를 시키는 것도 단순히 운동을 시키는 것이 아니었다.
체력을 만들고, 경쟁을 배우고, 팀이 개인보다 먼저라는 감각, 리더쉽을 아주 자연스럽게 몸에 심는다.
학교에 처음 들어간 후, 프리시즌이 지나고 시작한 시즌 첫 경기에서 축구를 좀 하던 나는 원정 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하지만 팀은 2대 3으로 졌다.
솔직히 말하면 그날 나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local newspaper 기자에게도 "해트트릭을 못해서 아쉽다"라는 뻘짓 인터뷰나 하고 버스에 돌아왔다.
감독은 내 얼굴을 보더니 정말 먼지 나도록 갈궜다. 그날 이후로는 무조건 팀이 먼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자동으로 작동하게 된다.
동양인은 또 다른 시험대에 오른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는 그랬다. 피지컬로 다른 인종을 압도할 수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고, 스포츠는 그것을 가장 빠르게 증명해주는 도구이기도 했다.
미국애들은 공부 안하는다는 이미지가 어디에서 돌고 있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있는 집단은 전혀 달랐다.
원정 경기를 다녀오는 3시간짜리 버스 안에서, 두시간의 비오는 날의 혈투를 끝내고 샤워를 하고 버스를 타면, 정말 너무 노곤해진다.
하지만 그 버스안에서는 모두가 광산 광부들이 쓰는 헤드램프를 머리에 쓰고 숙제를 한다.
원정경기 후 밤 9시가 넘어 학교에 도착하면 그날 숙제는 면제라는 규정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별 중요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차피 내일거까지 다 해야될바엔, 지금 해서 끝내야 다음날 안죽어났을 뿐이었다.
시험은 끈임없이 지속되고, 그 안에서 어느 분야든 눈에 띄는 순간이 오면, 그때부터 주변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눈에 확 띄게는 아니지만, 은근하게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이것도 지나고 나서 돌아보니 보이는 것들이지 겪는 당시에는 그저 나의 노력의 산물이라 굳게 믿으며 더 열심히 구조가 원하는 최적의 인물이 되어간다.
내가 특별한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 점점 일어나기 시작한다.
먼저 학교 역사상 첫 아시안 캡틴이라는 타이틀로 실컷 띄워준다. 역시나 나는 내 리더쉽이 좀 쩌나라는 착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시험은 언제나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 졸업을 하려면 주제를 정해서 논문을 5000자짜리 두개를 쓰고 선생님들의 보드가 인터뷰를 하며 방어에도 성공하면 졸업할 수 있는 자격중 하나를 얻는데, 멘토로 선생님들이 하나씩 배정되는 구조지만, 갑자기 학교에서 나랑 친했지만 라이벌이였던 친구의 아버지가 멘토로 배정이 되었다.
유대인 집안이었고, fortune 500 회사중 하나의 CFO였다. 매주 뉴욕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내 논문을 검토해주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대학시절을 지나 이제 취직을 하려 할때 또한 상황이 묘하게 흘러간다.
일반적인 팀으로 들어간게 아닌 Director급이 fresh grad를 자신의 직접적인 analyst로 뽑은식이였는데, 들어가자마자 다른 PE로 넘어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떤 곳인지 회사애들이 웹사이트를 보고 있는데, 팀 멤버 소개에 위에 언급한 그 친구가 있었고, 보드에는 그 친구의 아버지인 내 고딩 논문 멘토 아저씨가 있었다.
회사에서는 중국 리서치팀의 한 여자애와 친했는데, 보스랑도 친했다.
이 여자애는 그냥 정말 형동생처럼 지내는 사이였고, 내가 다른 회사에 있는 중에, 중국 빌리어네어가 펀드를 만드는데 파운팅 파트너로 오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한동안은 커리어나 퍼스널한 조언은 언제나 보스에게 찾아가 구했었지만, 그날의 결정 이후로는 절대 다시 묻지 않는다.
그 후의 일들은 벌어졌고, 정기적으로 나에게 연락해 체크를 하던 보스는 이제, 구조를 움직이는 중심의 한복판에 들어가있다.
솔직히 살려고 도망간게 마드리드였다. 조용히 어디 회사 하나에 전략팀으로 들어가 월급이나 대충받으며 레알마드리드 시즌권이나 끊어서 조용히 살려고 간거였다.
스페인어를 못하니 회사를 가기전에 세달동안 랭귀지 학원을 보내줬는데, 가장 초보반에 들어간 나는, 당시에는 아니었지만 이제는 누구나 알만한 AI회사의 파운더가 옆자리에 있었다.
나보고 그회사 가지 말란다. 동유럽으로 가란다. 그러고 일들은 펼쳐졌다.
나는 아직도 이 많은 부분들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하겠다.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정교하고, 일부러라기엔 너무 우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특별해서 이뤘다고 믿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적어도 나는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을 지키든지, 아니면 버리든지.
가끔은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는 말 외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나중에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도대체 어떻게 그 안에서 빠져나왔는지 신기할정도로 정교하다.
너무 많은 것들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 있었다.
나는 가끔 점을 보러 가는데, 뭘 굳이 들으려 가는거라기보단, 그냥 굳이 내가 많이 말을 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주는게 좋아서 간다.
난 항상 오해만 받는다. 그래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이해해주는 느낌이 좋았다.
한국에 잠시 머무를때 점을 보러 갔다.
생년월일을 보더니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더라. 그러고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더라.
“그래도 끝까지 살아남았네. 잘했다. 이제 시작이네.”
그걸로 난 다 됐다. 백마디 위로보다 그냥 이게 다 위로가 됐다.
살아남았으니 강한거라고 생각하려 한다.
지금까지는 한 번도 내 자신을 그렇게 믿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진심으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내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기에 신이 나를 살려두셨다고 믿으며 살아가려 한다.
다만 시간이 지날수록 드는 생각은, 어쩌면 선택받은 사람은 극소수의 누군가가 아닌 우리 모두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그것을 사명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자유의지라 부르고, 누군가는 신의 뜻이라 부른다.
이름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중요한 건 스스로를 그만큼 소중한 존재로 믿고,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는 것이다.
결국 구조를 무너뜨리는 것도, 자유를 되찾는 것도, 어느 한 명의 구세주가 아닌 각자의 자리에서 깨어난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그렇게 살아보려 한다.
철인님, 제가 조언을 드릴 입장은 절대 아니지만, 제 경험에서 느낀 한 가지는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철인님만의 방식과 스타일을, 누가 뭐라 하든 끝까지 지키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에는 빛이 옵니다. 그리고 끝까지 절대 내 자신과 타협하지 않을때 옵니다.
제가 본 철인님은 꼭 그렇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언제나처럼 화이팅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