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합니다>
다나카 잇코(Ikko Tanaka, 1930~2002)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상징, 세계의 언어가 되다
일본 디자인이 낯선 분이라도 이 작품만큼은 한 번쯤 스치듯 보셨을 겁니다. 기하학적인 도형만으로 게이샤의 얼굴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형상화한 바로 그 유명한 포스터 말이죠. 오늘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위상을 드높인 거장, 다나카 잇코(Ikko Tanaka) 선생님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일본의 미학, 세계의 언어가 되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일본적인 전통 미학을 가장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디자인 언어로 번역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부키 화장, 게이샤, 노(Noh) 가면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모티프를 가져와,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엄격한 기하학적 그리드(격자)와 강렬한 원색 블록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했습니다. 동양의 여백과 서양의 모더니즘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완벽하게 만난 것이죠.
🟦무인양품(MUJI)의 철학에도 영향을 남기다
저도 참 좋아하고 한국에도 매장이 많은 '무인양품(MUJI)'이 바로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80년, 그는 세이부 백화점의 쓰쓰미 세이지와 함께 화려한 브랜드 로고와 불필요한 포장을 걷어낸 '상표 없는 좋은 물건(무인양품)'이라는 콘셉트를 기획하고 초대 아트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무인양품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초기 상품 중 하나가 바로 '부서진 표고버섯'이었습니다. 당시 표고버섯은 크기와 모양이 예쁜 것만 골라 비싸게 팔고, 조금 부서지거나 못생긴 것은 맛과 영양이 똑같은데도 버려지거나 헐값에 넘겨졌습니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과 창립 멤버들은 "모양이 조금 부서졌어도 버섯은 버섯이다. 겉치레를 빼고 본질만 팔자"라며 이 부서진 버섯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했고, 표백하지 않은 누런 종이를 그대로 포장지로 사용했습니다. 화려함에 지쳐있던 당시 소비자들은 이 쿨하고 직관적인 철학에 열광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인 교과서에 박제된 전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컴퓨터로 만든 것 같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상당수는 컴퓨터 그래픽이 보편화되기 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정교한 형태와 색의 균형,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 덕분에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만든 디자인처럼 느껴질 정도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현재도 세계 여러 디자인 교과서와 전시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다는 사실을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보여준 셈입니다.🙂
@mujeok_designer
#디자인 #다나카잇코 #IkkoTanaka #일본 #디자이너 #にほんぶよう #田中一光
도와주십시오.
대한민국에서 2026년 6월 3일 선거가 이뤄 졌습니다.
몇몇 투표소에는 투표용지가 부족하여 유권자들은 투표를 진행하지 못한 체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고, 개표와 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민 참정권이 침해 당하였고, 이 일로 인하여, 국민들은 분노하였습니다.
지금 수도 서울 민주적인 재투표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와중에 대한민국 그 어떤 언론사들도 이 상황을 보도하지 않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독재 정권에서 벗어난지 40여년이 지나는 와중에 말도 안되는 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의 목소리를 들어 주십쇼.
Please help us.
An election was held in the Republic of Korea on June 3, 2026.
At several polling stations, ballots ran out, and voters were forced to wait endlessly without being able to cast their votes. An unprecedented situation occurred in which vote counting and voting took place at the same time. Something that should never happen in a democratic country has happened.
The people’s right to participate in elections has been violated, and this has caused great anger among the public.
Now, in the capital city of Seoul, voices calling for a democratic re-vote are growing louder. However, not a single media outlet in the Republic of Korea is reporting on this situation, choosing instead to stand by in silence.
More than 40 years have passed since we broke free from dictatorship, yet this unthinkable tragedy has occurred.
Please listen to the voices of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소개합니다>
다나카 잇코(Ikko Tanaka, 1930~2002)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상징, 세계의 언어가 되다
일본 디자인이 낯선 분이라도 이 작품만큼은 한 번쯤 스치듯 보셨을 겁니다. 기하학적인 도형만으로 게이샤의 얼굴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형상화한 바로 그 유명한 포스터 말이죠. 오늘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위상을 드높인 거장, 다나카 잇코(Ikko Tanaka) 선생님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일본의 미학, 세계의 언어가 되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일본적인 전통 미학을 가장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디자인 언어로 번역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부키 화장, 게이샤, 노(Noh) 가면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모티프를 가져와,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엄격한 기하학적 그리드(격자)와 강렬한 원색 블록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했습니다. 동양의 여백과 서양의 모더니즘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완벽하게 만난 것이죠.
🟦무인양품(MUJI)의 철학에도 영향을 남기다
저도 참 좋아하고 한국에도 매장이 많은 '무인양품(MUJI)'이 바로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80년, 그는 세이부 백화점의 쓰쓰미 세이지와 함께 화려한 브랜드 로고와 불필요한 포장을 걷어낸 '상표 없는 좋은 물건(무인양품)'이라는 콘셉트를 기획하고 초대 아트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무인양품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초기 상품 중 하나가 바로 '부서진 표고버섯'이었습니다. 당시 표고버섯은 크기와 모양이 예쁜 것만 골라 비싸게 팔고, 조금 부서지거나 못생긴 것은 맛과 영양이 똑같은데도 버려지거나 헐값에 넘겨졌습니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과 창립 멤버들은 "모양이 조금 부서졌어도 버섯은 버섯이다. 겉치레를 빼고 본질만 팔자"라며 이 부서진 버섯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했고, 표백하지 않은 누런 종이를 그대로 포장지로 사용했습니다. 화려함에 지쳐있던 당시 소비자들은 이 쿨하고 직관적인 철학에 열광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인 교과서에 박제된 전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컴퓨터로 만든 것 같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상당수는 컴퓨터 그래픽이 보편화되기 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정교한 형태와 색의 균형,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 덕분에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만든 디자인처럼 느껴질 정도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현재도 세계 여러 디자인 교과서와 전시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다는 사실을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보여준 셈입니다.🙂
@mujeok_designer
#디자인 #다나카잇코 #IkkoTanaka #일본 #디자이너 #にほんぶよう #田中一光
<소개합니다>
다나카 잇코(Ikko Tanaka, 1930~2002)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상징, 세계의 언어가 되다
일본 디자인이 낯선 분이라도 이 작품만큼은 한 번쯤 스치듯 보셨을 겁니다. 기하학적인 도형만으로 게이샤의 얼굴을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게 형상화한 바로 그 유명한 포스터 말이죠. 오늘은 일본을 넘어 전 세계에 일본 그래픽 디자인의 위상을 드높인 거장, 다나카 잇코(Ikko Tanaka) 선생님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일본의 미학, 세계의 언어가 되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지극히 일본적인 전통 미학을 가장 현대적이고 서구적인 디자인 언어로 번역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는 가부키 화장, 게이샤, 노(Noh) 가면 같은 일본의 전통적인 모티프를 가져와, 바우하우스의 영향을 받은 엄격한 기하학적 그리드(격자)와 강렬한 원색 블록으로 해체하고 재조립했습니다. 동양의 여백과 서양의 모더니즘이 한 장의 종이 위에서 완벽하게 만난 것이죠.
🟦무인양품(MUJI)의 철학에도 영향을 남기다
저도 참 좋아하고 한국에도 매장이 많은 '무인양품(MUJI)'이 바로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1980년, 그는 세이부 백화점의 쓰쓰미 세이지와 함께 화려한 브랜드 로고와 불필요한 포장을 걷어낸 '상표 없는 좋은 물건(무인양품)'이라는 콘셉트를 기획하고 초대 아트 디렉터를 맡았습니다.
여기서 아주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무인양품의 철학을 가장 잘 보여주는 초기 상품 중 하나가 바로 '부서진 표고버섯'이었습니다. 당시 표고버섯은 크기와 모양이 예쁜 것만 골라 비싸게 팔고, 조금 부서지거나 못생긴 것은 맛과 영양이 똑같은데도 버려지거나 헐값에 넘겨졌습니다.
다나카 잇코 선생님과 창립 멤버들은 "모양이 조금 부서졌어도 버섯은 버섯이다. 겉치레를 빼고 본질만 팔자"라며 이 부서진 버섯들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했고, 표백하지 않은 누런 종이를 그대로 포장지로 사용했습니다. 화려함에 지쳐있던 당시 소비자들은 이 쿨하고 직관적인 철학에 열광했습니다.
🟦전 세계 디자인 교과서에 박제된 전설
재미있는 일화가 하나 더 있습니다.
디자인을 처음 공부하는 학생들 중에는 다나카 잇코 선생님의 작품을 보고 "컴퓨터로 만든 것 같네?"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대표작 상당수는 컴퓨터 그래픽이 보편화되기 전 시대에 만들어진 작품들입니다. 정교한 형태와 색의 균형,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메시지 덕분에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근에 만든 디자인처럼 느껴질 정도죠.
그래서 그의 작품은 현재도 세계 여러 디자인 교과서와 전시에서 꾸준히 소개되고 있습니다. 좋은 디자인은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견뎌낸다는 사실을 다나카 잇코 선생님이 보여준 셈입니다.🙂
@mujeok_designer
#디자인 #다나카잇코 #IkkoTanaka #일본 #디자이너 #にほんぶよう #田中一光
<Adobe Photoshop 기초 02>
저의 X친구 닉네임으로 초상화 만들기
텍스트로 가득 채워진 얼굴 이미지를 한 번쯤 보신 적 있으실 것 같습니다. 얼굴의 굴곡과 형태를 따라 글자가 자연스럽게 배치되는 텍스트 초상화 기법인데요. 영문 텍스트가 시각적으로 더 잘 어울리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에는 한글 텍스트로 작업해 보았습니다. 특히 제 엑스(X) 친구분들의 닉네임을 빼곡하게 담아 만들었으니, 혹시 익숙한 이름이 있는지 찾아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앞선 영상에서도 말씀드렸듯이, 이번 자료 역시 제작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기 위한 내용입니다. 실제 실무에서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디테일을 다듬는 여러 단계가 추가되지만, 이번 포스팅에서는 전체적인 표현 방식과 작업 순서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추후 이 기법을 직접 활용하실 때는 작업 목적과 연출 방향에 맞춰 수치값, 효과 강도, 텍스처 이미지 등을 자유롭게 조절해 보시길 권장드립니다. 같은 방법이라도 설정에 따라 전혀 다른 분위기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으니, 다양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로 응용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mujeok_designer
#디자인 #포토샵 #Adobe #Photoshop #기초영상
잘못된 것을 잘못됐다고 말하지 못하면
이 사회는 조금씩 병들어간다.
누구를 지지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할 수 있는 용기다.
내 편의 잘못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정함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를 지켜야 하며
당연하게 여겨지는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자유는 한 번 잃으면 되찾기 어렵고
침묵은 결국 더 큰 침묵을 부른다.
서로의 생각은 다를 수 있지만
말할 자유와
비판할 자유,
그리고 선택할 자유만큼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위왕 조조의 모습을 벗어 던지고 글을 씁니다.
아내가 투표 전날,
보수가 앞으로 미래가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여론조사가 너무 엉망진창이었으니까요.
제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걱정 마, 지선 끝나면 코스피, 환율 다 엉망진창 될거야."
다들 이 광풍에서 조금만 생각해봅시다.
외인이 20일 매도를 때렸습니다.
코스피 지수는 계속 올라갔습니다.
환율이 계속 올라갔습니다.
조금만 경제를 공부하신 분이라면,
충분히 이상함을 느끼실겁니다.
지수를 기관과 국내 개미들이 끌어올린겁니다.
환율은 굉장히 정직한 지수입니다.
수요/공급이 무섭도록 적용되는 지수입니다.
KRW가 시장에 너무 많이 풀려 있다는 겁니다.
얼마전 KRW가 터키 리라화만도 못해졌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이게 대한민국 경제 현실입니다.
정치적으로 비난할 생각도 있지만,
그것보다 무서운건 경제 현실입니다.
이건 우리가 밥먹고 사는 문제니까요.
위왕의 시름이 깊어집니다.
잊을만하면 가십꺼리로 나오는
가수 태진아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관계??
팩트체크 요약
사건 핵심은 사실이지만, '나비효과'·사임·딸 자살 등은 과장된 도시전설/루머입니다.
불륜·현행범 체포 사건 자체사실
1975년 1월, 당시 21세 가수 태진아(본명 조방헌)가 현대건설 사장 조성근의 아내 김보환(47세)과 불륜 관계를 맺다가 응암동 여관에서 조성근과 형사들에게 현행범으로 적발되어 간통죄로 구속됨.
1974년부터 약 8~10개월 동안 10여 차례 만났으며, 태진아가 매번 수십~수백만 원(당시 쌀 한 가마 ≈ 5,000원 기준으로 상당한 액수)의 용돈을 받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짐. 조성근이 고소했다가 부부 합의이혼 후 고소를 취하해 태진아는 석방.
이 부분은 1975년 당시 신문 기사(경향신문 등)로 확인되는 확실한 사실. 하지만 조성근 사임 → 이명박 사장 승진 '나비효과'는 과장된 루머. 조성근이 사건 직후 사임하고, 그 빈자리로 이명박 부사장이 바로 사장이 됐다는 이야기는 대부분 사실이 아님.조성근은 사건(1975년) 후에도 현대건설 사장으로 2년 정도 더 재임(1972~1977/1978년경).
이명박 전 대통령은 1977년(또는 1978년) 사장으로 승진. 부사장이 사장으로 올라가는 것은 당시 현대건설 내부 인사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음. 조성근씨는 이후 국제그룹 계열 대하건설 사장으로 이직(낙하산 인사 출신으로, 정주영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배경).
나무위키 등에서 지적하듯, 이는 인터넷에서 퍼진 유언비어로, 직접적 인과관계는 거의 없습니다. 김보환 장녀 파혼·자살루머 역시 "결혼 앞둔 딸이 파혼당하고 자살했다"는 이야기는 사실 무근입니다. 1975년 당시 기사에서 조성근-김보환 부부는 이미 2남 2녀를 뒀다고 나오고, 조성근 사망(2014년) 부고 기사에서도 4자녀 모두 생존 언급된 기록이 있습니다. 자살한 딸에 대한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결론적으로
불륜 사건 자체는 사실이지만, 사장 즉시 사임·이명박 즉시 승진·딸 자살 등 드라마틱한 후속 효과는 과장된 도시전설입니다. 재미있는 '나비효과' 스토리로 퍼진 콘텐츠지만, 역사적 팩트로는 상당 부분 루머입니다.
<출처 https://t.co/mWzc8QFsM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