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로마황제 카를 5세에게는 공인된 사생아 딸이 있었다. 어머니는 직조공 집안 출신으로 신분이 낮았지만, 황제는 1529년 마르가레타를 공식 딸로 인정했다.
그녀는 1559년 스페인령 네덜란드 총독으로 부임했다.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속주였지만 실권은 없었다. 세금도 무역도 종교 정책도 마드리드에서 결정됐다. 그래도 그녀는 스페인이 밀어붙이는 신교 탄압을 최대한 완충하며 속주를 관리했고, 불안한 평화는 어떻게든 이어졌다.
그러나 마드리드는 그 방식을 못마땅해했다. 1566년 귀족들의 청원을 마르가레타가 유화적으로 받아들이자, 펠리페 2세는 이듬해 알바 공작을 군대와 함께 보냈다. 알바는 도착하자마자 '피의 평의회'를 세워 신교도와 저항 세력을 대거 처형했다. 권한을 완전히 빼앗긴 마르가레타는 총독직을 사임했다.
강경 진압은 반란에 불을 붙였다. 80년 전쟁 끝에 북부 7개 주는 독립을 쟁취했다. 오늘날의 네덜란드다. 마르가레타에게 실권을 줬더라면, 반란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그렇게 네덜란드는 계속해서 스페인의 속주로 남았을까?
오스만 해군 역사상 최악의 패배였던 레판토에서, 단 한 사람만이 자기 함대를 온전히 끌고 돌아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의 가톨릭 어부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이었다.
본명 조반니 디오니지 갈레니. 열일곱 살에 바르바리 해적에게 붙잡혀 갤리선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가 됐다. 그러나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인생이 바뀌었다. 노예에서 선장이 되었고, 트리폴리의 베이를 거쳐 1568년 알제의 베이레르베이, 곧 북아프리카 서부 최고 권력자에 올랐다. 유럽인은 그를 오키알리라 불렀다.
1571년 레판토에서 오스만 함대의 중앙과 우익이 무너질 때, 좌익을 맡은 그는 적 우익을 외해로 끌어낸 뒤 벌어진 틈으로 파고들어 기함 한 척을 나포했다. 전열이 무너지자 그는 전리품을 미련 없이 버리고 자기 전대를 빼냈다. 패전의 바다에서 유일하게 작전다운 작전을 편 노예 출신 배교자의 이름은, 그날 이후 "검"을 뜻하는 킬리치 알리로 바뀌었다.
마에다 도시이에는 쓰가루 다메노부를 두고 "표리지인", 겉과 속이 다른 믿을 수 없는 자라고 평했다. 하지만 쓰가루에게 이 말은 비난이라기보다 칭찬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메노부는 본래 난부씨의 지족, 쓰가루의 작은 영주에 불과했다. 1571년 그는 공사인부로 위장한 부대를 잠입시켜 난부씨의 성을 기습적으로 빼앗는다. 선전포고도 명분도 없는 기습이었다. 이 배신을 시작으로 그는 17년에 걸쳐 기책과 정략으로 쓰가루 전역을 손에 넣었다.
중앙 권력으로부터의 공인도 영리하게 얻어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매와 명마를 바치고 오다와라 정벌에 자진 참전해 영지를 인정받았고, 세키가하라에서는 아들들을 동군과 서군에 각각 갈라 붙여 어느 쪽이 이겨도 가문이 살아남게 했다. 주군을 배신하며 시작한 가문은 그렇게 끝까지 살아남았다.
전쟁에서 부상을 당해 치료를 위해 옮겨지던 남편이 썰매 위에서 죽었다. 그 순간부터 스톡홀름을 지키는 일은 미망인의 몫이 됐다.
1520년 1월, 스웨덴 섭정 스텐 스투레 2세가 전투에서 대포에 두 다리를 잃고 2월 3일 숨졌다. 침공해온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2세의 군대가 수도를 포위했고, 스웨덴의 저항 세력은 구심점을 잃었다. 그 자리에 선 사람이 스텐의 아내, 미망인 크리스티나 닐스도테르였다.
방어전은 봄부터 가을까지 이어졌다. 기록은 그녀를 수동적인 여성이 아니라 귀족 네트워크를 묶어 낸 정치 리더로 적고 있다. 스톡홀름 모두의 마음을 모아 필사의 저항을 이끌던 크리스티나였지만 병력의 열세는 감당해낼 수 없었고. 1520년 9월, 그녀는 사면을 약속받고 덴마크에 항복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11월 8~9일, 크리스티안 2세는 귀족·성직자·시민 80여 명을 광장에서 처형한다. 스톡홀름 피의 학살이라 불리는 사건이 이것이다. 그런데 스웨덴 사람들의 반발을 공포로 다스리기 위해 자행된 이 학살은 자충수였다. 참혹한 핫갈에 대한 소식이 퍼지자 분열돼 있던 스웨덴 사람들이 반덴마크의 기이 아래 하나로 뭉쳤고, 크리스티나가 시간을 버는 동안 도망가 있던 귀족 구스타브 바사가 한자동맹의 군함과 자금을 약속받았다.
한자동맹의 지원을 받은 스웨덴은 결국 덴마크를 몰아내게 되고. 1523년 바사가 왕이 되며 스웨덴을 덴마크 왕이 다스리던 체제 칼마르 연합은 끝났다. 하지만 바사의 새 왕조는 크리스티나를 역사에서 지우는 작업을 한다. 새 왕조에 지나간 옛 왕조의 영웅은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