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참으로 심각하다. 다름아닌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박민규 의원이 제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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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의 골자는 이렇다. 현재 근로기준법 43조에는 별도의 법이나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 규정을 합의하지 않는한 노동자에게는 통화 이외의 것으로 임금을 지급할 수 없다. 화폐나 계좌 이체 등 실제 통용되는 돈이 아니라, 현물 혹은 상품권 등을 임금이랍시고 주는 걸 막기 위한 법이다. 임금의 공제 역시도 관련 법이나 노사 단체협약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이 개정안은 '근로계약서 등 근로자의 명시적 동의가 있는 경우'에도 임금을 돈이 아닌 것으로도 줄 수 있고, 임금의 공제도 가능할 수 있게 만든다. 법안에서 명시적으로 '통화 이외에 임금으로 줄 수 있는 대상'에 지역사랑상품권을 넣은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사랑상품권을 임금으로도 지급할 수 있게 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명분으로 이런 법안을 기획해 제출한 것이다.
지역사랑상품권의 효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릴 것이고, 어차피 현행 법도 노사 단체협약에서 만약 '현물로도 임금을 지급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합의를 하면 난데 없이 임금을 쌀이나 농산물로 지급을 받는 사태가 벌어지는 한계는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요건을 더 낮춰 '근로계약서 등으로 근로자가 명시적 동의'를 하는 경우에도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노동자가 사측이 제시한 근로계약서에 이런 조항을 발견할 때, 바로 해당 조항에 문제를 제기해서 삭제를 하면 어떻게든 되긴 할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노총 노동권 지수가 최하위급인 5등급일 정도로 노동조합의 힘도, 노동자의 권리 보장도 약하다. 만약 사측이 제시하는 근로계약서에 '현금을 상품권으로도 지급할 수 있다'는 조항이 대놓고 있어도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거부할 수 있을까. 더욱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법에서도 온갖 노동권을 통제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게다가 한국은 이미 방송 미디어 산업의 프리랜서 노동자에게 프로그램 제작 협찬사가 가져온 상품권을 임금이라고 던지는 고질적인 관행이 있던 나라이다. https://t.co/JmkxGv428t 이 관행은 프로그램 제작 업무를 수행함에도 근로계약을 맺이 않아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계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초래한 것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이 법안을 제출한 국회의원들은 사장이나 사측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거나, 노조의 힘이 전통적으로 강한 사업장이 아닌 한 근로계약서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한국의 대다수 노동자들 모두가 이러한 문제를 경험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법안은 이유를 불문하고 '임금을 공제'하는 경우에도 근로계약서에 관련 조항을 적시하면 될 수 있도록 처리를 하고 있다. 지역사랑상품권을 널리 쓰는 상황을 만들고 싶다면 그 부분만 건드렸어야지, 임금 일부를 공제하는 상황까지 요건을 쉽게 하자는 것은 대체 무슨 생각인가?
그나마 이전에는 구체적인 조항이 없던 '통화 이외의 것'을 시행령을 통해 '합법적으로 통화 이외로 임금으로 지급이 가능한 것'을 화이트리스트 식으로 적시하겠다는 것인데, 지역사랑상품권이든 백화점 상품권/문화상품권 등 기타 상품권류이든 결국 실제 돈에 비하면 사용처는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방송 미디어 노동의 뿌리 깊은 문제적 관행이었던 '상품권 페이'도 원치 않게 상품권을 받은 노동자들이 상품권 매입 업체에 수수료를 뗴이면서 현금으로 바꿔야만 했다.
이 법이 그대로 통과되면 상당히 큰 파장을 줄 것이 불보듯 뻔하다. 조금이라도 비용을 아끼겠다는 명목으로 상품권을 업체에서 싸게 매입해서, 이를 임금이랍시고 주는 일이 상당히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지 않을까. 청년이나 사회 초년생이 가기 쉬운 업체들, 어떻게든 노동권 보장을 피하기 위해 여념이 없는 곳들이 이 조항을 악용할 가능성이 높다. 온갖 벌칙 조항으로 임금 삭감(=공제)이 가능하도록 만들 가능성도 있다. 가뜩이나 노동권 보장이 취약해서 수십년 넘도록 지적받는 나라가 한국인데, 이 법이 그대로 스리슬쩍 통과되면 어떤 지옥도가 펼쳐질지 정말 상상이 안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