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뮤직비디오는 왕가위를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영상 문법을 글로벌 콘텐츠 산업에 맞게 재맥락화한다. 이 과정에서 왕가위의 미학은 영화라는 매체를 넘어 하나의 시각 언어로 확장되며, 이것은 새로운 케이팝 문화 산업의 문법 속에서 다시 생산하고 유통된다.”
[VIDEO] 「홍콩 왕가위의 “얼빡”은 어떻게 케이팝 뮤직비디오에 전이되는가」는 홍콩 영화 마니아인 중국인 필진이 케이팝 속 왕가위의 흔적을 찾는 여정입니다. 그의 영화 속 ‘얼빡’과 홍콩 풍경이 케이팝 산업의 미학에 맞닿아 있는 지점을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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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둘러싼 논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도 시네마테크의 역할을 90년째 다하고 있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를 보며, 서울시는 서울시네마테크 원안을 폐기한 것이 미래에 한국영화, 나아가 한국의 문화에 어떤 영향을 초래할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COLUMN] 비평웹진 횡단의 「시간을 거슬러 갈 순 없나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서 ‘서울영화센터’까지」는 프랑스 68혁명에서 서울영화센터까지를 횡단합니다. 서울시네마테크가 역할을 상실한 지금, 이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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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퍼시픽션> 시리즈의 마지막 글인 「타히티, 헤게모니 공백의 공간성」은 권력의 주변부를 맴도는 인물들 주위에서 그들을 관찰합니다. 필자는 라캉의 ‘증상’과 ‘실재’를 소환하여 타히티 섬의 보이지 않는 통치의 균열을 메우며 작품의 풍부한 감상을 가능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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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비평웹진 횡단에서 <퍼시픽션> 비평 시리즈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총 3명의 비평을 읽기 전 먼저 편집장이 작성한 「왜 우리는 <퍼시픽션>에 대해 쓰는가」를 통해 횡단이 이 영화를 다루기로 한 이유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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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M] 두 번째 <퍼시픽션> 비평 「바이러스 세계 혹은 징후로서의 신체」는 알베르 세라 감독의 말을 빌리며 바이러스의 특성을 살핍니다. 이어서 그와 유사한, 인물들 사이에 있는 유리막과 잠수함을 덮은 바다 표층이 작품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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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권력이 실제로 작동하는 장면은 영화 어디에도 좀처럼 현시되지 않는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클럽과 호텔, 카지노 개발을 둘러싼 관광 산업의 풍경이다. (...) 같은 공간에 머물면서도 정치적 중심으로 수렴하지 못하는 인물들 사이에서 세라는 그 공백을 서둘러 메우지 않는다."
[FILM] <퍼시픽션> 시리즈의 마지막 글인 「타히티, 헤게모니 공백의 공간성」은 권력의 주변부를 맴도는 인물들 주위에서 그들을 관찰합니다. 필자는 라캉의 ‘증상’과 ‘실재’를 소환하여 타히티 섬의 보이지 않는 통치의 균열을 메우며 작품의 풍부한 감상을 가능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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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그 배후에 어떤 이해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대신 우리는 서서히 무언가가 증식하고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 신체적 징후로 감지할 수 있다. 시각은 바이러스 앞에서 무력하다. (…) <퍼시픽션>은 바로 이러한 ‘비가시성’을 재현하는 영화다.”
[FILM] 두 번째 <퍼시픽션> 비평 「바이러스 세계 혹은 징후로서의 신체」는 알베르 세라 감독의 말을 빌리며 바이러스의 특성을 살핍니다. 이어서 그와 유사한, 인물들 사이에 있는 유리막과 잠수함을 덮은 바다 표층이 작품에서 어떠한 기능을 하는지 세심하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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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서는 잠시 대괄호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싶다. 지금 너무 높이 올라온 것 같다. 부감숏을 잠시 중단하고 싶다. 체스 기물을 이리저리 움직여 디펜스 진영을 구획하고 전술을 고민하는 일 대신 움직이는 이미지들과 그것들의 결합, 충돌, 잡아먹기와 잡아먹히기 안으로 들어가고자 한다."
[OPINION] 비평웹진 횡단에 퀴어 영화 비평 시리즈의 0편인 「헤집고 들어가기, 비집고 나가기: 수식어로서의 퀴어 영화 비평」이 업로드되었습니다.
이번 0편은 <뒷자리에 태워줘>에서 출발해 비평은 퀴어 영화에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심도 있게 고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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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페미니스트로서 마초적 남성 캐릭터를 보고 이입하게 되는 순간, 그 감정을 부인하며 해당 영화를 나쁜 것으로 성급하게 단정하고 비판하며 밀어내는 것이 편집증적 독해라면, 반대로 그러한 모순을 끝까지 붙들고 좋음과 나쁨을 동시에 수용하는 읽기가 회복적 독해라 볼 수 있겠다.”
[OPINION] 비평웹진 횡단에서 「#literally_me: 빻은 영화에 이입하는 페미니스트」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성이 주연이라면 엉성한 영화라도 호평을 남기는 게 페미니스트의 도리일까요? 이 글은 해로운 남성성에 이입하는 여성이자 페미니스트로서의 수치심을 언어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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