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Living at the Human Layer)
인간이라는 층위에는 자기 자신의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삶을 만끽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관계와 가능성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느냐의 차이다.
현재 우주적 조건에서,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고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얻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관계와 경험, 가능성을 열어가는가...그 가능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라는 가능성과 제약 사이에서 온갖 가능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깊이 있는 공부를 위한 독서의 힘 (The Power of Reading for Deep Learning)
깊이 있는 공부에 몰입해야 하는 시기라면, 무엇보다 책을 읽는 일 자체에 집중해 보라.
중요한 책은 한 번 읽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반복해서 읽어야 한다. 정말 중요한 책이라면 수십 번, 때로는 수백 번을 읽어도 좋다. 수백 페이지에 담긴 사유가 하루 종일 머릿속에서 살아 움직이고, 필요할 때 책을 펼치지 않고도 그 내용을 자신의 언어로 풀어낼 수 있을 정도로 읽는 것이다. 지식이 단순히 기억 속에 저장되는 것을 넘어 자신의 사유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공부에는 종이책을 읽는 환경이 큰 도움이 된다. 종이책은 화면의 알림이나 다른 정보에 주의를 빼앗길 가능성을 줄이고, 하나의 텍스트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나 역시 수년간 하루 종일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지만, 모니터로 글을 읽을 때는 30분 만에 현기증을 경험한 적이 있다. 개인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떤 매체에서 얼마나 오래 집중할 수 있는지는 공부의 밀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물론 전자 매체는 자료 검색과 정보 교환에 매우 효율적이다. 다만 깊이 있는 이해와 장기적인 기억, 자신의 사유 체계를 형성하는 공부에서는 종이책을 중심으로 독서 환경을 구성해 볼 가치가 있다. 인류의 지적 성취가 집약된 책들을 천천히, 반복해서, 밀도 높게 읽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는 독서보다 스스로 사유하는 시간이 더 중요해진다. 읽은 지식을 자신의 문제의식 속에서 재구성하고, 기존의 개념을 검토하며, 새로운 관계와 가능성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오기 전까지는 좋은 책을 충분히 깊이 읽는 데 시간을 아끼지 말자.
느낌과 경험은 공간적 움직임과 분리되어 있는가? (Are Qualia Separable from Spatial Movement?)
느낌과 경험(퀄리아)은 공간적 움직임과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퀄리아는 내외기준계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내외기준계는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 속에서 성립하는 존재론적 좌표계이며, 퀄리아는 바로 그 기준계 자체의 움직임에서 이해될 수 있다.
퀄리아는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으로 구성되는 내외 기준계 자체의 움직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함께 구성하지만 각자만의 내외기준계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이다.
느낌과 경험은 공간적 움직임과 분리되어 있는가? (Are Qualia Separable from Spatial Movement?)
느낌과 경험(퀄리아)은 공간적 움직임과 분리된 현상이 아니다. 퀄리아는 내외기준계 그 자체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다.
내외기준계는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 속에서 성립하는 존재론적 좌표계이며, 퀄리아는 바로 그 기준계 자체의 움직임에서 이해될 수 있다.
퀄리아는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으로 구성되는 내외 기준계 자체의 움직임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의 모든 경험은 함께 구성하지만 각자만의 내외기준계에서 이루어지는 움직임이다.
클릭과 좋아요는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가 (How Clicks and Likes Shape the World)
클릭수와 좋아요가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우리 모두에 의해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클릭과 좋아요는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관심과 선택이 현실에 남긴 흔적이며, 사람들의 생각과 선호가 행동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클릭과 좋아요는 사람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지지하며, 무엇을 공유하는지를 나타낸다.
우리의 클릭이 사회와 미래를 구성한다.
클릭과 좋아요는 어떻게 세상을 만드는가 (How Clicks and Likes Shape the World)
클릭수와 좋아요가 중요한 이유는 세상이 우리 모두에 의해 함께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클릭과 좋아요는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누군가의 관심과 선택이 현실에 남긴 흔적이며, 사람들의 생각과 선호가 행동으로 표현되는 방식이다.
클릭과 좋아요는 사람들이 무엇에 주목하고, 무엇을 지지하며, 무엇을 공유하는지를 나타낸다.
우리의 클릭이 사회와 미래를 구성한다.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Living at the Human Layer)
인간이라는 층위에는 자기 자신의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삶을 만끽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관계와 가능성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느냐의 차이다.
현재 우주적 조건에서,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고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얻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관계와 경험, 가능성을 열어가는가...그 가능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라는 가능성과 제약 사이에서 온갖 가능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천재의 두 가지 유형 (Two Types of Genius)
천재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기존의 지식과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 끝에 그것들이 뻔하고 지루해져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유형이다. 기존 지식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계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둘째, 애초에 자신의 사유 방식과 창조적 스타일이 기존의 것들과 달라 천재가 되는 유형이다. 기존의 틀을 극복하려는 의도조차 없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층위를 열어젖힌다.
두 유형은 모두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출발점은 다르다. 하나는 기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하고, 다른 하나는 기존 지식에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에서 시작한다.
천재는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애초에 기존의 지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천재란 무엇인가? 새로운 사고의 층위를 여는 것이다(Genius as the Creation of New Levels of Thought)
천재란 세계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틀을 구축하고, 그 메타지식적 형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고의 형식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더 폭 넓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지적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초월적 천재: 두 유형의 천재를 넘어 (The Transcendent Genius: Beyond Two Types of Genius)
천재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기존의 지식과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 끝에 그것들이 뻔하고 지루해져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유형이다. 기존 지식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계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둘째, 애초에 자신의 사유 방식과 창조적 스타일이 기존의 것들과 다른 유형이다. 기존의 틀을 극복하려는 의도조차 없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사유의 층위를 열어젖힌다.
초월적 천재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존재다. 기존의 지식과 사유 체계를 철저히 이해하고 넘어설 수 있을 뿐 아니라, 애초에 기존의 틀로 환원되지 않는 독자적인 사유 형식까지 구축한다.
기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능력과, 기존 지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사유하는 능력을 모두 갖춘 것이다. 전자는 이미 주어진 사유의 경계를 넘어서고, 후자는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유의 가능성을 애시당초 극대화하고 있다.
천재의 두 가지 유형 (Two Types of Genius)
천재에게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기존의 지식과 개념을 충분히 이해한 끝에 그것들이 뻔하고 지루해져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유형이다. 기존 지식의 한계를 발견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체계와 가능성을 제시한다.
둘째, 애초에 자신의 사유 방식과 창조적 스타일이 기존의 것들과 달라 천재가 되는 유형이다. 기존의 틀을 극복하려는 의도조차 없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새로운 층위를 열어젖힌다.
두 유형은 모두 새로운 것을 창조하지만, 출발점은 다르다. 하나는 기존 지식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 시작하고, 다른 하나는 기존 지식에 환원되지 않는 고유성에서 시작한다.
천재는 기존의 지식을 넘어서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애초에 기존의 지식과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천재란 무엇인가? 새로운 사고의 층위를 여는 것이다(Genius as the Creation of New Levels of Thought)
천재란 세계를 이해하는 자신만의 틀을 구축하고, 그 메타지식적 형식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여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다.
기존과 다른 새로운 사고의 형식을 제시하고, 그것을 통해 더 폭 넓은 사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며, 지적 진화를 가능하게 한다.
존재 그 자체들에 내재된 새로움의 원리 (The Principle of Novelty Inherent in Beings-in-themselves)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형식에는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는 원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새로움도 나타날 수 없다.
그 원리는 존재와 무의 중첩에서 비롯되는 작동 가능성과 내외얽힘이다.
존재 그 자체들은 자신의 있음과 없음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을 지니며, 내외작동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는다. 이 작동들은 서로 얽히고, 기존의 구조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관계와 층위들을 구성한다.
새로움이란, 존재 그 자체들의 작동 가능성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실현되고, 그 관계들이 다시 새로운 구성과 가능성을 열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움의 근원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형식에 내재해야 한다.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형식은 세계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일 뿐 아니라, 세계가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하다.
존재 그 자체들에 내재된 새로움의 원리 (The Principle of Novelty Inherent in Beings-in-themselves)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형식에는 언제나 새로워질 수 있는 원리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계에는 어떠한 근본적인 새로움도 나타날 수 없다.
그 원리는 존재와 무의 중첩에서 비롯되는 작동 가능성과 내외얽힘이다.
존재 그 자체들은 자신의 있음과 없음을 구성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을 지니며, 내외작동을 통해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는다. 이 작동들은 서로 얽히고, 기존의 구조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관계와 층위들을 구성한다.
새로움이란, 존재 그 자체들의 작동 가능성이 다양한 관계 속에서 실현되고, 그 관계들이 다시 새로운 구성과 가능성을 열어 갈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새로움의 근원은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형식에 내재해야 한다.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형식은 세계가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일 뿐 아니라, 세계가 끊임없이 새로워질 수 있는 가능성의 조건이기도 하다.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Living at the Human Layer)
인간이라는 층위에는 자기 자신의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삶을 만끽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관계와 가능성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느냐의 차이다.
현재 우주적 조건에서,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고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얻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관계와 경험, 가능성을 열어가는가...그 가능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라는 가능성과 제약 사이에서 온갖 가능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 (Living at the Human Layer)
인간이라는 층위에는 자기 자신의 생존과 더 나은 삶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다른 존재들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즐거움이 있다.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것으로 만드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자신의 조건을 개선하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하며 더 높은 성취를 이루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다. 그러나 다른 존재들과 생각을 나누고,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역시 삶을 만끽하는 중요한 방식이다.
이것은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로부터 세상을 어떻게 경험하고, 어떤 관계와 가능성 속에서 삶의 즐거움을 발견하느냐의 차이다.
현재 우주적 조건에서, 인간이라는 층위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자신의 삶을 돌보면서도 다른 존재들과 함께 세계를 구성하고 경험하는 일이다. 삶의 풍요로움은 자신이 얼마나 더 많이 얻느냐에만 달려 있지 않다. 자신으로부터 얼마나 다양한 관계와 경험, 가능성을 열어가는가...그 가능성의 세계에서 자신의 존재라는 가능성과 제약 사이에서 온갖 가능한 감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지식의 양보다 세계를 이해하는 형식이 중요하다 (The Framework Matters More Than the Amount of Knowledge)
중요한 것은 지식의 양이 아니다. 세계를 어떤 본질적 형식으로 바라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지식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고, 지식은 점점 더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공공재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만큼 지식을 얼마나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만으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앞으로 더욱 의미를 잃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식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라, 그 지식을 바탕으로 세계의 구조를 어떻게 파악하고, 무엇을 추론하며,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느냐이다.
지식의 시대를 넘어, 세계를 이해하는 형식과 사유의 깊이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존재 그 자체들은 왜 애시당초 복수인가? (Why Are Beings-in-themselves originally Plural?)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정체성 유지는 자신들의 존재와 무의 중첩에 근거한다. 그러나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가 이미 복수성에 기반한다.
자신의 있음과 없음은 고립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있음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의 없음과 교차하며, 자신의 없음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의 있음과 교차한다. 이처럼 존재와 무의 중첩은 존재 그 자체들의 부분적 정체성과 다른 존재들의 전체적 관계가 교차하는 구조에 기반한다.
따라서 복수성은 존재와 무의 중첩 이후에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다.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가 성립하기 위한 근원적 조건이다. 각각의 존재 그 자체는 이러한 복수적 조건 속에서 근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다른 존재 그 자체들과 내외얽힘(In-Out Entanglement)을 이룬다.
내외존재론에서 존재 그 자체들의 복수성은 존재와 무의 중첩에 앞서는 전제가 아니라,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에 내재한 근원적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첩과 얽힘은 존재 그 자체들의 구분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으로 이어진다.
존재 그 자체들은 왜 애시당초 복수인가? (Why Are Beings-in-themselves originally Plural?)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정체성 유지는 자신들의 존재와 무의 중첩에 근거한다. 그러나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가 이미 복수성에 기반한다.
자신의 있음과 없음은 고립적으로 성립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있음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의 없음과 교차하며, 자신의 없음은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들의 있음과 교차한다. 이처럼 존재와 무의 중첩은 존재 그 자체들의 부분적 정체성과 다른 존재들의 전체적 관계가 교차하는 구조에 기반한다.
따라서 복수성은 존재와 무의 중첩 이후에 발생하는 결과가 아니다.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가 성립하기 위한 근원적 조건이다. 각각의 존재 그 자체는 이러한 복수적 조건 속에서 근원적 정체성을 유지하며, 동시에 다른 존재 그 자체들과 내외얽힘(In-Out Entanglement)을 이룬다.
내외존재론에서 존재 그 자체들의 복수성은 존재와 무의 중첩에 앞서는 전제가 아니라, 존재와 무의 중첩 자체에 내재한 근원적 조건이다. 그리고 이러한 중첩과 얽힘은 존재 그 자체들의 구분과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으로 이어진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What Is Consciousness?)
의식이란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과 작동 가능성에 근거하여, 각자의 내외 기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있음과 없음을 구성하고 외부와 관계 맺으며 변화하는 작동 과정이다.
각자의 내외 기준계에서 이루어지는 내외작동은 자신의 상태와 외부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지각과 감정, 사고와 판단, 그리고 주관적 경험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내외작동은 네 가지 기본 조합에서 출발한다.
(+in, +out): 자신의 있음을 내적으로 구성하면서 외부와의 관계에 참여한다. 접근, 연결, 수용, 애착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기존 구성을 해체하거나 변화시키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확장한다. 기존의 자아상이 흔들리는 경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개방과 탐색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구성을 해체하면서 외부와의 관계도 제한한다. 위축, 단절, 회피, 상실감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있음을 구성하고 유지하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제한한다. 자기보존, 경계 설정, 집중, 방어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기본 조합은 다양한 주관적 경험이 내외 기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동을 형식화한다. 실제 감정과 의식적 경험은 다양한 층위의 내외구성과 참여 조건이 서로 얽히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What Is Consciousness?)
의식이란 존재 그 자체들의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과 작동 가능성에 근거하여, 각자의 내외 기준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있음과 없음을 구성하고 외부와 관계 맺으며 변화하는 작동 과정이다.
각자의 내외 기준계에서 이루어지는 내외작동은 자신의 상태와 외부와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 변화는 지각과 감정, 사고와 판단, 그리고 주관적 경험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내외작동은 네 가지 기본 조합에서 출발한다.
(+in, +out): 자신의 있음을 내적으로 구성하면서 외부와의 관계에 참여한다. 접근, 연결, 수용, 애착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기존 구성을 해체하거나 변화시키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확장한다. 기존의 자아상이 흔들리는 경험,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개방과 탐색 등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구성을 해체하면서 외부와의 관계도 제한한다. 위축, 단절, 회피, 상실감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in, −out): 자신의 있음을 구성하고 유지하면서 외부와의 관계를 제한한다. 자기보존, 경계 설정, 집중, 방어 등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할 수 있다.
이 네 가지 기본 조합은 다양한 주관적 경험이 내외 기준계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작동을 형식화한다. 실제 감정과 의식적 경험은 다양한 층위의 내외구성과 참여 조건이 서로 얽히고 변화하는 과정에서 복합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
보편적 원리들을 사고의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일의 중요성 (Why Universal Principles Should Be Defaults of Thought)
우리는 보편적 원리들을 자신의 사고와 판단의 기본 전제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원리가 사고의 근저에 자리 잡을수록 개별 상황에서 무엇을 고려하고, 어떻게 추론하며,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도 그 원리가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내외초대칭(In-Out Supersymmetry)은 그러한 보편적 원리의 한 사례다.
내외초대칭에서 내적 작동과 외적 작동은 하나의 존재론적 조건에서 비롯된다. 존재 그 자체들의 존재와 무의 중첩은 자신의 있음을 구성하는 조건인 동시에, 자신이 부재하는 외부를 통해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러한 내적 구성과 외적 참여의 상호 의존성은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과 구조적 층위들을 가능하게 한다.
이 원리를 사고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관점과 내부적 조건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외부의 조건과 다른 존재들의 관점까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내부의 변화만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살피게 된다. 자신의 판단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과 외부의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함께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외초대칭이라는 용어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다. 그 원리가 실제 사고와 판단의 작동 방식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 원리들을 깊이 이해하고 내면화할수록, 우리는 개별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서 나아가 여러 상황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행동할 수 있다.
보편적 원리들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설명할 지식을 하나 더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방식 자체를 체계화하는 일이다.
보편적 원리들을 사고의 기본값으로 설정하는 일의 중요성 (Why Universal Principles Should Be Defaults of Thought)
우리는 보편적 원리들을 자신의 사고와 판단의 기본 전제로 내면화할 필요가 있다. 어떤 원리가 사고의 근저에 자리 잡을수록 개별 상황에서 무엇을 고려하고, 어떻게 추론하며, 어떤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 판단하는 과정에도 그 원리가 자연스럽게 반영되기 때문이다.
내외초대칭(In-Out Supersymmetry)은 그러한 보편적 원리의 한 사례다.
내외초대칭에서 내적 작동과 외적 작동은 하나의 존재론적 조건에서 비롯된다. 존재 그 자체들의 존재와 무의 중첩은 자신의 있음을 구성하는 조건인 동시에, 자신이 부재하는 외부를 통해 다른 존재들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조건이다. 이러한 내적 구성과 외적 참여의 상호 의존성은 존재 그 자체들의 내외얽힘과 구조적 층위들을 가능하게 한다.
이 원리를 사고의 기본 전제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신의 관점과 내부적 조건만으로 판단하기보다 외부의 조건과 다른 존재들의 관점까지 함께 고려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내부의 변화만이 아니라 외부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결과를 살피게 된다. 자신의 판단이 외부에 미치는 영향과 외부의 변화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을 함께 추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내외초대칭이라는 용어를 기억하는 일이 아니다. 그 원리가 실제 사고와 판단의 작동 방식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보편적 원리들을 깊이 이해하고 내면화할수록, 우리는 개별 상황에 일일이 대응하는 데서 나아가 여러 상황에 공통으로 적용할 수 있는 원리들을 바탕으로 추론하고 행동할 수 있다.
보편적 원리들을 깊이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을 설명할 지식을 하나 더 갖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방식 자체를 체계화하는 일이다.
존재 그 자체들이 근원이라면 죽음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If Beings-in-themselves Are Fundamental, What Does Death Mean?)
내외존재론에서 존재 그 자체들(Beings-in-themselves)은 그 내재적인 존재와 무의 중첩을 통해 자신의 있음과 없음이라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과 작동 가능성을 지닌다. 이 형식에서 존재 그 자체들은 최소한의 구분 단위로 성립하며, 서로의 작동을 통해 다양한 구조와 층위들을 구성하고 참여한다.
구조 구성과 구조 참여뿐 아니라 기억 역시 이러한 작동성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은 존재 그 자체들이 개별적으로 소유하는 고정된 속성이 아니다. 기억은 특정한 구조와 층위에서 형성되고 유지되는 작동이다. 기억을 비롯한 생명체의 특성은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작동 가능성이 특정한 구조적 조건에서 실현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생명체를 구성하던 층위 구성과 층위 참여가 구조적 내외조건에 따라 종료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그 생명체의 기억과 의식, 개별적인 경험을 유지하던 작동 역시 더 이상 지속되지 않게 된다.
이때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작동 가능성과 특정한 생명체의 구조적 지속은 구분된다. 생명체의 죽음으로 존재 그자체들의 해당 생명체에서의 층위 구성과 참여가 종료되더라도, 그것이 존재 그 자체들의 근원적 작동 가능성 자체가 소멸한다는 뜻은 아니다.
결국 존재 그 자체들은 기억이나 생명체적 정체성을 영구히 보존하는 주체가 아니다. 그것들은 존재와 무의 중첩에 내재된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과 작동 가능성을 바탕으로 구조를 구성하고 참여할 수 있는 근원적 단위다. 그리고 존재 그 자체들은 각자의 있음과 없음의 중첩을 통해 자기 자신을 성립시키는 최소한의 존재론적 동일성을 지닌다. 이는 기억과 의식에 기반한 생명체적 자아와는 구별되는, 자신의 있음과 없음을 구분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공간적 형식과 함께 성립하는 근원적 단위로서의 자기성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자기성이 존재 그 자체들을 각각의 구분 가능한 존재론적 단위로 성립시킨다.
《인-아웃 코스모스》는 우주와 존재, 생명, 의식, 사회를 하나의 원리로 설명하려는 새로운 존재론적 시도이다.
오늘날 물리학, 생물학, 인지과학, 사회과학은 각각 놀라운 성과를 이루었지만, 이들을 하나의 존재론적 토대 위에서 통합하는 이론은 여전히 부족하다. 이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인-아웃 존재론(In-Out Ontology, IOO)을 제안한다.
인-아웃 존재론은 존재를 고정된 실체나 속성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존재는 끊임없이 내향(Inward)과 외향(Outward)의 연산을 수행하며, 그 과정에서 새로운 층위를 구성하고 이미 구성된 층위에 참여한다. 원자에서 생명으로, 생명에서 의식으로, 의식에서 사회와 문명으로 이어지는 모든 과정은 이러한 연산의 재귀적 전개로 이해될 수 있다.
이 책은 양자역학, 복잡계, 정보이론, 진화론, 현상학, 인지과학 등 현대 과학과 철학의 다양한 논의를 종합하면서, 우주의 생성과 구조, 생명의 출현, 의식의 형성, 인간 사회의 발전을 하나의 통일된 존재론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인-아웃 코스모스》는 특정 학문 분야의 이론서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을 연결하는 새로운 기초 틀을 제시하는 책이다. 존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통해 독자는 자연과 인간, 그리고 우주를 하나의 연속적인 과정으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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