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lin' Sun - Chapter #1
#1-9.
여느 때와 같이 노래 연습을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던 리케이의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푸드드득! 푸드드득! 찍찍! 찌이익——!
뭔가 잘못됐다는 걸 직감한 리케이는 발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수풀 속에서 두 마리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퍼덕이며 작은 무언가를 가운데 두고 달려들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며칠 전 해바라기밭에서 봤던 그 녀석이었다. 두 마리의 커다란 새에게 사냥감이 된 채 필사적으로 버티고 있었는데, 여기저기 깊은 상처가 나 작은 몸에서 피가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저리 가!!!"
리케이가 날카롭게 쏘아붙이며 뛰어들자 새들이 날갯짓을 하며 흩어졌고, 리케이는 곧장 바닥에 쓰러진 녀석 곁에 무릎을 꿇었다. 작은 가슴이 가쁘게 오르내리고 있었다.
"야, 꼬맹아! 정신 차려봐, 괜찮아?!"
대답은 없었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듯 눈이 제대로 초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리케이는 입술을 꽉 깨물고 자신의 옷자락을 힘껏 잡아뜯었다. 찢어진 천으로 작은 몸의 상처를 꼼꼼히 감아 지혈한 뒤,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녀석을 감싸 안고 마을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빠르게 마을로 달려왔지만 사방은 불이 꺼진 채 고요했다. 리케이는 숨을 몰아쉬며 의사의 집 앞에 다다르자마자 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아저씨! 빨리요, 빨리!"
삐걱.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문을 열었다. 한 눈에 봐도 방금 잠에서 깬 얼굴이었다.
"리케이, 대체 이 시간에 무슨……"
"아저씨, 제발 얘 좀 살려주세요!"
의사가 리케이의 두 손 위에 올려진 작은 생명체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서둘러 문을 활짝 열었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9 #HS_1_9
🔅Howlin' Sun - Chapter #1
#1-8.
의식이 끝난 이후로 매일 밤, 리케이는 산의 가장자리로 향했다.
부족 수비 구역이 끝나기 직전, 『태양의 신기루』 장막이 아슬아슬하게 드리워진 그 끝자락의 절벽이었다. 낮이면 장막 너머 저 멀리 도심의 빌딩들이 환하게 빛나고, 밤이면 도시의 불빛이 별처럼 쏟아지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리케이는, 매일 그 벅찼던 순간을 떠올리며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작게. 조심스럽게. 그러다 조금씩, 조금씩 목소리를 키웠다. 인간 세상으로 흘러들어갈 만큼은 아닌, 딱 그 경계 위에서.
'모두가 그렇게 행복해했는데, 더 잘하고 싶다.'
'아버지한테 또 칭찬받고 싶다.'
'그리고……'
'이 노래를, 저 넓은 세상에서도 불러보고 싶다.'
절벽 아래로 펼쳐진 도시의 불빛을 내려다보며 리케이는 생각했다. 저 수많은 불빛들 속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을 것이다. 웃고 울고, 먹고 자고,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자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
그들도 이 노래를 들으면 똑같이 행복해하지 않을까.
그러면 서로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숨어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삼촌도 인간이 전부 나쁜 건 아니라고 했었다. 그렇다면 분명, 서로 오해가 있었을 거야.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리케이가 천천히 몸을 돌려 절벽을 등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그때, 저 멀리 나무 뒤에서 낮은 무전 소리가 흘러나왔다.
"오늘도 절벽에서 노래 연습만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이상무."
한편, 같은 시각 서울 도심 한복판. 헬리오는 세련된 수트 차림으로 걸어가다 이어폰을 통해 흘러나오는 무전 소리에 피식 웃었다.
"그래, 알았어. 그래도 감시는 늦추지 마.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니까."
무전을 끊은 헬리오의 시선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했다. 건물 외벽을 가득 채운 거대한 전광판 속에서 어떤 가수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제 곧 리케이 생일인데……'
헬리오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딱 좋은 게 있겠는데.'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8 #HS_1_8
🔅Howlin' Sun - Chapter #1
#1-7.
의식이 마무리되자 리케이는 부족민들의 얼굴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모두가 눈이 부시게 웃고 있었다.
요즘 힘든 일이 있어 침울해 보이던 아주머니가, 며칠째 고된 표정을 풀지 못하던 수비대 형들이, 허리가 아파 고생이라던 노인까지——
'내가 한 거잖아. 저 웃음들.'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가슴속에서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리케이는 홀린 것처럼 하울링을 시작했다. 이번엔 의식에서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냥 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이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신이 난 리케이의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고 커지더니 그 위로 멜로디와 리듬이 피어올랐고, 어느새 그것은 하울링이 아닌 뜨겁고 거침없는 노래가 되어 있었다.
부족민들이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춤을 추고, 노인들도 흥에 겨워 어깨를 들썩였다. 이윽고 제단 전체가 환호로 가득 찼다.
"어쩐지 잘 넘어간다 했어."
헬리오가 피식 웃으며 말하는 옆에서, 솔론은 굳은 얼굴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리케이는 신이 나서 부르던 노래를 마무리하더니, 두 사람이 있는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나 잘했죠?! 다들 엄청 좋아해요!"
말을 내뱉고 나서야 리케이는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 솔론의 굳은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헬리오가 소리 없이 고개를 돌려 웃음을 틀어막는 사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호통이 터져 나올 것 같던 솔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잘했다."
솔론이 짧게 내뱉고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뒤돌아 걸어갔다.
"……예?"
아버지 입에서 '잘했다'는 말이 나온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이어서 헬리오가 웃으며 리케이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칭찬받은 거 맞아."
"……진짜요?"
리케이는 멍하니 솔론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이상하게 간질간질하고,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7 #HS_1_7
🔅Howlin' Sun - Chapter #1
#1-6.
어느덧 『해울림』의 날이 밝았다.
이 의식을 통해 부족민들은 태양의 기운을 몸 깊이 받아들이고, 그 힘으로 다시 한 해를 버텨낸다. 무엇보다 의식을 이끄는 자가 얼마나 진심을 다하느냐에 따라 부족민들에게 전해지는 기운이 달라지기에, 역대 족장들은 이 의식에 모든 것을 걸었다. 온 힘을 쏟아붓고 의식을 마친 뒤 그 자리에서 쓰러지는 일도 드물지 않았을 만큼.
그리고 이번 의식은 특별했다.
성년이 된 후 리케이가 처음으로 주관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
리케이는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있었다. 매일 어김없이 도망치고 놀고 뒹굴다 밤늦게 기절하듯 잠들어 늦잠을 자기 일쑤였고, 평소라면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어떻게 수업을 빠질까 궁리하기 바빴을 터였다.
그런데, 오늘만큼은 달랐다.
눈빛부터가 평소와 달리 단단하게 가라앉아 있었으니까.
"식구들을 위한 일이잖아. 이건 제대로 해야지."
리케이는 옷매무새를 단단히 다듬고 의식 장소로 향했다.
의식 제단 주변은 해바라기로 엮은 장식들로 단장되어 있었고, 부족민들은 저마다 정갈한 옷차림으로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늘 위압감 넘치던 병사들도, 허리가 굽은 노인들도, 개울가에서 리케이와 진흙탕을 뒹굴던 개구쟁이들까지도— 오늘만큼은 차분하고 진지한 표정이었다.
저 멀리 솔론 역시 의식에 맞는 복장을 갖춰 입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눈빛에는 무언가 무거운 기대감 같은 것이 서려 있었고, 바로 옆에 선 헬리오만이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리케이는 이를 확인하고 의식을 이끄는 자리로 천천히 걸어나가 숨을 가다듬고는 태양을 향해 눈을 감고 고개를 들었다.
왠지 모르게 가슴 한켠이 뜨겁게 울컥해왔다.
자신의 목소리 하나로 이 모든 사람들이 힘을 얻고, 그 힘으로 내일을 다시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늘 그들 곁에서 함께 울고 웃어온 리케이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곧이어 비장함을 머금은 리케이의 첫 하울링이 입술 사이로 터져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제단 전체에 평소보다 진하고 뜨거운 빛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태양이 조금 더 가까이 내려온 것 같은 감각.
주변의 꽃들이 일제히 고개를 들었고, 새들이 날아올랐으며, 나무의 이파리들이 바람도 없이 흔들렸다.
리케이는 눈을 감은 채였다.
그래서 자신이 불러일으킨 것이 얼마나 다른지,
몰랐다.
"……"
솔론의 굳은 눈가에 미세한 경련이 지나갔다. 헬리오는 조용히 눈을 가늘게 뜨며 입가를 달싹였고 여기저기서 기쁨의 탄성이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의식이 끝날 즈음엔, 부족민들의 얼굴은 모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6 #HS_1_6
🔅Howlin' Sun - Chapter #1
#1-5.
오늘도 어김없이 수업을 (나름 능숙하게) 이탈한 리케이는 단골 피신처 중 하나인 해바라기밭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하울링 선 부족의 해바라기는 여느 해바라기와 달랐다. 태양의 기운을 고스란히 받으며 자란 탓인지, 키는 곧게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었고 꽃송이 하나하나가 금방이라도 터질 듯 탐스럽게 피어올라 있었다. 진한 노란빛의 꽃잎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밭 전체가 물결치는 것처럼 보이고, 그 사이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은 마치 누군가 금빛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이 해바라기로 생산하는 씨앗과 오일, 꽃차와 천연 화장품 원료는 인간 세상에서도 최상품 대접을 받는다. 맛도 품질도 여느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기에, 인간들 틈에서 은밀히 사업을 꾸려가는 태양의 그림자는 이미 해바라기 관련 시장을 통째로 독점하다시피 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리케이는 그런 거창한 이야기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키 큰 해바라기들 사이에 드러누워 위를 올려다보면 바람에 일렁이는 노란 물결이 하늘을 가득 메웠고, 그 물결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냥 행복했다.
"하, 이제 좀 살겠다."
울창한 줄기들 사이 아늑한 빈자리에 대자로 누운 리케이가 길게 숨을 내뱉었다. 머리 위로 하늘이 보일 듯 말 듯 해바라기 꽃잎들이 빽빽하게 차 있었고, 그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얼굴 위에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맨날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투덜거리는 목소리에 어딘가 기운이 빠져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며 한참을 멍하니 누워 있는데—
바스락, 뽀짝뽀짝.
귀여운 발소리가 가까이에서 들렸다.
'응?'
리케이가 소리 나는 방향으로 천천히 몸을 돌려 옆으로 누웠다.
시선이 닿은 곳엔 조그마한 생명체 하나가 해바라기 줄기 사이를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양 볼이 터질 듯 빵빵하게 부풀어 있는 걸 보니 입안에 해바라기씨를 한가득 머금고 있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등에는 풀잎을 엮어 만든 듯한 작은 가방까지 메고서, 그 안에도 쉴 새 없이 해바라기씨를 주워 담는 중이었다.
'쟤 뭐야? 너무 귀엽다 어떡해……'
리케이는 웃음이 터질 것 같은 입을 틀어막으며 그 작은 생명체를 지켜봤다. 원래 귀여운 것 앞에서는 영락없이 무너지는 게 리케이의 고질병이었는데—
그 순간, 까맣고 동그란 눈이 리케이를 정면으로 포착했다.
"찍!"
깜짝 놀란 녀석이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입안에 넣어뒀던 해바라기씨가 와르르 쏟아졌고, 발이 걸려 넘어지면서 등에 메고 있던 풀잎 가방까지 바닥으로 나뒹굴어 그 안의 해바라기씨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작은 발로 호다다닥,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도망쳤다.
"야! 야야야, 잠깐만! 나 안 잡아먹어!"
리케이가 허겁지겁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지만, 이미 녀석의 자취는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바닥에 쏟아진 해바라기씨들과, 주인 잃은 작은 풀잎 가방뿐이었다.
"……"
리케이는 한동안 그걸 멍하니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고 앉아 흩어진 씨앗들을 하나하나 모으기 시작했다. 가방 안에도 조심스럽게 씨앗을 채워 넣고, 주변에 떨어진 것들도 모아 옆에 가지런히 쌓아두었다.
"여기다 이렇게 해두면 쟤가 다시 가져가겠지?"
리케이는 입술을 씰룩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있으면 무서워서 못 올 테니까 얼른 자리 피해줘야겠다."
그리고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유유히 해바라기밭을 빠져나갔다. 해바라기들이 그의 등 뒤에서 바람에 일렁이며, 마치 작별 인사를 하듯 흔들렸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5 #HS_1_5
🔅Howlin' Sun - Chapter #1
#1-4.
마을에 뿔피리 소리가 울리면 부족민들이 하나둘 모여들곤 했다. 그건 『태양의 그림자(NUS)』가 인간 세상에서 물자를 들고 돌아왔다는 신호였기 때문이다.
『헬리오』를 선두로 한 그림자 조직원들이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주변이 부드럽게 술렁였다. 모두가 인간 세상의 말끔한 복장을 갖춰 입은 채였는데, 그 행렬이 마치 딴 세상에서 온 사람들 같아 보여 아이들도 구경거리 삼아 몰려들기 시작했다.
헬리오는 그 무리의 가장 앞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걸어왔다. 깔끔하게 정돈된 수트, 여유롭게 뒤로 넘긴 머리칼, 그리고 살짝 올라간 입꼬리. 인간 세상을 누비고 온 사람 특유의 도시적인 냄새가 물씬 풍겼다.
리케이는 진흙이 채 마르지도 않은 꼴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삼촌! 이번 인간 세상은 어땠어? 뭐 먹었어? 다 말해줘!"
헬리오는 달려든 조카를 귀엽다는 듯 슬며시 웃으며 내려다봤다.
"리케이. 너 지금 그 꼴이 뭐냐."
"응? 아, 애들이랑 좀 놀다 왔어!"
"형님한테 또 혼났지?"
"아, 몰라……"
헬리오는 잠시 리케이를 바라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리며 진흙 범벅인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나 지금 바빠. 보고드릴 게 있어서."
그는 저 멀리 솔론이 서 있는 쪽을 흘끔 바라보았다.
"나중에 얘기하자."
"아 삼촌——!!"
"도련님! 또 어디 가시려는 거예요?"
헬리오를 따라 슬금슬금 발을 옮기던 리케이의 앞을 어느새 유모가 가로막았다. 빙긋 웃으며 팔을 내밀었지만, 그 웃음 속에 박혀 있는 단호함이란— 웬만한 칼날보다도 날카로웠다.
결국 체념한 듯 유모를 따라가는 조카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헬리오는, 낮게 웃음을 흘리며 솔론이 기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리케이의 도주는 계속되었다.
문헌 해석 수업 중에는 유모가 잠깐 딴 곳을 보는 사이 교재를 펼쳐 세워 얼굴을 가린 채 슬금슬금 뒷걸음질치다가, 유모가 고개를 돌리기 직전 문 밖으로 쏙 빠져나갔다.
부족 역사 강의 때는 강의 시작 직전 "배가 너무 아파서 못 앉아 있겠어요!"라는 절절한 호소로 담당 교관을 흔들어 놓고, 화장실로 향하는 척 사라진 뒤 세 시간 동안 돌아오지 않았다. 담당 교관은 그날 이후 모든 수업을 화장실이 없는 곳에서 진행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술 훈련 날에는 아예 나타나지 않아 마을 전체를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계곡 상류의 바위 위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으며 한참을 노래 부르다 낮잠까지 자고 있었다고 했다.
리케이는 도망치는 데 있어선 진정한 재능이 있었다.
문제는, 항상 잡힌다는 것이었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4 #HS_1_4
🔅Howlin' Sun - Chapter #1
#1-3.
돌아오는 내내 양팔을 붙잡힌 채 투덜거리며 발을 질질 끌던 리케이는, 마침 병사들을 데리고 부족 일을 보러 가던 솔론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최악의 타이밍이었다.
"……"
리케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솔론의 미간이 세 겹으로 접혔다.
하울링 선 부족의 족장, 『솔론』. 부족의 법도와 규율을 누구보다 엄격하게 여기는 그의 눈앞에 서 있는 건— 온몸에 진흙을 덕지덕지 뒤집어쓰고 개울가에서 막 굴러나온 행색의 아들이었다.
솔론은 아무 말 없이 리케이를 내려다보았고, 그 짧은 침묵이 숨이 막힐 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이윽고 낮고 깊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또."
"…아, 아버지……"
"또 도망쳤느냐."
"저, 그게……"
"리케이."
솔론이 느리고 또렷하게, 한 자 한 자를 새기듯 아들의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 하나에 담긴 무게가 어찌나 육중한지, 리케이는 자기도 모르게 등줄기가 곧게 펴지는 걸 느꼈다.
"너는 이 부족의 차기 족장이다."
"…알아요."
"족장은 감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책임지고, 버티고, 지켜내는 것— 그게 이 자리의 무게다."
"……"
"곧 있을 『해울림』 의식도 이번엔 네가 이끌어야 한다. 그걸 알면서도 정신을 못 차리느냐?"
해울림. 하울링 선 부족이 대대로 이어온 신성한 전통으로, 부족 전체가 태양에 기도를 올리며 그 힘을 나눠 받는 날이었다.
리케이는 입술을 달싹였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고개를 숙이는 것도 내키지 않아, 그저 애매한 표정으로 아버지의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솔론은 그런 아들을 더 이상 닦달하지 않았다. 다만 한마디를 더 얹었다.
"다시 한번 멋대로 사라지면, 네 방 밖으로 나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겠다."
리케이가 눈을 크게 뜨며 다급하게 외쳤다.
"예?! 그건 진짜 감금이잖아요!"
"그렇게 받아들여도 좋다."
솔론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유유히 발걸음을 옮겼다. 리케이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말을 하려다가, 결국 말문이 막혀 이를 꽉 깨물었다.
'대체 내가 뭘 그렇게……'
그때였다. 마을 어딘가에서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마을 입구 쪽에서 깔끔한 차림의 남자가 무리를 이끌며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삼촌이다!"
리케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3 #HS_1_3
🔅Howlin' Sun - Chapter #1
#1-2.
한참을 그렇게 뒹굴다 지친 리케이는 아이들과 함께 개울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젖은 몸으로 나란히 누워 올려다본 하늘엔, 눈이 부시도록 환한 태양이 걸려 있었다. 그 빛을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이 반짝였다.
"형, 노래! 노래 불러줘!"
"맞아, 그거! 형이 맨날 불러주는 거!"
리케이가 픽 웃었다.
"짜식들, 내 노래가 그렇게 좋아?"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리케이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목을 가다듬고 부드럽게 하울링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리케이의 하울링에는 묘한 힘이 있어서, 듣고 있으면 어딘가 뭉클해지고 축 처졌던 몸에도 다시 기운이 차올랐다.
언젠가 장난삼아 하울링을 노래처럼 바꿔 불러본 게 시작이었다. 길게 뻗던 소리를 여러 음으로 쪼개고 리듬을 잘게 나누자— 그건 더 이상 늑대의 울음이 아닌, 하나의 노래가 되었다.
아이들은 그 노래를 참 좋아했다.
그렇게 한참 노래가 이어지고, 웃음꽃이 피어나던 그때.
"……도련님 여기 계십니다."
갑자기 들려온 병사의 목소리에 정적이 흘렀고, 리케이의 뒷목이 스르르 굳어졌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다정하게 웃고 있는 유모와 그 양옆에 딱 버티고 선 부족 병사 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아…… 망했다……"
"아이고~ 어제 약속하셨잖아요, 도련님! 다시는 안 그러신다고요!"
"아, 그게……"
"자자, 이제 그만 돌아가셔야죠~?"
온화한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목소리에는 추호의 협상 여지도 없었다. 리케이는 진흙 범벅이 된 채로 양팔을 병사들에게 붙잡혀, 발을 질질 끌리며 억지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아이들의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형 잡혀간다~!"
"또 잡혔어, 또 잡혔어!"
"형 나중에 또 놀자!"
리케이는 끌려가면서도 고개만 홱 돌려 아이들을 향해 씩 웃으며 외쳤다.
"야, 너네 비웃은 거 다 들었어! 또 올 테니까 딱 기다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2 #HS_1_2
🔅Howlin' Sun - Chapter #1
#1-1.
선대 족장의 영혼이 빚어낸 『태양의 신기루』 안쪽의 세상은, 결계 밖의 번화한 도심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인간들이 세운 잿빛 빌딩 숲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거룩한 장막이 드리워진 이곳만큼은 태고의 생명력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시사철 강렬한 태양빛이 쏟아지는 땅 위로 깊고 울창한 수풀이 뻗어 올랐고, 때 묻지 않은 계곡물이 세차게 흘렀다. 산자락 곳곳에는 눈이 부실 만큼 노란 해바라기밭이 펼쳐졌고, 그 너머로 부족민들이 짓고 살아가는 소박하고 따뜻한 집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가장 눈부신 사각지대, 『백야의 고지』. 그 은혜로운 요새 속에서 『하울링 선』 부족은 마침내 안식을 찾았다. 잔혹한 박해와 사냥을 피해 이곳에 정착한 뒤, 인간들에게 그 존재를 철저히 숨긴 채 자신들만의 법과 전통을 이어왔다.
현 족장 솔론의 아들, 『리케이』.
반짝이는 눈을 가진 그는 이 비밀스러운 부족의 다음을 짊어질 후계자이지만……
"으하하하! 신난다!!!"
유모의 눈을 피해 창문 밖으로 뛰쳐나온 지 채 1분도 되지 않았다. 등 뒤로 유모의 절박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지만, 풀숲을 헤치며 신나게 내달리는 리케이는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다.
'맨날 족장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족장 되기 전에 숨 막혀 죽겠네!'
저 멀리서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오자, 리케이의 발걸음이 절로 그쪽으로 향했다. 부족 아이들이 모여 노는 개울가였다. 물소리 위로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넘쳐흘렀다.
"리케이 형이다!!!"
"형! 같이 놀아!"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달려들자, 리케이는 망설임 없이 신발을 벗어 던지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좋았어, 다 덤벼!!!"
그렇게 시작된 물놀이는 삽시간에 진흙탕 싸움으로 번졌다. 리케이는 아이들과 뒤엉켜 물을 첨벙이고, 개울가 진흙탕까지 전선을 넓히며 온몸으로 뒹굴었다.
#하울링선 #HowlinSun #하울링선_1_1 #HS_1_1
🔅Howlin' Sun - Chapter #0
#0-4.
[서사의 주역들]
1) 리케이 (Lykei)
하울링 선 족장 솔론의 아들이자, 태양의 축복을 가장 날것 그대로 타고난 후계자. 복잡한 계산 대신 본능과 직관을 따르는 성격으로, 부족민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아이들과 흙탕물에서 구르기도 하는 소탈함을 가졌다.
또한 리케이의 하울링에는 여느 부족민과는 다른, 유독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 듣는 이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지친 이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건네는, 그런 온기가.
언젠가부터 리케이는 그 하울링을 장난삼아 노래처럼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태어난 노래는 늘 긴장 속에 살아가는 부족민들의 마음을 포근하게 감쌌고, 리케이 자신에게도 그것은 모두를 비추는 따스한 햇살과도 같았다.
하지만 헬리오가 선물한 『낡은 MP3 플레이어』 속 인간들의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장막 안에 갇힌 자신의 처지에 지독한 환멸과 답답함을 느낀다.
이는 단순히 철없는 반항이나 투정이 아니다. 족장이라는 정해진 운명을 거부하고, 저 넓은 세상 한복판에서 제 목소리를 힘껏 내지르고 싶다는 갈망은 이미 폭발 직전이었기에— 그것은 영혼 깊은 곳에서부터 거칠게 끓어오르는, 본능적인 갈증이었다.
2) 솔론 (Solon)
하울링 선 부족의 현 족장이자 리케이의 아버지. 겉으로는 부족의 철칙과 법도를 절대적으로 내세우며 아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인간에 대한 깊은 불신과 공포가 깔려 있다. 과거의 잔혹한 사냥이 아들에게 되풀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부족을 지켜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그를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는 리케이에게 더욱 엄격한 규율을 강요할 수밖에 없었다. 기묘한 힘을 지닌 아들의 목소리가 장막 너머 인간에게 닿는 순간, 지금껏 지켜온 모든 평화가 무너져 내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식과 종족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라는 사사로운 감정마저 모조리 짓눌러야만 했던 한 비극적인 군주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평생을 책임감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냈기에 누구보다 아들만큼은 자유롭고 행복하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날개를 꺾고 있지만, 리케이와 부딪힐 때마다 뿜어내는 불호령 속에는 늘 미세한 슬픔과 떨림이 숨어 있다.
3) 헬리오(Helio)
솔론의 친동생이자 『태양의 그림자』를 이끄는 총책임자. 인간 사회의 트렌드를 완벽히 이해한 세련된 수트 차림과 신사적인 매너를 지녔으며, 부족 내에서 자본주의의 맛을 가장 잘 아는 능글맞은 엘리트이기도 하다.
철저한 능력사회인 하울링 선 부족에서 헬리오는 혈연관계가 아닌 오직 실력 하나로 그림자들의 수장 자리를 증명해 냈다. 그가 리더일 수밖에 없었던 건, 인간 사회에 완벽히 녹아드는 카멜레온 같은 면모와 빈틈없는 일 처리 능력 덕분이었다.
또한, 솔론이 평생 짊어져야 했던 족장이라는 자리의 무게와 고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기에, 그의 아들인 리케이에게 깊은 연민과 애정을 품고 있다. 답답한 부족의 장막 속에서 리케이가 유일하게 숨을 쉬던 수단이자 노래에 눈을 뜨게 만든 발단인 『하울링』. 그 열정에 불을 지핀 인간 세계의 『낡은 MP3 플레이어』 역시, 솔론의 눈을 피해 건넨 헬리오의 비밀스러운 선물이다.
인간계를 오가는 바쁜 일정 속에서도 리케이의 도주 경로를 귀신같이 짚어내며 은밀한 감시자 역할을 자처하고 있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리케이의 자유로움과 순수한 음악적 열정을 격렬히 동경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리케이에게 있어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멘토이자, 세상 밖으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도록 은밀히 돕는 조력자이다.
4) 꼬맹이
인간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지만 야생동물의 왕래는 자유로운 장막, 『태양의 신기루』. 그곳에 깃든 위대한 태양의 힘은 아주 가끔 야생동물에게 신비한 기적을 선사하곤 한다. 그리고 그 거대한 기적을 온몸으로 받아낸 영광의 주인공이 바로 이 작은 생명체다. 부드러운 청회색 빛 털 위로, 노란색 실로 정교하게 꿰맨 빨간 망토를 두르고 해바라기 배지를 소중하게 달고 다니는 녀석.
비록 인간의 언어로 의사소통할 수는 없지만, 장막에 서린 영험한 힘 덕분에 일반적인 동물들보다 훨씬 똘똘한 지능과 제 몸만 한 바느질 바늘을 요리조리 움직여 제 옷과 가방을 직접 만들 만큼 야무진 손재주를 갖게 되었다.
과거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자신을 구해준 리케이에게 강렬하게 각인되어, 현재는 그의 곁을 맴돌며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하는 파트너이기도 하다. 리케이가 방황할 때마다 조그만 손으로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힘내라며 온 마음으로 응원을 보내는, 여전히 작고 소중해서 늘 지켜주고 싶은 리케이의 소중한 단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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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lin' Sun - Chapter #0
#0-3.
[태양의 그림자 - NUS]
하울링 선 부족은 문명과 완전히 단절된 원시 부족이 아니다. 태양의 신기루 장막 너머, 인간 사회의 빠른 발전과 복잡한 국제 정세까지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이들의 ‘완벽한 인간화 능력’ 덕분이었다. 과거의 잔혹한 학살이 되풀이될까 늘 경계하던 현 족장 『솔론』은 인간화 능력을 극대화한 소수의 엘리트들로 구성된 최정예 조직, 『태양의 그림자(NUS)』를 결성하여 인간 사회에 위장 잠입시켰다.
이들은 인간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를 내린 채, 철저히 위장된 신분으로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부족의 특산물인 최상품 해바라기를 전면에 내세워 관련 시장을 독점하는 거대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
또한, 장막 안의 부족민들을 위한 식료품과 의약품을 은밀히 들여오는 물자 공급책도 겸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치밀하게 계산된 가면일 뿐 인간들의 경제와 군사, 정치 동향을 실시간으로 수집하는 것이 이들의 진짜 임무이다.
반면 솔론은 일반 부족민들에게 그림자들이 물어오는 정보는 물론 인간들의 고도화된 기술이 담긴 최신 전자기기를 철저히 숨기고 금지했다. 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다가 단 한 번의 실수라도 발생하면 인간에게 위치가 발각되어 부족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족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기술 통제이자, 철저한 독점었다.
태양의 그림자 리더인 『헬리오』가 『리케이』에게 스마트폰 대신 『낡은 MP3 플레이어』를 선물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Wi-Fi도, 인터넷도, GPS 추적도 되지 않는 아날로그 기기야말로 족장의 삼엄한 통제를 피할 수 있고, 인간들에게 노출될 위험도 없으며, 리케이의 지독한 갈증을 해소해 줄 최선의 ‘밀수품’이었기 때문이다. 헬리오의 입장에선 리케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선물이었던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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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lin' Sun - Chapter #0
#0-2.
[비극의 기록]
이들이 인간을 피해 숨어든 배경에는 잔혹한 피의 역사가 서려 있다. 신비한 능력을 지닌 하울링 선을 ‘위험 생물’로 낙인찍은 인간들의 『비밀 조직』, 그리고 뒤이어 휘몰아친 자비 없는 대대적인 사냥.
‘인류의 안전’이라는 대의명분 뒤에 숨겨진 진짜 속내는 탐욕이었다. 하울링 선이 가진 태양의 힘과 특별한 신체 비밀을 빼앗기 위해 잔인한 생체 실험을 자행하려 했던 것이다.
멸족의 위기 앞. 선대 족장은 부족의 생존을 위한 최후의 결단을 내렸다. 생존자들을 이끌고 인간들의 도심, 그 가장자리에 맞닿은 산림 속으로 숨어드는 것. 그 곳은 인간과 가장 가까이 있기에 역설적으로 그들이 가장 찾기 어려운 곳이자 사시사철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빛이 인간의 눈길을 거부하는 성역, 『백야의 고지』였다.
그 눈부신 빛의 요새에서, 선대 족장은 자신의 생명을 불태워 산 전체를 은폐하는 거대한 『태양의 신기루』를 펼쳐냈다. 그것은 경계를 침범한 인간들의 감각을 뒤흔들고 인지를 왜곡해 홀린 듯 다시 산 입구로 되돌아가게 만드는 영적인 미로였다.
선대 족장은 부족을 구한 대가로 그곳에서 찬란한 숨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의 숭고한 희생은 하울링 선 부족의 위대한 불씨를 지켜냈다.
화려한 도심에 가려진 태양의 땅, 완벽히 은폐된 성역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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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lin' Sun - Chapter #0
#0-1.
[하울링 선 - Howlin' Sun]
현대 도심의 가장 눈부신 사각지대, 『백야의 고지』 품속에는 태양의 신비한 기운을 품은 늑대 수인들의 부족, 『하울링 선』이 조용히 숨 쉬고 있다. 고대부터 태양을 신성시하며 그 전통을 굳건히 지켜온 이들이지만, 현재는 인류의 잔혹한 위협을 피해 『태양의 신기루』 장막 뒤로 자신들의 자취를 완전히 감춘 채 은거 중이다.
인류가 그들의 존재를 눈치채는 순간, 부족이 지켜온 평화는 또다시 산산조각날 것이기에…… 그들은 오늘도 거룩한 장막 안에서 숨을 죽인 채 인간들의 세상을 경계하고 있다.
“이들은 밤이 아닌 낮에, 태양빛을 받을 때
가장 강력한 마력과 신체 능력을 발휘하는 ‘백야의 늑대’들이다.
그들의 하울링은 달을 보고 울부짖는 슬픈 외침이 아니라,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며 생명력을 뿜어내는 정열적인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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