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허황된 가설로 글을 시작해 본다: 브라질에도 시티팝이 있었다. 지역도 장르명도 다르지만, 비슷한 꿈을 품은 채 근사해진 이국의 탁월함들이 있었다. 닮음을 핑계로 낯선 좋음을 나누고 싶었다.
「브라질의 시티팝, 줄여 부르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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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유월, Bahia를 찾았다. 색색의 옷을 입은 옛 종교의 신들을 보며, 이들을 기리는 마음의 배후를 다시 궁금해했다. 종교와 과학에 잠시 눈감고 미신을 두드리는 무른 심정들. 푸념하고 복을 빌고 다짐하는 그 마음을 노랫말로 다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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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엔 João의 보사 노바를 찾는다. 초록이 움츠린 겨울에 온기를 찾듯, 최소한의 소리로 그린 상냥함을 그리워한다.
순서가 중요했던 두 노래를 거꾸로 들어봤고, 뒤집힌 의미가 퍽 사랑스러웠다. 잘못은 잊고 새 복을 구하는 역전의 연말연시를 노랫말로 나누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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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끝이 시릴 무렵 낡은 재즈를 찾는다. 캐럴로 시작해 새해를 맞을 때까지. 올해는 미국 말고 브라질의 Leny Andrade를 찾았다.
뻔한 맛을 바라며 옛 음반을 차례로 들었고, 뜻밖에 대단한 연대기를 만났다. 주류의 외곽에서 단단히 다진 행복의 영토를 전파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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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avan이 새 음반을 냈다. 77세를 맞아 차분해진 그를 좇다, 사랑하는 초기곡들을 다시 찾았다. 뒤늦게 읽어 본 노랫말들이 예상보다 곧고 간절해서 좋았다. 온갖 사랑의 신을 구하는 그 마음을 나누고 싶어졌다.
「온갖 사랑의 신: Djavan의 노래 다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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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과 칠월 사이, 짧은 브라질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기로 시작해 여행 내내 듣던 Elis Regina의 노랫말로 맺는 글을 썼다. 겁 많은 여행자의 투정을 유토피아의 꿈으로 번역하는 노래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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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나라로: Elis Regina, 〈Sai Dessa〉」
길지 않은 브라질 여행을 떠난다. 출국을 코앞에 두고, Dorival Caymmi의 노래를 옮겼다🇧🇷
Rio와 São Paulo만 해도 벅찰 여행에 구태여 Bahia를 끼워넣게 만든 사람, 보사 노바의 추상성을 선취한 ‘20세기 브라질 음악의 배후’를 미리 품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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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질 여행을 앞두고 미뤄둔 카니발 얘기를 마저 썼다. 지난 번이 카니발의 이념이었다면 이번엔 카니발의 실천.
행진을 밀어가는 삼바 학교와 깃발의 일을 Paulinho Da Viola와 Cartola의 노랫말로 읽었다. 「카니발의 실천: 학교와 깃발은 명사로 된 청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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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면 Eliane Elias가 서울재즈페스티벌을 찾는다. 탁월한 피아니스트지만 나는 그를 브라질의 목소리로 먼저 떠올린다. 그래서 〈O Pato〉를 들었고, 더듬더듬 옛 노래들을 이어 떠올렸다. 오리에서 참새로, 참새에서 구슬 놀이로. 이 연쇄가 못내 예뻐 노랫말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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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는데 마키하라 선생님 요새 열일 중이셨구나😚 4월 1일엔 마츠다 세이코에게 준 곡이 45주년 기념 음반의 선공개곡으로 나왔다. 특유의 건전한 무드가 쇼와 이후의 세이코와도 썩 어울리는 느낌.
〈Shapes of Happin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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