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협찬
평소 작은 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랄 만큼 겁이 많은 편이지만, 오컬트 소재의 공포물은 또 좋아하는 편인데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명확했습니다. 공포가 철저히 컨텐츠의 영역에만 머물렀기 때문인데요.
저는 손 없는 날이고 뭐고, 이사도 그냥 제일 싼 날 잡아서 해버리고, 사주니 신점이니 남 얘기 듣는 건 흥미로워해도 정작 같이 갈래? 하면 나는 괜찮아, 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어떤 영적인 영역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것들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이상한 확신 때문에 철저히 컨텐츠로서만 소비해왔어요.
실화 바탕의 공포물이라 해도 책을 덮거나 영상을 끄는 순간 두려움은 순식간에 휘발되었고, 제 일상에는 한 톨의 영향도 끼치지 못했습니다.
무서운 영화나 책 때문에 악몽을 꾸거나 한 적이 없고, 찝찝한 기분이 오래 지속된 적도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딱히 잔상이 길게 남지 않는다는 거죠.
그런데 과장하려는 게 아니라, 『흉담』은 좀 달랐어요. 미신 조장하는 것 같고 일부러 호들갑 떠는 거 싫은데, 이 책에 대해선 실제로 뭔가 기이한 찝찝함을 계속 느꼈기 때문에 저도 의아해요. 제대로 읽기 전에도, 읽는 중에도요. 심지어 다 읽고 나서도 관련 글을 쓸 때마다 그 찝찝함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의 첫 장을 펼치면 독자는 경고문과 마주하게 됩니다.
절대 소리 내어 읽지 말 것.
절대 한밤 중에 읽지 말 것.
절대 자기 전에 읽지 말 것.
다 읽은 뒤에는 반드시 소금물로 입을 헹굴 것.
아무런 준비 없이 자정 가까이 책을 펼쳤던 저는 그 경고문만 읽고 책을 덮었어요. 평소 같으면 그냥 계속 읽었을 겁니다. 두려움을 증폭시키고 몰입시키는 장치 정도잖아요. 그런데 이유 모를 찝찝함 때문에 계속 읽기가 싫더라고요. 그리고 그날 밤, 가위에 눌렸어요. 기분이 썩 좋진 않았는데, 그것도 그럴 수 있겠거니 했습니다.
다음 날 조금 이른 저녁, 다시 책을 읽었고, 반은 장난, 반은 찝찝함 때문에 경고문대로 책에 소금도 좀 뿌리고 읽기 시작했는데요. 초반부 좀 지나기도 전에 왼쪽 어깨랑 뒷 목이 너무너무 무겁고 아픈 겁니다.
왜 갑자기 아프지, 싶었는데 얼마 뒤 소설 내용을 접하고 기분이 정말 찝찝해졌습니다. 책을 읽고 나면 제가 어떤 부분에서 기분이 나빠졌는지 아실 거예요.
단순한 심리적인 문제였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그렇지만 완독 후에도, 지금도 이 찝찝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지금도 어깨가 너무 아프거든요. 아까까진 안 아팠어요.
사실 내용 자체가 엄청 무섭거나 잔인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공포장르를 잘 읽지 않는 초보 분들도 잘 읽으실 수 있을 정도예요. 매니아 분들이면 내용 자체로 엄청 무서워하진 않으실 겁니다. 다만 이 이상한 찝찝함이 문제죠.
작가는 소설 주인공의 이름을 본인 이름과 동명으로 지어놨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실제 경험담이 바탕이라는 것을 도입부터 깔고 들어가요. 실화와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이는 이 메타소설에서 독자는 현실과 소설의 경계를 찾지 못하고 헤매게 됩니다.
한국 공포장르의 대표작가다운 쫀쫀한 호흡도 여전한데요. 미스터리, 스릴러, 오컬트가 한데 버무려져 자정 전까지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긴박한 전개는 독자를 숨 가쁘게 몰아붙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결말 부분보다는 초중반이 정말 힘 좋게 흘러갔다는 느낌이긴 한데, 단 두 세시간 만에 완독을 이끌어내는 가독성은 페이지터너로서 작가의 이름값을 증명하기엔 충분해 보여요.
『흉담』을 읽기 얼마 전에, 기리고라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어서 그런가, 그 드라마 생각도 좀 나더라고요.
어쨌든 공포소설을 좋아하신다면, 오컬트라는 소재에 흥미가 있으시다면 전건우 작가의 신작은 한번 읽어보실만 하다고 생각돼요.
대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미신을 조장하고 싶진 않은데요. 경고문을 되도록이면 지키셨으면 좋겠어요. 뭐 본인이 기가 세다, 난 미신 안 믿는다 하시면 알아서 하시고요. 저도 미신 딱히 안 지키는 사람인데.
저는 이제 이 책을 냉담해진 저에게 어머니께서 언젠간 돌아오라며 안겨주고 가신 성경책 두 권 사이에 끼워서 안 보이는 책장 어딘가에 넣어두려고 합니다. 그냥 너무 찝찝해서 그래요. 그리고 서평을 빨리 마치고 싶어요. 어깨가 너무 아프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