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이 이재명 정권 출범 1년을 맞아 성적표를 내밀었다. 점수는 무려 70점이다. 겉으로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며 짐짓 훈계를 늘어놓는 척했지만, 이 차갑게 식어버린 경제의 폐허 위에서 70점이라는 후한 낙제 면제점을 쥐여주는 그들만의 눈물겨운 우정 앞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진다..
양경수 위원장은 정부가 "증시 호황 등 성장 전략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참으로 기가 막힌 유체이탈 화법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증시가 호황이고 성장 중이라고?
모니터를 켜고 팩트를 건조하게 쳐다보라. 선거 직후 터져버린 환율과 주가의 대붕괴 속에서, 코스피 시장은 매수 사이드카 12번, 매도 사이드카 12번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도합 24번이나 시스템이 강제로 멈춰 서는 비명을 질렀다. 이름 모를 작전 세력이 장난질을 치는 코스닥의 3류 개잡주나 불법 도박판의 스캠 코인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요동치지는 않는다.
국가의 거시 경제 펀더멘털을 대변해야 할 코스피가 1,550원을 넘나드는 환율 공포 속에서 하루살이 잡주로 전락해 헐떡이고 있는데, 민주노총의 눈에는 이것이 '성장에 몰두한 호황'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경제의 기초적인 인과율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맹인이거나, 아니면 자신들의 약탈적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국가 경제가 멀쩡하다는 억지 최면을 걸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 '성장'이라는 가짜 전제를 깔아둔 진짜 목적은 그다음 대사에서 서늘하게 폭로된다.
"삼성전자 노조가 영업이익의 15%를 요구했는데, 나머지 85%는 어떻게 할 것인지 사회가 함께 논의해야 한다."
글로벌 기술 패권 전쟁의 최전선에서 기업이 피를 말리며 쟁취해 낸 이윤이다. 그 알량한 파이마저 뜯어먹겠다고 15%를 내놓으라 몽니를 부리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주주와 기업이 쥐고 있어야 할 나머지 85%의 금고 열쇠마저 '사회적 논의'라는 폭력적인 이름으로 압수하겠다는 선언이다. 리스크는 1그램도 지지 않은 자들이, 남이 차려놓은 밥상에 앉아 숟가락을 드는 것을 넘어 아예 식당 문서를 통째로 내놓으라 윽박지르고 있다.
이 서늘한 약탈의 논리가 어떻게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광장에 나올 수 있었는가. 다름 아닌 이재명 정권의 노동부 장관이 앞장서서 "초과이윤을 재분배하자"며 붉은 완장을 차고 멍석을 깔아주었기 때문이다.
정권이 사유재산권의 바리케이드를 허물어주고, 거대 노조가 쇠파이프를 들고 쳐들어가 기업의 금고를 터는 완벽한 2인 3각의 합동 작전. 민주노총이 이재명 정권에게 던진 70점이라는 성적표는, 사실 권력을 향한 비판이 아니라 "우리의 약탈을 합법화해 주어 고맙다"는 레드팀의 영수증이나 다름없다.
국가 경제의 척추인 코스피는 개잡주처럼 널뛰며 발작하고, 글로벌 자본은 썰물처럼 빠져나가는데, 안방에서는 권력과 노조가 손을 잡고 남은 기업의 살점을 어떻게 발라먹을지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낄낄대고 있다. 이 끔찍한 카르텔이 지배하는 나라에서 70점짜리 합격점을 받은 정부가, 과연 대한민국의 숨통을 몇 달이나 더 붙어있게 할지 서늘하게 지켜볼 일이다.
한성숙 총리 후보자가 네이버 대표 시절 연루된 각종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네이버 주가가 급락하고 있다.
하정우 전 AI미래기획수석은 업스테이지 자문 활동과 주식 보유에 대해 "네이버의 허락을 받았다"고 밝혔지만, 당시 네이버 대표이사였던 한 후보자는 관련 질의에 답변하지 않고 있다.
https://t.co/KOpw4csFpb
오늘 저는 『선관위 종합특검법』을 국민의힘 당론 발의했습니다.
투표용지 부족, 유효표의 무효 처리, 다수 지역의 득표자 수 일치 등 모든 선관위의 부정과 범죄에 대해서 성역 없이 수사하도록 했습니다.
6.3 지방선거 외에도 구체적인 단서가 발견되면 선관위의 비리와 불법은 모두 수사할 수 있습니다.
이재명 대통령 연수원 동기 위철환이 중앙선관위원장 대행을 맡았습니다.
때마다 달라지는 선관위 발표를 믿을 수 없고, 진상 조사를 빌미로 증거 인멸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민주당이 추천한 특검이 선관위를 수사한다면 ‘면죄부’만 줄 것입니다. 어떤 국민도 그런 수사 결과는 믿을 수 없습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에게 특검 추천권을 주고, 은폐와 증거 인멸 여부까지 성역 없이 수사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과 끝까지 함께 참정권을 지키겠습니다.
소송은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소송이 이 사태가 드러낸 참정권 침해와 민주적 정당성의 위기를 온전히 담아내거나 해결할 수 있는 그릇인지는 별개의 문제다.
#팩트파인더
[김변칼럼] 잠실 재선거 요구, 선거소송으로 담을 수 있는가? https://t.co/C3ZzTrLr04
입장을 바꿔 백번을 이해해 보려 해도, 이토록 상식과의 교집합이 완벽하게 멸종된 정치인이 역사에 또 있었나 싶다.
사회는 두 동강 났고 안보는 조롱당하며, 경제는 벼랑 끝에 섰다. 무너진 헌정 질서에 분노한 청춘들이 기어이 아스팔트 위로 내몰리고 있는 총체적 파국이다. 정상적인 국가의 지도자라면, 나가 있던 해외 순방마저 전용기를 돌려 즉각 귀국한 뒤 비상사태를 수습하고 고개를 숙여야 마땅할 절체절명의 시국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방의 이 참혹한 아수라장을 등 뒤로 한 채, 천연덕스럽게 짐을 싸서 기어이 7일간이나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타국 정상들 틈에 끼어 미소 짓는 사진 몇 장을 국내 언론에 타전한다고 해서,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이 끔찍한 현실이 '외교적 성과'로 세탁될 것이라 믿는다면 치명적인 오산이다. 불타는 조종석을 비우고 홀로 구명정에 오른 선장에게 환호를 보낼 승객은 없다.
비행기 트랩을 밟고 오르는 그의 가벼운 발걸음은, 국가의 붕괴 앞에서도 오직 자신의 체면과 도피처만을 찾는 무책임한 권력의 가장 완벽하고도 서늘한 뒷모습으로 역사에 영구히 박제될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불어나는 게 불법 사채 이자만 있는 줄 알았더니, 기어이 선관위가 그 상식을 깼다. 투표용지가 모자라 셔터를 내린 투표소가 하룻밤 새 140곳으로 자가증식했다.
물 닿은 그렘린이나 배양 접시 위 대장균도 이토록 맹렬하게 분열하진 않겠다. 국민 세금 수천억을 쥐여주고 투표용지를 찍어내라고 했더니, 정작 용지 대신 ‘투표 빵꾸난 투표소’를 윤전기로 펑펑 찍어내고 자빠진 이 경이로운 마술.
표를 세라고 앉혀 놨더니 매일 아침 자신들이 사고 친 투표소 개수나 경신하며 세고 있는 꼴을 보라. 이쯤 되면 단순한 무능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을 갉아먹으며 끝없이 자가증식하는 미지의 바이러스 수준이다. 변명할 때마다 숫자가 불어나는 저 끔찍한 화수분 앞에서, 분노를 넘어 인류 행정사에 영구 박제될 위대한 코미디를 직관하는 기분이다.
조금이라도 제 정신 박힌 정상적인 정권이라면, "다음 정류장은 벨기에입니다."따위의 관광버스 메시지가 아니라 적어도 이 정도 메시지는 남겼어야한다. 카피라고 쓰는 꼬라지가 니들 머리에선 절대 나올 수 없는 문장같지만 그래도 국민을 대표해가는 청와대잖냐;; 애정은 1도 없지만 그래도 작가된 입장에 모범답안 비슷한 걸 알려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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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방의 무거운 짐을 가슴에 안고, 자유와 동맹의 심장부로 향합니다."
환율과 물가의 파도가 국민의 일상을 위협하는 지금,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무겁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1호기가 지금 당장 벨기에 브뤼셀로 향해야만 하는 절박한 이유가 있습니다.
벨기에는 70년 전, 이름조차 낯선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피를 흘려준 거룩한 참전국입니다. 나아가 브뤼셀은 유럽연합(EU)과 나토(NATO)의 심장부로서, 미·중 패권 경쟁과 요동치는 글로벌 안보망 속에서 우리가 반드시 붙잡아야 할 경제·안보의 최전선입니다.
국내의 위기를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밖에서 무너진 수출의 활로를 뚫고 글로벌 공급망의 방파제를 단단히 쌓아 올려야 합니다. 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떠나는 길, 반드시 국민의 팍팍한 삶에 보탬이 될 가장 단단한 연대와 경제적 해답을 쥐고 돌아오겠습니다.
숨이 끊어졌던 동해의 '대왕고래'가 갑자기 다시 헤엄치기 시작했다. 한국석유공사가 영국 BP를 파트너로 끌어들이고, 이재명 정권이 ‘에너지 안보’라는 거창한 명분을 달아 프로젝트 재가동을 승인했다는 소식이다.
이 뉴스를 접하며 헛웃음을 넘어 서늘한 분노가 인다. 윤석열 정부가 이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더불어민주당이 어떻게 핏대를 세웠던가. 그들은 "국면 전환용 사기극", "밑빠진 독에 혈세 붓기"라며 온갖 조롱과 저주를 퍼부었고, 기어이 다수 의석의 폭력으로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적 탐사 사업의 숨통을 무참히 끊어놓았다.
상식적으로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일 년 사이 동해 바다 밑의 석유 매장 확률이 기적처럼 솟구치기라도 했는가?
만약 과거엔 없었던 확고한 과학적, 경제적 근거가 새로 등장했다면 당장 국민 앞에 투명하게 밝혀라. 만약 그런 새로운 근거도 없이 슬그머니 사업을 재개하는 것이라면, 민주당은 과거 윤석열 정부의 치적을 흠집 내기 위해 국가의 중차대한 에너지 안보 사업을 인질로 잡고 몽니를 부렸음을 스스로 시인하는 꼴이다.
"그때는 정략적으로 반대했지만, 이제 우리가 권력을 쥐었으니 다시 파보겠다"는 얄팍한 속내. 최소한의 인간적 염치가 있다면, 국가 백년대계를 진영 논리로 짓밟았던 그 파렴치한 과거에 대해 국민 앞에 석고대죄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물론 그들에게 사과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그저 어제는 사기극이라며 난도질했던 대왕고래를 오늘은 에너지 안보라며 치켜세우는 저 기괴한 인지부조화 자체가, 그들의 정치적 밑천이 얼마나 얄팍하고 위선적인지를 폭로하는 가장 완벽한 자술서일 뿐이다. 오른쪽 주머니의 고래는 적폐이고, 왼쪽 주머니의 고래는 국익인가. 이 역겨운 내로남불 앞에서 진정으로 멸종되어야 할 것은 대왕고래가 아니라, 국가를 장난감처럼 쥐고 흔드는 낡은 정치꾼들이다.
이란 외무부가 다급하게 마이크를 잡았다. 미군 아파치 헬기와 이란 무인기(드론)가 충돌한 직후, 미군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이란 남부를 폭격해 버리자 융단폭격을 맞은 이란이 "고의적인 공격이 아니었다", "의도치 않은 우발적 사고"라며 황급히 꼬리를 내린 것이다.
이 눈물겨운 이란의 항복 선언을 듣고 있자니, 묘한 기시감과 함께 서늘한 헛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의성이 없다." 참으로 익숙한 변명 아닌가. 그렇다. 불과 얼마 전, 대한민국 상선에 이란의 대함 미사일 두 발이 연달아 꽂혔을 때 이재명이 천연덕스럽게 내놓았던 바로 그 기적의 알리바이다.
하지만 두 사건의 군사적 본질을 차갑게 대조해 보면, 이재명 정권이 연출한 블랙코미디는 한층 더 기괴하고 역겹게 다가온다.
미군 헬기와 부딪힌 드론은 기계적 결함이나 조종 미숙이라는 '우발적 사고'의 여지라도 아주 희박하게나마 주장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우리 상선에 꽂힌 것은 '대함 유도 미사일(Guided Missile)'이었다. 미사일은 결코 바람을 타고 우연히 날아가지 않는다. 레이더로 표적의 좌표를 획득하고, 조준(Lock-on) 상태를 유지하며, 최종적으로 사격 통제 장치의 발사 버튼을 직접 눌러야만 날아가는 무기다. 심지어 1분 간격으로 두 발이 연달아 배의 선미를 정확히 때렸다. 군사학적으로 이는 100% 완벽하게 통제된 '고의적 조준 타격'이다. 세상 어떤 군대에서도 유도 미사일 두 발이 실수로 발사되어 같은 타깃을 맞히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후에 이란이 우리 정부를 향해 먼저 나서서 "고의가 아니었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해명한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던가? 없다. 가해자는 오만하게 팔짱을 끼고 침묵하는데, 정작 미사일을 처맞은 피해국의 정부가 나서서 "이란이 인정하지 않으니 고의성을 알 수 없다"며 굽신거렸다. 스스로 국가의 뇌를 비우고 가해자의 심리 치료사를 자처한, 전무후무한 외교적 자해극이었다. 우리 상선 보호보다, 반미 전선의 우방인 이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숭고한 가치였던 셈이다.
반면 미국의 방식은 달랐다. '실수'일 여지가 조금이라도 있는 드론 충돌 앞에서도, 미국은 이란의 내면적 의도 따위를 자비로운 독심술로 헤아려주지 않았다. 군 통수권자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이란 영토에 자위적 폭격을 쏟아부어 버렸다. 압도적인 물리적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이란은 헐레벌떡 무대 위로 기어 나와 "제발 오해하지 말라, 고의가 아니었다"며 납작 엎드려 평화를 구걸했다.
이것이 국제 정치의 잔혹하고도 정직한 룰이다. 국가의 평화와 안전은 상대의 속마음을 변호해 줄 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내 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이상의 뼈아픈 피를 흘리게 된다는 '공포'를 각인시킬 때만 유지된다.
이재명이 양심이 있거든 지금이라도 sns수정하길 권한다.
"한국인을 고의적으로 건드렸다고 시인해야 패가망신한다." 쓰고보니 더 짜치다.
일개 커피 프랜차이즈의 우연한 단어 조합을 '추측'하여 광주를 모독한 대역죄라며 기업 총수의 목줄을 죄었던 자들이다.
그렇다면 수년에 걸쳐 수백만을 학살한 적국의 선동 구호를, 그것도 호국보훈의 달에 국가 기관이 앞장서서 '공식적'으로 영령의 제단 위에 바치는 이 끔찍한 헌정 유린은 도대체 무엇이라 불러야 하는가.
마케팅 문구 하나에 불매의 횃불을 치켜들었다면 이제 차갑게 답해보라. 이 거대한 국가적 모욕 앞에서 진짜 무릎 꿇어야 할 사과의 '주체'는 누구이며, 국민이 뼛속까지 '불매'하고 불복종해야 할 대상은 과연 어디인가.
<문재인 전 대통령께>
이 글 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눈을 비비고 작성 날짜를 3번 확인했습니다. 이 시국에 책소개는 정말 당신의 뜻입니까? ‘농촌의 꽃나무’라고요? 망가진 민주주의를 슬퍼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그곳 농촌에는 들리지 않는 것입니까?
기회는 평등하지 않았고, 과정은 공정하지 않았으며 결과도 정의롭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선거 직후 전직 대통령의 첫 메세지는 이와 관련된 것이었어야 했습니다.
‘진영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상식을 말하던 문재인과 지금의 문재인은 다른 사람입니까? 혹시 살아있는 권력과 진영의 비판이 두려우신가요? 국민이 두렵지는 않은지, 비겁한 침묵에 따르는 부끄러움은 없으신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묻습니다.
또 이상한 쪽으로 불이 번지는 거 같아 글 하나를 추가해본다.
보수 우파의 진영으로 넘어와서, 과거 내가 한때 머물렀던 좌파의 언어들을 한 걸음 떨어져 찬찬히 뜯어볼 때면 불쑥 서늘한 자괴감이 밀려올 때가 있다. '내가 대체 왜 저런 중2병 허세 가득한 문장들에 가슴이 뛰었었나' 하는 뼈아픈 부끄러움이다.
유시민 류의 스피커들이 즐겨 쓰는 그 화려한 말장난들을 보라. 그들은 툭하면 '배신', '배반', '변절', '민족의 적' 같은 피비린내 나는 비장한 단어들을 동원해 상대를 악마화한다. 하지만 세상을 어른의 건조한 눈으로 보면, 그것은 정치나 철학이 아니라 그저 촌스럽고 조잡한 '무협지' 수준의 감성 팔이에 불과하다.
그들의 세계관 속에서 인간은 늘 숭고한 영웅 아니면 흉악한 배반자로 나뉜다. 하지만 역사의 맨얼굴은 그들이 쓰는 단어들처럼 결코 거창하지 않다. 그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척결을 외치는 과거의 '친일파'를 예로 들어보자. 이건 좀 아무리봐도 아니다 싶은 극소수의 악질들을 제외하면, 당시 친일파라 불렸던 이들의 대부분은 그저 무너진 제국에서 나와 내 가족이 먹고살기 위해 가장 합리적이라 믿었던 '최선의 생존'을 선택한 평범하고 세속적인 개인들이었을 확률이 높다. 거창한 이념이 아니라, 얄팍한 밥그릇과 생존 본능이 그 궤적의 진짜 본질이다.
현대의 정치인들이 내리는 결정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상계엄 사태 전후로 한동훈 대표가 보여준 행보를 두고, 우리 보수 내부에서도 그를 '진영의 배신자'라며 핏대를 세우고 사생결단을 내려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를 그렇게 거창한 악당이나 역사적 배반자로 매도할 생각이 없다.
감정을 빼고 상황을 차갑게 쪼개보자. 당시 윤석열 대통령과 극심하게 척을 지고 있던 벼랑 끝의 상황에서, 한동훈이라는 정치인이 쥔 계산기에서 도출될 수 있는 유일한 생존법은 '계엄 해제 요구'와 '탄핵 찬성'이라는 카드뿐이었을 것이다. 거기에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 수호의 결단이나, 반대로 진영을 팔아먹으려는 악마적인 배신극이 있었겠는가. 나중에야 그럴싸한 헌법적 핑계와 명분을 사후에 가져다 붙였겠지만, 결국 그 순간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생존의 길'을 주판알 튕기듯 선택한 것뿐이다.
솔직해지자. 나라고, 혹은 분노하는 당신이라고 다를까. 나 역시 시간을 되돌린다면 절대 하지 않을 유치하고 얄팍한 판단을 내려놓고선, 나중에 온갖 그럴싸한 논리로 내 선택을 정당화하고 합리화했던 적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세상에서 멸절되어야 할 악당인가? 아니다. 자려고 누웠다가 문득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려 '이불킥' 한 번 세게 날리고, 다음부터는 그런 멍청한 짓을 안 하면 그만이다. 인간이란 원래 그토록 남루하고 이기적이며 불완전한 존재다.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 얄팍한 셈법을 굴린 그를 보고, "그래도 쓸모가 있으니 계속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신뢰에 흠집이 났으니 지지 철회할 것인지"는 유권자 개개인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몫이다.
제발 부탁이건대, 정치인을 내 부모를 죽인 철천지원수라도 되는 양 무협지 찍듯 저주하지 말자. 반대로 세상에서 둘도 없는 애인이라도 되는 양 모든 흠결을 감싸며 맹목적으로 보호하려 들지도 말자. 거창한 이념과 '배신'이라는 포장지를 벗겨내면, 그들도 그저 살기 위해 얄팍한 주판알을 튕기는 우리와 다를 바 없는 평범하고 세속적인 직업인들일 뿐이다.
정치를 피 튀기는 무협지나 맹목적인 종교의 제단에서 끌어내려, 차가운 일상과 이성의 영역으로 되돌려놓는 것. 그것이 내가 좌파 특유의 그 중2병 스러운 허세와 수사학을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린 진짜 이유다.
나는 오랫동안 보수 우파 진영 내부에서 맴돌던 '부정선거론'을 철저히 경계하고 선을 그어왔던 사람이다. 근거 잃은 음모론은 보수의 차가운 이성을 마비시키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선거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유해한 바이러스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 3일, 대한민국 지방선거 본투표일에 벌어진 일련의 참혹한 촌극들을 지켜보며, 나는 내 오랜 신념을 잠시 유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는 서늘한 자괴감에 빠졌다. 단언하건대, 지금 이 나라에 부정선거의 망령을 부활시키고 그 음모론에 끊임없이 땔감을 공급하는 진원지는 보수 유튜버도, 극성 지지자들도 아니다. 다름 아닌 대한민국 선거관리위원회, 바로 그들 자신이다.
범죄의 세계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너무 완벽한 우연'과 '경이로운 무능'의 결합이다. 이번 선거에서 선관위가 보여준 행정은 무능을 넘어선 하나의 기괴한 예술이었다.
한 유권자가 두 번이나 투표를 시도했음에도 선관위는 까막눈처럼 이를 잡아내지 못했다. 사전선거에선 사촌의 신분증을 들고 투표소에 갔는데, 수백억 혈세를 들인 최첨단 지문 인식 기기는 천연덕스럽게 ‘본인’으로 인증하고 패스시켰다. 동네 헬스장 출입기만도 못한 이 허접한 깡통 시스템 앞에서, 대중이 투표함의 바닥을 온전히 신뢰하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오만한 지적 모독이다.
이 뚫린 바닥 위로 소름 돋는 '우연'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 용지가 모자라 주권자가 발길을 돌려야 했던 14곳의 투표소는 송파, 강남 등 대부분 우파 진영의 지지세가 강한 텃밭에 집중되어 있었다. 선관위는 투표율을 예측하지 못해 절반만 인쇄했다고 변명했지만, 하필이면 좌파 권력에 불리한 지역에서만 핀셋으로 집어낸 듯 용지가 동나는 현상을 단순한 '행정 착오'로 넘기기엔 국민의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다.
이 난장판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서늘한 불기둥이었다. 투표가 종료되고 용지 부족에 대한 빗발치는 항의가 쏟아지던 저녁 7시경. 경기도 과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뒤뜰에서 돌연 원인을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발화 지점은 외부인의 침입이 철저히 통제된 헌법기관 부지 내부였다. 습도가 66%에 달해 자연 발화 가능성이 제로에 수렴하는 축축한 저녁, 굳게 닫힌 선관위 뒷마당에서 하필 개표 직전에 피어오른 이 불길을 대중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나는 이것이 조직적으로 설계된 완벽한 부정선거라고 대놓고 단정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이 기괴한 우연의 겹침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면, 바다 건너 어느 독재 국가가 남긴 참혹한 궤적이 자연스레 오버랩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바로 이재명과 좌파 진영이 낭만화하던 베네수엘라다.
니콜라스 마두로 정권 치하의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2020년 총선 직전 선관위 메인 물류 창고에서 원인 모를 대형 화재가 발생해 4만 9천 대가 넘는 전자 투표 기기가 잿더미로 변했다. 행정의 마비를 핑계로 반대파의 표를 말려 죽이고, 시선이 쏠린 곳에는 불을 질러 증거를 은폐하는 것. 그것이 권력을 연장하려는 독재 정권의 가장 클래식한 매뉴얼이었다.
지문 인식마저 뚫려버린 먹통 시스템, 우파의 텃밭에서만 증발해버린 투표용지, 그리고 개표 직전 솟아오른 선관위 뒤뜰의 불길. 이 거대한 인지부조화의 퍼즐 조각들을 쥐여주고서 대중에게 "그저 우연과 행정 착오일 뿐이니 불순한 상상을 하지 말라"고 훈계하는 것은 무책임한 폭력이다.
이재명이 대낮의 투표소에서 "난 상관없으니까"라며 천연덕스럽게 룰을 짓밟았을 때 선관위는 비굴하게 엎드려 룰북을 찢어주었다.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는 굽신거리는 심판이, 평범한 주권자의 표는 무능과 우연을 핑계로 허공에 날려버린다.
나는 여전히 부정선거라는 파국적 결론만큼은 피하고 싶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나라에 부정선거라는 불신의 망령이 들불처럼 번져나간다면 그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선관위의 몫이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며 룰을 포기하고 스스로 우연과 무능의 굿판을 벌인 심판. 그들이 과천 뒤뜰에서 피워 올린 저 서늘한 매연이, 결국 이 나라 민주주의를 베네수엘라의 잿더미 속으로 밀어 넣는 가장 치명적인 도화선이 되고 있다.
어제는 온통 선거의 소음과 피 말리는 개표의 긴장감으로 가득 찬 하루였다. 아침이 되서야 판이 뒤집히고 작은 격차가 빚어내는 아수라장과 선관위의 기괴한 파행이 교차하는 그 소란스러운 링 밖에서, 나는 굳이 사적인 감정을 광장에 꺼내놓지 않고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그 무거운 침묵의 이면에서, 나는 어제 하루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는 누릴 수 있는 가장 깊고 묵직한 행복을 남몰래 삼키고 있었다.
발단은 메신져로 당도했던 박상용 검사의 메시지였다. 이재명의 가장 깊고 어두운 심연을 파헤치다, 기어이 '직무 정지'라는 시간의 감옥에 갇혀버린 그 고독한 검사. 어제 선거를 다녀와 쓴 글에 이 나라의 병리에 큰 깨달음과 위로를 얻었다며 정중한 인사를 건네왔다. 방금 나는 그가 보내온 명함의 번호로, 요란한 동정 대신 담백하고 정중한 연대의 문자를 조심스레 남겨두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종종 캄캄한 허공에 대고 홀로 돌을 던지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권력의 오만과 맹목적 광기에 맞서 매일같이 차가운 활자를 벼려내지만, 이 견고하고 야만적인 벽이 과연 내 알량한 펜촉 하나로 긁히기나 할까 하는 서늘한 무력감이 찾아오는 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어제, 권력의 린치를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 박상용 검사로부터 날아온 문자들은 내 안의 그 오랜 무력감을 단숨에 증발시켰다.
범죄자가 떵떵거리며 권력을 쥐고, 그 범죄를 수사한 공직자가 도리어 행정적 단두대에 올라 유배당하는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 그 광기의 한복판에서 가장 외롭고 시린 싸움을 하고 있을 사람에게, 모니터 뒤에서 두드린 내 보잘것없는 글 몇 줄이 아주 작은 온기와 등기대가 되어주었다는 사실. 그것은 내가 지난 몇 년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글을 쏟아낸 그 어떤 날 선 촌철살인보다도 벅차고 거룩한 보상이었다.
이재명이 대낮의 투표소에서 조롱하듯 법을 짓밟고, 텅 빈 깡통들이 진영의 간판을 달고 승리하는 기괴한 시대. 비정상이 정상을 조롱하고, 떼법이 법치를 능멸하는 참담한 암흑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진실을 지키려는 고독한 개인들이 이렇게 활자 너머로 서로를 알아보고 묵묵히 연대하고 있는 한, 이 싸움은 결코 저들의 뜻대로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선거라는 거대한 소란함 뒤로, 외로운 검사에게 건넨 짧은 문자와 함께 참으로 완벽하게 충만하고 행복했던 하루가 그렇게 조용히 저물어갔다. 나는 오늘도 캄캄한 허공을 향해, 가장 서늘하고도 따뜻한 돌을 던질 채비를 한다.
아니다. 우선 밤새 롤러코스터를 탄 댓가로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겠다
P.s:박상용 검사님에게 게시글 개시여부를 여쭤보느라 삭제후 재게시했음을 양해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의 수준>
우리가 자랑스러워하던 대한민국의 수준이 처참해졌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투표를 제대로 못하는, 듣도 보도 못한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사전투표에서는
권력자들이 투표내용을 공개했다. 그러더니 본투표에서는 투표용지 부족사태가 드러났다. 이승만 시대에도, 전두환 시대에도 없던 일이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그런데도
중앙선관위는 몹시 안이하고 태평하다. 선관위 사무총장은 국민께 '혼란과 심려'를 드렸다고 사과했다. 이 사태가 '혼란과 심려' 정도의 문제라는 인식이 한심하고 뻔뻔하다. 중앙선관위원장은 선관위의 '권한의 한계' 뒤에 숨으려 하고, 청와대는 '선관위가 할 일'이라고 떠넘긴다. 모두가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것 같다.
헌법은 41조 국회의원선거 조항, 67조 대통령선거 조항에서 선거의 4대 원칙을 분명히 규정했다. 보통, 평등, 직접, 비밀선거의 원칙이다.
보통선거는 일정한 연령을 넘으면 모든 국민이 투표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평등선거는 누구나 1인1표의 투표권을 갖는다는 의미다. 직접선거는 유권자 본인이 직접 투표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밀선거는 투표내용이 공개돼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이번 사태는 선거의 4대 원칙 가운데 적어도 3개를 깨뜨린 헌법위반이다. 투표용지 부족은 보통선거, 평등선거의 원칙을 위반했다. 기표내용 공개는 비밀선거 원칙에 어긋난다.
이렇게 위중한 위헌사태 앞에서 국가기관, 그것도 헌법기관들이 안이하고 태평한 태도를 보이는 것. 그것이 투표용지 부족보다 더 처참한 대한민국의 수준이다.
<금기는 깨졌다>
파괴된 민주주의 앞에 침묵하는 광주.
그 광주를 무기처럼 써먹었던 민주당.
당신들은 자격이 없다. 더이상 민주주의를 팔지도 입에 담지도 마라.
평생 독재와 싸워왔다고 자랑하던 원로들.
장사 그만큼 했으면 되었다. 이제 독재권력의 노견 역할에 충실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