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의 중학생들이 가위바위보를 하며 낄낄거린다. "안 내면 이재명!"
이 15초짜리 숏폼을 두고, 좌파 매체와 지식인들이 사색이 되어 비상벨을 울린다. 촛불 부모 밑에서 자란 순수한 아이들이 '극우 알고리즘'에 세뇌당해 괴물로 변하고 있단다. 입시 위주의 교육 탓이라며 교육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거창한 훈수까지 등장했다.
이 요란하고 작위적인 진단서 앞에서, 실소조차 길을 잃는다.
팩트를 나란히 병치해 보자.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10대 청소년들에게 멸칭으로 불리며 조롱당하지 않았던 권력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었던가. 박통, 전대갈, 물태우, 쥐박이, 닭근혜. 교실 뒷자리에서 당대의 권력을 우스꽝스러운 별명으로 부르며 희화화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던 10대 특유의 맹랑한 반항이자 유희였다.
그런데 유독 이재명을 향한 아이들의 조소 앞에서는 '극우의 세뇌'라는 무시무시한 딱지를 붙인다. 내 편을 조롱하면 알고리즘에 오염된 일베고, 남을 씹어대면 깨어있는 촛불 청소년인가.
이 지독한 오만함을 찢어버리기 위해, 굳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그들의 영원한 멘토, 유시민이 과거 국정교과서 사태 때 뱉었던 문장을 그대로 끌어오면 아주 우아한 카운터펀치가 완성된다.
당시 유시민은 이렇게 일갈했다. "우리는 유신체제를 찬양하는 국정교과서로 배웠지만, 쉬는 시간에는 '이건 독재야'라고 말했다. 국가가 역사를 주입하겠다는 건 쓸데없는 짓이다."
참으로 빛나는 통찰이다. 그런데 이 논리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하면 완벽한 블랙코미디가 탄생한다. 당신들 586세대는 서슬 퍼런 군사 독재의 국정교과서로 세뇌를 시도해도 끄떡없이 진실을 꿰뚫어 보던 위대한 지성들이고, 지금의 10대와 20대는 고작 인스타그램 알고리즘 몇 번에 영혼을 빼앗기는 백치들이란 말인가.
자신들은 국가 권력의 주입식 교육도 튕겨내는 독립적 주체이면서, 지금의 청년들은 알고리즘에 조종당하는 수동적인 아바타로 취급한다. '촛불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라는 낯뜨거운 수식어에는, 자식의 정치적 성향마저 자신들의 소유물로 여기는 소름 돋는 선민의식이 들러붙어 있다.
청년들이 좌파를 혐오하는 진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툭하면 가르치려 들고, 자신들의 위선에 냉소를 보내면 '세뇌당했다'며 정신병자 취급을 하는 꼰대들의 납작한 계몽주의.
아이들은 알고리즘에 속은 것이 아니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면서 뒤로는 온갖 사법 리스크를 달고 사는 전과자 정치인을 결사 옹위하는 진영의 인지부조화를 본능적으로 간파한 것이다. 그들은 그저 낡고 위태로운 권력의 쌩얼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의 '밈(Meme)'으로 소비하며 비웃고 있을 뿐이다.
권력은 대중의 조롱을 피할 수 없다. 그것은 권좌의 숙명이다. 그러나 자신을 향한 조롱을 성찰하는 대신, 알고리즘을 탓하며 청년들의 뇌 구조를 통제하려 드는 순간 그 집단의 정치적 생명력은 끝난 것이다.
자신과 다른 목소리를 교정해야 할 오류로 취급하는 사회는 필연적으로 독재를 잉태한다. 놀이터의 농담마저 이념의 잣대로 검열하려는 권력에게, 과연 미래 세대와 공존할 내일이 남아 있을 것인가. 웃음을 잃어버리고 가르치려만 드는 빈곤한 권력의 끝은, 언제나 지독한 고립과 파산뿐이다.
금일 정유미 검사장이 검찰 내부망에 올리신 글
-
이화영 전 부지사의 국민참여재판 결과에 대해, 수원지검은 ‘쪼개기 항소’를 결정했습니다.
현 대통령과 직접 연결이 되는 ‘쪼개기 정치자금 후원’에 대한 무죄판결에는 항소를 하지 않고, 공소기각 판결이 된 북한 불법 조경수 지원에 대해서만 항소를 하기로 했다지요.
그 결정을 전해 듣기 전에 저는 ‘수원지검에서 무죄 및 공소기각 부분에 대해 항소하기로 하고 대검을 통과하였으며 법무부에 해당 보고서를 올려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다’는 소식을 몰래 전해 듣고 안도하고 있었습니다. 저와는 무관한 사건이라 어쩌면 주제넘다 할 수 있겠지만, 검찰이 대장동 항소포기와 같은 치욕을 이 사건에서는 되풀이하지 않겠구나 싶어 기뻤던 것이었지요.
그러나 결국 일부 항소, 일부 포기하는 ‘쪼개기 항소’를 하기로 한 것이 알려진 이후, 아마도 언론에서 수원지검에 위 내용에 대해 많은 문의가 있었겠지요. 그래서였을까, 수원지검에서는 ‘항소범위는 수원지검 공소유지팀 및 지휘부에서 결정하고 대검에 건의하여 특별한 내용변경 없이 승인된 사안으로, 대검이나 법무부로부터 항소 포기 범위에 관하여 지시를 받거나 함구령이 내려진 바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하였더군요.
내부사정을 전달해 준 검사가 잘 못 알았거나 아니면 거짓말을 했거나, 아니면 수원지검에서 거짓 입장을 발표했거나, 어느 쪽일까. 왜일까. 검사가 굳이 거짓말을? 도대체 뭐가 진실일까..... 많은 의문이 들던 중 저는 어이없는 추론이기는 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했습니다.
아마도 항소여부에 대해 복수 안을 만들어 누군가 선택할 여지를 주는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아닐까.
1안 : 모두 항소포기, 2안 : 일부 항소포기, 일부 항소, 3안 : 모두 항소.
공판검사들이 스스로 사건을 검토하여 무죄검토보고서 및 공심을 만들었다면 이런 식의 보고서를 작성하였을 리는 없지만, 상부에서 지시했다면 가능한 일일 것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복수안을 제시한 보고서를 만들고 그 중 한 가지 안을 대검이나 법무부에서 선택한 것이라면, 제게 소식을 전해 준 검사도, 수원지검도 새빨간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애매하고 비겁하지만 말입니다.
수원지검 내부 사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순전히 저의 추론 위에 주장을 이어간다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리고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그래도 이렇게나마 끄적여봅니다.
검사는 사건에 대해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검사의 본질적 역할인 수사와 공소유지에 복수안을 제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검사가 ‘1안 무혐의, 2안 기소유예, 3안 기소’와 같은 의견을 붙여 결재자에게 사건 결재를 상신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또는 검사가 기소한 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1안 징역 10년, 2안 무죄’라고 구형하는 상황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기소를 할지 무혐의를 할지, 항소를 할지 말지 같은 검사의 본질적 역할에 대해 그 판단을 판사건 상사건 간에 타인에게 맡긴다는 것은 더 이상 검사로서의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복수안을 포함한 보고서는 예컨대, ‘빈 사무실 활용방안, 1안 도서실, 2안 휴게실, 3안 창고’ 같은 안건에나 작성하는 겁니다. 사건에 관한 결정이 아니라요.
......저의 추론이 그저 망상에 그치는 것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 직접 공판에 관여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배심원단에게 보다 정확히 사건에 대해 잘 설명하고 변호사나 피고인의 무리한 주장에 즉시 대응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무죄나 공소기각 외에 다른 판단이 나오지 않았을까. 그리고 쪼개기 항소 따위의 애매하고 말랑한 결정을 하지는 않았겠지. 법무부장관은 왜 사건을 가장 잘 아는 검사들을 공판에서 배제한 것일까. 아니, 처음부터 이런 애매하고 말랑한 결정을 쉽게 조율하기 위해 수사검사들을 배제할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대장동 사건이라는 권력자의 대형 부패사건에 대해 검찰이 비굴하게 항소를 포기하고 굴복한 순간의 그 충격과 치욕감을 저는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사태에 항의하다가 많은 검사장, 지청장들이 추풍낙엽같이 날아간 지가 아직 일 년도 안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도 민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 위례사건, 쌍방울 김성태의 이재명 현 대통령에 대한 쪼개기후원 사건 사건 등, 이전 같으면 상상도 못했을 항소포기가 줄을 잇고 있네요.
누군가는 싸우고, 누군가는 내쳐졌는데, 누군가는 계속 굴욕을 생산하고 있으니,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싸우고 있는가 싶어 조금은 무력하고 힘이 빠지는 요즘입니다.
이틀 전 청와대. 이재명이 마이크를 잡고 1,000조 원짜리 메가 프로젝트를 쏘아 올렸다. 하이라이트는 호남을 겨냥한 400조 원 규모의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다가올 8월 전당대회를 앞두고 텃밭의 표심을 묶어두려는 화려한 불꽃놀이였다. 권력의 부름에 불려 온 글로벌 기업 총수들은 그 웅장한 청사진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훌륭한 병풍이 되어주었다.
딱 이틀이 지났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SK하이닉스가 슬그머니 '정정 증권신고서'를 띄웠다. 권력자의 거창한 선언에 대한 자본시장의 답변은 한 치의 오차 없이 건조했다.
"서남권 부지는 확정되지 않았다. 규모와 일정은 달라질 수 있다. 장래 시장 상황과 전력·용수 등 여건에 따라 실현되지 아니할 수도 있다."
행정지도로 둔갑한 정치적 청구서에 멱살을 잡혔던 주식회사가, 투자자들의 엄격한 감시를 받는 공시 제도의 뒤로 숨어 다급하게 구조 요청을 타전한 셈이다.
여기에 삼성전자 전영현 부회장이 묵직한 팩트의 쐐기를 박았다. "호남 반도체 단지에는 원전 확대를 추진해야 한다."
이재명이 며칠 전 트위터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부르짖던 'RE100'과 '풍부한 태양광' 몽상에 대한 가장 우아하고 치명적인 반박이다. 날씨 따라 출력이 널뛰는 태양광 패널 따위로는 24시간 단 0.1초의 정전도 허락하지 않는 팹의 심장을 감당할 수 없다는 기업가이자 공학자의 선전포고다. 거대한 원자력 발전소의 기저 전력이 없다면, 반도체 공장 역시 텅 빈 콘크리트 상자에 불과하다는 이치를 권력자의 면전에 대고 똑똑히 가르쳐준 것이다.
이 두 장면을 나란히 병치해 보면, 2026년 대한민국 경제가 얼마나 작위적인 촌극으로 굴러떨어졌는지 투명하게 폭로된다. 이재명은 책상 위 행정지도에 선을 그어 수백조 원을 배분하며 표밭을 다진다. 반면 자본과 공학은 그 모래사막 위에 반도체를 구울 전기도, 초순수도, 당장의 고객 수요도 없다고 조용히 비명을 지른다. 정치인이 입술로 남발한 가짜 어음을, 시장이 팩트라는 도장으로 깔끔하게 부도 처리해 버린 것이다.
우리는 이 엇갈린 텍스트의 행간에서 아주 무겁고 익숙한 범죄의 뼈대를 발견하게 된다.
기업들이 공식적인 문서와 엔지니어의 입을 통해 인프라와 수요가 담보되지 않아 실행이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수백조 원의 자본을 책임지는 주식회사가 스스로 투자의 타당성에 붉은색 경고등을 켜둔 것이다. 그런데도 만약 권력이 자신의 표 계산기를 위해 이 몽상을 기업에 강제로 집행하도록 윽박지른다면 어떻게 되는가.
시장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권력의 완장으로 짓누르고, 글로벌 기업의 대차대조표에 치명적인 손실 리스크를 억지로 떠안기는 행위. 우리는 이것을 경제 정책이라 부르지 않는다. 법전은 이 낡고 오만한 폭력을 정확히 '직권남용'이라 호명한다.
선관위 직원 출신이 수의계약 업체에 채용된 사실이 최초 확인됐다.
A업체가 2022년 10월 26일에 중앙선관위와 수의계약을 체결했고,
일주일 뒤 A 업체는 선관위 출신 B씨를 수석부장 직위의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B씨는 A업체로부터 8개월간 총 5,900만 원을 지급받았다. 월 700만 원이 넘는 금액이다.
통상 일주일 이상 걸리는 채용 기간을 고려했을 때, 수의계약 진행과 채용 절차 시기가 맞물렸는지 확인이 필요하다.
A업체의 드러난 수의계약 외에도 어떤 추가 이권이 있었는지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
선관위 전·현직 직원은 물론, 친·인척 채용, 친구·지인 찬스 등 유사 채용 사례가 추가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입맛에 맞는 특검 구하느라 머리 굴릴 시간 없다. 당장 특검하라!
권창영 종합특검? 죽은 사건 되살리는 야당탄압 ‘좀비 특검’, ‘망나니 특검’ 아닌가.
내란특검이 다 털고도 아무런 조치 못한 사안을 “내란특검이 수사한 게 없다”는 거짓말을 하다 내란특검에게 반박까지 당해 사법 코미디를 연출한다.
기소를 강행한다면 특검팀 전원 법왜곡죄로 즉각 고소하겠다.
다음 총선 공천이 불분명한 서영교는 천벌 따위를 두려워할 겨를이 없다.
야당의 몫이어야 할 법사위원장직에 여당 의원, 그것도 정치적 생명연장을 위해 물불 안 가릴 저런 물건을 앉힌 이유는 특검 등을 이용해 이재명 재판취소를 강행하겠다는 의지, 결국 ‘독재선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눈치를 보지 않고 독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판에 서영교만한 말은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더러운 수는 결국 패착으로 남을 것이다. <역대급 국민 비호감 덩어리>가 진두지휘하는 전투는, 지금도 간당간당한 이재명과 민주당 지지율 그래프를 단번에 무너뜨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낡고 병든 민주당의 꼼수. 국민들은 모두 알고 있다. 99도의 뜨거운 물은 곧 100도를 넘어 그들을 심판할 것이며, 호시절 던진 카드가 고작 서영교였다는 역사는 코미디로 기록될 것이다.
* 하긴 지금 저 한심한 민주당에 비호감 덩어리 아닌 인물이 몇이나 있겠냐마는...
배재고 일부 학생들의 스타벅스 구호는 ‘매우 부적절’했다. 다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 사태에서 가장 징그럽고 혐오스러운 대목은 학생들의 부적절한 응원 구호가 아니라, 철없는 아이들의 실수를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정치판으로 끌고와 마녀사냥 중인 어른들의 사악함이다.
스타벅스를 향한 권력자들의 난도질이 부당하다 판단한 아이들의 서투른 구호였을 것이다. 사기업을 무너뜨리려는 억지스러운 어른들의 공격과 정치인들의 내로남불을 참지 못한 학생들의, 미성숙하지만 나름의 정의감 표현이었을 것이다.
잘못했으면 사과해야 한다. 이미 몇 차례 공개적으로 사과를 했지만, 당사자들은 재차 요구할 수도 있다. 다만 가장 큰 책임은 언제나 어른들에게 있다. 아이들만 죽일 듯이 몰아세울 일이 아니라, 이런 혐오의 시대를 만든 어른 모두의 성찰과 반성의 시간이 되어야 한다.
아이들의 인생을 폭파시키려는 서슬 퍼런 칼질과 조직적인 신상털기가 시작되었다. 늘 약자에게 더 가혹한 손가락질은 기시감 투성이고, 어느 권력자의 실제 범죄와 끔찍한 패륜은 그저 젊은 시절의 실수로 넘기는 온정을 발휘했던 이중잣대는 씁쓸하기만 하다.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들이 난무한다. 미성년 아이들에게 레떼루(낙인)를 붙여 도덕적 전과자라도 만들 기세다. 자신들 역시 수십 년간 ‘빨갱이 딱지’에 시달리며 멸칭의 위험함을 겪어본 자들이 이제는 같은 방식의 총질을 타인, 그것도 아이들에게 가하고 있다.
아이들의 지키지 못한 선을 훨씬 넘은 감정적 훈육은 폭력일 뿐이다. 멈추지 못한다면 이 의도적인 광기와 ‘일베 딱지 놀이’는 그저 저급한 복수극으로 끝날 뿐이다.
다시 말한다.
이런 혐오의 시대를 만든 건 어른들이다.
이른바 '명청 대전'으로 좌파 진영의 권력 투쟁이 진흙탕을 뒹구는 와중에, 여의도 호사가들의 무릎을 치게 할 제보 하나가 날아들었다. 지난 21일 청와대 수석 교체 인사로 발탁된 성기홍 신임 홍보수석. 이 단 한 명의 인사가 폭로하는 코미디의 디테일은 퍽 압도적이다.
건조하게 성기홍의 정치적 DNA부터 살펴보자. 그는 친문 적통인 김경수, 황희와 막역한 '아삼육'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경수와는 대학 동문으로 끈끈하게 얽혀 있다. 지금 당내에서 구주류인 친문과 운동권의 흔적을 지우려 피 튀기는 내전을 벌이는 자가 누구인가. 바로 이재명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의 입을 대신할 안방 스피커 자리에 '찐친문'을 모셔왔다. 전장에서 적군의 스나이퍼를 홍보실장으로 앉힌 꼴이다.
물론 내부에서 은밀히 어떤 충성 맹세가 오갔는지는 밖에서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 사실을 아예 모르고 임명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그리고 이게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서는 문제다. 최고 권력 기관의 인사 검증 레이더가 완벽한 뇌사 상태에 빠졌다는 자백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정보망으로 기본적인 스크리닝만 거쳤어도 걸러졌을 이력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사방을 의심하며 반대파 숙청에 혈안이면서도, 정작 제 발로 걸어 들어온 트로이 목마는 귀하다며 쓰다듬는 아마추어 권력의 민낯이다.
자기 스피커의 이력서조차 제대로 못 읽어내는 헐거운 정보망으로 대체 국가 경영은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검증 시스템이 박살 난 권력을 지켜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노통 장례식에 갔니 마니
반노 송영길 정청래 둘이 염병 떠는 것도 웃긴데
그 당시 일 하나도 모르는 새끼들이 민주당
지지자들이랍시고 송이 친노다 청이 친노다
서로 염병 떠는 것도 끔찍하다 끔찍해
해방 후 스즈키가 빨갱이 잡는다 설치고
그 스즈키에 선동 당하는 개돼지들 보는거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