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얼마전까지는 이렇게 생각하고, 우리 애들도 3살때부터 영어 노출 시키면서 키웠는데. 요즘은 생각 조금씩 달라지고 있음. AI가 너무 똑똑해져서 영어로 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음. '외국어를 아는 뇌'라는 것도 '승마를 하는 뇌'처럼 그냥 취미의 영역이 되어갈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번역서를 읽을 때는 편집자들도 다른 뇌를 켜는 것 같음. ‘글을 읽는 뇌’가 아니라, ‘번역글을 읽는 뇌’로. 무슨 말이냐면, 한글소설이라면 통과 못 시킬 문장을 ‘번역글’이라는 이유로 통과시킴. 원문이 그런가보다, 원문이 못알아먹게 쓰였나보다, 원문이 싼티 나나보다, 번역가가 알아서 했겠지..
위대한 개츠비는 위대하다니까 위대한 소설이 아님. 영미권에서는 주저없이 ‘favortie book’으로 꼽는 사람이 맞지만 한국 독자들은 ’재즈에이지, 아메리칸드림’ 남의 해설만 반복하지 진심 ’favorite’으로 꼽는 사람 찾기 힘듬. 피츠제럴드가 ‘느끼라고’ 쓴 문장을 주절주절로 만들었기 때문.
민음사 시리즈는 ‘작가 문체를 그대로 따라서’가 문제가 아니에요.‘ 정통’은 문체가 ‘정통’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같은 ‘일반인’이 읽기 힘들 것이다, 흔히 이런 착각을 하고 자꾸 면죄부를 주려 하는데, 그게 아니고요 그냥 원문을 못 살린 번역인겁니다. 한국어로 소생시키는데 ‘실패’한 번역.
나도 이만큼 한국이 발전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젤 잘할 수 있는건 제조업이란 생각. 문화적 정서적 가치도 제조업/농업 근면사회 세팅, 경영자/사무직 노동자의 마인드셋/ 제도도 제조업에 맞춰져있어 다른 섹터 위닝이 점점 어려워짐. 근데 젊은 세대는 그 가치조차 경험못해보고 깜보는것도 문제.
이거 진짜 예전부터 느낀건데, - 다른 이슈들 중에서도 특히 테크, 정책 등 처럼 디테일한 정보, 업뎃이 중요한 정보들은 항상 링크 들어가서 보고+그 내용으로 구글 재검색하는데, 그럴때마다 AI가 연결하는 링크엔 항상 듣보잡 정체를 알수없는 언론사(?) 아니면 공공자료만 나오고 정작 구글링하면
@BeetSchu 환자의 명시적인 의향에 따라 제거할 수 있지만 연명의료결정법 19조 2항은 마지막까지 영양과 수분 공급은 중단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어서 콧즐을 대체할 수단이 있어야만 합니다. 무작정 중단하는 것은 현행법상 명백한 불법이고 방임죄 등으로 처벌이 가능합니다
말기 환자의 경우, 비위관을 통해서 식이 공급하다가 호전되어 중단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다면 몰라도 비위관을 통한 영양 공급을 지속해야만 환자가 생존할 수 있다면 환자는 이미 임종과정에 가까운 것이며 비위관은 무의미한 연명의료이기 때문에, 환자의 의향에 따라 중단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는 성장할수록 남(=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가기 때문에 사랑보다도 그 아이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가가 중요하다. 같이 있으면 편안하고 시간을 보내는 게 즐거운가. 이야기가 양쪽으로 오가는가. 내 쪽뿐 아니라 저쪽에서도 그렇게 느껴야 한다. 틴에이저 시절은 이런 관계를 쌓는 시간인 듯.
ㅇㅇ. 나도 일케 생각. 사람 볼 줄 안다는 건 착한거랑 약한걸 구분할 줄 아는거임. 착한것처럼 보이지만 약한 것일 뿐인 애들은 힘 조금만 생기면 그 힘으로 창조적인 행동을 하는게 아니고 바로 악랄하게 남 괴롭히는 짓부터 한다. 약자는 그냥 말그대로 약자지, 군자나 선한 자가 아니니 구별해야.
이제 한 개인의 인생은 한 개인의 선택보다는 개인에게 미처 도달하지 않는 거대한 사회의 흐름으로 인해 결정되는 것들이 더 많아질텐데, 미시의 시대 끝자락에 유년기를 마친 자들은 아직 시대의 바뀜을 눈치채지 못하고 불평을 터트리는 듯하다.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