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귀다가 헤어진 여자가 있었어.
그 여자는 같은과 복학생이랑 연애하고 결혼도 했지.
근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이 왔어.
자기 일자리가 없는데 혹시 우리 출판사에 자리 없냐고.
문창과 나왔으니까 그 쪽 일 잘하겠지 싶어서 당시 내 소설 출간하고 있던 출판사에 문의하니까 자리가 있대.
결국 그 애는 내가 소속되어 있던 출판사에서 직원으로 일을 하게 됐지.
처음에는 엄청 고마워 하더라.
그러다 내 신작을 담당하게 됐는데... 세상에 교정 원고가 너무 엉망인거야.
그래서 반 장난 반 진담으로 "원고 교정할때 신경 좀 더 써줘 ㅋㅋㅋ"이랬지.
그랬더니 돌아온 톡이...
"아 ㅅㅂ ㅈㄴ 짜증나네. 그럼 네가 편집하던가. ㄱㅅㄲ가 진짜 왜 지랄이야?"
정확하지는 않지만 육두 문자가 엄청 포함된 저런 늬앙스의 톡을 무지하게 보내더라.
너무 황당하고 열이 뻗쳐서 그때부터 사무적으로 대답한 뒤, 이 일을 걔 상사한테 보냈어.
내가 편집자한테 왜 이런 욕을 먹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주고 받은 문자 보셨냐. 내가 잘못한 부분이 무엇이냐. 원고 수정된 상태도 한 번 보셔라.
결국 상사가 사과를 하고, 걔도 나한테 사과를 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사람으로 보이지가 않았어.
아무리 개인적 친분이 있고 예전에 이성으로 만났었다 하더라도 공과사는 좀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닐까.
아내와 사별 후 7살 딸 홀로 키우며 월 순수익 1,800만 원... 33살 아빠의 인생이 바뀐 이유🥺
결혼 후
아내가 임신 7개월이던 때,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떠났다고 함.
홀로 남겨진 그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이른둥이 딸을 보며
살아갈 이유를 찾았다고.
① "안 좋은 생각도 했지만 아이를 보고 버텼습니다."
"내가 이대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했지만,
딸을 보며
절대 포기할 수 없었다고.
② "군인을 그만두고 아이를 선택했습니다."
13년간 직업군인으로 근무했지만,
훈련 때문에
아이 곁을 비울 수 없다는 현실에
전역을 결심했다고.
③ "새벽 4시 반부터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딸이 잠든 시간마다
책을 읽고,
운동을 하며,
새로운 인생을 준비했다고.
④ "지금은 고시원과 모텔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시원 1곳,
모텔 1곳을 운영하며
월매출 약 4,500~5,000만 원,
월 순이익은 약 1,800만 원을
올리고 있다고.
⑤ "두려움을 한 번만 넘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말합니다."
"저도 원래 도전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의 가장 큰 아픔을 겪은 뒤,
생각이 바뀌었고
지금은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다고.
"사람은 생각하는 대로 살아지는 것 같습니다."
정말
쉽지 않은 삶을 이겨내며
딸과 함께
새로운 인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
여러분은 가장 힘든 순간에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드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함? ❤️
출처 : 실패는 나의힘
11년차 현직 교도관이 말 하는 교도소 실태
암환자 수용자한테는 PET-CT에 항암치료에 수술에 간병인까지 세금으로 다 챙겨줘서 밖에서 아픈거보다 훨씬 낫고 방에서 예능보고 낄낄대고 레슬링하고 놀고 반성 하나도 안하고 교화 하나도 안된다는거 그럴 줄 알았음 범죄자 인권 챙기느라 직원 인권은 하나도 안챙기고 있고 있고...
처벌 강화/ 사형 부활 진짜 필요함
최근 커뮤니티에서 난리 난 '일본 교도소 참교육 근황' 요약.
인권 챙길 시간 없음: 한국 교도소의 영양사 식단과 달리, 일본은 성장기 애들도 부족할 부실한 양을 저울로 칼같이 재서 줌.
오후 5시 이후 강제 단식: 막방이 오후 4~5시고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얄짤없이 굶김. 배고프다고 징징대거나 불만 가지면 그나마 주던 것도 뺏고 그냥 굶겨버림.
1분의 자유도 불허: 걸음걸이, 앉는 자세까지 죄다 통제해서 숨 막히게 만듦. 하루 종일 빡센 노역은 기본에 전화, 편지, 면회도 극도로 제한함.
인권단체 팩폭 진압: 너무 억압적인 거 아니냐는 인권단체 징징거림에 "너희한테 당한 피해자는 영원히 가족 못 만난다" 한 마디로 참교육 시전함.
한국 도입이 시급하다며 네티즌들 사이에서 반응 폭발 중.
방송에서 항상 한쪽 귀에 에어팟 끼던 가수 진짜 이유 알고 나서 다들 조용해진 썰
귀에서 에어팟을 절대 안 빼던 가수가 있었음
어떤 방송을 나와도 항상 한쪽 귀에 에어팟을 끼고 나와서
그게 캐릭터처럼 됐던 KCM
처음엔 다들 그냥 버릇이거나 컨셉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음
편찮으신 어머니 때문이었음
예전에 어머니가 쓰러지셨을 때 전화를 못 받아서 위급한 상황까지 갔던 적이 있었다고 함
그 뒤로는 어머니 전화를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촬영 중에도 양해를 구하고 한쪽 귀에 늘 에어팟을 끼고 다녔던 거임
가족을 지키려는 마음은 아내랑 아이한테도 똑같았음
한때 믿었던 지인한테 속아서 수십억대 보증빚을 떠안고 독촉에 시달리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빚이 아내랑 아이한테 넘어갈까 봐 무려 13년 동안 혼인신고도 안 하고 가족을 숨겼다고 함
빚을 다 갚고 나서야 2022년에 조용히 혼인신고를 했고 그제서야 가족을 세상에 공개함
화려한 거 하나 없이 그냥 가족 지키는 거 하나는 진심인 남자였음
◆ 72세 어르신의 노후
- 삼성에서 21년 근무
- 자회사 사장 15년
- 잠실 갤러리아 팰리스 거주
- 푸켓에 세컨하우스가 있음
- 국민연금은 185만 원 수령
- 월 생활비 2천만 원
- 생활비는 주로 골프와 해외여행(유럽, 동남아, 일본)에 사용
- 나이 때문에 유럽 여행은 비지니스만 타신다고 함
요즘도 주식투자를 하시는데 키 포인트는 두가지
1) 우량 기업인가
2) 국민연금에서 투자했는지 여부
국민연금에서 고민하고 분석한 걸 투자하기에 자신은 따라가기만 하면 되서 리스크가 적다고
온갖 에어컨 변형 기출문제들이 난립중인 유럽
1. 거실 온도가 30도를 넘어가는 극악한 더위속에서 유럽의 가정들은 기상천외한 방법들을 사용중임
2. 현재로서는 실외기는 설치가 불가능하고, 유일한 방법으로 이동형 에어컨이 있는데, 이건 소음이 너무 심해서 잠들기가 힘든 수준이라고 함
3. 그래서 요즘은 전기차 에어컨을 집안까지 호스로 연결해서 사용하는 방법이 꽤나 각광받고 있음
4. 그때문에 덩달아 전기차 판매량 또한 늘고 있는 상황임
전혀 의외의 이유로 전기차 수요가 증가중임😰
극장 결승골이 터졌는데
감독이 정색하고 기뻐하지 않은 이유.
브라질 경기에서 95분 내내
피 말리는 접전 끝에 역전골이 터졌다.
스태프들이 다 날뛰는데
안첼로티 감독만 조용했다.
근데 그가 굳은 표정을 지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축구는 결국
'리스펙트'라고 딱 잘라 말했다.
상대인 일본 팀이 온 힘을 다해
용감하게 싸운 걸 보았고,
그 패배가 얼마나 아픈지 안다고.
속으론 기뻤지만, 치열하게 쏟아부은
상대에 대한 예의를 지키려고 했다며
묵직한 한마디를 남겼다.
"가장 거대한 승리의 순간에도
겸손한 것이 최고의 경의다."
진짜 이 대목에서 소름이 돋았다.
멋진 명장의 마음가짐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어 존경심이 든다.
이기고 나서 상대를 조롱하거나
흥분해서 방심하는 게 아니라,
승리의 순간에 곧바로 평정심을 찾고
"내일부터 다시 일하러 간다"며
다음 월드컵을 차갑게 준비하는 태도.
솔직히 이 정도로 깊은 품격을
보여주는 리더는 진짜 흔치 않다.
사람은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2017년.
아버지가 시골 땅 700평을 사고 싶다고 하셨다.
가격은 2,300만원.
솔직히 당시엔 이해가 안 됐다.
"아버지, 이걸 왜 사요?"
그때 이곳은 잡초와 흙 밖에 없는 평범한 밭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았다.
9년 동안 쉬는 날마다 이곳으로 향하셨다.
굴삭기로 땅을 고르고,
(아버지는 굴삭기를 장난감 다루듯 다루실 수 있다)
돌을 하나씩 쌓고,
연못을 만들고,
나무를 심고,
화덕을 만들고,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2026년.
황무지는 이렇게 변했다.
이제야 알겠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꿈이 있으면 늙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꾸준함은 결국 풍경까지 바꾼다는 것을.
아버지는 정말 금손이신거 같다. 리스펙!!!
(2017년 황무지였던 초기모습과 2026년 현재모습)
가족없는 사람의 최후
초딩 때 아빠 사고로 돌아가셨는데
엄마 나 버리고 애 딸린 남자랑 재혼함
결국 난 친할아버지 할머니랑 살게 됨
불안장애로 정신과 약 먹은지는 20년이 넘었고
인생 반쯤 놔버리고 살았음
고등학교 졸업하고 히키코모리처럼 살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가여웠는지 별말 안하시더라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할머니가 돌아가심
이때부터 내 정신병이 더 심해짐
'할아버지까지 가시면 내 편은 아무도 없네'
그러다 3년 뒤
할아버지도 중증암 판정받고 얼마 안 가 돌아가셨다
이제 살 이유가 없더라
근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내 손 꼭 잡으며
"큰 일 안이뤄도 되니까 그냥 하루하루 소소한 행복 느끼며 의미 있게 살아. 그러면 좋은 인생인거야"
하늘에서 지켜볼테니
그렇게만 살아 달라 하셨던게 계속 생각이나
그래서 이상한 생각 들 때마다
그냥 하루 3만보씩 걸었음
나중엔 러닝도 하고 턱걸이도 추가하고 습관을 들이니 마음도 점점 건강해지는 것 같더라
38살인 지금은 고시원 살면서 고시원 일 함
인생 뭐 이루고자 하는 건 없지만
남은 인생 보너스라 생각하고 할아버지 말씀처럼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아보려고.
서울에서 몇년만에 택시를 잡아 탔는데 뒷좌석에 앉은 순간부터 기사님께서 짜증을 내시는 거야.
ㅡ거기서 택시 잡으면 어떡해요. 매너가 아니지. 조금 더 가면 택시 정류장에 사람들 서서 기다리는데.
그래서 사과 드렸어.
ㅡ죄송해요. 제가 여기 안살아서 몰랐어요.
근데 계속 짜증내고 화내고 훈계하시더라.
일단 내가 잘못한거니 가만히 들었는데 목적지까지 가는 10분 동안 계속 화를 내셔.
그래서 내리기 직전에 택시비 카드 결제하고 만원 더 드리면서 이렇게 말했어.
ㅡ기사님. 오늘 짜증나는 일 많으셨나봐요. 저한테 다 푸셨으니까 이제 다른 손님한테는 그러지 마세요.
그러니까 눈이 휘둥그레져서 묻더라고.
ㅡ만원은 왜 줘요?
ㅡ힘든 일 많으셨던 거 같아서요. 이런 손님도 있다고요.
내려서 가는데 기사님이 조수석 창문 내리고 소리치심.
ㅡ우리 엄마 삼일장 얼마전에 치렀어요! 미안합니다! 더 주신 돈은 조의금이라 생각할게요!
아마 그 기사님, 이후로는 손님한테 짜증 안냈을 것 같다.
3원의 가치, 3원으로 사람찾기 가능! 시바 본인의 실제썰임.😁
얼마 전 길 바닥에 양말을 파는 아저씨에게 만 원에 4켤레를 샀음.
집사람은 무슨 양말 욕심이냐며 사지 말라고 말렸지만, 내가 보기엔 가성비가 훌륭해 보였음.
그리고 한 달 뒤, 반전이 일어남. ㅎㅎ
집사람이 그 양말 너무 좋다며 혹시 더 살 수 없냐고 물어온 것임.
집사람과 다시 공원에 가봤지만 아저씨는 흔적도 없었고, 몇 번을 더 찾아가도 만날 수 없었음.
아무런 연락처도, 판매처도 모르는 상황에서 완전히 길이 막힌 셈임.ㅜ ㅠ
그때 문득 뇌리를 스친 기막힌 돌파구가 있었음.
한 달 전 현장에서 만 원을 송금했던 '계좌이체 내역'이 떠오른 것임.
시스템상 송금할 때 10글자의 메시지를 적을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해, 1원씩 총 3번을 쪼개어 다음과 같이 메시지를 보냈음.
첫 번째 1원: "양말사고싶은데요"
두 번째 1원: "어디로 가야 살수있죠?"
세 번째 1원: "전화번호"
고작 3원을 쓰고 메시지를 던진 지 하루 만에 신기하게도 연락이 왔고, 결국 그 좋다는 양말을 택배로 재구매하는 데 성공했음.
심심한 일상 속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단돈 3원으로 사람을 찾아낸 이 유쾌한 경험으로 "방법은 언제나 있다"는 소중한 깨달음까지 안겨주었네요😁
실력도 있고 인성도 좋으면 일류.
실력은 없지만 인성이 좋으면 이류.
실력도 없고 인성도 나쁘면 삼류.
그 중에 최악은 실력은 있는데 인성이 나쁜 인간들이다.
최악의 인간들이 이 나라 곳곳을 좀먹는 꼴을 얼마나 많이 보았는지. 총칼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전국민 상대로 사기 쳐서 제 배를 불리고, 대한민국을 남녀로 노소로 좌우로 갈기갈기 찢어 놓고.
야구 경기 중에 남의 집 제삿날을 놀림거리로 만든 학생들을 마냥 두고 본 감독이나 그걸 제지하니 우리 애한테 왜 그러냐며 편드는 부모나, 자기들이 아이들을 최악의 인간들로 키우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 볼 일이다. 야구뿐 아니라 아이들을 가르치는 모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그렇다.
이 나라에 최악이 평범이 되는 날이 오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2002년 나 고등학생 때, 안정환의 헤딩슛이 이탈리아의 그물망을 갈랐던 그날, 나도 급우들도 신나서 미쳐 날뛰었더랬다. 그날은 너무 기뻐서 야자하다 말고 몇몇은 웃통을 벗고 운동장을 질주했는데, 길건너 소방서에서 차고 셔터문이 열리더니 소방차마저 도로로 나와 빠빠아빠빵빵 클랙슨을 울리는 걸 두 눈으로 지켜보았다.
겨우 축구라고, 발로 하는 공놀이 뭐 누가 그리 관심 갖겠냐고 우습게 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기억한다. 대한민국 열하나 청년들의 발끝에 오천만 국민들이 울고 웃었던 그날을.
축구는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그걸 모르는 이들은 마땅히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탈레반 집권 후 아프가니스탄은 지옥이 됐음
미성년자 매매혼은 물론이고 어린 소년들까지 성착취를 당하고 있는 상황임
미군 점령기에는 이런일이 있더라도 눈치보며 몰래 하던 일이었지만, 미군 철수 후 이제는 세계 여론도 아프가니스탄에 관심이 없는 상황이라 여성과 아이들에게는 생지옥 그 자체가 됐음
보면 볼수록 이슬람이라는 종교는 답이 없다고 느껴진다는..
■1981년생 무자녀 돌싱 회계사 아재
이 아재, 스펙은 준수. 안양에 자가 보유 중이고 순자산은 9억원대. 16년차 회계사에 빚 없는 자가, 숫자만 보면 나무랄 데 없음.
문제는 입. 본인은 애를 키워본 적도 없으면서 유자녀 돌싱들 앞에서 "자기 자식인데 그게 그렇게 힘든가? 체력적으로 키우면 되잖아"라고 해버림. 육아를 체력 문제로 퉁쳐버린 거임.
밤새 안 자봤고 아파서 응급실 달려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매우 경솔한 말. 그 순간 분위기 갑분싸됨. 실제로 길러본 사람들 표정이 싹 굳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이게 한 번으로 안 끝남. 여출한테도 필터링 없이 말 툭툭 던지고 분위기 파악을 못함. 본인은 솔직한 거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받는 사람 입장에선 그냥 배려 없는 것.
결국 나잇값 못 하는 캐릭터로 낙인찍힘. 마흔 넘은 나이에 자산은 9억인데, 정작 사람 마음 읽는 감각은 그 자산을 못 따라감.
스펙으로 시작해서 입으로 말아먹은 케이스. 중년이 되면 본인보다 젊은 사람들 앞에선 가급적 입을 닫고 귀를 열어두는 게 좋음.
Many friends still find it hard to believe there's an aircraft inside our car, but it's really that simple: one click for automatic separation and reconnection. This is our Flying Car
몇 년 전 조선일보에서 읽었던 인터뷰 기사. 인상적인 기사라 따로 스크랩을 해뒀었지. 꿈이 많은 한 비너스 여성에 대한 이야기.
1. 이대 앞 스타 미용사로 자수성가했으나, 2018년(당시 26세) 오토바이 사고로 왼팔 절단.
2. 재활병원에서 본인과 비슷한 처지의 환자들을 보며 "그래도 아직 걸을 수 있고 오른팔이 있다"라며 생각 전환.
3.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는 게 가장 아름답다" 깨닫고 의수 없이 생활함.
4. 더더욱 운동에 집중. 아파트 100층 오르내리기, 철저한 식단, 저중량 고반복 운동 반복. 피트니스 대회에서 4관왕.
5. 샤워 막대기로 오른팔 씻기, 한 손으로 속옷 입기 등 본인이 병상에 있을 때 검색해도 나오지 않던 팁을 직접 제작해서 영상으로 공유.
6. 장애인 재활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서른에 체육학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
7. 최종 목표는 장애인 전문 재활 운동 센터 건립해 후천적 장애인들이 병원 퇴원 후에도 일상 속에서 체계적으로 재활과 운동을 지속할 수 있는 센터를 설립하는 것.
아내와 비싼 양식당에서 이만 원짜리 파스타를 먹었다. 돈이 좋긴 좋았다. 입이 황홀하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직접 면을 뽑고 매일 신선한 재료를 공수한다는 게 사장님 설명이었다.
다 먹고 밖에 나오니 박스를 줍고 계신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90도로 굽은 등판이 뙤약볕에 젖어 지도처럼 얼룩덜룩했다. 거들어 드릴 만도 했는데 괜한 오지랖처럼 보일까 봐 나서질 못했다. 할머니는 순식간에 박스를 정리하고 리어카를 끌고 또 다른 박스를 찾아나섰다.
돌아오는 길엔 죽은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할머니는 국수 장사를 했는데 손님은 많았지만 돈을 벌지 못했다. 파는 국수보다 퍼주는 국수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노인네라고 퍼주고 과부라고 퍼주고 코흘리개라고 퍼주고, 그냥 퍼주고.
박스 앞에 손 놓고 있었던 게 부끄러웠다. 소방관씩이나 하면서 나는 곧잘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잘 산다는 건 얼마나 비싼 국수를 사 먹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한 국수를 대접하느냐에 달렸다는 걸.
요즘은 봉사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세상인가 보다.
무료급식으로 배고픈 사람들에게 밥을 나눠주고,
후원받은 케이크까지 함께 나눠줬는데
돌아온 건 감사가 아니라 악성 댓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밥 위에 케이크를 올려줬다는 장면만 보고
조롱부터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기사 내용을 보니
식판은 이미 반찬으로 가득 차 있었고,
후원받은 케이크를 디저트로 나눠주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밥 위에 올린 것이었다.
앞뒤 상황은 보지도 않고
몇 초짜리 영상만 보고 욕부터 하는 사람들.
정말 무섭다.
더 놀라운 건
악성 댓글 다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정작 본인은 봉사 한 번 안 해봤을 가능성이 높다는 거다.
수십 년 동안 노숙인과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해 헌신한 사람에게
방구석에서 손가락으로 훈수 두는 건 너무 쉽다.
하지만 봉사는 어렵다.
후원도 어렵고,
꾸준히 남을 돕는 건 더 어렵다.
세상은 점점
행동하는 사람보다
비난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 같다.
나는 저런 기사 볼 때마다
봉사하는 사람을 비난하기 전에
과연 나는 무엇을 했는지 먼저 돌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