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고 치명적인 낭비>
“초대형 국정농단”이라고 언론 보도를 하고, 3개월간 출국금지까지 했던 사건이 “수사권이 없다”라고 하면서 끝났습니다. 저에게 오늘 통지가 왔네요(사진).
알고보니 권창영 특검은 초대형국정농단이라고 발표했을 때 수원지검 기록 입수도 못했을 때였습니다. 기록 입수는 수원지검에서 거부당하고, 법원에서 기록 입수한다는 명목으로 압수영장 2번 청구했으나 모두 수사권이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어 결국 기록입수도 못했다고 합니다. 제가 이를 알게된 것은 권특검이 스스로 보도자료에서 밝혀서 입니다.
사건의 기록도 보는데 실패한, 그러니까 “시작”조차 하지 못한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애초 수사권이 없으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럼에도 “초대형 국정농단”이라고 퍼뜨려댔습니다. 그런데 조작됐다는 사건의 기록도 안보고선 어떻게 “초대형 국정농단”을 알 수 있습니까? 특검이 유언비어를 퍼뜨렸던 것입니다.
무려 5개월 가까이 지난 지금, 이제와서 슬그머니 “수사권없으니 공소권없음” 처분을 하고는 사건기록은 다른 수사기관으로 이첩한다고 합니다.
이 특검에 6개월의 기간 그리고 혈세 최소 100억 이상이 투입됐습니다.
해야할 수사는 암장하고 뭉개버리고, 하지 말아야 할 수사는 이렇게 수사권을 남용하고 수사력을 낭비합니다. 그 와중에 국민들이, 우리 가족과 이웃들이 실제로 죽어갑니다. 왜 우리 국민은 돈은 돈대로 다 내는데, 그것이 우리를 위해 쓰이는 것은 볼 수가 없을까요. 참으로 지독하고 그리고 사람이 죽는 치명적인 낭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지독하고 치명적인 낭비가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뉴노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내일 또 “선서거부” 및 “국회 모욕”의 혐의로 경찰에 조사를 받으러 갑니다.
서영교 위원장이 주도하여 한 고발입니다. 고발자체로 말이 안되는 무고성의 허무맹랑한 사건입니다. 조사없이 각하하면 되고, 지금까지 그렇게 처분 해왔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엔 높으신 분들이 고발한 건에 대해선 반드시 불러서 조사해야 하나 봅니다.
저야 부르시니 가고 조사하시니 조사 받겠습니다만,
이런 허무맹랑한 수사할 시간에 실종자라도 한번 더 찾아봐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 수사력의, 세금의 그리고 국력의 지독하고 치명적인 낭비가 너무나도 아깝디 아깝고 안타깝습니다.
<혹시 쫄았습니까?>
이번 주 일요일 토론회, 섭외는 아직도 진행 중입니다. 공소취소를 반대하는 쪽에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 포함 다수의 논객들이 섭외에 응해주셨지만 민주당 이하 공소취소를 찬성하는 정치인들은 토론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에 정치중립의무를 지켜야 하는 정유미, 박상용 검사 보호 차원에서 국힘 의원들도 출연 배재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국회 내규에 따른 주최자 최수진 의원은 예외)
정원오 후보도 그렇고 민주당은 왜 이렇게 토론을 피하는 겁니까? 공개된 장소에서 당당하게 공소취소를 찬성할 용기는 없는 겁니까? 혹시 마지막 양심입니까?
설마 이래놓고 또 편향 어쩌고 하며 박상용 검사 괴롭히는 구실로 쓰지는 않겠지요?
#사람이라면?
<제가 아는 최고의 검사, 검사 이주용 이야기-1>
이번에 보도된 불행한 사건에 대해, 일부에서는 이주용 검사가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소환된 것이 원인인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이는 피상적 연결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주용 검사가 작년부터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아는 사람으로서, 이번 사안의 진상을 말씀드리고자 고민 끝에 이 글을 씁니다.
먼저 대장동 사건의 수사와 재판를 담당한 이주용 검사와 저는 작년부터 자주 안부를 주고 받았습니다. 저와 이주용 검사가 서로 친한 동기 사이여서가 아니라, 현재 정부 여당에서 각별한 관심을 갖는 사건을 수사하였고, 그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다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가장 최근에 이주용 검사에게 연락한 날은 지난 토요일입니다. 형수님께서 이 검사가 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하여 직접 통화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때는 입원한 이유를 몰랐는데 어제 언론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이주용 검사의 불행은 단순히 이번 국정조사 특위에서 발령한 반인권적인 소환이나 동행명령 때문이 아닙니다. 작년부터 연이어진 불합리와 부정의에 노정되었던 이주용 검사의 심신이 국회의 이번 조치로 더이상 견디지 못하고 순간 블랙아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가정과 일밖에 모르고 누구보다 강직했던 이주용 검사의 심신이, 상상할 수 없는 상처를 입기 시작했던 계기는, 바로 ‘대장동 사건의 항소포기’ 사태입니다.
대장동사건 1심 선고가 된 직후 이주용 검사는 항소를 위하여 항소이유서, 항소장, 보고서 등 모든 서류를 작성하여 보고했습니다. 그런데 정성호, 이진수, 노만석, 박철우, 정진우가 지휘부인 법무검찰은 실무진과의 아무런 토론도 없이 항소제기기한의 만기까지 항소장 제출을 지연시키더니 끝내 항소를 포기시켰습니다.
그 때 이주용 검사는 발을 동동 구르면서 어쩔 줄 몰라했습니다. 이주용 검사의 좌절을 보면서 저도 함께 참담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새 정권 들어 검찰권 악용을 나무라던 자들이 합심하여 범죄자들의 천문학적인 범죄수익을 지켜주기 위해 최소한의 설명조차 하지 않은 채 검사들의 정당한 권한 행사를 막았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한 대장동사건 항소포기만한 검찰권 악용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실 검찰은 그때 이미 죽었습니다. 죽인 자들은 그 항소포기를 주도한 자들입니다. 그 와중에 만기친람 임은정 검사장은 자신의 14년 전 그 무죄구형 전력을 자랑하면서 ‘그냥 항소장 접수했으면 되는거 아니냐‘라고 항소포기에 항의한 검사들에 대해 비아냥 거렸습니다. 정말로 당시 이주용 검사는 크게 좌절했습니다.
이주용 검사의 심신에 다시 한번 결정적 타격이 된 사건은, ‘위례사건 항소포기’ 사태입니다. 위례사건은 대장동사건과 구조가 거의 같았는데, 위례사건의 1심 판결 내용을 보니 비록 무죄 선고가 되었지만 그 이유는 대장동사건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습니다. 즉, 대장동사건의 판결 논리가 극복된 것이었습니다. 이주용 검사는 위례사건의 판결에서 항소포기된 대장동 사건의 논리가 극복된 것을 기뻐하면서 ”항소할 경우 1심 결론을 뒤집고 유죄 선고를 이끌어낼 가능성이 높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주용 검사는 항소에 필요한 모든 서류를 준비하는데 관여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여 보아야겠지만, 당시 검사들 사이에서는 서울중앙검사장 박철우, 검찰총장대행 구자현까지 항소하는 것으로 결재하였고, 항소제기 만기 전 진작에 법무부에 보고되어 검토 중이라는 이야기가 파다했습니다. 그런데 결정이 내려지지 않은 채 항소제기기한의 만기날이 되었고, 그날 이주용 검사와 저는 설마 대장동 판결 내용이 법리적으로 극복이 되었고 법무부까지 보고가 되었는데 이것까지 항소를 포기하지는 않겠지 생각했었습니다. 저는 불안해하는 이주용 검사에게 “법무부에 보고됐으면 이제는 법무장관의 총장에 대한 서면 지휘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해서 항소포기를 할 수는 없다. 이번엔 항소가 된다”라고 하면서 안심을 시켰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서로 위로하면서도 저와 이주용 검사 모두 이미 대장동사건의 항소포기를 겪은 터라 조마조마하면서 지휘부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 . . . 2에서 계속
<리호남 70만 불 관련 - 법원 판단이 진실로 인정되지 못하면, 법치가 붕괴되는 것입니다>
리호남은 그 정체가 단체인지, 개인인지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리호남의 것으로 추정되는 출입국기록, 휴대전화, 계좌 등이 이디선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리호남이라고 불리는 특정인이 썼다고 단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리호남을 계속적으로 만나온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이 리호남이 현장에 온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였거나, 현장 외에 다른 곳에 그 사람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있다고 하여, 리호남이 현장에 부재하였다고 할 수 없겠지요.
국정조사에 나와 ‘리호남이 필리핀에 없었다’고 주장했던 증인들은 모두 재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하여 같은 내용을 증언했었습니다. 법원 판단은 그 증언만으로 김성태, 방용철 등의 ‘리호남을 만나왔고 그 날도 리호남을 만나 돈을 주었다“라는 진술의 신빙성을 깰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렇게 서로 주장이 다를 때, 그에 대한 판단은 법원 판사가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 원칙이 다 깨어지는 느낌입니다. 국정조사에도 나왔지만, 진실의 근거로 법원 판결을 들면 “법원이 하느님이 아니지 않느냐”라고 반문하며 판결의 정당성을 부인하려고 합니다.
예, 맞습니다. 법원은 하느님이 아니고 그 판단도 틀릴 수 있지요.
그러나, 우리 모두가 하느님이 아니고 우리가 하는 판단도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 공화국은, 인간이 하는 판단 중 가장 오류가 적은 방법이라고 여겨지는 방법을 사용하여 내려진 법원의 판단을, 우리의 “진실”로 믿기로 합의했던 것입니다.
그 합의가 부인되면 이제 진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결과물이 차지하는 것이 됩니다. 힘과 권력이 진실을 정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것은 법치의 붕괴이자 인치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꾸어왔던 역사가 거꾸로 가는 것입니다.
선서하면 제가 무슨 증언을 하든지 위증 고발하고 그걸로 특검해서 공소취소하시려고 하신다면서요?
제가 검사인데 그 법치파괴 함정에 어떻게 기어들어가겠습니까?
공소취소를 위한 국정조사 아니라면서요?
그래서 위헌위법 국정조사 아니라면서요?
근데 왜 "특검에 의한 공소취소 안한다"고 누구 하나 속시원히 말씀을 못하십니까?
그것만 해주시면 국조도 적법하다 해드리고, 선서도 그 자리서 바로 해드릴게요. 위증 고발도 맘껏 하세요. 전 괜찮아요.
“윤동주처럼 고독하고 순수한 영혼에 좋은 친구 두 분이 계셨기에 윤동주가 문학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고, 지금 우리가 윤동주의 보배 같은 시를 접할 수 있게 됐다 하는 점에서 친구 두 분의 얘기를 곁들였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기에 고흐의 그림을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윤동주에게는 송몽규와 정병욱 두 분의 친구가 있었습니다.”
이낙연의 사유,
<윤동주에겐 송몽규와 정병욱이 있었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가 있었듯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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