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도 표현을 한다. 여기저기 SNS에 프사들을 비롯해 카페들에 스스로 이해하는 바대로 의견을 표현한다. 이런 세상이 도래해서 쿠데타가 뭔지, 포고령이 ��지, 총을 든 군인들에 진심으로 무서워하는 그런 상황들을 보면서 이런 상황이 원망스럽기도 하지만 이미 도래해버린 상황에 대해 최대한의 설명과 함께 너무 잠식되지 않도록 다독인다.
그러고는 이 꽃이 뭔지 아냐고 보여주니 금새 관심사는 이 아름다운 꽃에 포커싱 된다. 아이들에게는 아직은 아름다운 꽃을 보여주고 싶다.
산자락에 고립(?)되어 있는 단지다 보니 폭우나 폭설에는 단지 주민들이 나서서 대응하지 않으면 나라에서 하는 일처리가 매우 늦어지기도 하기에 117년만의 폭설앞에 주민들이 모이자를 외쳤고, 구역을 나눠 차들이 나갈 수 있는 길을 뚫는다.
개중엔 늦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고 비키라며 호의를 악의로 둔갑시키는 주민들도 있어서 욕을 한 바가지 해주고 싶지만 그런거 신경쓰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 애쓰는 주민들이 있다는 것.
오로나민C가 이렇게 따뜻하다.
3주차 하루 건너 단식 2회차 첫 도전.
단식은 어렵지 않음.
가장 눈으로 확인하기 좋은
몸무게가 드디어 68kg대로 진입.
목표체중에 -2kg 남음.
근육량도 표준 유지중.
한 달 프로그램 종료와 함께
전체 대사확인을 위한 건강검진이 다음주.
운동으로 불끈한 득근을 해본적은 없지만
그에 준하는 짜릿함이 있다.
남은 한 주와 한 달 프로그램 완료 후,
결과에 따라 저탄고지로 유지가 가능한지
테스트가 남아있다.
몸을 갱생시키는게 재미가 붙는다고나 할까
내 인생에 선생님으로 남은 분은
국민학교 4학년 때 담임선생님 한 분이다.
집에 가면 항상 할아버지 병수발을 해야 했던 나는
학교를 마치고 꼭 1~2시간가량 교실에서 선생님과 함께했다.
몇몇 친구들과 함께 우리의 수업은 그때가 본격적인 시작.
선생님은 항상 오르간 연주와 함께 노래를 알려주셨다.
1년 가까이 많은 노래를 배웠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잊지 않고 기억하는 두 곡이 '사노라면'과 '작은 연못'이다.
쉬는 시간이며 그 어떤 시간에도 선생님 이야기를 하는 통에
교무실에 갈 때면 다른 선생님들이 XXX 선생님 모리 왔어~
하고 이야기하던 게 기억난다.
어렸던 맘에도 눈에 담으면 담을수��� 빛나던 선생님이셨고,
정말 천사가 있다면 선생님일 거란 생각을 했었던 선생님.
세상의 흐름과 함께 선생님을 떠나게 되고
다 커서 선생님을 찾았을 땐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생각보다 앞서서 마음을 써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손가락으로 그 긴 시간
쳐주신 오르간과 마음을 떠올리며
대학병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치유한다.
92세 올해가 마지막일지도 모른겠다는
작은 할아버지를 모시고 가장 좋아하시는
송어회를 먹으러 갔다.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소변을 지릴 정도로
기력이 쇠하셨고 잠시 누워있다보면
언제 잠들었는지 모르게 잠꼬대를 하신다.
꿈속에서 한 턴은 명랑하게 할매~
또 한 턴은 다급하게 할매~를 연발하며
작은 할머니를 찾으신다.
좋은꿈 방해될까 다급하게 할매를 찾으실때를 노려
할아버지를 깨웠다. 더이상 올 수 없는 형을 대신해
매 년 찾아오는 형의 손자가 기특하셨는지
기운을 짜내어 일어나셨다.
항상 웃으며 농을 자주 하시던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제 말 할 기운도 없는 본인들의 모습을
안타까워 ���는 형의 손자에게 연신 괜찮다를 연발하시고는
말없이 송어를 드시다 눈물을 왈칵 쏟으셨다.
돌아가신 할머니 할아버지도 그랬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이 많아지셨다.
또래중에서는 그��도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불림에도
아직도 노년의 눈물은 이해하기 힘들다.
회한인지 상실감인지 기쁨인지
그 모두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저 왈칵 쏟아내는 눈물을 바라보며
깊이를 짐작할 수 없지만 건드리면 안되는
마음속의 고요한 줄이 튕겨져 나 역시 눈물이 나올 뿐.
오늘은 유독 작은 할머니, 작은 할아버지의 눈물에서
기운이 서서히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 마음이 편치 않다.
어른들은 울면서 말이 없다.
다만, 송어회를 먹으러 가기 전, 요 옆 호박밭에
니 줄라고 하나 끊어놓은 늙은 호박이 있으니
가져가라는 말로 마음을 대신하실 뿐.
여덟 끼의 도시락 식사를 마쳤다.
이제 아내에게 돌아간다.
아내는 몸이 좋지 않아 오늘 손주가 다니는 어린이 집 야외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겠다고 전화를 했다.
나 혼자서는 가고 싶지 않다.
손주는 한없이 예쁘지만
내가 더 보고 싶었던 것은 그런 손주를 보고 환하게 웃는 아내의 모습이었다.
닭강정이 먹고 싶다고 해서 예약을 해놓았다.
그렇게 나는 집으로 돌아가서
아내의 안부를 확인하고
오래 떨어져 있던 연인의 만남처럼
서로를 바라보며 긴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돌아갈 공간이 있고
나를 기��리는 사람이 있다는
당연한 사실이 오늘은 새삼스레 눈물겹다.
삶을 이어가는 많은 곳에는
조금씩 눈물이 스며 있고
그것을 나누는 마음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인가 아빠가 이런저런 좋은 날에 우리에게 ’맛있는거 사먹어라’고 하시고 후에 만나 정산해주신 봉투. 이상하게 이돈은 못쓰겠어..울아빠 용돈도 워낙 적은데다 거의 안쓰시거든
그래서 다 해진 봉투채로 연필로 계산해 적어둔 아빠 글씨가 애틋해서 몇 년째 서랍에 잘 넣어두고 있다. $369
카페에 갔다.
들어갈 때는 몰랐는데
나오면서 보니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트윗에 썼던 글이 입구 창가에 걸려 있었다.
여기에서 여러 글을 써서
사진과 함께 트윗에 남겼다.
책에도 실려 있는데
내가 쓴 글을 읽는 기분은 또 각별한 것이었다.
아내는 오늘 처음으로 이 카페를 찾았다.
아는 사람 만나면 불편하다고 사양하다
오늘은 궁금하다며 왔는데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꼭 엄마 무릎에 누워
엄마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이었다며
울먹였다.
세상에 카페를 ���녀오며 우는 사람은
당신은 처음일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아내의 깊은 슬픔 앞에서
애써 다른 말을 찾았다.
어떤 장소가 엄마를 떠올리게 하고
눈물을 부른다.
아내가 처음 왔다고 그랬는지
친구가 빵을 담아 선물했다.
김인중 베드로.
천 년이 넘은 성당들에 스테인글라스화를 그리는 대한민국 신부화가. 2024년작들은 한지에 그려져 있지만 유럽 38개국 45곳의 교회의 창들엔 김인중 베드로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유럽 내에선 마르크 샤갈, 앙리 마티스와 함께 '세계 10대 스테인드글라스 화가', 빛의 화가로 꼽히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있다. 세계의 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화가.
김인중 신부와 원경스님의 콜라보로 만들어진 신부의 그림과 스님의 시. '빛섬에 꽃비 내리거든' 시집도 읽어볼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