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서 앞마당에서 수사와 재판, 그리고 사면복권까지 원스톱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의 사법 행정 서비스가 드디어 도입된 모양이다.
돈이 건너간 명백한 사실 앞에서도 경찰 스스로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유유히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언제부터 대한민국 경찰이 증거를 수집하는 수사관을 넘어, 피의자의 내면 깊은 ��에 자리한 순수한 의도까지 꿰뚫어 보고 판사대신 판결봉을 두드리는 '관심법의 대가'가 되었는지 그 놀라운 진화에 우선 경쾌한 박수를 보낸다.
사건의 팩트는 기형적일 만큼 노골적이다. 강선우 의원에게 500만 원의 돈이 쪼개져 흘러 들어갔고, 돈을 낸 인물은 단수 공천을 받았다가 낙선한 뒤 강서구 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라는 꿀단지 자리에 안착했다. 돈이 가고 자리가 왔다. 삼척동자가 봐도 완벽한 자본주의적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다.
오세훈 서울시장을 옭아맬 때는 "아무 관계도 없는데 돈을 대납할 리가 없다"며 추상같은 독심술을 발휘하던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의 판결을 받아볼 새도 없이, 경찰의 판단은 이 사안 앞에서 "돈은 오갔지만 영향력을 행사할 목적은 없었을 ��"이라는 한없이 자애롭고 로맨틱한 경찰 버전의 독심술로 사람들을 헷갈리게 한다. 법정이든 경찰이든 좌파앞에선 참으로 달달해지는게, 권력이 좋긴 좋다.
우리는 이 작은 해프닝에서 좌파 세력이 그토록 목숨을 걸고 밀어붙였던 '검찰 해체'와 '수사권 조정'의 서늘한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이 왜 그토록 경찰에게 수사 종결권이라는 거대한 권력을 쥐여주고 싶어 했는지, 그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완벽하게 맞춰진 것이다.
통제하기 까다로운 검찰의 기소권을 거세하고, 입맛에 맞는 경찰에게 사건을 덮을 수 있는 합법적 권한을 주면 어떤 마법이 벌어지는가. 자기 진영의 부패와 비리는 법정의 문턱을 밟기도 전에, 경찰서 캐비닛 속에서 조용히 '혐의없음'이라는 이름표를 달고 증발해 버린다. 재판을 지연시킬 필요조차 없다. 아예 기소 자체를 원천 봉쇄하여 범죄의 기록조차 남기지 않는 완벽한 '클린룸'을 구축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민주당이 부르짖는 사법 개혁의 진짜 얼굴이다. 검찰이 사라진 자리에 도래할 세상은 권력의 횡포가 사라진 정의로운 낙원이 아니다. 뇌물을 주고받아도 경찰이 알아서 면죄부를 발급해 주고, 권력자들끼리 꿀단지 자리를 품앗이해도 법적 리스크가 '제로'에 수렴하는 그들만의 완벽한 '무법 유토피아'다.
돈이 오갔는데 "대가성은 없다"며 서류를 덮어버리는 수사기관을 우리는 더 이상 경찰이라 부르지 않는다. 권력의 하청을 받아 작동하는 싸구려 세탁기라 부를 뿐이다. 경찰이 판사 노릇까지 겸직하며 카르텔의 방패막이를 자처하는 이 기막힌 디스토피아에서, 우리는 대체 언제까지 이 역겨운 법치의 붕괴를 사법 정의라는 이름으로 인내해야 하는가. 수사 종��권이라는 무기를 쥔 자들이 권력의 안마당에서 벌이는 이 뻔뻔한 파티를 멈춰 세우지 않는 한, 대한민국에 진짜 법의 심판대는 영원히 세워지지 않을 것이다.
여러 요청을 반영해 콘텐츠 채널을 늘렸습니다. 주 활동처는 여전히 트위터입니다만, 동영상은 유튜브에 주로 올릴 예정입니다. 나머지 채널들은 최근에 계정을 만들었고 사용법 또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단순 업로드 위주로 운영할 생각입니다.😅트위터 프로필의 링크트리 참고 부탁드립니다.
https://t.co/5SJGAaZyEY
[우원식 전 국회의장, 82억 해외출장 14회 모두 배우자 동행]
우원식 전 국회의장은 해외출장 14회에 82억 8,700만 원을 썼다. 1회당 평균 5억 9,200만 원꼴이다.
놀랍게도 우 전 의장은 14회 해외출장 모두 배우자를 동반했다. 배우자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단 말인가?
국회는 국민을 대표해 예산을 감독한다. 국회의장이 국민 혈세를 이렇게 낭비해도 되나?
노태악 전 선관위원장은 배우자 동반 해외출장으로 합동수사본부 압수수색을 받았다. 국고횡령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배우자의 해외출장 비용을 국고에 반납했지만, 범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악습이자 범죄다.
우원식 전 국회의장의 배우자 동반 해외출장도 수사 대상이다. 신속한 압수수색에 나서야 한다.
민주당이 드디어 단단히 미쳐 돌아가는 모양이다.
김현이 ‘청소년 보호���라는 케케묵은 핑계를 들고나와 대중음악의 숨통을 끊어버릴 '음원 검열법'을 발의했다. 심의도 생략하고, 정부가 판단하기에 유해한 노래는 통신망에서 강제로 즉각 차단하겠다는 엽기적인 입틀막 선언이다. 발의의 변이 기가 막힌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모욕한 래퍼의 등장과 10대들의 범죄 조장 음원 유통을 막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가 나서서 진영의 심기를 거스르는 랩 가사의 명���을 법으로 끊어버리겠다는 미친 짓거리다.
팩트를 건조하게 직시해 보자. 노무현 그가 일제강점기에 만주 벌판에서 폭탄을 던지다 순국했는가, 아니면 독재의 총칼에 맞서다 장렬히 산화했는가. 그의 최후는 부패 혐의라는 덫에 걸려 수사의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비극적 선택이었다. 자연인으로서 그가 느꼈을 고뇌와 비애에 인간적인 연민을 보낼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점 티끌도 없는 무결점의 순교로 둔갑하여, 타인의 입을 틀어막고 노래마저 검열하는 폭력적인 성역이 될 이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좌파 진영이 이토록 기를 쓰고 그의 무덤에 금테를 두르는 진짜 이유는 숭고한 애도 때문이 아니다. 고인의 죽음이 흠결 없는 순교여야만, 자신들의 너절한 범죄 혐의와 도덕적 파산을 가려줄 훌륭한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다.
과�� 노무현에게서 등을 돌리고 가장 날 선 비난을 퍼부으며 노무현을 궁지로 몰았던 사람들이 보수였나? 그야말로 반노(反盧)의 선봉에 섰던 자들이,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누구보다 화려한 상복을 입고 나타나 시체 팔이 주식회사의 대주주가 되었다.
칼럼에 대놓고 홀홀단신으로 떠나라 등을 떠밀던 좌파들 아닌가? 그런데 이제와서 고인을 향한 모욕이라니, 참으로 편리하고 거룩한 무적의 방패다. 그런데 팩트를 한 겹만 벗겨보자. 과거 쥐새끼니 닭이니 원색적으로 난도질하던 힙합 가사에는 대인배처럼 표현의 자유를 찬양하며 낄낄대던 자들이, 왜 이제 와서 법전까지 들이밀며 발작을 할까.
진짜 타깃은 따로 있다. 자신들이 촘촘하게 주입해 온 PC와 좌파 진영 논리에 순응하지 않고,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기독교적 신념과 보수적 가치를 랩으로 뱉어내는 비와이(BewhY) 같은 이단아들이 뼛속까지 거슬리기 때문아닌가?. 청소년 보호? 그건 그저 진영의 입맛에 맞지 않는 문화적 반동분자들의 입을 틀어막기 위한 가장 역겨운 포장지일 뿐이다.
이들의 통제 방식은 무식하다 못해 처참하다. 국내 음원 사이트 몇 곳의 목줄을 쥐고 흔들면 대중의 귀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 그 텅 빈 상상력을 보라.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사운드클라우드 등 국경을 초월한 해외 플랫폼으로 음원을 유통하고 소비할 방법은 그야말로 ‘천지삐까리’로 널려 있다. 문화 생태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쥐뿔도 모르는 꼰대들이, 1970년대 독재 정권의 금지곡 가위를 들고 21세기 힙합 씬을 썰어보겠다고 덤벼드는 꼴이 애잔하기까지 하다.
여기서 아주 통렬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대중음악 사전 심의 철폐를 외치고 자유를 부르짖으며 선동에 앞장섰던 그 숱한 좌파 문화계 셀럽들과 문화 권력자들은 지금 다 어느 쥐구멍에 숨어 있는가. 당신들이 좋다고 지지했던 정당이 이제는 창작자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검열의 잣대를 휘두르고 있다. 문화를 진흥하겠다며 아예 입을 틀어막는 이 미친 짓거리 앞에서 왜 입을 꾹 닫고 있나. 니들이 그토록 바라던 문화 강국이 고작 이런 꼬라지였나?
이 광기 어린 검열 소동은 작금의 좌파 진영이 숨겨온 가장 추악한 쌩얼을 폭로한다. 이들은 단 한 번도 독재를 진심으로 미워한 적이 없다. 그들이 견딜 수 없이 괴로웠던 것은 독재라는 ‘억압적 시스템’ 자체가 아니라, 단지 그 칼자루를 쥔 독재자가 ‘자신들’이 아니라는 사실뿐이었던 것 같다.
권력이 천년만년 끝나지 않을 것인냥 펜과 마이크를 뺏고, 듣기 싫은 노래를 법으로 꿰매려 드는 작금의 행태가 이를 완벽히 증명한다. 노래 가사 한 줄���저 권력자의 알량한 심기를 경호해야 하는 이 지독한 검열 국가.
과거 고(故) 신해철은 MBC '100분 토론'에 나와 대중문화 검열의 위선을 꼬집으며 이렇게 일갈한 바 있다. "청소년에게 유해하다는 이유로 대중문화를 막아야 한다는 논리라면, 가장 먼저 텔레비전 뉴스부터 차단하고 정치부터 금지시켜야 한다. 매일 거짓말하고 싸우는 정치판이야말로 청소년들에게 가장 유해하기 때문이다."
입버릇처럼 마왕을 추모한다던 자들이, 정작 그가 온몸으로 부수려 했던 억압의 가위질을 권력을 쥐자마자 더 날카롭게 갈아 창작자의 목을 겨누고 있다.
신해철의 뼈아픈 일갈을 지금 대한민국에 정확히 대입해 보자. 진정으로 청소년의 정신 건강이 걱정되어 사회적 '유해 매체'를 척결해야겠다면, 번지수부터 똑바로 찾길 바란다.
국정철학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전과없으면 고위직은 꿈도 못꾸고, 대통령 변호했던 인물들은 전문성과 상관없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판 청탁을 한 인물을 법사위 위원장에 올리고, 온갖 부패 범죄 혐의를 주렁주렁 매단 전과 4범을 맹목���으로 물고 빨며, 삼권분립과 법치를 농락하며 그의 충실한 '따까리' 노릇을 자처하는 당신들 민주당. 그야말로 그 존재자체가 청소년 유해물 그 자체다.
<오늘은, 특검 주장 “초대형 국정농단” 사건의 3개월간 출국금지 마지막 날입니다. 3개월간 수사는 전혀 없었는데, 출국금지 또 연장할겁니까?>
종합특검은 2026. 4. 7. “대북송금 진술회유에 윤석열 청와대가 개입됐다. ‘초대형 국정농단’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고는 저를 곧바로 출국금지하고 피의자 전환하였다고 하면서 대대적으로 언론보도하였습니다.
이를 담당한 특검보는 권영빈 변호사였는데, 위 보도 후 권영빈 특검이 이화영의 변호인으로서 쌍방울 뇌물 사건에서 이화영이 죄가 없는 것처럼 관계인들에게 거짓진술을 하도록 모의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러자 종합특검은 2026. 4. 16.경 담당 특검보를 교체하였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고는 거의 3개월이 지났습니다.
그 사이 저에 대해서는 계속 출국금지가 연장되었습니다.
그 동안 어떤 조사나 수사도 없었습니다.
그 동안 오로지 수사라고 할만한 것은 ‘출국금지‘였는데, 출국금지를 연장한 담당자는 여전히 “권영빈”이었습니다(출국금지 연장서 참조). 공정성 논란으로 특검보를 교체했다는 종합특검의 말마저도 거짓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시간 없어서 수사 못하겠다”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초대형 국정농단이라고 언론플레이할 때는 언제고, 3개월 지나서 시간이 없다면서 안해도 되는겁니까?
초대형 국정농단 실체가 있는데 수사를 안하는 것이면 직무유기이고, 그 실체가 없는데도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출국금지했다면 직권남용입니다.
어느 쪽입니까? 어느 쪽이라도 지금까지 수사를 조금도 안 하였음을 자백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수사를 이유로 출국금지를 하고 연장까지 하면서도, 수사는 전혀 안 한 것입니다.
오늘 2026. 7. 6.은 3달간 해왔던 그 출국금지 마지막 날입니다.
권창형 특검에게 묻습니다.
또 출국금지 연장할겁니까?
수사도 안하면서, 쌍방울 변호인 출신 “권영빈” 특검보 이름으로 또 출국금지를 연장할 것입니까?
애초 이 건은, 대북송금 수사에 청와대의 개입이 없었기 때문에, 특검에 수사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초대형 국정농단”이라고 하면서 저를 피의자 입건하고 출국금지하였습니다.
그러나, 없는 사건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저는 처음부터 이는 “특검에 의한 유언비어”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말대로, 대대적으로 언론플레이 되었던 그 “초대형 국정농단”은 3개월이 지나더니 “시간없어 수사 못하겠다”가 되었습니다. “못찾겠다 꾀꼬리“도 찾아보기는 하고 외쳐야 할텐데, 본건은 아마 수사를 한 적도 없었을 겁니다. 변명마저 거짓인 것입니다. 용두사미도, 태산명동서일필도 이보단 납득이 될 겁니다.
권창영 특검님!
‘헌법의 검’이니 하면서, 수사권도 없는 사건 유언비어 만들어 퍼뜨리고, 수사권 있는 사건으로 위장하여 출국금지라는 인권침해 조치를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일 맞지요?
당장 “초대형 국정농단”이라고 유언비어 퍼뜨린거 사과하고
즉시 출국금지를 해제하세요.
택도 아닌 언론플레이나 거짓변명도 그만 좀 하시고요.
혈세 쓰시면서 뭐하시는 겁니까 이게.
내가 어릴 적만 해도 골목길의 언어는 날것 그대로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요즘처럼 '장애우'같은 정제된 단어조차 잘 쓰지 않던 시절이다. 병신, 바보, 소경, 귀머거리, 정박아. 지금 들으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을 만큼 무식하고 배려 없는 단어들이 어른들의 입을 타고 아이들에게 여과 없이 스며들었다.
동네마다 덩치가 산만 한데 머리에 큰 땜통 자국을 하고 말을 더듬으며 아이들을 쫓아다니던 형이 있었고, 등에 베개를 업고 머리에 꽃을 꽂은 채 실성한 듯 웃고 다니는 누나가 한 명씩은 꼭 있었다. 잔인하게도, 반에는 그런 이들의 걸음걸이나 말투를 기가 막히�� 잘 흉내 내는 녀석들이 어김없이 존재했다.
우리는 그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보며 TV에 나오던 칠뜨기, 영구를 떠올리며 "저 자식, 나중에 배우 해도 되겠다"며 배를 잡고 뒹굴며 웃어��다. 약자의 아픔을 희화화하는 것이 누군가에게 비수가 된다는 사실을 모를 만큼, 우리의 사회도 우리의 유년도 무지했고 또 가벼웠다.
인간의 도덕적 성장이란 대개 아주 투박한 방식으로 찾아온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를 조롱하며 낄낄대는 그 행위가 견딜 수 없이 유치하고 '쪽팔린 짓'이라는 것을 그냥 감각적으로 깨닫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각성의 계기는 거창한 인권 교육이나 선생님의 체벌이 아니다. 어스름이 내리는 하굣길, 곁에 있던 사내 녀석이 툭 던지는 거친 욕설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쪽팔리니까 그만해라, 이 새끼야."
그 날 것의 핀잔 한 번에 등골이 서늘해지며 정신이 번쩍 든다. 물론 그 순간에도 이것이 거대한 인권에 대한 자각이나 사회적 연대감 때문은 아니다. 단지 '이런 짓은 폼이 안 나고 부끄러운 짓'이라는 어렴풋한 염치(廉恥)가 싹트는 과정일 뿐이다. 진정으로 차별과 혐���의 폭력성을 이해하고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어른으로 자라나기까지는, 그 후로도 삶의 무수한 상처를 겪고 넘어지는 기나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제 시선을 2026년 오늘의 목동야구장 덕아웃으로 돌려보자. 특정 프랜차이즈의 텀블러 마케팅을 빗대어 "스타벅스 가야지"라며 춤을 추고 조롱했던 배재고의 10대 소년들. 이 철없는 아이들을 향해 우리 사회의 좌파 기득권 어른들은 무엇을 했는가.
친구들 사이에서 "쪽팔리니 그만하자"고 스스로 자정할 기회나, 부끄러움을 깨우칠 시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대신 6개월 출전 정지라는 사회적 사형 선고를 내리고, 학교 교문에 검은 근조화환을 도열시키며 아이들의 인생을 통째로 난도질하는 무자비한 몽둥이를 휘둘렀다.
물론 이 지독한 본보기 덕분에, 앞으로 어떤 10대들도 함부로 광주나 5월에 대해 입 밖으로 꺼내거나 공개적으로 조롱하는 일은 없�� 것이다. 겉보기엔 완벽한 통제와 교정이다.
그러나 이 차가운 억압의 이면을 들여다보라. 아이들이 입을 닫은 이유가 광주의 희생에 대한 숭고함을 깨닫거나, 약자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권 의식이 성장했기 때문인가. 결코 아니다. 그저 '저 주제를 건드리면 재수 없게 엮여서 내 인생이 박살 난다'는 공포를 학습했을 뿐이다.
생각을 무르익게 할 토양을 불태워버리고 몽둥이질로 입을 틀어막은 결과, 청년들의 뇌리 속에서 광주의 5월은 어떤 모습으로 변질되어갈까?. 민주주의를 지켜낸 눈부신 시대정신이나 숭고한 훈장이 아니라, '말 섞으면 더럽고 귀찮은 ', 심지어 누군가 언급하면 폭발하는 일종의 '발작버튼'으로 완벽하게 추락해 버릴 것이다. 그저 길거리에서 몸이 불편한 이들을 마주했을 때 애써 시선을 피하고 거리를 두려 했던 과거의 그 얄팍한 회피 본능. 좌파 권력의 맹목적인 엄숙주의가 바로 그 비겁한 본능을 아이들의 내면에 이식해버린 것이다.
존중은 강요로 빚어지지 않으며, 애도는 억압으로 강제할 수 없다. 자신들이 독점한 성역을 지키기 위해 청춘의 미래를 땔감으로 던져 넣는 사회. 스스로 부끄러움을 배울 기회를 앗아간 이 참담한 폭력의 끝에서, 5월의 광주는 서서히 고립된 섬이 되어갈 것이다.
매불쑈와 김어준이 지키고 유시민을 반긴다는 광주정신. 아름답게 지켜지길 기대한다.
타인을 이해할 능력을 상실한 권력이 휘두르는 무식한 몽둥이질이야말로,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유산을 가장 볼품없는 골칫거리로 깎아내리는 최악의 훼손이다.
전·현직 권력자가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단다. 국가 서열의 최정점을 찍어본 두 거물이 밀실에서 만났으니, 식탁 위에는 필시 국가의 명운을 건 묵직한 담론이 오갔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이 두 양반이 냅킨을 입에 닦으며 내놓은 대화의 요약본을 보고 있자니, 팝콘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 역대급 실소가 터진다.
"당내 멸칭 쓰지 맙시다. 우리 똘똘 뭉쳐야 합니다."
눈을 비비고 다시 읽어봐도 이게 전부다. 동네 조기축구회 회식 자리나 맘카페 임원진 단합대회 안건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자와 현재 국가의 운전대를 쥔 자가 마주 앉아 나눈 웅장한 대화의 실체다.
극단적 대비를 위해 차가운 팩트의 렌즈를 창밖으로 돌려보자. 지금 대한민국의 ���실이 어떤가. 환율은 1,560원을 뚫고 올라가며 1997년 외환위기급 공습경보를 울리고 있다. 살인적인 고물가에 서민들의 장바구니는 텅텅 비었고, 청년들은 희망을 잃고 도박판 같은 증시에서 비명을 지르고 있다. 국가의 척수가 바사삭 부서져 내리는 완벽한 국가적 비상사태다.
이쯤 되면 카메라 앞에서 쇼를 하더라도 "고물가 고환율로 국민들 삶이 팍팍하니, 우리 모두 책임을 느끼고 민생을 챙겨야 한다"는 뻔하디뻔한 립서비스라도 던져주는 것이 정치인의 기본 옵션이다. 그런데 웬걸. 경제가 베네수엘라행 KTX를 타고 폭주하든 말든, 두 권력자의 최대 관심사는 오직 강성 팬덤들이 뱉어내는 멸칭 멈추기와 진영의 밥그릇 사수뿐이다.
배 밑바닥에 구멍이 뚫려 승객들이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데, 구명보트를 독점한 전·현직 선장 두 놈이 마주 앉아 "야, 너 우리 패거리한테 욕하지 마, 뭉쳐야 우리가 살아"라며 낄낄대고 있는 꼴이다. 참으로 얄밉고 비린내 나는 마피아들의 오찬이다.
수준들 참 웅장하다. 사법 리스크의 방화벽이 무너질까 벌벌 떠는 자와, 그 틈새에서 자신의 잊���진 권력을 1그램이라도 연장해 보려는 자의 찌질한 야합. 국부가 탕진되든 말든 오직 '우리 진영', '내 방탄'만 무사하면 그만이라는 지독한 소시오패스적 쌩얼 앞에서 우리는 뼈저리게 확인한다. 이 나라 정치판에는 책임질 줄 아는 진짜 '어른'이 완벽하게 멸종했다는 사실을.
환율 1,560원의 파국 앞에서도 고작 '당내 단합'을 부르짖는 자들에게 국가를 통째로 넘겨준 대가치고는 참으로 가혹하다. 차라리 그 비싼 오찬 밥값으로 폐지 줍는 어르신들 국밥이나 사드렸으면 국가적 쓸모라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우아하게 나이 먹기를 포기한 꼰대들이 권력을 쥐면, 국가 전체가 이토록 얄팍한 3류 시트콤의 무대로 굴러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