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ief pleasure of THE HEART OF THE NHAGA is how it combines the familiar structure and conventions of an epic fantasy with worldbuilding details that to a Western reader feel entirely alien.” @NussbaumAbigail reviews new work from Lee Young-do https://t.co/qCTo1vmBpR
영국 진보 진영의 필독서로 떠오른 책 <하이���폴리틱스: 정치적 성과는 없는 극단적 정치화Hyperpolitics: Extreme Politicization without Political Consequences>의 저자 32세 마르크스주의 정치학자 Anton Jäger 인터뷰
지금이 ‘하이퍼폴리틱스(들뜬, 흥분한 정치)’의 시대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1914년부터 1989년까지는 대중 정치 시대였다. 이 시기에 정치화 수준은 높았고 제도화 수준도 높아서 시민들은 선거를 통해서나 거리에서 정치에 참여했다. 그들은 정당, 노조, 교회, 노동자 클럽, 독서 모임 등에 가입해 활동하는 ‘참여자’였으며, 서로 얽혀 있는 다양한 제도에 참여했다. 정치적 투쟁이 구체적인 성과를 가져온 시기이기도 했다.
그 후 2008년 금융 위기까지는 포스트-정치 시대였다. 이 시기 정치 제도화 수준은 낮았고 정치화는 바닥을 쳤다. 기술관료들이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나머지 사람들은 레이브 파티에 몰려다녔고, '역사는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끝났다'고 말하던 때였다.
금융 위기가 터진 시점(혹은 그 이전)부터 2020년경까지는 反정치 시대였다. 미국의 티파티 부활, 이탈리아의 베페 그릴로와 반체제 시위, 아랍의 봄, 월가 점령 운동 등이 그 예다. 이 시기 정치화는 맹렬한 기세로 복귀했고, 제도화는 아직 회복되진 않았지만 이런 운동들은 여전히 제도적 야망을 품고 있었다.
그 다음이 ‘하이퍼폴리틱스' 시대다. 제도적 뿌리도, 제도적 야망도 없는 극도의 정치화 현상이다. 표면적으로는 ‘흑인 생명도 중요하다’ 시위나 미 의사당 습격 폭도는 공통점이 거의 없어 보인다. 도덕적으로는 천지 차이이지만 조직적 측면에서는 둘은 놀라운 유사점을 보인다. 지속 기간이 짧고, 회원 명부도 없으며, 지지자들에게 실질적인 규율을 부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그 결과 모든 것이 폭발적이지만 아무것도 변하지는 않는다. 운동은 갑자기 치솟지만 어떤 영역도 장악하지 못한다.
정치 이론가 파올로 게르바우도가 말한 '장기 없는 신체'처럼, 지금의 정치 운동은 '집중적이고 강력하지만 내적 대사 작용은 없다'. OECD 회원국 전역에서 이런 양상을 보인다.
기후 파업 참가자들이나 봉쇄 조치 반대 시위자들이나 모두 “짧고 강력한 자극에 의해 움직이는 무수한 존재들로, 카리스마 넘치는 인플루언서와 디지털 선동가들에 의해 행동으로 이끌리는” 존재들이다.
대중 정치의 전성기는 양차 세계 대전 사이였다. 당시 시민 단체들은 노동에서 토끼 사육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모든 활동 영역을 아우르고 있었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경계는 거의 없었고, 당원증 없는 정치적 정체성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에겐 꽤 구속적이었지만 덕분에 일이 제대로 처리되곤 했다.
정치 조직의 붕괴는 단일 원인으로 설명�� 순 없���만, 대처와 레이건의 노조 탄압이 주효했다. 사람들이 조직에 대한 믿음을 잃은 이유는 그들의 영향력 중 가장 핵심적인 부분-즉, 파업으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단계, 전면전 직전 단계-이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노조가 힘을 잃으며 노동자들은 빈곤에 빠졌고,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서 결국 자신의 업이 붕괴되는 걸 목격했다.
수십 년에 걸친 문화적·세대적 변화도 있었다. 가령, 60-70년대 사람들은 해방과 평등을 원했다. 1989년이 되자 세상은 낮과 밤처럼 달라진 것 같았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냉전 종식으로 갑자기 모두가 축제를 즐길 자격이 생긴 것 같았다.
블레어는 세계화를 날씨만큼이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고 했고,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를 그냥 받아들여야 할 일이라고 설파했다. 이게 바로 90년대 ‘포스트-정치’의 모호함이었다.
정치는 더 이상 대규모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것으로 인식되지 않고,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란 더 사적이고 더 개인적인 것이 되었다. 다른 개인들과 집단적으로 뭉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멀게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시절엔 아름다움도 많았다. 볼프강 틸만스의 사진과 애니 에르노, 미셸 우엘벡의 소설 같은 것들. 전통 가족이나 공동체, 이웃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던 사람들은 이전보다 훨씬 덜 부담스럽고 덜 엄격한 일종의 새로운 공동체를 찾았다. 모호한 점은 이것이 정치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깊은 환멸과 냉소주의를 내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 열광하는 공동체를 볼 수는 있어도 의회를 통한 경로에 대한 믿음은 전혀 없는 것.
신자유주의에 의한 제도 파괴와 그 뒤를 이은 포스트-정치 및 反정치 현상에는 좌파만 있었던 게 아��다. 대처는 대중적 보수주의를 대부분 홍보 전략과 막대한 민간 자금으로 대체했다. 미디어를 장악하고 있으니 대중 정당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였다. 그것만으로도 선거에서 이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파는 좌파만큼이나 무의미해졌다. 이유는 정확히 동일하다. 과열되어 있지만 공식적으로 조직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시위 참여자들은 서로 같은 팟캐스트를 구독하고, 같은 소셜 미디어 계정을 팔로우하며, 같은 텔레그램 채널에 가입해 있을지는 몰라도, 시위에 참여하기 전부터 공유해 온 조직적 역사라고는 없다.
하지만 우파와 좌파는 사정이 다르다. 우파가 더 많은 돈을 갖고 있다. 머스크 같은 갑부의 존재 자체가 한 개인이 ‘사회’라 부를 수 있는 것에서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우파의 ‘하이퍼폴리틱스’는 번성하는 반면, 좌파의 ‘하이퍼폴리틱스’는 가시적 성과�� 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 이유를 설명한다. 우파가 더 조직적이거나 이념적으로 더 일관되거나 더 전략적인 게 아니다. 단지 자금력이 더 뛰어날 뿐이다.
이는 세계 정치의 포��적인 조직 원리로서 자본 그 자체에 상당한 책임을 지운다. 돈이 유일한 발언권은 아닐지는 몰라도 바라는 것을 얻어내는 유일한 수단은 돈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정확히 말해 파시즘이 아니다. 우파는 조직화된 사회주의의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했을 때만 파시즘이라는 극단으로 치닫기 때문이다. 지금 좌파는 상대를 파시스트로 간주함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오히려 이롭게 하고 있다.
현대의 극우 세력은 좌파의 강력한 힘보다는 자유주의 자체의 위기에서 기인한 현상이다. 트럼프를 통해 목격하는 것은 ‘보나파르티즘’이다. 강력한 대중 운동이나 계급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나폴레옹이 그랬듯이 대부분 수동적인 빈곤 서민들 지지에 의존하고 있는 것. 물론 파시즘에서 보나파르티즘에 이르는 스펙트럼은 더 급진적인 것으로 전환될 수 있다.
지금은 실질��이고 견고한 연대 대신 일시적인 하이퍼정치적 군집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민주 지도자는 변덕스러운 파도를 헤쳐 나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지 못하면 또 다른 희생자가 될 것이다. 변덕스러운 파도들 제도와 다시 연결시키고 새로운 제도를 구축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지금 우리는 조직에 가입하기보다 탈퇴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한 인센티브가 주어지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정당에 가입하든 노조에 가입하든 집단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종종 무력화시킨다. 이에 대한 합리적 반응은 무력감이다. 그럼에도 다시 정치화한 것은 긍정적 현상이다. 하이퍼폴리틱스는 정치가 중요하다는 사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높여준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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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트윗이 닿을지는 모르겠지만 서울 여행 와서
>>>현지인 맛집<<<을 가고 싶어하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광화문 르메이에르 2층~지하 2층 식당가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라잡으면 됨
여기 있는 가게들은 종로광화문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승부에서 살아남은 역전의 용사들임 진짜 어딜 들어가도 대충 맛있음
다만 점심피크타임에는 어디든 붐비니 점심 살짝 지난 후 들어가는 걸 추천
사진은 돈까스 먹으러 르메이에르 던전 들어갔다가 길 잃어서 들어간 광양면옥ㅋㅋㅋ 맛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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