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고 사태는 우리 시대를 돌아보게 되는 거울인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일을 저지른 선수들이 얼마나 힘들지, 그 선수들의 부모님들이 얼마나 가슴을 졸이고 속을 썩일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잘못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건 지극히 상식적인 우리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그런 상직적인 방식을 인식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자꾸 많아진다는 것은 우리 사회 전체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번 기회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배려하면서 함께 산다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우리의 삶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야 하는 것임을 학생들은 물론 어른들도 모두 다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기를 부디 바랍니다.
어려서 학교든 동네든 무슨 놀이를 할 때면 ‘깍두기’가 있었습니다.
그 의미가 언제부턴지 잘못된 힘쓰는 이들을 칭하며 흉악하게 변질되기도 했지만, 그 시절 깍두기는 참 정겨운 놀이문화(?) 였습니다.
축구를 하든 야구를 하든 또 무엇이든 편을 갈라 놀아야 할 때는 제일 먼저 깍두기를 정했습니다. 또래보다 어리거나 혹은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애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그들에게 먼저 편을 정해줍니다.
그리고나서 두 팀으로 나눠, 깍두기 친구나 동생과 함께 모두 함께 어울려 신나게 뛰어놀았습니다. 우리 사회에 언제부턴지 나타난 ‘괴물 정서 왕따’ 같은 건 그땐 상상도 안 했습니다.
오래전 우리 조상님들은 벌레가 많은 여름철이면 짚신이나 미투리, 나막신 같이 성글게 엮은 혹은 굽이 높은 신발을 신었습니다.
꼭 ‘벌레 보호용’이 그 이유는 아니었지만, 혹시 밟아도 벌레가 빠져나갈 틈이 있던 신들이었습니다.
여름철에 걸을 때면 지팡이(주장자)로 땅을 가볍게 짚어 소리를 내면서 걸어, 진동을 느낀 벌레들이 미리 피하게 하려 했다는 야사도 전해집니다.
시대는 너무도 많이 변했고,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지독히도 경쟁과 생존의 치열함 속으로만 내몰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럴수록 따뜻하게 나누고 존중하고 함께 행복할 수 있는 문화를 아이들에게 전해줘야 할터인데 어른들이 참 미안합니다. 편가르기와 조롱과 혐오는 놀이가 아니라 징벌의 대상인 아주 아주 나쁜 행위이자 잘못된 사고임을 모두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세계로 뻗어가는 우리 대한민국 문화의 미래에 대한 어쩜 유일한, 그치만 너무도 큰 걱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건 이런 불행한 사태를 정쟁으로 이용하려는 자들은 정말 추악해 보입니다.
이게 정쟁으로 만들 문제인가요?
배재고 야구 선수들이 이번 사태로 많이 깨닫고 반성하고 바른길로 성실히 나아가 반드시 원하는 목표를 향한 기회를 잡기 바랍니다.
살다 보면, 길게 보면, 결국 모든 걸 책임지는 건 우리 자신일 겁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우리를 늘 지켜보고 있고, 진정으로 나아가다 보면 우리의 진가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을 겁니다.
배재고 선수들이 절대 당장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말고, 더 좋은 학생, 더 좋은 선수, 더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길 응원합니다. 부모님들이 잘해주셔야겠지요.
언젠가 광주일고 선수들과 배재고 선수들이 이 사회의 어떤 분야에서든 만나서 함께 지난 일을 이야기하며, 함께 하는 사회를 끌어가는 시절이 오기를 바랍니다.
배재고 사태 이후,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광주에 '좋은 피해자'가 될 것을 강요한다. 더 성숙하게 대처하고, 더 이해하고, 더 포용하고, 그래서 가해자 입장에서 더 편한 피해자가 되라고. 대체 왜 그래야 하나. 그날 그라운드에 있었던 건 같은 나이의 미성년자들이다.
보수단체들이 야구협회를 경찰에 고발했다고 합니다. 협회가 배재고에 6개월 출전정지의 징계를 내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1. 이래서 개헌이 필요합니다. 5.18이 헌법에 수록되면 뚜렷한 위헌적 행위에 대한 징계는 의문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어떻게 경찰에 고발하겠습니까.
2. 야구협회를 비롯한 모든 체육 관련 기관은 회원의 혐오행위와 관련된 처벌 규정을 이제라도 강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그 처벌규정에 대한 위헌 시비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결국 이슈는 개헌으로 돌아갑니다.
3. 이번 사태를 솜방망이 처벌로 끝내면 다음 번 사태가 발생했을 때 강력하게 대응하기가 어렵습니다.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극우는 저절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분명한 대응을 해서 불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마치 다른 범죄를 저지르다 걸리면 불편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