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ident Trump is taking historic action to bring down the price of energy & cost of living for ALL Americans with the power of clean, beautiful coal.
The investment will result in:
✅ 14 plants saved
✅ New plants built
✅ 14k + jobs
✅ $50B saved for American families
The Model Cities Initiative fights for a safer America, with MORE police officers on our streets and MORE criminals behind bars. President Trump and @TheJusticeDept are committed to cleaning up American streets for good.
<천벌은 있다>
이재명과 민주당은 검찰이 자신들에게 법의 칼을 들이대자 그 조직을 없애버리는 무시무시한 독재의 결정을 내렸다. 그것도 모자라 ‘공소취소’라는 독을 풀어 스스로 ‘자기 재판의 재판관이 되려는’ 신의 영역에 들어가려 한다. 권력을 남용한, 너무나 사적인 결정이자 ‘정치보복’이었다.
2026년, 선관위는 민주주의 꽃을 짓밟고 더럽혔다. 시스템은 무너졌고 국민들은 더이상 국가를 믿지 못 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러나 국가기관이 저지른 이 참담한 범죄를 두고 이재명과 여당은 이번엔 남의 일 대하듯 말하고 행동한다. 멀쩡한 표정으로 책임에서 빠져나와 시민들 틈에 숨어 함께 손가락질을 하고 있다. 그 뻔뻔한 얼굴에 비위 약한 나는 구역질을 멈출 수가 없다.
선관위원장의 사퇴는 당연한 일일 뿐이다. 이제 곧 등장할 ‘노태악이 물러났으니 다 해결 되었다’고 말하는 자가 범인이며, 요란 떠는 언론은 차라리 공범일 뿐이다.
실체 없는 개딸들 그리고 돈과 양심을 바꾼 탐욕스런 유튜버들이 온라인에서 연일 짖어댄다고 해서 정상적인 시민들의 분노를 가릴 수 없다. 너희에겐 불행한 일이겠지만 국민 모두가 바보는 아니다. 참아주던 시민들 그리고 침묵하던 양심들에게 너희는 명분을 주었다.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그 모래성 같은 권력은 너희가 탐할수록, 손아귀에 쥐려고 발악할수록 빠르게 무너진다. 천벌의 업보는 지금 이 시간에도 쌓이고 있고 언제나처럼 시차만 있을지언정, 오차는 없다.
빵과 투표함, 역사라는 가장 서늘하고 잔혹한 채점관
역사를 기록하는 자들은 종종 인간의 투쟁을 거창한 이념의 언어로 낭만화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1789년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한 파리의 군중들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숭고한 깃발을 흔들었지만, 그들을 광장으로 내몬 진짜 동력은 텅 빈 국고와 폭등하는 빵값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역시 마르크스의 난해한 자본론이 아니라, 당장 굶어 죽어가는 농민들의 텅 빈 위장이 빚어낸 핏빛 폭발이었다.
인간은 거창한 도덕과 이념의 구호를 내걸고 혁명을 완수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거대한 체제 붕괴의 밑바닥을 흐르는 가장 본질적인 마그마는 언제나 '경제적 고통'이었다.
우리의 현대사도 이 차갑고 정직한 인과율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좌파 진영은 늘 1960년의 4.19 혁명이나 1979년의 부마항쟁을 오직 '민주주의를 향한 순결한 열망의 승리'로만 독점하고 포장하려 든다. 하지만 그 감성의 거품을 걷어내 보라.
4.19의 직접적인 도화선은 3.15 부정선거였으나, 그 불길이 온 나라를 맹렬하게 집어삼킬 수 있었던 기저에는 전후의 극심한 경제 불황과 대중의 절대적 빈곤이 깔려 있었다. 부마항쟁 역시 겉으로는 유신 체제의 억압에 대한 저항이었으나, 그 실질적 트리거는 제2차 오일쇼크로 인한 살인적인 물가 폭등과 지역 경제의 붕괴가 임계점을 넘었기 때문이었다. 내 삶의 토대가 무너져 내리는 경제적 공포, 그리고 내 밥그릇을 비워버린 주제에 주권마저 도둑질하려는 권력을 향한 민중의 항의. 그것이 대중의 인내심을 끊어버리는 역사의 가장 일관된 방정식이다.
지금 이재명 정권이 마주한 대한민국의 풍경이, 바로 이 뼈아픈 붕괴의 역사적 데칼코마니다.
1,550원 선마저 맥없이 뚫려버린 환율의 붕괴, 그리고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증시의 폭락. 과거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급의 공포가 도래했음에도, 권력은 이를 두고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나 '중동발 대외 변수' 탓을 하며 변명하기 바쁘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은 얄팍한 거짓말에 속지 않는다. 진실은 한없이 차갑고 명확하다. 이 거대한 경제적 발작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오직 표를 사기 위해 국가의 곳간을 헐어버린 이재명의 얄팍한 포퓰리즘이 빚어낸 완벽하고도 필연적인 인재(人災)다.
치솟는 환율을 방어하고 통화 가치를 지켜내는 경제학의 교과서적 해법은 단순하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좁히기 위해 기준금리를 올리고, 시중에 풀리는 유동성(M2)의 수도꼭지를 단단히 틀어막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는 금리를 올릴 수 없는 치명적인 딜레마에 갇혀 있다. 공식 통계로만 1,900조 원, 전세보증금까지 합치면 3,000조 원에 육박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계부채 뇌관 때문이다. 금리를 올리는 순간 한계 상황에 내몰린 서민과 영끌족, 자영업자들이 연쇄 도산한다는 것이 경제 관료들이 내세우는 처절한 방어 논리다.
백번 양보해 그 고육지책을 인정한다 치자. 통화 정책의 손발이 묶여 있다면, 상식적인 정부가 취해야 할 최후의 방어선은 빚을 내서 허공에 무지성으로 돈을 살포하는 '재정 중독'만큼은 결사적으로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이재명은 정반대의 길로 폭주했다. '기본소득', '민생 회복 지원금', '고유가 피해 지원금'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얄팍한 간판을 내걸고, 수십조 원이 넘는 현금을 윤전기로 찍어내 대중의 입에 쑤셔 넣었다. 금리는 묶어둔 채 화폐의 공급량만 미친 듯이 늘려대니, 원화의 가치가 휴지 조각으로 전락하고 환율이 1,550원을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것은 초등학생의 산수 실력으로도 예측 가능한 인과율이었다. 그 결과 국가채무는 1,415.2조 원을 가볍게 돌파했고, GDP 대비 채무비율 50%라는 마지노선마저 무너지며 미래 세대의 등에 거대한 폭탄을 지워버렸다.
여기에 이 나라의 숨통을 진짜로 끊어놓을 가장 서늘한 뇌관은 따로 있다. 바로 중동의 지정학적 리스크와 텅 비어버린 '국가 전략 비축유'다.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고조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고, 전면전 발발 시 15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핏빛 전망이 쏟아지고 있다. 원유 수입의 72%를 중동에 의존하는 한국 경제에 이는 사망 선고와 같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순수입량의 90일 치 이상을 비축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은 단기적인 국내 유가 불만을 덮고 선거용 인심을 쓰겠다며, 국가 생존의 최후 보루인 이 '전략 비축유'를 찔끔찔끔 빼 쓰며 아슬아슬한 최저치로 추락해 버렸다. 비상시 국가를 지탱할 비축 일수는 아슬아슬한 최저치로 추락했다.
자국의 상선에 이란의 대함 미사일이 꽂혀도 "고의성을 모르겠다"며 비굴하게 엎드리는 아마추어적 굴종 외교는, 국제 사회의 에너지 안보 공조망에서 대한민국을 철저히 고립시켰다. 껍데기뿐인 반미 자주 외교를 떠들며 레드팀에 윙크를 보내는 사이, 국가 경제의 혈관인 원유 수급망을 스스로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완벽한 안보적 자해극이다.
1,550원의 환율,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외국인 자본, 1,200조 원의 국가채무, 아슬아슬한 원유 비축량, 신선식품 물가도 불안하다.
이것이 그들이 맹신하는 "일 잘하는 이재명"이 남긴 건조하고도 완벽한 팩트다. 그는 결코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자신의 정치적 생존과 권력 연장을 위해 국가의 자본을 탕진하고, 비상용 비축유마저 헐어 쓰며, 미래 세대에 천문학적인 빚을 떠넘기는 '파괴의 기술'에 능할 뿐이다.
가난한 자를 돕겠다며 쥐여준 그 알량한 지폐 몇 장은, 결국 잔혹한 인플레이션과 고환율로 돌아와 서민의 밥상 물가를 폭등시키고 지갑을 털어가는 가장 악랄한 '빈자의 세금'으로 돌아왔다. 모니터 속 붉게 물든 증시와 1,550원이라는 환율 전광판이, 이 나라의 경제가 지금 얼마나 서늘한 지옥의 문 앞에 서 있는지를 차갑게 경고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의 수출 실적 뒤에 숨어 유능한 행정가 행세를 하지만, 실물 경제의 지표를 들이대는 순간 그 얄팍한 환상은 이토록 손쉽게 산산조각이 난다.
'우연히도' 선거가 끝나자 고삐풀린듯 올라가는 환율에 우파 텃밭에서만 핀셋으로 집어낸 듯 증발해버린 투표용지, 권력의 눈치를 보며 헌법을 찢어버린 선관위. 6.3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이 사상 초유의 참정권 압살 사태는, 과거 3.15 부정선거의 가장 기괴하고도 세련된 21세기적 변종이다.
저들은 잠실 투표소 앞의 시위대를 경찰의 방패로 밀어내고 개표를 강행하면, 이 소란이 며칠 뒤 유야무야 가라앉을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하지만 팍팍한 밥상에 대한 대중의 분노와, 짓밟힌 주권에 대한 모멸감이 융합되었을 때, 그 거대한 파도가 권력의 숨통을 어떻게 끊어놓는지 저들은 역사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이 사태는 결코 경찰의 군홧발로 덮을 수 있는 얕은 불씨가 아니다.
더욱 서늘한 것은, 이재명 정권을 향해 날아들 진정한 악몽은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치적 억압은 견뎌도, 텅 빈 지갑과 빼앗긴 표의 교집합만큼은 결코 참지 않는 것이 대중의 차가운 속성이다.
바닥난 금고, 증발한 비축유, 다가오는 미국의 301조, 그리고 투표함. 권력의 무덤을 파는 가장 완벽한 원소들이 지금 이재명의 발밑에 차곡차곡 쌓였다. 경찰의 몽둥이 따위로 이 거대한 역사의 인과율을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오만을 넘어선 가련한 무지다. 바스티유의 횃불과 마산의 함성이 그러했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