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적어도 나는 좀 편해질 줄 알았다.
국민이고 뭐고 다 떠나서, 솔직히 내 삶에 조금은 더 충실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검찰과 사법부, 경찰과 언론의 부조리와 불공정, 평범한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고 정작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는 그 불합리한 현실을 바로잡아 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더는 정치 뉴스에 분노하며 잠 못 이루지 않고, 내 일과 내 삶에 집중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들려오는 소식들은 무엇인가. 누구는 무죄라 하고, 누구는 풀려날 수 있다 하고, 개혁을 외치던 사람들은 오히려 공격받고, 납득하기 어려운 인사 소식은 끊이지 않는다.
정말 지겹고 힘들다.
지금 당장 먹고사는 일만으로도 벅찬데, 언제까지 국민이 정치 때문에 분노하고 불안해하며 살아야 하는가.
혹시 이런 피로감에 국민들이 정치에서 멀어지기를 바라는 것인가. 지쳐서 침묵하면 그때부터는 권력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나 역시 이제 그만 보고 싶고, 그만 듣고 싶고, 내 삶에만 집중하고 싶다.
하지만 정치가 잘못되면 결국 무너지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불공정한 제도와 권력이 그대로라면 내 삶 역시 온전히 지킬 수 없다.
그래서 지쳐도 외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좋아서가 아니라, 정치에 빼앗긴 내 평범한 일상을 되찾고 싶어서다.
그저 상식이 통하는 나라에서 내 일에 충실하며 마음 편히 살아가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바람이었나.
이태경
결국에는 부질없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한다는 것, 유시민의 경우
1. 유시민에게 덮씌워진 모함과 악의적 비방들 가운데서도 가장 어처구니 없는 것 중 하나가 유시민을 권력을 탐닉하는 자로 묘사하는 것이다. 유시민의 삶과 중대한 결정과 발언들을 보면 너무나 분명히 드러나지만, 유시민은 권력탐닉의 반대말이다.
2. 유시민이 직업정치에 몸담은 건 대략 10년 남짓이다. 유시민은 그 시절을 꽤 고통스럽게 회상하곤 한다. 유시민 스스로 말했듯 직업정치인으로서의 삶은 그에겐 의무복무 비슷한 것이었다. 유시민이 권력 자체를 탐하는 권력의지의 화신이었다면 자기에게 남은 시간을 자유인으로 쓰기 위해 2013년에 홀연히 정치판을 떠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2019년 이후 정치세계로 복귀해달라는 시민들의 빗발치는 요청에 미동도 하지 않는 것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3. 꽤 오래전 유시민은 한 방송인터뷰에서 '인생이 되게 짧아요. 그리고 남는 게 별로 없어요. 부질없어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유시민의 이 말은 허무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다. 유시민은 본디 무신론자였을 뿐 아니라 직업정치를 그만 둔 후 자연과학 공부에 심취했다. 자연과학은 우주가 지닌 공간의 광대함과 시간의 두께를 절감하게 만들고, 인간을 포함한 생물 발생의 무목적성과 무계획성과 무지향성에 대해서 탄식하게 만든다. 요컨대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는 그냥 생겼고 존재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며 종국엔 모두 소멸한다. 그런 관점으로 보면 호모사피엔스의 역사나 성취나 지지고 볶는 일들이나 심지어 각종 참극조차도 먼지의 무게와 찰나의 순간에 불과하다.
4. 그래서 아니 그렇기 때문에 유시민은 '청춘의 독서' 저자 자필 서명에 "저마다 원하는 삶을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사는 것이 최선이다. 그렇게 믿는다"고 적은 것이다. 그게 자연인 유시민이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는 방식이다.
유시민의 저 말은 존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나오는 그 유명한 문장 "스스로 설계한 삶은 그 자체로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그 자신의 방식이기 때문에 그에게 가장 적합하다. 인간은 양이 아니다. 양도 완전히 다 똑같지는 않다."과 켤레를 이루는 유시민식 판본이다.
5. 바로 이 지점에서 유시민이라는 지평이 열린다. 무의미와 맹목으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인간으로 태어난 유시민은 그것만이 최선이라고 믿기에 한국사회가 직면한 근본모순들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유시민의 가슴에 달린 학생운동가, 저술가, 방송인, 직업정치인, 비평가, 작가 등의 타이틀은 유시민만의 방식이다. 지구의 필멸을 믿고 호모사피엔스의 한계를 직시하는 한 자연인이 한국사회가 국면마다 봉착한 모순들과 말과 글을 무기로 싸우는 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가장 거대한 상징권력을 획득했다는 사실만큼 역설적인 경이도 드물다.
6. 며칠전 mbc권순표의 물음표에 나온 유시민은 약간 지치고 어딘가 서글퍼보였다. 유시민이 "사실 삶이 내일 모레 끝난다고 해도 그렇게 아쉬울 게 없을 정도로 살았거든요. 이미"라고 말했다. 자기 나이가 올해 예순여덟인데 1959년생의 평균 기대여명이 불과 50살이라는 말도 곁들였다.
순간 사금파리가 날아와 심장에 박히는 느낌이었다.
7. 언젠가 유시민이 사라지거나 공적 발언을 멈출 날이 올 것이다. 빠르건 혹은 느리건. 그때 우리는 아니 나는 누구를 의지해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것인가? 문득 눈 앞이 흐려진다.
이태경
유시민이라는 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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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5년 의사 정혜신이 쓴 "천하의 유시민을 어찌 당하랴마는"이라는 컬럼은 대연정 제안을 한 노무현 대통령을 옹위하는 유시민의 태도를 근심하는 내용이었지만, 유시민은 홀로 전 국민을 상대로 논전을 해도 지지 않을 사람이라는 경탄 역시 짙게 배어있는 명문이다.
2. 유시민이 강호에 출사한지 사반세기가 넘었지만 누구도 그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셀수 없이 많은 논쟁의 고수들이 유시민에게 도전했지만 모두 일패도지했다. 항우를 무력의 만인지적이라고 부르지만, 지적 수준과 토론 능력에서 유시민을 만인지적이라고 부르는 건 합당해 보인다. 항우가 서초패왕이라고 불렸듯 유시민을 토론의 패왕, 말하기와 글쓰기의 마에스트로로 칭하는 건 적정하다.
3. 유시민이 나이가 들수록 영향력이 끝도 없이 커지는 건 천재의 천재인 그가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해서 획득한 지적 역량과 말하기 능력과 글쓰기 능력을 공익에 부합하게 사용하는 까닭이다. 유시민은 과거에도 빛났지만 특히 2019년 윤석열의 난 이후 내란을 거쳐 이재명 정부 출범까지의 6년 동안 그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찬연하다 못해 눈이 부실 지경이다. 그 어떤 지식인이나 논객도 유시민과 비교하면 달빛에 도전하는 반딧불에 불과하다.
4. 과거부터 최근까지 유시민이 했던 분석이나 설명이나 예측이나 전망은 빗나간 것을 찾기 힘들다. 그럴 수 있었던 까닭은 유시민이 지식인의 지식인이기도 하지만 자리를 탐하거나 사리를 추구하지 않아서다. 특히 민주당이나 민주당 정부를 향한 유시민의 고언과 직언은 탄광 속의 카나리아 같은 역할을 한다. 민주당과 이재명 정부는 유시민 귀한 줄 알아야 하며, 그 누구도 유시민을 대체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옳다.
5. 7년 전쟁 당시 진린이 이순신을 두고 '경천위지 보천욕일'라고 칭송한 바 있다. 유시민에게 진린이 이순신에게 바친 찬사를 바치는 게 면구스럽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유시민의 능력과 공은 뛰어나다. 대한민국은 이재명 보유국임과 동시에 유시민 보유국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