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장사꾼들 말버릇이 '트위터를 통해 전세계 사람들과 연결하고 사업기회를 만드세요' 였는데, 물론 적당히 해외결제 계정 만들어주고 트위터 프로필사진 대충 만들어서 주고 몇 개 솔깃한 아이템 알려준 다음에 도망가는 게 루틴이었다. 그 다음에 그게 팔릴지는 알아서 하라 하고.
사실 대단히 오래된 논쟁이고, 한국에서 아마 순수-참여문학 논쟁이 대표적일듯. 개인적으로는, 문학과 정치 프로파간다를 구분짓는 지점은 문학성에 있다고 생각. 1984나 동물농장은 정치적인 목적으로 썼지만 문학인 것처럼. 프로파간다 작품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극히 일부.
※이 글은 100퍼센트 제가 동의하는 글이 아닙니다. 제가 이 글을 발췌한 이유는 여러분의 의견이 순수하게 듣고 싶어서입니다.
내가 볼 때는 절대 잘 만든 작품이 아닌데, 열렬히 호응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처음엔 내가 늙은 시스젠더Cisgender 남성이다보니 작품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잘못 이해했나 싶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그게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은 작품의 완성도와 관계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야 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작품은 존재만으로 소중해서 적극적으로 응원해줘야 남성 주인공, 남성/가부장 서사로 점철된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들에게는 공연이나 드라마/연극/영화를 보는 일도 운동과 연대의 일환이었다. 후기를 남기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예술작품에 대한 반응이 정치적 입장에 치우쳐 편파적이어도 괜찮을까. 여성과 성소수자처럼 억압당하고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의미 있고 중요하지만, 예술은 정치와 다르다. 예술은 소재나 주제의 가치와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완성되지 못한다. 아무리 가치 있는 주제여도 그것만으로는 감동을 줄 수 없다. 작품이 독자에게 가서 살아 움직이려면 예술 언어로 잘 표현해야 한다. 좋은 구조와 좋은 이야기를 찾아내야 한다.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작품은 누구의 마음도 흔들지 못한다.
문제는 예술이 소재와 주제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지향하는 가치를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편드는 일부 관객과 평론가들의 태도다. 명심하자. 예술이 자족의 도구나 편 가르기의 수단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예술은 보고 싶은 이야기를 대리 실현해주는 정치적 올바름의 이상향 피조물이 아니다. 예술은 끝없이 정답 없는 질문을 던지며 밀려오는 해일이어야 한다. 무지와 통념을 뒤흔드는 지진이어야 한다. 비평 또한 소재와 주제, 장르를 면죄부 삼아 찬사를 남발해서는 안 된다. 비평은 언제나 작품이 형식과 내용을 일치시켰는지 확인하는 깐깐한 파수꾼이어야 한다.
정치적 올바름이 실제로 영향력을 만들어내려면 설득력이 필요하다. 급진적인 파괴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팬에게 객관적이고 냉정한 태도를 요구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예술에는 질문이 필요하다. 여성 서사나 퀴어 서사는 정치적으로 올바를 수 있지만, 예술이 정치적 올바름만으로 완성될 수 있을까. 그런 식이면 과거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든 작품은 모두 명작이었어야 한다. 그 작품을 본 사람들은 다 감동받고 생각을 바꾸었어야 한다.
여성 서사, 퀴어 서사이기 때문에 그 자체로 급진적이라고 평가하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급진적인 사람이 되고, 래디컬한 비평이 되는 게 아니다. 그건 부족한 작품을 싸고도는 일이다. 비평을 패거리 의식으로 대체하는 일이다. 정치적 올바름을 납작하게 만드는 일이다. 당파성에 대한 착각이다. 진지한 주제의식을 담은 예술을 향한 노력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어버리는 협잡이다.
사회적 이슈를 다룬 작품들이 흔히 범하는 클리셰가 있다. 문제를 이상적으로 해결하고 끝내는 방식 말이다. 그런데도 호평을 받는 경우가 여러 번이다. 그건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도 아니고, 정의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환상이다. 물론 그렇게 해서 올바름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대리 만족하는 의미도 있다. 하지만 작품 안에서 정의롭게 싸우는 사람이 반드시 승리할 필요는 없다. 결론이 낙관적이어야 한다는 강박, 그래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압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예술작품은 얽히고설킨 사람들의 입장과 태도, 현실의 다양한 면모를 충분히 보여주는 게 최우선이어야 한다.
냉정한 관객, 정직한 평론이 없는 세상에서는 문제적인 작품, 도발적인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
- <눈치 없는 평론가> (서정민갑 지음)
난 좀 관점이 다른데, '국산 인디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후하게 봐주는' 건 어느 나라든 극소수임. 일본이나 중국도 사실 극히 일부 케이스가 한국까지 넘어오는 거지 자국 인디게임이라고 후하게 봐주는 사람은 거의 없음. 사실 '국산 인디' 를 마케팅으로 잡는 건 경쟁력 없다는 얘기기도 하고.
한국 게이머들은 국산 인디 게임이라는 이유만으로 후하게 봐주지 않고, 전 세계 게임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골라 즐기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자기 취향에 맞는 게임을 발굴해 알리려는 문화는, 일본이나 중국만큼 강하지 않습니다. 그 원인을 짚어 봐도 제 추측에 머무를 뿐입니다만, 앞으로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작품보다 이미 재미가 검증되었고 게다가 유행까지 하는 게임을 하는 편이 효율적이라는 걸 게이머들이 학습해 버린 듯 보입니다. 다시 말해,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때부터 응원해 온 게임이 기대를 저버리는 모습을 거듭 지켜봐 왔던 것이겠지요. 또한 게임이 아닌 분야에서도 폭발적으로 유행했다가 금세 식고, 다음 유행이 오면 모두가 한꺼번에 옮겨 가는 현상이 자주 눈에 띕니다. 이들과 공통된 요인이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이런 점은 개발자들도 이미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일일지 모릅니다. 자금이 부족하고 마케팅이나 로컬라이징 지식마저 모자란 인디 개발자로서는 손쓸 도리가 없을 만큼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누구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채 섣불리 희망을 품게 하는 말을 꺼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해결책이 한국 국내에 없을 뿐입니다. 이 말의 진의를 헤아려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한국 안에 해결책이 없으니 손쓸 도리가 없다는 결론을 내려 개발자들을 더 절망에 빠뜨리려는 걸까요?
누누이 말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무성애는 정체성으로 삼기에 사회적 압력이나 억압이 부족하다는 것임. 결혼 안하면 정말 사회생활이 불가능했던 전근대면 모를까, 살만한 문명국가에서는 본인이 안 하겠다는데, 그게 하기 싫어서 안하는 건지 못하는 건지 타고나서 그런 건지에 상관없이 제도적인 차별을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굳이 모든 사람에게 이걸 알릴 이유가 없음. 심지어 게이도 이젠 비슷한 루트를 타는 중이고.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하면, 공모전 투고작 중에는 “씨바아알!”로 첫 대사를 시작하는 주인공이 의외로 많은 편이다. 그 말이 주인공을 눈에 띄게 하고 개성을 부여한다고 믿는 것 같다. 나는 “씨바아알.” 하고 포효하며 첫 등장을 알리는 주인공을 볼 때마다 이건 또 무슨 한국인 정신에 아로새겨진 원초적인 대사일까, 고민한다.
- <SF 작가의 사유와 글쓰기> (김보영)
미국은 사람이 대학가면 코스모폴리탄적인 리버럴로 재탄생하는데(실제 미국에선 교육수준과 리버럴 정치성향은 정비례함) 한국은 왜 그러하지 않을까?
현대 한국과 미국 정치의 차이 중 교육 수준 양극화 현상의 유무가 가장 크다고 생각하는데 두 나라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어서 그런걸까?
17-18년쯤이었던 거 같은데, '한국은 매일 강간 뉴스가 뜨는데 프랑스나 독일 같은 나라는 강간뉴스를 들어본 적도 없다' 같은 주장이었음. 물론 프랑스어나 독일어는 당연히 못하고, 영어도 못하던 사람. 지금은 뭐하고 살지는 모르겠다. 그렇게 원하던 유럽 가서 사시기를.
완젼공감
나도 한국이 최악인줄 알았는데 여기저기 나가서 살아보니 그냥 문제를 안 삼아서 문제가 안되는 거더라
웬만한건 문제 삼지를 않음
한국인은 그런데서 미쳐버리는 거고
그래서 나서면 고마워하는게 아니라 나만 참을성 없는 못된놈 됨
장담컨데 한국만큼 계급의식 없고 투명한 곳 거의 없음
외노자야 90년대부터 나오던 얘기지만, 농어촌 지역에 있는 외노자 식당/마트들이 사회적으로 주목을 받을 정도로 올라온 건 10년대 중후반이었음. 그때쯤부터 20대 초반 중심 사이트들 위주로 외국인 혐오, 특히 '동화되지 않는 중국인/조선족'에 대한 혐오가 강하게 나타나기 시작함.
개인적으로 한국의 중국인/조선족 혐오의 뿌리는 일자리 경쟁에 있다고 생각. 미국 난민/이민자 논쟁에서도 나왔던 얘기인데, 난민들이 살 수 없는 집값을 가진 지역에 거주하며, 혹시 해고되더라도 취업이 쉬운 사람들과 난민 옆집에서 난민과 일자리를 경쟁하는 사람들은 같지 않다고.
80년대-90년대의 기억이 비교적 뚜렷하신 분들께 질문. 어린 시절이라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제 기억에 당시 다큐멘터리나 신문기사, 영화 등은 조선족을 굉장히 온정적인 시선(역사에 희생된 불쌍한 동포)으로 그렸던 기억인데, 실제 대중적 정서도 그랬나요 아니면 요즘같은 공격적 시선이었나요
서울 한복판 살면서 에어컨 나오는 곳에서 일하는 명문 대졸자들과 저출산/고령화 지역에서 살면서 동네에 청년이라고는 조선족과 외노자가 90프로인, 인력사무소 가면 한국인이 소장과 자신밖에 없는 동네에서 사는 사람이 가진 관점은 많이 다를 것이고, 그런 분위기를 터트린 게 코로나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