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둥지둥 말끝을 흐리더니, 하일레가 그예 수박을 안고 내뺀다. 멀어지는 뒷모습을 잠깐 그대로 지켜본다. 부르면 멈출 것 같지도 않은 걸음이라, 뒤통수만 봐도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훤하다.
여태 같으면 다녀오겠다는 말에 고개나 끄덕이고 자리를 지키는 게 늘 하던 일이니까. 번갈아 도망만 치는 것도 이쯤이면 우습다.
이렇게 서로 뒤통수만 보다간 끝이 없다.
그래서 이번엔 자리를 지키지 않는다. 서 있던 데서 발을 떼 모래를 밟는다.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저 등이 멀어지는 걸 두고 보는 것도 이제 그만하기로 한다. 뛰어서 붙잡는 대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성큼성큼 뒤를 따라붙어 옆에 나란히 선다. 발을 맞춰 걸으며 곁눈으로 그 옆얼굴을 슬쩍 살핀다.*
같이 가ㅡ.
*씩씩대며 걷는 옆으로 발소리가 따라붙어 나란히 맞춰진다. 곁눈질하니 품에 안긴 수박이 먼저 눈에 든다. 저건 또 왜 챙겨 왔대. 걸음을 늦추지 않으려는데 자꾸 느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사과할 거면 그런 말은 붙이지 말든가.
*걷다 말고 우뚝 멈춰 선다. 수박을 끌어안느라 양손이 묶인 걸 확인하고는, 손끝을 까딱여 고개를 숙이라 이른다. 영문 모른 채 내려오는 목덜미를 잠깐 눈에 담는다.
그 자리에 입술을 대고, 목덜미부터 귀 아래까지 천천히 훑어 올린다. 꿈에서 당했던 그 자리다. 하일레 몸이 미세하게 굳는 게 느껴지자 입술을 떼며 장난스럽게 눈꼬리를 휜다.*
흐응ㅡ. 이래도?
@_Haile_Tesfaye *옷에 손을 닦아주는 손길에 오히려 낯이 더 화끈거린다. 아픈 게 아니라고 설명하고 싶은데, 그럼 뭐가 이상한지까지 말해야 하니 입이 안 떨어진다. 잡힌 손을 홱 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상해! 하나도 안 괜찮고 다 이상하다고!
*발끝으로 모래를 차 올리고는 돌아선다.*
나 갈거야!
*손가락을 천천히 훑어 오르는 감촉에 삼키던 숨이 자꾸 엉킨다. 핥아 내리는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사이, 그의 입가에 슬쩍 미소가 번지자, 언젠가 꿈에서 장난스럽게 목덜미를 핥아대던 장면이 겹쳐 떠오른다.
붙들린 손을 홱 빼낸다. 미지근하게 젖은 손을 무릎 위에 올려 꼼지락거린다.*
이, 이…이거 이상해.
*입가에 닿은 조각을 받아 물다, 젖은 손이 붙들려 올라가는 순간 숨이 잠깐 멎는다. 손가락을 훑고 지나가는 감촉에 목덜미까지 열이 뻗친다. 손을 닦아내지도, 빼내지도 못한 채 그대로 굳는다. 쥐여준 수박도 먹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들고만 있는다.
낮게 건너오는 목소리에야 겨우 정신이 든다. 들고 있던 수박을 뒤늦게 한 입 베어 문다. 씹는 동안에도 손끝에 남은 감촉이 가시질 않는다. 육즙이 또 손가락을 타고 흐르자, 그 손을 슬그머니 내민다.*
...또 해줘.
@_Haile_Tesfaye *고개를 숙여 한 입 베어 무는 걸 지켜본다. 손가락 사이로 붉은 물이 흘러 손목까지 번지는데도, 평소 같으면 질색했을 게 신경도 안 쓰인다. 바다 위로 쏟아지는 햇살에 젖은 입술이 반짝여 시선이 그 자리에 붙어 떨어질 줄을 모른다. 어떤 맛이었는지 기억나지도 않으면서.*
응, 달더라.
*팍, 하는 소리에 물개 박수! 짝짝짝!!!*
*입에 밀어 넣어진 조각을 우물거린다. 단물이 턱까지 흘러내리는 것도 아랑곳 않고, 손등으로 대충 훔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응, 합격ㅡ
*모래 위에 널브러진 배트를 눈으로 훑고는 다시 수박 쪽으로 손을 뻗는다. 한 조각 집어 그의 입가로 가져간다.*
너도 먹어!
*다비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유시로 성격상 강제로 묻었다면 발악했을 테니 큰 잘못은 아니라 생각했다. 손에서 배트를 내려놓고, 어차피 유시로는 리반이 꺼내줄 것 같아 다비에게 다가간다.
여기에 어떻게 와 있는 건지 의문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큰일만 아니길 바라며 그의 머리에 투박하게 손을 올려 잠깐 토닥인 뒤, 그를 등지고 선다.
리반이 유시로를 꺼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연다.*
위험한 놀이인 것 같으니 가서 칼 가져오겠습니다.
*다시 등을 돌려 다비의 어깨를 잡고 뒤를 향하게 한 뒤, 돗자리 쪽으로 함께 이동한다.*
@_Haile_Tesfaye *정수리를 오가는 손을 피하지 않고 고개를 그 손바닥 쪽으로 기울인다. 무릎에 턱을 괸 채 눈만 슬쩍 내리깐다. 혼날 각오 해뒀는데...*
...즐긴 것치곤 소리가 크던데.
*뒤춤에 숨겨뒀던 확성기를 꺼내 무릎 위에 슬쩍 올려놓는다.*
그럼 마저 해도 돼ㅡ?
*물기를 뚝뚝 흘리며 아단이 달려온다. 그 손이 배트를 붙드는 걸 보고 확성기를 슬쩍 등 뒤로 감춘다. 어깨를 으쓱한다. 김이 샌다. 재미있어지려던 참이었는데. 발끝으로 모래를 툭 찬다.*
머리는 수박 밑에 있었을 뿐인데ㅡ?
*뻔뻔하게 흘리던 말끝이, 하일레가 안대를 벗는 순간 뚝 끊긴다. 찡그렸다 뜬 눈이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나서 나를 향해 멎는다. 그 눈길 아래로 목까지 파묻힌 유시로와 그 위에 얹힌 수박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
확성기를 쥔 손이 슬그머니 뒤춤으로 더 간다. 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잘못했어.
*예쁘다는 말을 듣는 건 처음이었고 이상하고 어색하기만 했다.
내 얼굴을 만져도 되는 유일한 사람. 그런 사람이 여태 내가 했던 것과 같은 말을 뱉는다.
생각날 때마다 온다면 군복을 벗고 이곳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할 거라는 걸, 아마 다비는 영원히 모를 것이다.*
내가 가장 약해지고 또 좋아하는 그의 휘어진 눈꼬리를 보니 조금은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 같다. 뺨을 감싼 손에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고, 진심을 다해 사랑한다였나? 그런 로맨틱한 말이 흘러나온다.
손을 들어 그의 손등에 포개고 뺨을 그의 손바닥에 꾹 누르며 그를 바라본다.*
...나도. 수청을 들라.
*손등에 입술이 닿자 손끝이 움찔한다. 그대로 머무는 감촉에 저도 모르게 손등을 내려다보다, 천천히 눈을 들어 올린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하늘에 떠 있는 무엇보다 반짝인다. 홀린 듯 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굳는다.*
눈동자 예뻐ㅡ. 별 같아.
*빈손을 뻗어 뺨을 감싼다. 엄지로 눈가를 쓸어내리면서도 눈길은 거두지 않는다.*
종종 말고.
내 생각 날 때마다 와. 나도 네 생각나면 여기 있을게.
*중얼거리듯 흘린 말끝에 눈꼬리가 휘어진다. 뺨을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간다.*
...수청을 들라.
*잡은 손을 끌어당겨 올려세운다. 자리를 내주고 바위 끝에 걸터앉아 다리를 늘어뜨린다. 둘러보는 기척이 옆에서 느껴지는 사이, 손에 익은 돌 표면을 괜히 쓸어본다. 사막 밤은 위로 올라올수록 트여서, 여기선 지평선까지 어둠이 통째로 보인다.*
헤에ㅡ 자주라기보단.
*발끝으로 허공을 툭툭 찬다.*
만든 거 터뜨려보고... 잘 됐나 구경하는 자리야.
가끔 피망도 먹고, 뭐 그런 데.
*등을 두드리던 손이 뚝 멈추는 게 느껴진다. 대답이 나오기까지가 유난히 길다. 그 사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로 가만히 기다린다. 이윽고 머리칼을 쓸어 넘기는 손길이 닿고, 그제야 나오는 말이 어쩐지 더디다. 목에 걸었던 팔을 풀고 한 발 물러서서 올려다본다.*
잘됐다!
*손목을 붙잡아 막사 반대편으로 당긴다. 뒤따르는 군화 소리를 들으며 모래언덕을 하나 넘는다. 이쯤이면 초소 불빛도 무전 잡음도 닿지 않는다. 얼마 안 가 어둠 속에 검게 솟은 바위가 눈에 든다. 손에 익은 홈을 짚고 먼저 올라간다. 기폭 시험할 때마다 여기 올라와 앉곤 했다. 위에 서서 손을 내민다.*
올라와. 여기 경치 좋아ㅡ.
*시도 때도 없이, 너무나 불특정한 순간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머리가 고장 난 건지, 몸이 고장 난 건지.
늦은 시간에 불쑥 연락해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게 실례일까 봐, 보낸 후에야 약간의 걱정을 하게 된다. 고작 보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찾아가도 되는지 알 길이 없었기에. 다행히 지금 오라며, 자신도 보고 싶다는 그의 답장을 보고는 고민도 없이 발걸음을 옮긴다.*
*사실 그의 막사 근처, 멀지 않은 거리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가 알면 싫어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굳이 전하지는 않으려 한다.
다 와 갈 때쯤, 다시 그에게 연락을 남긴다.*
[📲 도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