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지 펼쳐놓고 4개월째 오답 노트 쓰는 경찰, 수사인가 눈치 게임인가
참으로 눈물겨운 학구열이다. 조경식 KH그룹 부회장과 이화영 등의 국회 위증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이, 법정 수사 기한 두 달을 다 채우고도 모자라 국회에 두 달 더 연장해 달라고 징징대는 청구서를 내밀었다. 사유가 걸작이다. 발언 내용이 다르고, 청문회 영상이 27시간이나 되고, 수원지검에서 가져온 수사 기록이 50박스나 돼서 들여다볼 시간이 부족하단다.
이 해맑고 성실한 변명 앞에 팝콘을 씹으며 아주 얄팍한 팩트를 하나 들여다 보자.
경찰이 지금 머리를 쥐어뜯으며 분석 중이라는 그 사건, 이미 명확한 정답지가 세상에 공개된 지 오래다. 지난달 20일, 일반 시민들로 구성된 배심원단과 법원은 이화영이 떠벌리던 연어 술파티 의혹을 명백한 위증이자 새빨간 거짓말로 판정하고 징역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사법부가 이미 돋보기를 넘어 현미경으로 탈탈 털어 100% 사기극이라고 도장을 찍어준 사안이다. 그런데 경찰은 그 공개된 정답지를 눈앞에 펼쳐놓고도, 굳이 50박스짜리 서류 더미를 파헤치며 4개월 동안 뭘 더 수사하겠다는 것인가. 혹시 배달됐다는 연어의 비늘 개수나 소주병의 상표라도 정밀 감식하고 있는 중인가.
우리는 이 작위적인 시간 끌기 이면에 숨겨진 진짜 이유를 아주 투명하게 알고 있다. 경찰은 지금 서류를 읽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과 좌파 권력의 심기를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선거 관리 부실에 항의하며 올림픽공원에 모였던 우파 시민들은 하룻밤 새에 139명을 칼같이 입건해 언론에 나팔을 불던 그 기민한 조직이다. 그런데 이재명의 사법적 방어막 역할을 했던 핵심 인물들 앞에서는 갑자기 행동이 굼떠지고 신중한 학자로 돌변한다.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를 수 없으니, 일단 기한을 꽉 채워 연장해 두고 여론의 바람이 바뀌거나 조용히 묻힐 타이밍만 곁눈질로 엿보는 전형적인 안면몰수다.
이러니 누구나 1도 기대 안 되는, 아이고 의미없는 경찰 수사라는 조소가 반사적으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정답을 뻔히 알면서도 주군의 눈치가 보여 오답 노트를 쥐고 만지작거리는 공권력. 수사 기관이 팩트를 좇는 사냥개가 아니라, 권력의 눈치를 살피는 기상청 풍향계로 전락했을 때 시스템은 완벽하게 뇌사 상태에 빠진다.
법의 잣대가 진영에 따라 엿장수 가위처럼 늘어났다 줄어드는 나라에서, 제복 입은 자들의 권위는 이미 시궁창에 처박혔다. 뻔한 정답을 두고 4개월씩 뭉개는 이 얄팍한 직무 유기의 끝에, 경찰청은 무슨 차라리 민주 심기 관리청으로 간판을 바꾸자.
수사를 하라니까 눈치 게임을 하고 있다.
오늘도 갤럽 여론조사에는 이재명 지지율이 50%를 거뜬히 넘는단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물리 법칙이 작동 중이다. 국회 동의 청원에 올라온 이재명 탄핵 요구가 불과 일주일 만에 40만 명을 거침없이 돌파했다. 이 정도 속도와 수치면 여의도를 덮고도 남을 거대한 해일이다. 한쪽에서는 태평성대를 노래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민심의 마그마가 끓어 넘친다.
이 작위적인 두 숫자의 충돌을 이해하는 열쇠는, 대한민국의 잘나간다는 주류 언론들의 반응을 건조하게 훑어보면 곧바로 튀어나온다. 포털 메인과 레거시 미디어를 보라. 고요하다 못해 적막강산이다. 40만 명의 아우성을 보도하는 곳은 천지일보나 펜앤드마이크 같은 마이너 매체들뿐이다. 이른바 메이저 언론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눈과 귀를 닫고 허공을 향해 휘파람만 불고 있다. 권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속옷을 내리고 꼬리를 흔드는, 참으로 눈물겨운 어용의 쌩얼이다.
여기서 아주 얄팍한 의문 하나가 팝콘처럼 터진다. 언론 생태계가 이토록 완벽하게 알아서 기어주는데, 이재명 정권은 도대체 왜 오는 7월 7일 이른바 입틀막법까지 밀어붙이며 발악을 하는 걸까. 주류 언론들이 스스로 목줄을 차고 권력의 애완견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데, 뭣 하러 미국 국무부의 뒷목까지 잡게 만들며 글로벌 빅테크와 1인 미디어의 입술까지 꿰매려 드는가 말이다.
그들이 감추려 하는 두려움의 본질은 명확하다. 통제된 여론조사 숫자와 길들인 레거시 미디어의 침묵만으로는, 광장과 소셜미디어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날것 그대로의 분노를 영원히 막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아닐까. 제도권 언론은 무릎 꿇렸지만, 통제 불능의 1인 스피커와 평범한 시민들의 손가락은 도무지 꺾을 재간이 없으니, 아예 사기업의 약관을 무기 삼아 시스템 자체의 전원을 뽑아버리려는 조악한 수작말이다.
빤스 벗고 애교 부리는 언론 뒤에 숨어 입틀막이라는 얄팍한 부적을 만지작거리는 권력. 제아무리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발버둥 쳐도, 이미 터져 나온 민심의 둑을 그 알량한 반창고 하나로 막아낼 수 있을까?. 스스로 귀를 막은 권력이 맞이할 종착역은 언제나, 아무도 예고해 주지 않은 완벽한 고립과 침몰뿐임을 역사는 늘 증명해 왔다.
배재고 아이들의 철없는 텀블러 농담에 징계의 단두대를 세우던 좌파 스피커들이, 슬슬 논리가 궁색해지자 아주 거창한 핑계 하나를 직구입해 왔다. "미국을 봐라. 9.11 테러를 농담으로 소비하면 사회적으로 완벽하게 매장당한다. 그러니 이 학생들도 야구계에서 퇴출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다"라는 식의 비장한 선동이다.
어디서 조악한 뇌피셜을 주워듣고 와서 대중의 눈을 가리려 하는가. 당장 구글과 유튜브 검색창만 열어봐도 그 억지 주장이 얼마나 처참한 가짜뉴스인지 단 1분이면 들통난다. 미국 대중문화에서 9.11은 결코 입을 꿰매고 털끝 하나 건드려선 안 될 닫힌 성역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꾼들의 위선과 대중의 광기를 꼬집기 위해 가장 신랄하게 동원되는 블랙코미디의 단골 소재다.
미국의 국민 애니메이션 패밀리 가이(Family Guy)를 보라. 시장 선거에 나선 주인공 로이스가 정책 질문을 받을 때마다 아무런 맥락 없이 그저 비장한 표정으로 "나인 일레븐(9.11)"이라는 단어만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러자 관중들은 이성을 잃고 환호하며 기립박수를 보낸다. 비극을 표팔이 비즈니스로 삼는 딱 우리나라 민주당같은 정치인들의 얄팍한 위선을 대놓고 조롱한 명장면이다.
최장수 애니메이션 사우스파크(South Park)는 아예 9.11 배후 음모론을 믿는 자들을 뇌가 없는 정신병자 취급하며 20분 내내 난도질하는 에피소드를 거침없이 방영했다. 심지어 참사가 발생하고 고작 두 달 뒤인 2001년 11월에 이미 빈 라덴을 우스꽝스럽게 조롱하는 편을 내보내며 트라우마를 유쾌하게 걷어찼다.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는 한술 더 뜬다. 미국 SNL의 스타 피트 데이비슨(Pete Davidson)의 아버지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인명을 구조하다 순직한 뉴욕 소방관이다. 한국식 엄숙주의라면 매일 눈물로 밤을 지새워야 할 유족 당사자다. 그런데 그가 방송에 나와 저스틴 비버를 향해 이렇게 뱉는다.
"내 아버지는 9.11 때 돌아가셨다. 나는 평생 아빠 없이 자란 걸 후회했는데, 저스틴 비버 당신의 아빠를 보고 나니 차라리 우리 아빠가 그때 죽은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아슬아슬하고 독한 패륜적 농담에 미국 대중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그를 사문난적으로 몰아 방송계에서 퇴출시켰나. 전혀 아니다. 객석은 폭소를 터뜨렸고, 유족인 그가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찢으며 유머로 승화시킨 방식에 아낌없는 환호를 보냈다.
미국인들에게 3천 명이 희생된 9.11 테러가 슬프지 않아서 이런 풍자를 허락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거대한 비극이라도, 그것을 무기 삼아 타인의 입을 틀어막고 몽둥이질을 시작하면 민주주의 시스템 전체가 질식한다는 것을 역사적 본능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문명은 참사의 트라우마를 국가가 강요하는 억압으로 덮어두지 않는다.
유머와 풍자라는 가장 인간적인 배설구를 통해 일상의 영역으로 유쾌하게 승화시킨다. 상처 앞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낄낄댈 수 있는 그 단단한 멘탈과 멋, 그것이 바로 진짜 자유민주주의의 품격이다.
가장 역겨운 관전 포인트는 이 엉터리 알리바이를 들이미는 자들의 평소 행태다. 365일 내내 반미(反美)를 외치고 미 제국주의 타도를 부르짖던 자들이, 10대 소년들을 쥐잡듯 잡고 싶어지니 뜬금없이 "미국은 안 그런다"며 알량한 사대주의를 꺼내 든다. 이럴 때만 선택적으로 미국을 팔아먹을 거면, 최소한 그 나라의 문화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유튜브라도 한번 검색해 보는 성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입맛에 맞게 가짜 미제(美製) 잣대를 날조해 타인의 입을 꿰매려는 그 빈곤한 계몽주의. 공부도 안 하고 얄팍하게 미국을 팔아먹는 그 투명한 위선에 오늘치 팝콘을 모두 바친다. 자유의 본질도 모르는 자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서는 늘 퀴퀴한 독재의 냄새만 날 뿐이다.
Roast of Justin Bieber - Pete Davidson - Comparing Fathers - Uncensored https://t.co/PdPh23rcNv 출처 @YouTube
여든 살 노인이 길바닥에 자리를 펴고 토마토와 깻잎을 판다. 어느 날 시장을 돌던 정치인에게 고생한다며 찰밥 도시락 하나를 건넸다. 평범하고 정겨운 시장통의 미담이다. 그런데 이 소박한 찰밥 한 그릇이, 자칭 약자의 수호자라는 좌파 진영의 신경망을 건드리는 거대한 발작 버튼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정치인이 하필 한동훈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는 팝콘을 씹으며 보기엔 너무나 비열하고 엽기적인 블랙코미디다.
좌파 강성 지지층은 즉각 좌표를 찍고 북구청에 하루 수십 통의 민원 테러를 쏟아부었다. 목표는 아주 투명하고 잔인했다. "감히 우리 진영의 적에게 밥을 줘? 저 할머니의 노점을 치워버리고 밥줄을 끊어라." 입만 열면 서민과 빈민, 노동자의 생존권을 절대선으로 떠받들던 자들이다. 그런데 내 편이 아닌 자에게 온정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80대 노점상의 생계를 완벽하게 박살 내기 위해 사이버 린치를 가했다. 이쯤 되면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광기에 절여진 사이비 종교의 이단 심문이다.
이 집단적 광기에 화답한 관할 구청의 행정력은 가히 예술에 가깝다. 민주당 소속 구청장이 이끄는 북구청은 득달같이 달려가 노점 주변에 노란색 통제선을 빙 두르고, '노점 금지' 입간판을 무려 10개나 박아 넣었다. 마치 흉악범의 범죄 현장라도 통제하듯, 할머니 한 명을 포위하기 위해 국가의 공권력이 알뜰하게 동원된 것이다.
하지만 이 촌극의 진짜 하이라이트는 안면몰수와 꼬리 자르기에 있다. 한동훈 의원이 다시 찾아와 안부를 묻고, 상인들과 시민들의 분노가 들끓으며 여론이 뒤집어지자 민주당 구청장은 어떻게 돌변했는가. "아침에 보고를 받고 처음 알았다. 정치적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어 곧바로 철거를 지시했다."
구청 한복판에서 민원이 폭주하고 10개의 입간판이 동원된 요란한 행정 집행을, 구청장 본인만 몰랐다는 변명을 믿어줄 호구는 없다. 민심의 표밭이 흔들릴 것 같으니 실무자에게 슬그머니 책임을 떠넘기고 야반도주를 택한 권력의 비루한 쌩얼이다.
여기서 아주 얄미운 가정을 하나 해보자. 만약 보수 정당의 구청장이, 이재명에게 찰밥을 건넨 80대 노점상 할머니를 철거하려 펜스를 치고 입간판을 박아 넣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온 좌파 매체와 스피커들이 총출동해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살인", "서민을 탄압하는 파시즘"이라며 핏대를 세우고 광장에 촛불의 바다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가해자가 자신들의 진영일 때는 약자의 눈물 따위는 1그램의 가치도 없는 불쏘시개로 전락한다. 나에게 밥을 주면 숭고한 민중이고, 남에게 밥을 주면 치워버려야 할 적폐가 되는 이 기막힌 이중잣대.
정치의 목적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지키는 데 있다. 그러나 상대 진영의 정치인에게 밥 한 끼 주었다는 이유로 80대 노인의 생계마저 짓밟아버리는 사회라면, 그런 정치와 진영의 쓸모는 대체 어디에 있는걸까?
약자의 밥줄을 짓밟으며 감히 '민주'를 참칭하다니, 그 이름 두 글자가 너무 역겹고 아까울 지경이다. 차라리 이참에 그 위선적인 간판은 미련 없이 떼어버리고 '민호병(민주주의 호소하는 홍위병)'으로 개명하시라. 동네 힘없는 노점상이나 떼거지로 때려잡는 그 시뻘건 완장이 당신들의 진짜 쌩얼이니까.
바야흐로 전방위적 한국판 홍위병 "민호병"의 시대다.
거제도 출신 십 대 걸그룹 멤버가 카메라 앞에서 "무섭노"라고 중얼거렸다는 이유로 일베몰이에 내몰렸다. 삼백만 구독자를 가진 요리 채널 '1분요리 뚝딱이형'은 제육볶음 밀키트 원가 상승의 이유로 환율과 물가를 건조하게 브리핑했다가 정치색을 띄였다 비난을 받고 있다. 스타벅스와 배재고, 야당후보에게 도시락을 건넨 할머니 이야기는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으니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 지극히 무해하고 평범한 일상의 파편들이 대한민국 좌파들에게 떨어지는 순간, 득달같이 사상검증의 십자포화가 쏟아진다. 사투리는 일베로, 물가 타령과 도시락은 정부 비판하는 극우로, 커피 한 잔은 광주 모독으로 둔갑한다.
가장 코미디 같은 장면은 뚝딱이형의 사과문이다. 자영업자가 밀키트 가격 인상 요인을 설명한 것이 졸지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불순한 정치적 선동으로 규정되었다. 좌표가 찍히고 구독 취소 테러가 이어지자, 그는 결국 영상을 내리고 특정 정치인을 탓할 의도가 없었다며 해명문을 바쳤다. 심지어 팬들을 위해 당분간 가격마저 동결하겠단다. 밥상머리 반찬값을 설명하다 사상적 결백을 증명하고 손해까지 감수해야 하는 이 얄궂은 촌극은, 작금의 대한민국이 얼마나 촘촘한 사상 검열망에 포위되어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여기서 하나의 명징한 철학적 진실을 짚고 넘어가자.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대가 끔찍했던 것은 일본인이라는 민족 자체가 태생적으로 악해서가 아니라, 개인의 이성을 압살하고 획일화로 몰아간 그 시절의 '전체주의'가 나빴기 때문이다. 오늘날 중국의 맹목적인 애국주의 청년들, 이른바 '소분홍(小粉紅)'들이 그토록 같잖고 한심해 보이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인이라서가 아니라, 전체주의의 늪에 빠져 최소한의 비판적 이성마저 상실한 채 떼지어 몰려다니며 완장질을 하는 그 야만성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남의 사투리를 꼬투리 잡고 요리 유튜버의 입을 틀어막고 스벅불매를 외치는 자들의 본질도 정확히 이 지점에 닿아 있다. 스스로를 깨어있는 시민이라 포장하는 좌파 진영의 이 얄팍한 사상 경찰들. 입으로는 쉴 새 없이 다양성,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향하는 민주주의를 호소하지만, 정작 이들의 두뇌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을 잃은 소분홍과 다를 바 없는 전체주의적 광기다. 민주당 지지자라는 타이틀을 이마에 붙였다고 해서 그들이 곧 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화려한 네이밍이나 포장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짓거리가 진짜 정체성을 증명한다.
이들이 일상의 사소한 꼬투리에 거품을 무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방구석에서 누군가를 자의적으로 단죄하고 굴복시킬 수 있다는 그 알량한 권력의 맛을 포기하지 못해서다. 거창한 대의명분은 이 집단적 린치를 정당화하기 위한 장식품일 뿐이다. 피해자는 밥줄을 끊겠다는 협박에 굴복해 억지 사과를 하고, 가해자는 그 사과를 전리품 삼아 더 큰 사과를 요구하고 밟을만큼 밟았다 싶으면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나선다.
이성은 마비되고 얄팍한 도덕적 우월감만 남은 사냥터에서, 싸우지 않고 피하려는 자의 일상은 결국 광기 어린 집단에게 철저히 유린당한다. 아이돌의 고향 사투리마저 통제하고 밥반찬 원가마저 눈치를 봐야 하는 체제가 당신들이 원하던 민주주의인가? 이건 문명국이라 부를 자격도 없다. 내 손에 든 커피 한 잔의 브랜드가 사상검증의 잣대가 되는 이 지독한 전체주의의 굿판을 단호하게 걷어차지 않는다면, 다음 조리돌림의 무대에 오를 제물은 오늘 저녁 식탁에서 물가를 한탄한 당신 자신이 될 것이다
국회에서 국민을 대상으로 거짓말을 남발한 이화영이 유죄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지긋지긋했던 ‘술파티 타령은 허구’임이 드러났습니다.
직접 보지도 못한 일에 ‘100% 사실’ 운운했던 이재명의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합니다. 아울러 수년간 맘고생이 심했을 박상용 검사에게 위로와 축하를 보냅니다.
Japan manager Hajime Moriyasu was in tears listening to their national anthem at the World Cup. One of our favourite photos from the tournament so fa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