เกาหลี가 중국 상인들이 쓰던 '고려'라는 말에서 온 것일 거라는 추측이 재밌고 좋다. 한국을 이국의 언어로 부르는 게 좋고, ฉันเป็นคนเกาหลี라고 이방인의 언어로 말하고 있으면 두 번의 이국어를 걸쳐온, 내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국가를 말하는 것만 같다.
누군가는 모든 현상에서 시대정신을 읽어내려고 하지만 어떤 줄은 정말 ‘빵’ 때문이다. 모든 줄이 사회를 은유하진 않는다. 때로 사람들은 사회를 견디기 위해 빵을 사는 게 아니라 맛있는 빵을 먹고 싶어서 줄을 선다. 평범한 욕망을 분석하는 순간 우리는 사람보다 해석을 더 사랑하는 괴물이 된다.
부모 세대는 줄 서서 바나나를 샀고, 그 위 세대는 줄 서서 설탕을 샀고, 인류는 늘 줄의 길이로 가치를 측정해왔는데, 설탕 줄은 생존이 결핍된 세대의 줄이었고, 바나나 줄은 풍요가 결핍된 세대의 줄이었다.
그럼 칼로리도 넘치고 바나나가 천 원인 시대에 두 시간을 서는 이 세대는 뭐가 결핍된 걸까.
여기서부터 조금 지독해진다. 이 세대에게 결핍된 건 인과다. 기다리면 반드시 보상이 나오는 시스템. 노력하면 되는 게임.
생각해보라. 이 세대가 아는 대기열은 전부 사기다. 줄은 없다. 청약은 추첨이다. 십 년을 부어도 앞사람이 몇 명인지조차 안 알려준다. 채용은 블랙박스고, 대기 순번 대신 "아쉽지만 귀하의" 로 시작하는 메일이 온다. 티켓팅 대기열은 매크로가 새치기하고, 부동산 줄은 태어날 때 순번이 정해져 있다. 노력과 보상 사이의 배선이 전부 끊긴 세상에서, 성심당 줄은 거의 유일하게 배선이 살아있는 기계.
두 시간 서면, 반드시, 예외 없이, 망고시루가 나온다.
새치기도 부모찬스도 없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받는다.
그러므로 저 줄이 파는 건 작동하는 공정.
이 세대는 공정을 하도 못 받아봐서, 돈 내고 두 시간 기다려서 공정을 소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