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고백하자면, 빠르게 몹집을 불리는 동갑내기들이 주는 조급함이 일종의 위기의식이었다고 인정할 수밖에. 리더 노릇 중에 청소년기의 유치한 마음을 터놓기란 조금은 부끄러웠으니까. 남몰래 그 녀석 것을 내 허리에 두르고 종종 비교해 보려고 했지만, 결국 엎치락뒤치락하는 일은 없었다.
어느 날에는 민호가 벗어둔 허리띠가 눈에 들어왔다. 가죽 혁대의 저 구멍은 잡아당기는 핀을 따라 조금씩 크기를 벌렸고, 한 칸씩 옮겨 차근차근 둘레를 넓혀 갔다. 부모가 가정집 벽에 해마다 그어 주는 키 눈금은 없어도, 닳아가는 띠로 성장은 기록되었다. 더는 맞지 않는 신발과 끼는 셔츠로도.
여름 해의 찌는 열기가 밤을 데운다. 인공의 태양도 계절을 탄다, 아마도. 후드는 진작에 벗어 던졌고 잠깐의 해방감은 곧 사라졌지. 크리켓이 날개를 비벼 내는 소리처럼, 해먹의 천에 볼이나 머리칼을 문대며 한 바퀴 돌 기세로 뒤척이는 녀석들의 부산함으로 짐작했다. 모두가 잠 못 드는 밤이라고.
몇몇은 알비나 내 답을 기다리는 눈치였고, ‘옳소’가 두세 번 더 나오면 ‘오늘만이야’라고 승낙했을지도 모른다. 그때 대장이 “척이 배운다”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아무튼 그게 내가 “그래, 웃통까지만이야. 척을 생각해”라고 공표한 전말이었어. 갤리는 아침에 험한 꼴로 발견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