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 살이던 저는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젊은 사람이 왜 앉아 있냐는 눈빛을 보냈습니다.
그날 제 작업 장갑에는 밤새 일하다 묻은 피가 아직 마르지 않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물류센터 야간조에서 일했습니다.
저녁 8시에 출근해 밤새 상자를 분류했고, 물량이 많은 날에는 해가 뜬 뒤에야 퇴근했습니다.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젊을 때는 다 그렇게 일하는 거야.”
“지금 아니면 언제 돈 모으려고?”
저도 젊으니까 이 정도는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겨울날에는 일이 평소보다 세 시간 늦게 끝났습니다.
안전화를 벗자 발뒤꿈치에는 물집이 잡혀 있었고, 상자에 긁힌 손가락에서는 피가 조금씩 배어 나왔습니다.
첫차에 올라탔지만 빈자리는 없었습니다.
출입문 옆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버스가 움직일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렸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 앞에서 힘든 티를 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가 저를 계속 바라봤습니다.
“학생, 여기 앉아요.”
“괜찮습니다.”
“얼굴이 하얘. 앉아.”
“할머니가 앉으세요. 저는 젊어서 괜찮아요.”
할머니는 제 손에 들린 작업 장갑을 봤습니다.
손가락 부분은 닳아 있었고 피가 조금 묻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 제 팔을 잡았습니다.
“젊은 게 의자는 아니잖아.”
“힘들면 앉아야지.”
끝까지 사양했지만 버스가 갑자기 멈추면서 몸이 크게 휘청거렸습니다.
할머니는 아예 저를 자리에 앉혔습니다.
“내가 곧 내리니까 걱정하지 말고 앉아.”
자리에 앉자마자 온몸의 힘이 빠졌습니다.
잠깐 눈만 감으려고 했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습니다.
얼마 뒤 누군가의 목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새로 탄 어르신이 앞에 서 있었고, 옆 승객이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젊은 분, 어르신 오셨는데 자리 좀…”
놀라서 급히 일어나려는 순간이었습니다.
처음 자리를 내준 할머니가 제 어깨를 눌렀습니다.
“이 사람은 그냥 앉아 있게 둬요.”
“내가 앉으라고 했어요.”
옆 승객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래도 젊은 사람이…”
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 손을 가리켰습니다.
“저 손 좀 봐요.”
“밤새 일하고 오는 것 같은데 다리가 풀려서 서 있지도 못해요.”
그리고 조용히 덧붙였습니다.
“나이 들면 힘든 건 다들 알아줘요.”
“그런데 젊은 사람은 힘들어도 아무도 안 물어봐.”
“젊은 사람도 힘들 때가 있지.”
서 있던 어르신도 제 얼굴을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많이 피곤해 보이네. 그냥 앉아 있어요.”
고맙다는 말을 해야 했지만 목이 메었습니다.
겨우 입을 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바로 말했습니다.
“왜 자꾸 죄송하대.”
“피곤한 게 죄야?”
할머니는 제 작업 장갑을 다시 바라봤습니다.
“우리 아들도 새벽 배송 일을 해요.”
“겨울이면 손이 꼭 학생처럼 갈라져서 와.”
그제야 할머니가 제 상태를 먼저 알아본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드님도 많이 힘드시겠어요.”
할머니가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남의 집 아들도 보면 알지.”
할머니는 다음 정류장에서 내렸습니다.
내리기 전에도 저를 향해 손을 저었습니다.
“앉아 있어. 집까지 자면서 가.”
버스 문이 닫힌 뒤에도 할머니는 창문 너머로 제가 다시 앉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돌아섰습니다.
몇 달 뒤 퇴근길 지하철에서 교복을 입은 학생이 무거운 가방을 멘 채 졸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학생에게 앉으라고 했습니다.
학생은 괜찮다며 손을 저었습니다.
“저 다음 역에서 내려요.”
사실은 다섯 정거장이나 더 가야 했습니다.
학생이 자리에 앉아 잠드는 모습을 보며 그날의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그 뒤로 저는 자리를 양보할 때 나이만 보지 않게 됐습니다.
흔들리는 다리와 창백한 얼굴.
갈라진 손과 무거운 숨도 함께 보게 됐습니다.
그날 할머니가 내어준 것은 버스 좌석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젊다는 이유로 참지 않아도 되는 자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