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죽음이란 것을 낭만의 한 갈래로 여겨 왔습니다. 일찍이 한 서양의 정신분석학자가 「타나토스」와 「에로스」를 태곳적부터 인간 정신을 보존해 온 두 축으로 명명한 것을 보면 과연 이러한 욕동을 저만의 것으로 삼을 수는 없는가 봅니다마는, 가닿아 본 바조차 없는 피안의 세계를 고향처럼 그리워해 왔다는 것 하나는 나에게 오래도록 분명하였던 진실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못 되며 추하고, 우스꽝스럽고, 더럽고, 무서운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삶이 그러하듯이— 나는 땀과 눈물로 배웠습니다. 그 모든 것의 너머에는 피안의 세계는커녕 천국도, 지옥도, —심지어 연옥조차— 존재하지 않으며 오로지 무無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사실 역시 나는 피와 뼈로 배웠습니다. 지금 저의 정맥을 뛰노는 이 더운 피도 불길 한 줌 건너고 나면 흰 재가 되어버리는 것이 죽음이란 것이겠지요, 그것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고 아이러니한 일입니다—혹자는 원소라는 것의 영역에선 존재가 불멸한다 주장할지 모르나 그것은 내가 상관할 바가 못 됩니다. 나는 현재 인간 정신 혹은 그와 최소한의 동일성을 가진 어떠한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불길이 내뱉는 것이 재뿐만은 아니더군요. 타오르는 불꽃의 복중에는 사랑이란 것 역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나는 후에 알았습니다. 언젠가 제가 상기한 바와 같은 말을 하였을 때 칸로지—일전에 말씀드린 저의 제자입니다, 장하게도 현재는 연주恋柱로 되었습니다—는 웃으며 대답하였지요, 인간은 소멸한 후에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는 한 그 마음 속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자신이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즉 살아 있는 한 자신 역시 그 사랑으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것이라고. 후에 칸로지는 가뜩이나 염주의 후계가 가물어 있는 지금 자신이 화염의 계통을 이어받지 못하게 된 걸 퍽이나 미안해하는 눈치였습니다만, 나는 그 순간 무언가 내 안에서 박동함을 느꼈습니다. 지각의 변동이라 이를까요! 그것은 어쩌면 죽음의 뒤편에는 무엇인가 존재하기도 하겠구나, 죽음은 일응 무無도 무기물도 아니될 수 있겠구나, 그것은 미美도 아니며 추도 아니며 나의 남루한 인식론으로는 평생 깨달을 수 없는 것이나 다만 이 아이는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리하여 곧장 묻고 싶었습니다. 사랑이 있다면 연옥煉獄 또한 있을까요? 이 세상에 사랑이란 것이 있으되 연옥이란 세계 역시 존재할 수 있을까요? 아버님께선 일체가 무의미하다며 저버리신 지 오래이나 제 안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정화淨化의 사명이라는 것도 결국엔 흰 재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이 땅에 난 사람들에게 있어 이 지상이란 연옥일까요, 나 역시 죽은 다음 사랑을 남긴 자들 마음 안에 영영 살아갈 수 있을까요? 물론 이 모두 현재 묻기에 어리석은 질문일 뿐이며 저에게 가르침을 줄 이 없음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이에는 칸로지도 저의 스승이 되어 주지 못할 것입니다—어쩜 여기까지가 제 타고난 인식의 상한일지도 모릅니다—. 아! 상한이란 것 읊음에 유감스러워하지는 마십시오, 이는 그저 나의 것이 아닌 것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아는 일일 뿐입니다. 이러니 저러니 하여도 무릇 제 자신은 저가 가장 잘 알고 있는 법이지요.
밤이 늦었습니다. 혹여나 당신께서 답을 가르쳐 주신다면 나는 아이처럼 기쁠 것이나 계신 곳에서 우편국까지는 매우 먼 길이 됨을 압니다, 그러므로 답신은 이번 또한 여태와 같이 하여 주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아무쪼록 언젠가는 마주할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