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같은 감정이 아니라, 외롭다보니까 연애대상 후보 1 쯤으로 둘 수도 있겠다는 판단인거지. 길영이 소개해줄 때는 그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일 거고, 자신도 지금 더이상 파서 내려갈 땅굴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날의 행동은 화평의 트라우마를 깨우기에 충분했어. 피곤해, 귀찮아, 보기 싫어
전 연인과의 짧은 안부 연락을 마친 뒤에 화평은 창문너머로 윤이 산다던 커다란 아파드 단지를 쳐다봐. 멀지는 않지만 걸어 가기에는 꽤나 피곤한 거리. 높이가 워낙 높아 자신의 자취방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곳. 윤은 그날 대체 왜 그랬던 걸까. 왜 해명 연락 한 번 없는 걸까
타이밍도 완벽하지. 화평이 땅굴을 파다못해 이제는 죽음조차 피곤하다고 여길쯤 나타났으니까 말이야. 마치 네가 항복할 때까지 기다렸어. 라고 생각하기라도 한 것처럼.
하지만 마음은 차분해. 과거의 실수, 죄책감, 하지만 돌이키고 싶지는 않은 마음. 그리고 갑자기 떠오른 윤.
하지만 그 관계는 화평이 도망친 관계기도 했지. 새로 정착한 도시에서 화평은 힘들어했고, 그 연인도 장거리 연애에 지쳤어. 화평은 피곤했고 연인은 애정을 요구했지. 화평은 애를 썼지만 연인은 부족했고, 헤어짐을 말하고 좀처럼 끊기지 않는 관계를 부정하기도 참 많이 했어.
웬일로 평안한 연애를 했던 사람이었어. 심지어 화평쪽에서 마음이 먼저 식어서 헤어져버린 사람이었지. 동향이었지만 만나기 전까지 안면도 없었고, 화평이 가족에게서 벗어날 때 큰 도움을 줬던 꽤나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이었어 아, 나도 이제 편안한 관계를 가질 수 있겠다 라는 희망을 줬던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