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식 교수님 영전에>
이 시대 최고의 북한 전문가 박한식 미국 조지아대학 명예교수께서 떠나셨습니다. 평생을 한반도 평화에 헌신하신 교수님의 생애에 경의를 표하며 명복을 빕니다.
교수님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염원을 고스란히 반영하는 일생을 사셨습니다. 1939년 만주에서 출생, 9살에 부모님을 따라 38선을 넘으십니다. 고향 대구에서 소년기를 보내고 서울대학교에서 정치학을 공부하십니다. 이후 미국에 유학, 아메리칸대학과 미네소타대학에서 학위를 받고 1970년부터 조지아대학 교수로 일하십니다.
1980년 북한 초청으로 평양을 방문하신 이후 50여 차례 북한 땅을 밟으시며, 북한 관련 연구와 교류에 박차를 가하십니다. 그 기간에 북한 주민의 굶주림을 덜기 위해 북한과 미국의 농업교류를 활발히 실천하십니다. 특히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을 제안하고 지원해 1차 북핵 위기의 해소에 기여하신 일은 널리 평가되고 있습니다. 교수님은 조지아 출신 카터와 평소부터 가깝게 소통하는 사이였습니다.
저는 미국에 머물던 2022년 8월 교수님의 부름을 받고 조지아 따님 댁에서 점심을 얻어 먹으며 귀한 말씀을 듣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그 후로도 저는 간간이 전화를 드리며 이것저것 여쭙곤 했습니다.
세계는 힘이 지배하는 질서로 후퇴하고, 한반도 평화의 길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두고 교수님이 떠나시니, 후학으로서 한스럽고 죄송합니다. 그래도 평화 없이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교수님의 뜻은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못난 저에게 베풀어주신 교수님의 따뜻한 마음은 두고두고 제 가슴에 남을 것입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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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중국 샤오펑의 자율주행 기술을 가져다 쓰자"는 보고를 받고 격노했다는 소식이다. 1조 5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붓고도, 결국 "중국산 기술 수입"이라는 초라한 청구서를 들고 온 경영진에게 그가 보인 분노는 단순한 질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핵심 두뇌를 외주 주는 순간, 우리는 껍데기만 남는 하청 업체로 전락한다"는 오너의 생존 본능이자, 기술 주권에 대한 선언이었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역시 정주영의 손자는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할아버지가 허허벌판에서 조선소를 짓고 500원짜리 지폐로 차관을 얻어냈던 그 '불도저 DNA'가, 손자에게서는 "중국에 기술 종속당하느니 차라리 맨땅에 헤딩하겠다"는 결기로 업데이트된 셈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당장 샤오펑 기술을 사 오면 편하다. 비용도 아끼고 주가도 방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순간 현대차는 중국 소프트웨어에 종속된 '깡통 하드웨어 납품업체'가 된다. 정의선은 눈앞의 이익 대신, 고통스러운 자립을 택했다. 이것이 바로 기업가가 가져야 할 진짜 '자존심'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자연스럽게 어느 정치인을 떠올리게 된다. 기업가는 제 돈 1조 5천억을 태우면서까지 중국에 고개 숙이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데, 국익을 수호해야 할 정치인은 "셰셰"라며 조공 외교를 펼치지 않았나. 한쪽은 기술 식민지가 되기 싫어 판을 엎어버리는데, 다른 한쪽은 알아서 굴종의 멍석을 깔고 앉아 중국산 폰으로 셀카나 찍으며 히히덕거리는 이 기괴한 대조.
누가 생각해도 국격을 지키는 건 6억 뷰 셀카를 찍는 관종 정치인이 아니라, "남의 기술로 연명하느니 차라리 죽겠다"고 소리치는 기업가의 뚝심이라는 사실이다.
정의선의 격노를 보니, 나도 마음을 고쳐먹어야겠다. 혹여 로또라도 되면 테슬라나 기웃거려 볼까 했던 얄팍한 생각을 접는다. 소프트웨어는 좀 버벅거릴지 몰라도, 적어도 중국산 코드로 뇌가 세팅되지 않은 국산차를 타는 게 내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는 길 같으니까.
쉽게 가는 길은 결국 내리막길이고, 남의 다리로 걷는 자는 결코 자신의 목적지에 도달할 수 없다.
기업가는 뼈를 깎아 독립을 꿈꾸는데, 정치인은 웃으며 종속을 자처하는 나라.
정의선 회장, 당신의 그 '승질머리'에 반해 앞으로도 쭈욱 응원한다. 적어도 당신은 셰셰거리며 굽신거리는 놈들보다는 훨씬 믿음직하니까.
타고난 본성은 고칠 수가 없는 것인가?
나는 여전히 친절하다 못해 비굴하구나.
나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고 애쓰지 말아야 한다.
원래 그런 말투, 그런 사람이라는 게 어디 있어?
사람은 다 상황에 맞춰서 사는 거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하자.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