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3년 봄, 반정 세력이 왕을 끌어내리며 내건 죄목은 둘이었다. 모후를 핍박하고 아우를 죽였다는 것, 그리고 명을 배반하고 오랑캐와 화친을 꾀했다는 것.
400년 가까이 지나 그 왕을 그린 영화에 천만 관객이 들었다. 극장을 나서며 우리가 던진 물음은 거꾸로였다. 어떻게 백성의 목숨을 명나라의 의리에 전부 내던질 수 있었느냐고.
E. H. 카는 역사책을 연구하기 전에 역사가를 연구하라고 했다. 광해군의 기록은 실록이 아니라 일기로 남았고, 그것을 엮은 것은 그를 끌어낸 쪽이었다. 그 평가는 조선이 망할 때까지 거의 흔들리지 않았다.
광해군은 명을 버리지 않았다. 명이 원병을 요구하자 1619년 군대를 보냈고, 그러면서도 후금과의 선은 끊지 않았다. 축은 지키되 다른 강국과 등지지 않으려 한 외교였다.
조선에는 그 줄타기를 받쳐 줄 힘이 없었고, 반정 세력은 그 줄을 끊었다. 반정 뒤 14년이 채 안 되어, 그 자리에 오른 왕은 삼전도에서 청 황제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렸다.
힘없는 나라의 선택지는 좁다. 1882년의 군란도, 1894년의 농민 봉기도 조선은 남의 군대가 들어와서야 수습했다.
1904년 1월 21일, 대한제국은 국외중립을 선언했다. 33일 뒤 강제로 맺어진 한일의정서 제4조에는 제3국의 침해나 '내란'으로 황실과 영토가 위태로우면 일본이 필요한 조치를 하고, 군략상 필요한 땅을 쓸 수 있다고 적혔다.
우물가에 가서 숭늉을 찾은 셈이다. 숭늉은 밥을 지은 솥에서 나온다.
자주를 말하려면 제 처지부터 살펴야 한다. 400년 전과 지금이 다른 것은 무엇인가. 달라진 것은 힘이고, 달라지지 않은 것은 당대의 시선이다.
400년 전에도 광해군이 오랑캐와 통했다며 욕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이재명 대통령이 동맹을 흔든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9월 그가 외국 군대 없이는 자주국방이 안 된다는 생각을 '굴종적 사고'라 하자, 동맹을 깎아내렸다는 반발이 나왔다. 지난주에는 한미 정보 협력의 이상 기류를 두고 동맹 균열이라는 공세가 이어졌다.
그 한가운데서 10월 13일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대한민국은 자주적인 독립국가라고 했다. 한미동맹을 외교의 축이라 하면서도, 국가 간 관계에서 굴종적·사대적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 이견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고도 했다.
동맹이라는 줄을 끊지도 않고, 그 줄에 매달리지도 않겠다는 말이다. 광해군이 힘이 없어 끝내 지키지 못한 그 외교를, 이제는 힘을 가진 나라가 하겠다는 것이다.
안의 일을 남의 군대로 수습하던 나라가 동맹국과의 이견을 관리하겠다고 말하는 나라가 되기까지 130여 년이 걸렸다.
스스로 지키겠다는 말은 남을 굴복시키겠다는 뜻이 아니다. 사람도 누군가에게 기대 살면 눈치를 보고 자존심이 상한다.
광해를 그린 영화 앞에서 고개를 끄덕였다면, 오늘의 이 말에는 힘을 실어 주는 것이 순리다.
남은 관문은 전시작전통제권이다. 대통령은 그 환수를 자주국방의 마침표로 걸었다.
비극의 역사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400년 전에는 갖지 못한 힘으로 쓰는 새 역사가 눈앞에 펼쳐질 것 같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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