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갭투자허용' 주장은 소위 억까에 가깝습니다.>
국토부가 형평성 보장을 위해 다주택자와 동일하게,
세입자 있는 1주택자에게도 매도기회를 주려고,
매수인은 무주택자로 한정하고, 매수인은 기존 임차인의 잔여 임차기간이 지난 후에 입주할 수 있게 허용하되 그 기간은 최고 2년을 넘지 못하게 하려고 합니다.
임차기간 때문에 4~6개월 내 입주할 수 없어 매각하지 못하는 1주택자들에게도 매각 기회를 주되,
매수인은 2년 이내에는 반드시 보증금을 내 주고 직접 입주하라는 것입니다.
잔여 임대기간, 그것도 최대 2년 이내에 보증금 포함 매매대금 전액을 지급해야 하는데, 이걸 가지고 갭투자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하는 건 과해 보입니다.
부동산 공화국 탈출은 우리나라의 정상화와 지속 발전을 위한 필수 과제입니다. 부동산 투기 재발하면 몇이나 득을 보겠습니까? 협조를 요청드립니다.>
거래절벽 막으려… 비거주 1주택 매매 길 튼다 https://t.co/l4T2PNgI88
검사 아들이 50억원 퇴직금 받는게 정의고
수천만원 뇌물 받아도 무죄고
'김영선이 거 쫌 해줘라' 증거가 있어도 무죄고
쵸코파이 먹었다고 800원 커피 사먹었다고 퇴사 시킨게 정당하고, 3년 600만원 장학금과 고등학교 봉사활동 표창장을 중범죄자 만드는게
너네들이 말하는 상식이고 사법정의냐?
장정수 기자
이해찬 전 총리를 추모하며
이해찬 전 총리가 오늘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이토록 갑작스러운 이별이 될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비보를 접하는 순간, 그분과 함께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는 민주개혁 진영이 낳은 최고의 전략가였습니다. 어떤 복잡한 정국 속에서도 냉철한 시선으로 해법을 찾아내곤 했습니다.
한겨레 신문 정치부 기자 시절, 저는 구 민주당을 출입하며 그를 거의 매일 당사에서 뵈었습니다. 김대중 총재가 이끌던 당시 민주당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당내에서 단연코 능력을 인정받은 유망한 정치인이었습니다. 당내에서 김대중 총재와 각종 정국 현안을 놓고 맞장 토론을 펼칠 수 있는 단 한 사람. 비판적 직언도 서슴지 않던 그에게 김대중 총재는 때로 언짢아하셨지만, 그의 높은 식견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김대중 총재의 2선 후퇴를 주장하는 정풍운동에 앞장섰을 때, 김 총재는 이해찬 전 총리의 공천 배제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워낙 뛰어난 능력을 지닌 그를 배제하는 것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김 총재는 결국 그 결정을 철회했습니다.
2016년, 김종인 씨가 민주당의 전신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추대된 후, 이해찬 전 총리는 총선 공천에서 컷오프되어 탈락했습니다. 현재 민주당 당대표인 정청래 의원도 함께 컷오프됐습니다. 김종인 씨는 뚜렷한 근거도 없이 '정무적 판단'이라는 말로 이해찬을 공천에서 배제했습니다. 아마도 이는 1988년 13대 총선 당시의 악연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 관악구에서 노태우 정권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의 거물 정치인이었던 김종인은, 운동권 출신 정치 초년생에 불과했던 평민당 후보 이해찬에게 패배했습니다. 언론이 김종인의 낙승을 예상했던 그 선거에서 이해찬은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당시 크게 회자되었습니다.
훗날 이해찬 전 총리가 들려준 일화가 있습니다. 개표 도중 민정당 후보였던 김종인의 무더기 표가 쏟아져 나와 개표가 중단되었다고 합니다. 평민당 선거운동원들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개표장이 아수라장이 되었을 때, 그는 운동원들을 차분히 설득한 뒤 선관위에 개표 속개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당시 김종인을 5% 이상 앞서고 있었기에, 문제의 표를 인정하더라도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만약 부정선거 의혹 제기로 개표가 장시간 중단된다면, 오히려 민정당 측에서 진짜 개표 부정을 자행해 당락을 뒤집을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습니다.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군사독재의 잔재가 여전히 강고했고, 안기부와 경찰 같은 권력기관들이 부정선거를 서슴지 않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 에피소드는 이해찬 전 총리의 재빠른 상황 판단력과 전략적 사고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또한 그는 민주운동권 출신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노무현 대통령의 진가를 일찌감치 알아본 정치인이었습니다. 재야 출신 인사들 대부분이 민주화투쟁 경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노무현을 정치 지도자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그는 이미 노무현을 진정한 지도자로 인정하고 그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 노무현을 지도자로 인정한 이는 이해찬과 유시민,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다소 괴퍅할 정도로 까칠했던 성정의 소유자였던 그였지만, 사람을 보는 눈만큼은 누구보다 예리했습니다.
그의 혜안은 이재명 대표를 대통령감으로 일찍이 주목했고, 정치권에서 뚜렷한 기반이 없었던 이재명 대표에게 든든한 버팀목이자 방패가 되어주었습니다. 민주당 내 일각에서 이재명 대표를 제거하려 온갖 폐악질을 자행할 때도, 이해찬 전 총리는 흔들림 없는 멘토이자 후원자였습니다.
지금 내란 척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 이해찬 전 총리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도 안타깝고 가슴이 먹먹합니다. 문재인 정부 초기, 민주 진영의 20년 장기 집권 플랜을 주창했던 그의 전략적 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한 지금, 그가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클지 벌써부터 가늠됩니다.
민주화 운동의 선배이자 굳건한 기둥이었던 이해찬 전 총리의 영면을 기원합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브리핑룸ON
이재명 대통령은 숙고와 고심 끝에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지명을 철회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통합은 진영 논리를 넘는 변화와 함께 대통합의 결실로 맺어질 수 있습니다. 통합 인사를 통해 대통합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고자 하는 이재명 대통령의 숙고와 노력은 계속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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