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나는 바꿀 수 없다고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선거가 끝났습니다.
831표, 2.13%. 저는 이번 선거의 숫자를 오래 바라보았습니다. 그 숫자는 단지 득표수가 아니었습니다. 시설에 갇혀 살던 사람도 정치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실제로 이 도시의 투표용지 위에 남은 흔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 앞에서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장애인권리를 약탈해온 오세훈 서울시장이 다시 5선 서울시장이 되었습니다.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와 권리중심공공일자리 해고, 장애인의 권리를 예산의 이름으로 뒤로 밀어온 정치가 수명을 연장했습니다. 이 결과 앞에서 저는 이 도시가 아직 무엇을 바꾸지 못했는지, 우리가 왜 더 넓게 만나야 하는지 생각했습니다.
시설에 있을 때 저는 선거가 저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투표권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꿀 힘이 없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살지, 언제 밖으로 나갈지, 누구를 만날지,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을 할지 스스로 정하기 어려운 삶 속에서 선거는 너무 먼 일이었습니다. 세상은 계속 움직였지만, 저는 그 움직임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지 못했습니다.
탈시설한 뒤에도 곧바로 정치가 제 것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2021년 탈시설장애인당 서울시장 후보로 이름을 올렸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 앞에는 더 급한 일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 나왔다고 해서 위험이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장애인 당사자가 살아가며 마주해야 하는 위험들은 계속 쏟아졌습니다. 저는 철거민 투쟁의 당사자로, 다시 도시에서 밀려나는 사람으로, 당장 삶의 자리를 지켜야 하는 시간 속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선거를 이번처럼 제 몸으로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로 저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투쟁의 현장에서 제 삶을 조금씩 꺼내왔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느린 방식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그것이 제 몸의 속도로 세상에 닿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래 삼키고, 오래 생각하고, 오래 걸려 겨우 말이 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시설에서의 시간은 그렇게 천천히 제 안에서 문장이 되고, 장면이 되고, 투쟁의 말이 되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달랐습니다.
선거는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사람을 만나야 했고, 모르는 시민 앞에서 제 이름을 말해야 했습니다. 기호 6번 조상지라고, 탈시설장애인당이라고,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만들고 싶다고 말해야 했습니다.
불안했습니다. 제 말이 늦게 도착할까 봐, 제 몸의 속도가 선거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까 봐, 제가 이 선거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그 빠른 시간 속에서 저는 동료들의 힘을 더 깊이 느꼈습니다. 제가 멈추면 함께 멈춰주는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제 말이 늦어도 기다려주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선거의 의미를 먼저 알아보고, 저에게 다시 알려주는 연대자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 선거를 통해 정치가 무엇인지 새롭게 배웠습니다.
정치는 내가 더 많이 말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어디에서 멈춰 서야 하는지 감각하는 일이었습니다. 내가 대신 말할 수 없는 삶이 있다는 것을 겸허히 인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정 앞에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그 목소리가 정치의 바깥에 남겨지지 않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돈의동 쪽방촌에 갔던 날을 기억합니다.
글을 읽지 못한다고 말하는 사람, 몸이 아프지만 장애로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 가난과 병과 고립 속에서 오래 버틴 사람들이 저를 바라보며 시의원으로 추천하고 싶다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는 오래 멈추었습니다.
제가 그분들의 삶을 대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시설에서 살아온 제가 쪽방에서 살아온 사람의 시간을 다 이해한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날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았습니다. 밀려난 사람, 갇힌 사람, 아파도 증명받지 못한 사람, 읽히지 못한 사람, 바꿀 힘이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선거가 누가 누구를 대표하거나 대리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선거는 힘 있는 사람이 힘없는 사람을 대신하겠다고 약속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힘이 없다고 여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힘을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따로 버려진 삶들이 서로를 정치의 자리로 밀어 올리는 일이었습니다. 당신의 삶과 나의 삶이 이 도시에서 함께 남아야 한다고 말하는 일이었습니다.
이번 선거를 하며 저는 많은 지지를 받았습니다.
장애인운동의 동료들만이 아니라, 빈민운동, 노동운동, 여성운동, 진보정당, 지역의 시민들, 이름을 다 적을 수 없는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저를 지지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의제의 사람들이 탈시설장애인당의 선거를 지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이 선거가 누구와 누구를 만나게 하는 일인지, 저 역시 선거를 치르며 배웠습니다.
저는 더 많이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많이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더 함께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 저는 당선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것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만난 사람들, 우리가 받은 표, 우리가 거리에서 나눈 말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설과 쪽방이 만났습니다. 장애와 가난이 만났습니다. 노동과 탈시설이 만났습니다.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과 말을 천천히 꺼내는 사람이 만났습니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밀려났던 사람들이 같은 정치의 자리 위에 함께 섰습니다.
저는 돈의동에서 멈춰섰던 순간을 잊지 않겠습니다.
그 멈춤은 제가 부족해서 생긴 침묵만은 아니었습니다. 함부로 대신 말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멈춤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에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기만 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삶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해하기 위해 듣는 일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저에게 아직 닿지 못한 목소리를 상상하고, 그 목소리가 저와 함께 이 자리에 존재할 수 있도록 더 넓은 길을 만들겠습니다.
저를 만나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느린 제 말을 기다려주신 분들, 제 손을 잡아주신 분들, 기호 6번 조상지의 이름을 기억해주신 분들께 고맙습니다.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선거의 의미를 함께 만들어주신 동료들, 동지들, 연대자들께 고맙습니다.
선거는 끝났지만 투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거운동의 시간에도 저는 투쟁의 거리 위에 있었고, 투쟁의 시간에도 우리는 이미 정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세훈 5선이라는 현실 앞에서도 이 과정은 멈출 수 없습니다. 권리를 빼앗는 정치가 연장되었다면, 우리는 권리를 확장하는 정치를 더 오래, 더 넓게 만들어야 합니다.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는 끝난 구호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치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멈춰 섰던 자리에서, 더 넓어진 정치의 자리에서 만납시다.
2026년 6월 5일
조상지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개 된다. 선관위가 잘했다거나 잘못이 없다는 말이 아니다. 참정권이 그렇게 중요한 걸 아는 사람들이, 그래서 대자보도 내고 시위도 하고 난리난리를 치는 사람들이. 왜 지금껏 소수자들이 투표하지 못한 역사에 대해서는 묵인하고 있었는지.
이번에 발언 준비하면서 찾아본 종로2선거구에서 시의원으로 출마한 '탈시설장애인당' 조상지 후보가 오세훈과 정면 대치하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 내일 저녁은 정말 오세훈 없는 서울에서 숨쉬고 싶다. 지금 '너는 주적이 누구냐'라고 묻는다면 서울에서는 오세훈이라고 답하고 싶은 심정
#조상지#탈시설장애인당
6·3 지방선거에 출마한 다른 후보들은 널찍한 대로변에서 수많은 유세원을 동원하지만, 중증 뇌병변 장애인 조상지 후보는 전동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폭 1m가 채 안 되는 쪽방촌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구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https://t.co/viaUXy99VI
이번 지방선거 탈시설장애인이 당당한 조상지 후보를 지지합니다. 오늘까지 후원 가능! 최중증장애여성 시설수용생존자 조상지에게 함께 힘을 보태주세요~~
국민 031601-04-258822
조상지 후원회(서울시의원선거)
후원금 영수증 신청: https://t.co/bO28bhScIO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둘째 날_현장 스케치]
🌞찬란한 햇살과 함께 시작된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둘째 날!
기획작 <벽을 넘는 목소리> 상영과 함께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둘째 날은 활짝 출발했습니다.
🎬마로니에 공원 야외무대와 장애문화예술원 이음홀에서 음성해설과 수어통번역이 함께하는 영화들이 10편 상영되었고요. 함께 진행된 감독과의 대화에서 나눈 이야기들이 영화제를 보다 찬란하게 만들었답니다.
😜마로니에 공원에서는 “해보기 전까지 모르는 거잖아” 슬로건이 새겨진 영화제 굿즈와 포토존! 알록달록한 연대부스의 굿즈와 이벤트! 산뜻하게 평등한 게임과 퀴즈들이 체험부스에서 왁자지껄 진행되었어요.
🗣또, 부대행사로 <‘장애’ 인권 ‘영화’ 제작기>가 진행되었는데요. 오랜 시간 공동창작시스템으로 장애영화를 만들어 온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영화인들의 창작과정이 담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반짝이는 시간이었답니다.
🍾내일 영화제의 마지막 날에는 폐막식이 진행되는데요.
끝나기 전까지 모르는 관객들이 뽑은 박종필상과 심사위원상이 수여될 예정입니다. 과연 수상의 영예를 누릴 작품은 어떤 작품일까요?
그럼 내일도 마로니에 공원에서 뵙겠습니다.
🎬 2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스크린 함께 밝히기 🎬
-소셜펀치: https://t.co/IqmCfjnTxH
- 계좌 : 국민 752601-04-258046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 후원리워드: https://t.co/Wk1czBatIj
☘️박종필상 투표: https://t.co/prMQBdDRM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