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투표 폐지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를
김진이 잘 말했네
투표 당일까지 민심 영향 이슈가 있고
유권자는 결정이 바뀔수 있는데
사전투표는 그 이후 본투표까지 기간동안의
민심을,바뀐 결정을 반영 못함
가짜뉴스를 만들어서라도 터트려
본투표 전날까지도 표심 바꾸는 짓들을 하는데
딴건 몰라도 한동훈이 등판해서 이로운게 이거임
한성숙 내정에 다 쓸데없는 소리들 하는데
딱 네이버가 성남FC 통해 뇌물 준 것부터 짚잖아
그래서 공소취소건도 좀 걱정이 덜해짐
일진담당으로 팰 놈이 있어서
무소속 귀환은 몽둥이로 때릴거 핵으로 때리는
정도의 체급을 갖게 된거라
살면서 무조건 1번은 쓴다.
북마크 필수!
✔️ 돈 없을때 응급실 ➡️ 129 (정부가 먼저냄)
✔️ 이사 후 주소 일괄변경 ➡️ 1588-1300
✔️ 공짜 법률 상담 ➡️ 132 (민.형사 소송까지)
✔️ 병원비 환급금 조회 ➡️ 1577-1000
(낸돈 돌려받기)
✔️ 해외 긴급 상황 ➡️ 02-3210-0404 (24시 통역)
✔️ 층간 소음 폭발 직전 ➡️ 1661-2642 (전문가 중재)
✔️ 전세 사기 예방 ➡️ 1566-9009 (보증금 확인)
✔️ 지하철. 버스 분실물 ➡️ 182 (전국 통합 조회)
✔️ 부모님 돌봄 . 방문 관리 ➡️ 1661-2129
그들이 존중받았던 건,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 때문이다. 지금은 이 부채의식이 없다. 그런데 그게 사라졌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옆에 없으니 늘 저런 태도다. 죽어도 반성하지 않고, 내란 세력 따위의 말만 한다. 장담컨대, 다음 선거에서도 그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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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신 이희호 여사의 생애를 기억하겠습니다.>
우리는 시대의 위대한 인물을 잃었습니다. 우리는 현대사의 고난과 영광을 가장 강렬하게 상징하시는 이희호 여사님을 보내드려야 합니다.
여사님은 의사의 딸로 태어나 최고의 교육을 받으셨습니다. 보통의 행복을 누리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사님은 평탄할 수 없는 선구자의 길을 선택하셨습니다. 시대를 앞서 여성운동에 뛰어드셨습니다.
여사님은 아이 둘을 가진 홀아버지와 늦게 결혼하셨습니다. 남편은 결혼 열흘 만에 정보부에 끌려가셨습니다. 고난은 신혼을 덮치며 시작됐습니다.
남편은 일본에서 납치돼 알 수 없는 바다에 수장될 뻔 하셨습니다.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다섯 차례나 죽음의 위기를 겪으셨습니다. 가택연금과 해외 망명도 이어졌습니다. 장남도 잡혀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여사님 스스로도 감시 속에 사셨습니다.
그런 극한의 가시밭길을 여사님은 흔들림 없이 이겨내셨습니다. 감옥에 계시는 남편을 생각해 한겨울에도 방에 불을 넣지 않으셨습니다. 남편이 감옥에 계시거나 해외 망명중이실 때도, 편안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신념에 투철한 강력한 투쟁을 독려하셨습니다. 훗날 김대중 대통령께서 “아내에게 버림받을까봐 정치적 지조를 바꿀 수 없었다”고 고백하실 정도였습니다.
여사님은 그렇게 강인하셨지만, 동시에 온유하셨습니다. 시위 현장에서 당신을 가로막는 경찰들의 가슴에 꽃을 달아주셨습니다. 함께 싸우다 감옥에 갇힌 대학생들에게 생활비를 쪼개 영치금을 넣어주셨습니다. 숙직하는 비서들의 이부자리를 챙기셨습니다. 누구에게도 화를 내지 않으셨고,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말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나긴 고난의 끝에 영광이 찾아왔습니다. 드디어 남편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셨습니다. 분단사상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하셨습니다. 우리 국민 처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으셨습니다.
어떤 외신은 "노벨평화상의 절반은 부인 몫"이라고 논평했습니다. 정권교체의 절반도 여사님의 몫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여사님은 평생의 꿈을 남편을 통해 이루어 가셨습니다. 여성부가 신설되고, 여성총리가 지명되는 등 여성의 지위향상과 권익증진이 시작됐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가 도입되는 등 복지가 본격화했습니다.
10년 전부터 여사님은 먼저 떠나신 대통령님의 유업을 의연하게 수행하셨습니다. 북한을 두 차례 더 방문하셨고, 영호남 상생 장학금을 만드셨습니다. 여사님은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는 유언을 남기셨습니다.
우리는 여사님께서 꿈꾸셨던 국민의 행복과 평화통일을 향해 쉬지 않고 전진할 것입니다. 영호남 상생을 포함한 국민통합을 위해 꾸준히 나아갈 것입니다. 고난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헤쳐오신 여사님의 생애를 두고두고 기억할 것입니다.
여사님께서 고문도 투옥도 없고, 연금도 망명도 없으며, 납치도 사형선고도 없는 곳에서 대통령님과 함께 평안을 누리시기를 기원합니다. 여사님, 우리 곁에 계셔주셔서 감사합니다. 여사님이 계셨던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2019년 6월 14일 신촌 세브란스병원
이희호 여사 공동장례위원장 이낙연
역사를 가르치는 자의 통찰은 때론 그 어떤 정치 평론보다 서늘하고 예리하다.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사 강사 최태성이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두고, 1960년 4.19 혁명의 사진을 소환했다.
"백주대낮에 참정권이 침해됐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훼손됐다."
역사학도의 렌즈로 작금의 사태를 투영해 본 결과, 2026년 잠실 투표소 앞의 아스팔트와 1960년 3.15 부정선거에 분노해 일어섰던 그날의 광장이 정확히 겹쳐 보인다는 서늘하고도 묵직한 경고장이다.
그런데 이 명징한 메시지 앞에서, 좌파 성향 네티즌들이 보여주는 반응은 경이로울 정도로 기괴하다. 그들은 최태성의 글에서 '4.19 혁명'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역사적 메타포를 억지로 도려낸 뒤, 기상천외한 해석을 내놓기 시작했다.
"핵심은 4.19를 들고나온 게 아니다. 진상 규명과 대안 제시를 전광석화처럼 하라는 행정적 촉구가 핵심이다. 물타기 하지 마라."
이쯤 되면 단순한 난독증을 넘어선 애처로운 정신 병리 현상이다. 4.19 혁명이 무엇인가. 국가 기관이 선거의 룰을 조작하고 주권자의 표를 도둑질한 '3.15 부정선거'에 맞서 정권을 무너뜨린 피 끓는 항쟁이다. 역사를 업으로 삼는 강사가 투표용지 증발 사태에 하필 4.19의 사진을 덧붙였다면, 그 의도는 초등학생도 읽어낼 만큼 노골적이다. 지금 선관위가 저지른 짓이 과거 3.15 부정선거의 21세기적 변종과 다를 바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좌파 맹신도들은 이 서늘한 진실을 결코 인정할 수 없다. 4.19의 비유를 긍정하는 순간, 주권자의 입을 수갑으로 틀어막은 경찰과 무능한 선관위, 그리고 그 파행의 결과로 선거 승리의 과실을 챙긴 자신들의 진영 전체가 '1960년의 부패한 독재 정권'과 완벽하게 동기화되기 때문이다.
진영의 앙상한 도덕성이 박살 나는 이 인지부조화의 고통을 견딜 수 없으니, 그들은 기어이 글쓴이의 명백한 의도마저 자신의 입맛대로 윤색해 버린다. "우리 편에 불리한 4.19 비유는 못 본 척할 테니, 이것은 그저 선관위의 행정 실수를 빨리 고치라는 점잖은 훈계일 뿐이다"라고 뇌를 세탁하는 것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해석하며 스스로 정신적 위안을 얻는 참으로 얄팍하고 지독한 '지적 자위(自慰)'다.
그동안 4.19와 민주주의의 역사를 자신들만의 신성한 전유물인 양 독점해 오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러나 정작 그 역사의 교훈이 자신들의 치부를 겨누는 비수로 날아오자, 그들은 가장 먼저 그 역사의 맥락을 거세하고 텍스트를 왜곡하는 파시스트적 몽매함을 드러냈다.
역사는 진영의 유불리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뷔페가 아니다. 팩트는 차갑고 묵직하게 그 자리에 존재한다. 한 역사학자는 작금의 투표용지 증발 사태를 3.15 부정선거에 빗대어 4.19를 소환했다. 글쓴이의 의도마저 제 꼴리는 대로 찢어 발겨 억지 자위를 시전하는 저 맹신도들의 눈물겨운 회피 기동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치명적인 독재의 늪에 빠져 있는지를 증명하는 가장 완벽한 희비극이다.
경기도산하 홈페이지 관리했던 돋움이란
회사가 민주당 경선 프로그램 만들고
그 경선 프로그램 운용도 설계자가 다 하고
투표율 낮추려 산 중턱 투표소에서,
투표하고 난후 후보 연설하고
투표 전화번호도 제각각이고 권당인데 인증
오류나고..
이 과정을 통해 이재명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었다...
입장을 바꿔 백번을 이해해 보려 해도, 이토록 상식과의 교집합이 완벽하게 멸종된 정치인이 역사에 또 있었나 싶다.
사회는 두 동강 났고 안보는 조롱당하며, 경제는 벼랑 끝에 섰다. 무너진 헌정 질서에 분노한 청춘들이 기어이 아스팔트 위로 내몰리고 있는 총체적 파국이다. 정상적인 국가의 지도자라면, 나가 있던 해외 순방마저 전용기를 돌려 즉각 귀국한 뒤 비상사태를 수습하고 고개를 숙여야 마땅할 절체절명의 시국 아닌가.
그런데 지금 이 나라의 최고 권력자 이재명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안방의 이 참혹한 아수라장을 등 뒤로 한 채, 천연덕스럽게 짐을 싸서 기어이 7일간이나 해외 순방길에 올랐다.
타국 정상들 틈에 끼어 미소 짓는 사진 몇 장을 국내 언론에 타전한다고 해서,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이 끔찍한 현실이 '외교적 성과'로 세탁될 것이라 믿는다면 치명적인 오산이다. 불타는 조종석을 비우고 홀로 구명정에 오른 선장에게 환호를 보낼 승객은 없다.
비행기 트랩을 밟고 오르는 그의 가벼운 발걸음은, 국가의 붕괴 앞에서도 오직 자신의 체면과 도피처만을 찾는 무책임한 권력의 가장 완벽하고도 서늘한 뒷모습으로 역사에 영구히 박제될 것이다.